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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09화 (309/326)
  • < 통합 1 >

    궁전은 베를루니에 있지 않았다. 베를루니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냥 궁전이 아니라 황궁이었다.

    현석도 한 번 와본 적이 있던 그 황궁 말이다.

    ‘다 부서진 줄 알았는데…….’

    황궁에서 신의 파편이 나타날 때, 황궁은 아예 박살 났다. 아니, 박살 난 줄 알았다.

    한데 이렇게 다시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그때 박살 난 게 아니라 그냥 사라졌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황궁이 지금 이곳에 있었다.

    ‘원래 황궁이 있던 자리가 여긴가?’

    생각해보니 바벨도 황궁에서 먼 곳에 마탑을 세우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러니 애초에 황궁이 베를루니나 그 근처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긴 했다.

    현석은 앞장서서 황궁으로 들어갔다. 이쯤 되니 솔직히 궁금했다. 내부도 똑같은지 말이다.

    일단 정문에 들어가니 기억과 똑같은 광경이 쫙 펼쳐져 있었다.

    지독하게 넓은 정원이 있었고, 정문에서 이어지는 길이 쭉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궁이 우뚝 서 있었다.

    그때는 이 길 주위에 그림자들이 숨어 있었는데, 그건 없었다.

    현석은 길을 따라서 걸어갔다. 그리고 궁 안으로 들어갔다.

    기억 속의 그 넓은 홀이 들어가자마자 보였다.

    다만 황제가 앉아 있던 옥좌는 없었다. 그저 홀이었다.

    내부 구조는 어차피 본 것이 없었으니 더 봐도 비교가 불가능했다.

    다만 황궁의 대마도사의 존재는 궁금했다.

    이제 이 황궁의 주인이 되었으니 대마도사라는 시스템도 현석 마음대로 볼 수 있을까?

    현석은 그 생각을 하며 황궁 곳곳을 돌아다녔다.

    일단 대마도사라는 것 자체가 아무나 함부로 갈 수 있는 장소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좀 다른 시선과 방법을 통해 찾아야 한다.

    그리고 현석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과 힘이 있었다. 마력 말이다.

    현석의 마력이 황궁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워낙 보유한 마력이 많아서 대충 쭉쭉 흘려도 황궁 전체를 뒤덮고도 충분한 마력이 남아돌았다.

    황궁을 모두 스캔한 현석의 마력은 지하로도 뻗어 나갔다. 황궁에는 당연히 지하실도 있었고, 지하감옥도 있었다.

    그곳보다 더 아래로 파고들었더니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보물창고도 있었다.

    현석의 마력은 그 구조까지 낱낱이 파악했다.

    황궁의 보물창고는 황제의 침실에서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냥 길이 아니라 마력을 이용해 만든 길이었기에 마치 보물창고만 땅속 깊은 곳에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그건 모두 현석의 것이다. 현석은 일단 그쪽으로 갔던 신경과 마력을 끊고 다른 곳을 살펴 나갔다.

    그렇게 황궁 전체와 지하 깊은 곳까지 모두 확인한 현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궁의 대마법사는 이미 한 번 봤기 때문에 이 근처에 있다면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한데 그 비슷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황궁에 없는 건가? 아니면…… 그게 신의 파편이었나?’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황제가 그와의 만남을 보상으로 정해뒀을 리가 없으니까.

    ‘그나저나 내가 정말 이 황궁의 주인이 된 걸까?’

    현석은 문득 떠오른 의문에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갑자기 멈춰선 현석 때문에 깜짝 놀란 시녀들이 안절부절 못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녀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현석을 황제의 침실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시녀들을 이끄는 시녀장이 조심스럽게 현석에게 다가갔다.

    “저……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점이라도 있으신지요.”

    현석은 고개를 젓다가 문득 든 생각에 시녀장을 보며 물었다.

    “내가 이 황궁의 주인인가?”

    시녀장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폐하의 것입니다. 건물도, 사람도 말입니다.”

    현석은 시녀장의 말을 들으며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봤다.

    “황궁이 이 자리에 갑자기 나타난 거 맞지?”

    “예. 맞습니다.”

    시녀장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치 이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인 듯했다.

    “혹시 이 황궁에 얽힌 전설 같은 게 있나?”

    시녀장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걸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공손히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현석은 눈을 빛내며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보라고 했다. 시녀장은 얼른 생각을 정리한 다음 차분히 얘기를 시작했다. 이건 베를루니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린아이도 아는 전설이었다.

    “세상을 구원한 왕이 벼락과 함께 내려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벼락?”

    거기에 대한 얘기는 무수히 많았다. 전설은 원래 옛날이야기로 포장되어 자주 회자되곤 하니까.

    세상을 구한 왕에 대한 무수히 많은 버전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어디에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바로 벼락과 함께 내려온 왕이라는 대목이었다.

    시녀장은 대표적인 얘기 중 가장 짧은 것 몇 가지를 말해주었다.

    ‘벼락이라…….’

    괜히 그런 전설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왠지 현석은 그 전설이 자신을 위해 준비된 얘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나갔다오지.”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황궁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용을 불러 타고 위로 쭉 올라갔다.

    다급히 따라 나온 시녀들이 그런 현석의 모습에 입을 쩍 벌리고 하늘을 바라봤다.

    현석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황궁이 점처럼 보일 정도로 높이.

    그리고 용의 목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파지지직!

    용의 몸이 뇌전에 휩싸였다. 애초에 벼락을 다루는 용이었다. 그러니 온몸을 벼락으로 감싸는 것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다.

    또한 뇌전에 대한 속성력이 극에 달하다 못해 그 부분을 초월해 버린 현석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뇌전 속에 있으니 왠지 힘이 불끈불끈 솟는 기분이었다.

    “자, 가자.”

    현석은 정말 전설에 나온 대로 한 번 해볼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발견한 건 없지만, 혹시 자신의 마력 감지 능력을 벗어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꽈르르릉!

    현석은 한 줄기 벼락이 되어 용과 함께 황궁에 그대로 내리 꽂혔다.

    그리고 황궁의 첩탑에 도달하기 직전, 기이한 느낌을 주는 막을 뚫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현석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느새 용을 휘감은 벼락은 씻은 듯이 사라진 뒤였다.

    현석이나 용의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통제권이 넘어왔다.’

    현석은 황궁의 꼭대기에 선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용이 스르륵 사라졌다.

    참으로 신기한 감각이었다. 황궁을 마치 자신의 몸처럼 느낄 수 있었다. 황궁의 구석구석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또한 황궁 전체를 휘감고 있는 기이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방금 뚫고 들어온 막이 바로 그 힘의 정체였다.

    황궁의 통제권을 얻자마자 대마법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대마법사는 황궁 그 자체였다.

    이 황궁은 인간의 힘이 아닌 신의 힘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었다.

    현석은 천천히 눈을 뜨고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시녀들이 현석 앞에 오체투지를 하며 엎드렸다. 극도의 공경이 깃든 모습이었다.

    아까 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시녀들이 처음 현석을 봤을 때는 공경하는 마음과 두려움, 그리고 조심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한데 지금은 그런 모든 걸 초월해 마치 신을 영접하는 신도 같은 분위기였다.

    “다들 일어나라.”

    현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누구도 고개를 들어 현석을 바라보지 못했다.

    “다들 각자 할 일을 하도록.”

    이번에도 명령과 동시에 다들 움직였다. 깊이 허리를 숙여 물러가겠다는 인사를 한 다음 사방으로 흩어졌다.

    황궁은 거대하다. 그렇기에 일손도 많이 필요했다.

    시녀장은 그런 황궁의 살림을 도맡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사람을 더 뽑을 권한도 있었고, 어디에 어떤 사람들 배치해야 황궁이 잘 돌아갈지 알았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황궁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현석은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이내 자리를 옮겼다.

    이제 진짜 자신의 공간인 침실로 가서 잠시 쉴 차례였다.

    * * *

    베르딘의 연락은 순식간에 대륙을 장악하고 있는 네 부족에 닿았다.

    각 부족을 대표하는 자들이 길을 떠났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빠르게 이동할 방법이 있었으니까.

    각 부족을 대표하는 자들은 이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했기에 예전처럼 홀로 단출하게 다닐 수는 없었다.

    수행원들을 최소 수십 명 정도 이끌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 수행원들은 호위를 겸하는 자들이었기에 빠른 이동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끔은 그들이 스스로를 희생해 속도를 높이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다들 빠른 속도로 베를루니 근처에 있는 황궁을 향해 이동했다.

    숲의 부족을 대표하는 자는 무팔룬이었는데, 그는 수행원으로 숲의 전사 30명을 대동했다.

    무팔룬의 표정은 이동하는 내내 굳어 있었다. 그 분위기를 느낀 전사 한 명이 옆으로 따라붙어 말을 걸었다.

    “가서 반드시 항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사의 말에 무팔룬이 힐끗 그를 쳐다봤다.

    “아직 황궁의 주인이 정해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숲의 왕께서 아직 오시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황궁의 주인에 가장 어울리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바로 숲의 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데 마탑의 주인이자 도시의 왕이 먼저 황궁에 들어갔다니 왠지 기분이 상했다.

    최소한 나중에 모든 왕이 모였을 때, 서로 의논을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팔룬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동하는 내내 표정이 굳어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속도를 높인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해 의견을 전달한다.”

    그들이 숲의 왕을 숭배하는 것만큼 다른 부족들도 그들의 왕을 숭배한다.

    그렇기에 타 부족의 왕을 깎아내리거나 함부로 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야 그들 역시 숲의 왕을 존중해주고 존경해줄 테니까.

    하지만 항의는 할 것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항의한다.”

    아마 다른 부족 역시 같은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것도 경쟁이 될 수 있었다.

    왠지 이겨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이기고 싶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다. 무팔룬을 비롯한 숲의 전사들은 속도를 두 배로 높였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났지만, 꾹 참았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숲의 왕을 위해서라면.

    그와 비슷한 일이 다른 부족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었다. 카니스는 30명의 사막 전사를 이끌고 황궁으로 향했다.

    그 역시 이번 일에 대해서는 항의를 할 생각이었다. 사막의 왕은 보통 분이 아니시다.

    한데 그분보다 먼저 황궁에 거처를 잡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처사였다.

    마르티우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압도적인 수의 바다 전사를 이끌고 황궁으로 향했다.

    배를 타고 간 다음 육지를 거쳐야했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부족보다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예 숫자로 밀어붙일 작정이었다.

    물론 도시의 왕에게 직접 항의할 생각은 없었다. 그 역시 바다의 왕과 마찬가지로 왕이니까.

    다만 일처리를 이렇게 한 제논 백작이나 베르딘에게는 진짜 바다 전사의 항의가 무엇인지 보여줄 작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제논 백작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과장 좀 보태서 목숨을 걸고 달려가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다른 부족 사람들이 왕에게 무례를 범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가장 먼저 도착해 왕의 앞에 든든하게 서 있고 싶었다.

    그렇게 각자 똑같은 마음을 갖고 열심히, 폐가 터질 정도로 열심히 황궁을 향해 달려갔다.

    < 통합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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