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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13화 (313/326)
  • < 작은 전쟁 1 >

    아공간에 짐을 모두 넣은 현석은 다시 양동욱의 차에 올라탔다.

    일단 지금까지 모은 것은 다 챙겼다. 이제 이걸 갖고 아틀란티스로 날아가면 된다.

    섭외한 기술자를 데려가기 위한 준비를 마치면 바로 출발할 것이다.

    아틀란티스까지는 용을 타고 날아가야 한다.

    다른 탈것을 쓰면 은밀하게 갈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기술자들을 태울 상자를 따로 제작하기로 했다.

    마정석과 마법진이 잔뜩 들어가는 특별한 상자를 말이다.

    현석이 그걸 준비하는 동안 양동욱이 기술자를 한데 모으기로 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해 막 미래산업 빌딩으로 들어간 순간, 현석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음?”

    묘한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너무나 생소한 느낌이었기에 처음에는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

    한데 그 느낌이 한 차례 더 오고 나니, 슬슬 뭔지 알 것 같았다.

    현석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느낌이 왜 생소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왜 금방 익숙해졌는지도 알 수 있었다.

    ‘신의 파편.’

    신의 파편이 주는 느낌이었다.

    신의 파편은 거대한 힘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이 아틀란티스 전역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아틀란티스를 보호하고 있었다.

    물론 접근하는 적을 요격하거나 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신의 파편이 하는 방식은 지금 이 순간 하는 그거였다.

    파편의 힘을 소유한 현석에게 알리는 것 말이다.

    현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아틀란티스 전역이 머릿속에 쫙 펼쳐졌다. 물론 그 안에 있는 모든 걸 세세히 인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큼지막하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잠수함?’

    아틀란티스로 잠수함 몇 척이 접근 중이었다. 그냥 잠수함이 아니라 상당한 마력을 품고 있는 잠수함이었다.

    현석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은 양동욱을 쳐다봤다.

    “아틀란티스로 잠수함들이 접근하는 중이다.”

    “예?”

    양동욱이 기겁을 했다. 뜬금없이 잠수함이라니?

    “한 시간쯤이면 바다의 일족과 접촉하겠군.”

    잠수함의 이동 속도와 아틀란티스와의 거리를 파악하면 언제쯤 도착할지 대충 유추가 가능했다.

    현석의 말을 들은 양동욱은 황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 군데가 아니라 몇 군데나 걸어서 무언가를 확인했다.

    전화를 끊은 양동욱은 심각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렉스턴 에너지인 것 같습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던전을 노리는 자들과 던전을 탐사하는 자들을 모두 파악해 봤는데, 렉스턴 에너지 쪽에서는 쭉정이들만 깔짝거리고 있답니다.”

    그 얘기는 주력이 뭔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잠수함이고 말이다.

    양동욱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렉스턴 에너지가 대단하긴 대단하군요. 잠수함까지 동원할 줄이야…….”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들이 작정하고 잠수함까지 준비했다는 건, 상당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틀란티스가 이제 제대로 세상에 정착했다는 걸 알아차렸다보군요.”

    양동욱의 말에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렉스턴 에너지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위성으로 감시는 계속 했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이건 칼슨의 직감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칼슨도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하긴, 그러니까 렉스턴 에너지를 만들고 키워냈지.’

    지금이야 미래산업과 현석에게 밀려서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회귀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그때는 전 세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거대한 힘과 영향력을 보유한 기업이었다.

    그리고 칼슨은 그 기업을 마음껏 운용할 수 있는 최고 실권자였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죠? 대응할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과연 그들이 막아낼 수 있을까요?”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정도도 못 막으면 나중에 진짜 전쟁은 생각도 말아야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신의 파편을 통해 아틀란티스의 상황을 살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동안 파편을 깨우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신의 정체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다.

    ‘대체 신이 뭐지?’

    현석이 보기에 그 신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전 우주를 아우르는 전지전능한 신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물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고, 어떻게 보면 전지전능에 한없이 가까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힘은 오직 아틀란티스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지금도 아틀란티스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만일 신의 파편이 제대로 힘을 한 번 쓰면 아틀란티스를 향해 다가가는 잠수함 정도는 눈 깜짝한 사이에 박살 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현석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신의 파편은 지금 아틀란티스 주변을 그저 감시하는 것만으로 모든 역량을 다 쏟고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아직 제대로 깨어난 게 아닌 건가?’

    현석은 문득 신의 파편이 아니라 진짜 신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아틀란티스의 위상이 지금과 또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틀란티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양동욱이 모는 차가 어느새 미래산업에 도착했다.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주차장에 차가 서자, 현석은 바로 차에서 내려 옥상으로 향했다.

    어쨌든 알아서 제법 잘 막아낼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그래도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결국은 현석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쪽에는 제대로 된 무기도 없으니 더더욱 그랬다.

    상대는 렉스턴 에너지의 칼슨이다. 그가 어떤 강력한 수단을 갖고 왔을지 알게 뭔가.

    진짜 미친 척하고 핵이라도 쏴 버리면 그야말로 대재앙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그 정도 재앙이 벌어지면 신의 파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막아내긴 하겠지만 말이다.

    현석이 옥상으로 향하자, 양동욱은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눈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렉스턴 에너지에서 끌고 간 잠수함은 핵과 마력을 이용하는 잠수함이었다.

    아무리 현석이 대단해도 쉽게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결국은 막아내겠지.’

    양동욱은 그런 믿음이 담긴 시선으로 막 주차장에서 빠져나가는 현석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 * *

    -다수의 범선을 포착했습니다.

    무전으로 들려오는 보고에 칼슨이 씨익 웃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얼마 전 그렇게 허무하게 물러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그 복수를 할 차례가 되었다.

    “일단 간부터 봐야지. 어뢰 준비하라고 해.”

    칼슨의 말에 래리가 대답했다.

    “예.”

    래리도 사실 속으로는 좀 두근거렸다. 만일 지난번처럼 허무하게 어뢰가 통과해 버리면 진짜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적의 공격은 분명히 먹힐 테니까.

    ‘뭐…… 그래도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걸 저기서 무슨 수로 알아차리겠어?’

    현재 그들을 태운 잠수함은 수심 100미터쯤 되는 곳을 유영하고 있었다.

    그 정도 깊이를 파악할 수 있을 만한 장비를 저런 구시대적인 범선이 갖추었을 리 없었다.

    “발사했습니다.”

    칼슨도 알 수 있었다. 정면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 사선으로 올라가는 두 발의 어뢰가 보였으니까.

    “정확하군.”

    어뢰가 향하는 끝에는 두 척의 범선이 있었다. 물론 바닥만 보였다.

    그 범선들 주위로 다른 범선들도 제법 흩어져 있었다. 만일 이번 공격이 통하면 나머지 범선들도 단숨에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어뢰가 막 범선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그리고 대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아앙!

    극심한 물보라가 일어났다. 범선의 모습이 물보라에 가려져 어떻게 되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화면으로 보기엔 범선이 박살 났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확신해선 안 된다.

    이내 물보라가 사라지고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칼슨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범선이 너무나 멀쩡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지? 저놈들이 어뢰를 요격한 건가?”

    정황상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칼슨은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래리는 차분하게 화면을 확인했다.

    “아닙니다. 먹혔습니다.”

    “뭐? 저렇게 멀쩡한데?”

    “우리가 저 범선을 너무 우습게 여겼습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균열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저 범선, 어뢰를 견딜 정도로 강력합니다.”

    칼슨은 놀란 눈으로 래리가 손으로 짚은 곳을 자세히 확인했다. 정말로 균열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이 조금씩 커지는 중이었다.

    “저대로 두면 침몰하겠군. 아주 소용이 없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야.”

    어뢰도 안 통하는 놈들과 어떻게 싸우겠는가. 만일 저 균열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즉시 철수를 명령했을 것이다.

    “어쩌시겠습니까? 계속 어뢰발사를 지시할까요? 나머지 범선들에도 한 방씩 먹여가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칼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그래야 길이 열려서 상륙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칼슨은 일단 상륙만 하고 나면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들이 끌고 온 잠수함은 상당히 거대했다. 안에 태우고 온 플레이어와 병사의 수만 해도 수백 명에 달했다.

    하지만 진짜 병력은 이들이 아니었다.

    이 잠수함은 바닷길을 여는 목적으로 가져왔을 뿐이었다. 진짜 전투는 이후 도착할 거대한 함선들이 할 것이다.

    그곳에 수만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와 병사들이 대기 중이었다.

    칼슨과 래리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봤다. 적은 아직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쪽에서는 공격할 방법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아직 남은 어뢰도 엄청나게 많았다. 무기에 신경을 각별히 썼기에 지금 보이는 범선보다 다섯 배쯤 더 몰려와도 다 침몰시킬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어뢰를 보유 중이었다.

    “응? 빛입니다!”

    래리가 화면을 보며 기겁해서 외쳤다. 범선에 빛이 어려 있었다. 만일 저 빛이 바다 속으로 쏘아진다면, 그리고 그 위력이 지난번과 비슷하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칼슨도 그 생각이 들었는지 다급히 외쳤다.

    “피해! 어서!”

    이럴 때는 그냥 속도를 높이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다. 잠수함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아예 범선을 지나쳐 육지 쪽으로 더 가까이 붙은 것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범선은 그저 빛을 머금고 있을 뿐, 그걸 쏘지 않았다.

    그제야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화면을 확인한 래리와 칼슨의 표정이 굳었다.

    “방어를 위한 건가?”

    사람 하나가 배 밑으로 나와 갈라진 균열을 수리하고 있었다. 그제야 다른 범선들도 눈에 들어왔다.

    전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거…… 쉽지 않군. 핵이라도 쏴야 할 판이야.”

    물론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핵을 보유하고 있진 않았다. 칼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 병력을 상륙시켜야겠어.”

    “예? 후속 병력을 충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칼슨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소극적으로는 안 되겠어. 아예 대놓고 움직이는 게 낫겠어.”

    칼슨은 화면을 조작해 아틀란티스의 위성사진을 띄웠다. 그리고 한 군데를 조금씩 확대했다.

    “이곳에 이 대륙의 최고 실권자가 살고 있지 않겠어?”

    화면에 떠 있는 것은 최근 나타난 황궁이었다. 대륙 어디를 봐도 이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한 성이나 궁전은 없었다.

    “목표는 여기로 잡고, 양동작전을 펴야겠어.”

    “양동작전이라면…… 대기 중인 함선을 진격시킬 생각이십니까?”

    “그래. 그리고 본사에 연락해서 병력을 더 보내달라고 해. 아주 제대로 전쟁을 벌여야겠어.”

    래리는 불안한 표정으로 칼슨을 바라봤다. 지금 칼슨은 너무 막나가고 있었다.

    그런 래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칼슨은 계속 자기 할 말을 했다.

    “육지에 최대한 붙어서 병력을 상륙시켜. 그리고 잠수함도 전투에 참여해.”

    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승기를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물리력이 통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니 함포나 미사일도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래리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 이 계획을 들었을 때의 불안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시간 없으니 서둘러. 언제 던전으로 향했던 시선이 이쪽으로 돌아올지 모르니까.”

    “예. 알겠습니다.”

    전투는 아마 제법 길어질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사이 미리 상륙한 정예부대가 황궁을 장악할 테니까.

    그렇게 두 번째 전투가 시작되었다.

    < 작은 전쟁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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