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312화 (312/326)
  • < 아틀란티스 2 >

    양동욱은 감탄을 거듭했다. 현석이 이번에 보여준 한 수는 정말로 끝내줬다.

    그리고 진짜 던전을 원하는 위치에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해서 더 기분이 좋았다.

    정작 그 대단한 일을 해낸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지금 현석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양동욱이 준비한 무기와 장비들을 아틀란티스로 옮겨가기 위함이었다.

    “장소를 옮기셔야 합니다. 양이 제법 많아서 다른 곳에 쌓아뒀습니다.”

    양동욱이 무기와 장비를 합법적으로 구했을 리 없다. 당연히 추적당하면 곤란하다. 그러니 그런 물건을 미래산업 본사에 쌓아둘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인적이 아예 없는 곳에 쌓아두지도 않았다. 그런 곳은 오히려 더 눈에 띈다.

    사람이 원래 잘 안 다니던 곳에 누군가 자주 보이면 더 신경 쓰이는 법이니까.

    양동욱이 선택한 장소는 뉴욕이었다. 뉴욕에서 가장 허름한 곳, 그런 불법적 무기들이 모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곳에 분산해서 보관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장소에 또 다른 무기와 장비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아틀란티스는 거대한 대륙이다. 그곳을 지키려면 막대한 양의 장비가, 그것도 제대로 된 장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미래산업은 그 정도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쌓고 있었다.

    현석과 양동욱이 미래산업 빌딩을 나섰다. 두 사람은 평범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물론 겉보기에만 평범하고 각종 아티팩트와 최신 장비로 도배 되다시피 한 차였다.

    도청도 불가능하고 멀리서 감시하는 것도 불가능한 차였다.

    이 차를 제대로 감시하려면 마력 기반의 장비가 필요한데, 그건 현석이 함께 타고 있는 이상, 흔적 없이 쓸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이 차가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차는 뉴욕의 빈민가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정말 구석지고 외진 곳으로 향했다.

    차고 문이 열리고 차가 그 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양동욱이 차에서 내렸다.

    “굳이 하늘 뚫린 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간 양동욱은 커다란 철문을 힘겹게 열었다.

    철문은 창고 입구였다.

    건물을 개조해 겉으로는 그냥 허름한 아파트처럼 보이지만, 안은 거대한 창고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창고 안에 그동안 양동욱이 열심히 구한 무기와 장비들이 잔뜩 있었다.

    총과 폭탄은 물론이고 미사일과 잠수함까지 있었다.

    물론 전부 분해된 상태였기에 조립할 기술을 가진 사람이 따로 필요하긴 했지만 말이다.

    “기술자를 영입하긴 했는데, 아직 검증이 제대로 안 됐습니다.”

    실력은 확실한데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더구나 기술자 쪽은 더더욱 면밀히 살펴야 한다. 과거에 국가 기관이나 기업체와 얽혔을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어차피 가봐야 아무것도 모를 테니 상관없다.”

    양동욱의 눈이 번득였다. 만일 정말 무기를 조립만 하고 사용법만 남기고 돌아오는 거라면 실력만 검증하면 된다.

    실력이야 이 무기를 분해하면서 이미 검증했으니 그냥 보내면 끝이다.

    “나중을 대비해서 그래도 데리고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결국은 아틀란티스도 자리를 잡게 되겠지.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양동욱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현석이 하겠다고 하는 일이 실패하거나 이상하게 꼬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꼭 미래를 읽는 것처럼 행동하니…….’

    그래서 더 신비롭고, 더 믿음직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양동욱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현석의 그림자에서 샤텐이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샤텐으로부터 그림자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내 새까만 인간 형체가 되었다. 그들은 창고에 쌓인 물건을 미리 준비된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 안에 싣기 시작했다.

    얼마 전 양동욱이 특별히 제작한 컨테이너였다. 규격에서 너무 벗어나는 크기라서 배에 실을 수는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현석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지였다. 물론 최근 계속 성장하면서 아공간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림자들이 빠르게 움직여 물건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림자들을 움직이는 건 샤텐이었다.

    샤텐은 그 많은 그림자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종했다. 아마 저들을 이용해 전투를 벌여도 이런 식일 것이다.

    그림자의 수가 많아서 그런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이 끝났다.

    현석은 컨테이너 박스를 아공간에 넣은 다음 다시 차에 올라탔다.

    어느새 샤텐은 다시 현석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그렇게 차가 움직여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날 현석과 양동욱은 빈민가 곳곳에 마련된 창고를 무려 30곳이나 돌았다.

    * * *

    멕시코 국경 근처에 최근 나타난 던전 생성지역. 그곳에서는 지금 기싸움이 한창이었다.

    무려 13개나 되는 플레이어 길드가 나타나 서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플레이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13개의 길드는 각각 뒤에 거대한 기업이나 가문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즉, 이곳에 있다는 자체가 거대 기업이나 가문의 명령에 따라 블랙홀을 장악하기 위함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기업체나 가문에서 보낸 용병들도 함께 있었다. 최신 현대 무기로 중무장한 병사들이었다.

    언제 총격전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쫙 깔려 있었다.

    “굳이 서로 피를 볼 필요 있을까?”

    “피를 봐야 할 상황이라면 못 볼 건 또 뭐야. 차라리 싹 죽여 버리고 여길 장악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그렇게 말한 사내는 험악한 인상에 온몸에서 살기가 풀풀 풍겼다.

    분위기에 걸맞은 전적을 가진 사내였다. 무수한 전장을 겪으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죽여본 사내였다.

    그러다가 플레이어로 각성해 이렇게 거대 다국적 기업의 후원까지 받게 되었다.

    방금 그가 한 말은 진심이었다. 정말로 싸워서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수 있다고 믿고 있기도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가장 온화한 인상을 가진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이대로면 절대 싸움이나 분쟁이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차라리 손을 잡는 게 어떻습니까?”

    “싫은데?”

    험악한 사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관심 있게 온화한 사내의 말을 기다렸다.

    “공평하게 지분을 나누죠. 그 다음, 이후에 도착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공동 대응을 하고.”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구미가 당겼다.

    “지분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온화한 사내가 씨익 웃었다.

    “어떻게든 해야지요. 아니면 다 죽을 테니까.”

    그의 시선이 한 쪽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이쪽으로 다가오는 자들이 보였다.

    아직 거리가 제법 되긴 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도착할 게 분명했다.

    “자,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힘을 모아서 적부터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들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자 험악한 사내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큭큭큭큭. 이거야 원, 호랑이가 없으니 늑대들이 설치는군. 좋아. 나야 더 많이 싸울 수 있는 쪽이 좋으니까.”

    그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차량들을 노려봤다.

    “그럼 다 동의한 걸로 알지.”

    그의 몸에서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더니 시뻘건 불덩이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가오는 차량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화르륵!

    꽈아아앙!

    불꽃과 폭음을 신호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전투는 끝없이 이어졌다.

    이곳, 던전 생성지역을 노리는 자들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험악한 사내가 연신 불꽃을 만들어내며 중얼거렸다.

    “제일 지독하고 강한 놈들은 쏙 빠져나갔고…… 잔챙이만 가득하군.”

    그가 말하는 대상이 렉스턴 에너지와 에너지 산업을 장악한 거대 가문들을 말하는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 그들은 이번 던전 싸움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 * *

    새로 등장한 던전에 반응하는 세상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 중 하나였다.

    하나는 나타난 던전을 장악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눈치를 좀 살폈지만 이젠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이미 전투가 벌어져 매일 사상자가 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눈치를 볼 때가 아니라 움직일 때였다.

    던전 생성지역에서는 총칼이 난무했고, 뒤에서는 정치와 모략이 난무했다.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두 번째 반응은 다른 던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던전이 나타난 이상, 이게 끝이 아닐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던전이 있을 법한 곳에 탐사대를 보내 새로운 던전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물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는 곳도 수두룩했다.

    그래서 이 역시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싸움에서 쏙 빠져나간 자들이 있었다.

    바로 렉스턴 에너지였다.

    칼슨은 옆에 앉은 래리를 힐끗 바라봤다. 래리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불만도 좀 섞여 있는 것 같고, 불안감도 좀 보였다.

    “곧 도착할 텐데 표정 좀 풀어. 앙금을 가지고 일을 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니까.”

    칼슨이 얘기를 꺼내자, 래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칼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전 이해가 안 갑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무리를 해서 거기에 가야 합니까?”

    래리의 반응은 당연했다. 지금 그들을 태우고 아틀란티스로 향하는 건 단순한 배가 아니었다.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하는 거대 잠수함이었다.

    잠수함을 한 척만 동원한 게 아니었다. 무려 세 척을 동원해서 이동 중이었다.

    게다가 이 잠수함은 그냥 단순한 잠수함이 아니었다. 렉스턴 에너지가 가진 기술이 곳곳에 들어갔다.

    즉, 마력을 이용해 운행하는 잠수함이란 뜻이다.

    그렇기에 이 잠수함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마정석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요즘, 이런 잠수함을 운용한다는 건 굉장한 모험이었다.

    그렇기에 래리의 생각에는 과연 이런 잠수함까지 동원할 정도로 이번 일이 중요할지 의문이었다.

    “난 원래 감으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야.”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감이 제대로 발동할 때는 예외지.”

    래리는 과연 칼슨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몰라 멀뚱히 그를 바라봤다.

    칼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감을 따라 움직인 가장 최근의 일이 바로 미카엘이야.”

    “예?”

    “다짜고짜 나타나 자신과 손을 잡자고 하는 새파랗게 어린 놈의 얘기를 과연 몇 명이나 따를까? 그것도 돈을 모두 내가 대야 한다는데, 덥석 손을 잡을 미친놈이 과연 있을까?”

    래리는 그 말을 들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미친놈이 바로 나야. 그리고 지금의 내가 되었지.”

    칼슨이 양팔을 슥 벌리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지금 그 감이 또 한 번 발동했어.”

    칼슨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지도는 위성사진을 기초로 해서 그려진 아틀란티스의 지도였다.

    “여기에 가라고 말이야.”

    래리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칼슨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묘하게 끌렸다. 자신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굉장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 불안감 역시 래리의 감이었다.

    미래는 아직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법이다.

    < 아틀란티스 2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