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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10화 (310/326)

< 통합 2 >

“후우. 다행이군.”

제논 백작은 가장 먼저 황궁에 도착했다. 온몸이 뿌연 먼지로 뒤덮였지만 더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그를 따라온 기사들 역시 밝은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한 성취감은 그들의 사기를 고양시켰다.

제논 백작은 일단 몸부터 씻고 싶었다. 어찌 되었건 왕을 만나는 자리인데 이런 몰골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응?”

막 씻으러 들어가려는데 저 멀리 뿌연 흙먼지가 보였다. 워낙 멀어서 제논 백작 말고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누군가 오고 있었다.

“젠장 빨리도 오는군. 이거 씻을 시간도 없겠는데?”

제논 백작의 걱정은 마침 등장한 베르딘이 말끔히 날려 주었다.

“오셨습니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가장 먼저 도착해 주셨군요.”

제논 백작이 난감한 표정으로 양팔을 슬쩍 벌리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꼴이 이 지경인데 씻을 시간이 없군요.”

베르딘은 그 말에 빙긋 웃으며 양 손을 들어올렸다. 부드러운 마력이 그의 몸을 한 차례 감싸더니 손으로 모여들었다.

“잠시 숨을 참으시지요.”

거대한 물방울이 나타났다. 그러자 제논과 기사들이 급히 숨을 참았다.

촤악!

물방울이 날아가 제논부터 집어삼켰다. 그리고 빙글 회전해 몸과 갑옷에 눌어붙은 먼지나 오물을 싹 씻어냈다.

물방울은 그렇게 한 명씩 돌아가며 삼키고 회전후 뱉어내는 일을 반복했다.

어느새 모든 기사들의 몸이 말끔하게 변했다.

베르딘은 으쓱하는 표정으로 제논 백작을 바라봤다.

“어떻습니까? 개운하지요?”

“굉장합니다!”

솔직히 마법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 방금 베르딘이 보여준 마력의 흐름은 실력 좋은 기사들조차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고 복잡했다.

게다가 이런 마법이라니. 이걸 공격에 응용해도 아마 무시무시할 것이다.

물에 갇히면 손 한 번 못 써보고 익사 당할 테니까.

“자, 부담스러우니 이제 저쪽을 보시지요. 손님들이 도착했습니다.”

베르딘의 말에 제논 백작과 기사들이 고개를 돌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자들을 확인했다.

숲의 전사들과 사막의 전사들이 한데 뭉치다시피 해서 이를 악물고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누가 먼저 도착하나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거의 동시에 도착한 그들을 보며 베르딘이 또 나섰다.

“씻고 싶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시지요.”

다들 분한 눈으로 제논 백작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물방울을 보며 깜짝 놀랐다.

잠깐의 소란이 지나가자, 모두 말끔해진 모습이 되었다.

물에 갇혔다가 나왔는데도 몸에는 물기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신기한 눈으로 뽀송뽀송한 피부와 옷을 만져보던 무팔룬과 카니스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크흠. 그나저나…… 바다 쪽은 아직 안 왔군요.”

카니스의 말에 베르딘이 얼른 대답했다.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다들 묘한 눈으로 베르딘을 바라봤다. 저 얘기는 지금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베르딘의 감각이 뛰어나다는 뜻 아닌가.

아무리 마법사라지만 인정하기 어려웠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다들 실력만큼은 절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아, 오해들을 하신 모양이군요. 미리 마중 나가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제작한 연락용 아티팩트를 통해서 연락을 받았다. 그들도 열심히 달리는 중이니 곧 도착할 거라고 말이다.

그제야 다들 표정이 좀 풀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저 멀리 흙먼지가 일어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마르티우스가 이끄는 바다의 전사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베르딘의 마법을 통해 깨끗하게 변신했다.

모두 말끔하게 정리가 되자, 베르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황궁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자, 폐하를 뵈러 가시지요.”

폐하라는 호칭에 몇몇이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얼굴을 풀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정문으로 들어선 일행은 황궁까지 쫙 펼쳐진 길을 따라 빠르게 걸어갔다.

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힘겹게 문을 활짝 열었다.

일행은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홀이 그들을 반겼다. 그리고 그 홀의 끝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어?”

제논 백작과 베르딘을 제외한 모두의 입에서 똑같은 소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들의 표정도 똑같았다.

그들은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려 제논 백작을 바라봤다.

제논 백작은 이들이 대체 왜 이러나 싶었지만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만들며 말했다.

“폐하십니다. 일단 예를 갖춰주시지요.”

그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동안 정말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폐하.”

그 얘기 역시 엎드린 모두가 동시에 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제논 백작과 베르딘이 조금 전 그들이 지었던 것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제논 백작과 베르딘은 멍한 표정으로 현석과 바닥에 엎드린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그, 그럼……!”

저들이 말하던 왕은 단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왕은 자신의 왕이기도 했다.

제논 백작과 베르딘이 뿌듯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사실 베르딘은 준비한 것이 아주 많았다. 현석이 이 황궁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에 다른 일족의 왕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황궁의 소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역시…… 역시 괜히 황궁의 주인이 되신 게 아니었어.”

베르딘의 중얼거림은 바닥에 엎드린 사람들의 귀에 빨려들 듯 들어갔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다음 베르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그리고 황궁의 전설에 대해 듣고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현석을 바라봤다.

역시 왕이었다. 아니, 이젠 왕이라 할 수도 없었다. 이 거대한 땅을 모두 다스리는 분께 고작 왕이라니. 이분은 진정한 황제였다.

제논 백작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사실 논의를 위해 모인 자리였는데…… 생각보다 논의 자체는 필요치 않을 듯하군요.”

다들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일단 준비한 회의실로 가시지요.”

베르딘은 그렇게 말하며 최대한의 공경을 담아 현석을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논의가 필요없다. 앞으로는 황제의 명령과 그 명령을 받아 온몸이 부서져라 이행하는 기사와 전사들만 있을 뿐이었다.

모두의 눈빛이 결연함으로 빛났다.

* * *

회의는 아주 짧게 끝났다. 왕을 확인한 것만으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해결된 것이다.

이 거대한 대륙을 지배할 준비는 사실 현석이 황궁을 장악한 순간부터 이미 끝나 있었다.

황궁이 가지는 의미는 아주 특별했다. 황궁의 주인은 곧 대륙의 주인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마족이 침입하기 전, 전 대륙이 단 하나의 제국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부터 황궁은 그 큰 영토를 다스려왔다.

어디 하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고, 또 어디 하나 소홀히 여기는 곳도 없었다.

황궁에는 그 모든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도 황궁이었다.

황궁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처음 황궁의 시스템을 가동시킬 때 들어가는 에너지를 공급하기만 하면 된다.

신의 파편이 깨어나면서 황궁 자체가 초기화 되는 바람에 주인이 없는 상태였고, 현석이 벼락의 힘을 이용해 황궁의 시스템을 가동시킨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현석이 황궁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베를루니에는 황궁의 시스템을 이용해 대륙을 다스릴 능력을 가진 수많은 인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저 그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게 견제할 사람들만 있으면 된다.

각 일족에서 그 인원을 파견해서 함께 시스템을 운영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러니 회의가 길어질 이유가 없었다.

정작 회의 시간의 대부분은 그런 것보다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또한 현재 이곳 대륙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석은 담담히 현재 지구의 문명 수준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사실 그건 이들에게 있어서 기절할 만큼 놀라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지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조만간 접근하려는 자들이 늘어날 거다. 당분간은 아무도 못 오게 막아라.”

마르티우스가 씨익 웃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 누구도 바다를 건너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에 필요한 물자는 현석이 공급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미래산업도 이들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

아마 그동안 지구에서 현석이 쌓아왔던 모든 것을 이번에 던져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미래산업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미래산업은 미래산업이고, 이곳은 이곳이다.

“아 참. 그보다 일단 나라의 이름부터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르딘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다들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좌중을 슥 둘러본 다음 잠깐 생각에 잠겼다. 현석에게 있어서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장 떠오른 이름을 툭 던졌다.

“아틀란티스.”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 서로를 바라봤다. 왠지 어감이 귀에 착착 감겼다.

현석은 그동안 이곳이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가 아닐까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한데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제가 당장 공표하고 오겠습니다. 각 일족에도 연락을 넣겠습니다. 아마…… 다들 굉장히 좋아할 겁니다.”

베르딘은 참지 못하고 후다닥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사실 좀 무례한 일이었는데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아니, 그럴 생각도 못했다. 아틀란티스라는 이름이 주는 여운에 취해 다들 몽롱해졌다.

현석은 이 의외의 상황에 살짝 놀랐다. 설마 이름이 주는 파급력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 몰랐다.

‘아틀란티스라는 이름에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건가?’

어쩌면 이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이름과 조상에 대한 그리움이라든가 아니면 전해지는 힘 같은 것들 말이다.

어쨌든 그날의 회의는 대충 그 정도로 마무리 되었다.

이제 현석에게 남은 건 미래산업과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것과 전 세계로부터 이들을 지켜주는 일이었다.

* * *

미래산업으로 돌아온 현석은 아틀란티스에서와 똑같은 경험을 한 번 더 해야 했다.

양동욱을 비롯한 모두의 표정이 멍해졌다.

가서 잠깐 들렀다 오겠다고 했는데, 다녀오니 그곳의 황제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의외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양동욱이었다. 그는 지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제 앞으로는 그들과 같은 배에 올라탄 겁니까?”

“정확하다.”

“그럼 아틀란티스의 개발권도 우리가 가져온 겁니까?”

“개발은 하지 않는다. 그곳은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양동욱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전 세계가 거기에 달려드는 이유가 바로 개발 때문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자원의 보고라고 했다. 게다가 아주 특별한 광물들에 대한 전설도 존재한다.

아마 다들 그걸 확인하고자 하지 않을까?

‘대체 그걸 어떻게 막지? 이러다가 진짜 세계대전이라도 벌어지는 거 아냐?’

양동욱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현석은 그런 양동욱을 보며 한 마디 툭 던졌다.

“던전을 만들 수 있다.”

“예?”

양동욱의 표정이 다시 멍해졌다.

< 통합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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