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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08화 (308/326)
  • < 전설의 대륙 5 >

    바다가 정신없이 출렁였다. 한바탕 폭풍이라도 불어오는 듯했다. 그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고, 굉장한 충격이 사방을 뒤덮었다.

    칼슨은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한 걸 래리가 잡아줘서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자욱한 물보라가 안개처럼 사방에 흩어지고 있었다.

    귀가 먹먹했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란 말인가.

    간신히 정신줄을 살짝 부여잡고 주위를 둘러봤다.

    갑판에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무, 무슨 일이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칼슨의 말에 래리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적의 공격입니다. 마력을 이용한 장거리 무기를 보유한 모양입니다. 우리 측 플레이어들이 간신히 막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배는 계속 섬과 멀어지고 있었다. 래리의 판단이었다.

    만일 여기서 더 머뭇거리다가 방금 그 공격을 한 방 더 먹으면 절대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공격이었다.

    “왜 우리 공격은 안 먹히고 저놈들 공격만 먹히는 건데?”

    칼슨이 멍한 눈으로 래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마력 기반이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우리는 마력이 없는 공격을 했고, 저쪽은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공격을 했으니까요.”

    마력이 현실에 간섭해서 공격력을 갖게 된 것이다. 저쪽도 물리적 공격을 했다면 아마 전혀 안 먹혔을 것이다.

    아직은 그런 상태였다.

    “제가 일단 후퇴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위험할 것 같아서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제야 칼슨의 머리도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분하고 짜증났다. 대체 왜 이렇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우리 플레이어들 전력은 어느 정도지?”

    “아마 지구상에서는 당해낼 조직이나 국가가 없을 겁니다.”

    래리는 그렇게 말한 다음, 혹시나 칼슨이 어이없는 결정을 내릴까봐 얼른 덧붙였다.

    “제 생각에 제대로 공격하려면 하늘을 이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늘?”

    “예. 침투도 하늘을 통해서 하고, 공격도 하늘을 통해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마력 기반 무기가 필요합니다.”

    칼슨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래리의 말이 옳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칼슨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간다. 재정비해서 단숨에 해치워버릴 작전을 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래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서둘러 후퇴를 지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 섬 근처 범선들이 또 빛나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한 래리가 기겁을 해서 외쳤다.

    “속도를 높여! 최대한! 플레이어들은 방어를 준비해! 서둘러! 빛이 강해진다!”

    최고조에 이른 빛이 그대로 날아왔다.

    꽈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이 또 일어났다. 서둘러 후퇴하지 않았다면 정말 끝장났을 것이다.

    배가 사정없이 요동쳤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좀 수월하게 막았다.

    물론 플레이어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방어에 나섰던 플레이어들이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제 다시 공격이 들어오면 아마 못 막을 것이다.

    칼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음에는 절대 함께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

    렉스턴 에너지의 삽질이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 인사들에게 즉시 알려졌다.

    칼슨이나 래리는 그걸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성공을 확신하는 바람에 너무 대놓고 움직여서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어쨌든 그건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쪽의 공격은 먹히지 않고 저쪽의 공격만 유효하다는 건, 공략이 불가능하다는 뜻과 다르지 않으니까.

    금방이라도 새로 나타난 전설의 대륙을 병합해 거대한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모든 사람들이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양동욱은 감탄어린 시선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예측하신 대로 렉스턴 에너지가 실패했습니다. 바로 움직이실 겁니까?”

    다들 한 발 물러나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아마 미래산업에서 대놓고 움직여도 견제하는 세력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뭔가 성과가 나는 것 같으면 당장 움직일 테고 말이다.

    하물며 현석은 최대한 조용히 움직일 것이다. 혼자서 다니겠다고 했으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야 당연하고.

    양동욱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왠지 이번에 현석이 진짜 큰 사고를 한 번 칠 것 같았다. 라이언 일행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절대 떠올리지 못했을 상상이기도 했다.

    ‘저 대륙을 혼자 꿀꺽 하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보아하니 저 대륙을 이루는 모든 세력들과 우호적인 관계인 듯했다.

    그러니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내는 거야 정말 일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사교성이 좀 떨어진다는 건데…… 그거야 솔직히 별 문제도 안 되지.’

    양동욱은 그 어떤 언변보다도 현석이 가진 힘 자체가 가장 큰 외교적 무기가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현석은 양동욱의 지나칠 정도로 반짝이는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다.

    계획은 다 세워뒀다. 물론 계획대로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없는 동안 렉스턴 에너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주의하는 게 좋을 거다.”

    “염려 마십시오. 이미 감시 중입니다.”

    비단 렉스턴 에너지뿐 아니라 주요 가문이나 국가까지 모두 감시망 안에 두었다.

    지금 미래산업은 경제적 이익보다는 진짜 미래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다들 호시탐탐 전설의 대륙을 노리고 있으니 섣불리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방심하다가 삐딱선을 타고 나오는 놈이 나오면 정말 큰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전설의 대륙에 손을 뻗으려고 준비하는 자들은 어설픈 놈들이 아니었다. 정말로 큰 힘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움직여도 그 여파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변수를 만들어선 안 된다. 그 부분은 양동욱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석은 가만히 양동욱을 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라이언 일행을 쳐다봤다.

    그들은 현석과 눈이 마주치자 무겁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들의 임무는 현석이 없는 동안 양동욱을 지키는 것이었다. 또한 미래산업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들도 충분히 그럴 힘이 있었다. 그들이 가진 한계를 넘어섰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솔직히 힘에 부치면 우린 몸을 피할 곳이 있잖아요.”

    류지혜의 말에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생각을 하니 확실히 마음이 좀 가벼웠다.

    다른 자들에게는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진짜 도망갈 구석이 있었다.

    다름 아닌 투명 던전이었다.

    모든 화이트홀과 블랙홀은 사라졌는데, 투명 던전은 사라지지 않았다.

    투명 던전은 화이트홀이나 블랙홀과는 생겨난 방식 자체가 달랐다.

    실제로 투명 던전이 있던 곳은 대서양에 나타난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거대한 황궁이나 전쟁터가 현실에는 없는 장소였던 것이다.

    어쨌든 그 덕분에 여러 가지를 보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볼텍스 암시장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몇 가지 중요한 공정을 담당하는 생산시설도 보존했다.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드는 곳을 포함해서.

    현석은 대충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했다. 투명 던전은 마계와의 전쟁터를 분리한 것이었다.

    즉, 거기에는 상당히 복합적이고 복잡한 힘이 뒤섞여 있었다. 아마 나중에 이렇게 될 상황도 모두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공간일 공산이 컸다.

    물론 그건 추측일 뿐이다. 경계의 마왕이 가진 기억에서도 그런 건 읽어내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지금 그건 중요치 않다.

    현석은 담담한 눈으로 일행을 슥 둘러본 다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용을 불러냈다.

    그냥 날아갈 수도 있지만 용을 타고 가는 것이 여러 모로 더 익숙하고 편했다.

    현석이 등에 올라타자, 용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자연스럽게 마력이 뿜어져 나가 존재감이 슥슥 지워졌다. 그리고 그 상태로 대서양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 * *

    현석은 대륙을 크게 한 바퀴 선회했다. 현석이 탄 용은 이제 성장을 거듭해서 그 속도가 정말 빨랐다.

    그 빠른 용을 타고 하늘을 선회하면서 대륙 전체를 뒤덮은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현석도 성장했고 말이다.

    ‘아직 완벽히 안착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길면 5일, 짧으면 2일 정도면 안착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물리적 영향력을 서로 완벽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게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렉스턴 에너지가 싸우러 왔을 때는 보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는데, 이젠 그보다는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현석은 처음 예정한 대로 마탑을 향해 날아갔다.

    어차피 하늘 높은 곳에서 목표를 잡고 아래로 내리 꽂히듯 떨어졌기에 그야말로 순식간에 마탑 꼭대기에 내려설 수 있었다.

    아무런 충격도 없었다. 현석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아직 완벽하게 세상에 안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충격이 차원의 틈새로 모조리 빨려 들어간 것이다.

    바닥이나 건물도 아직 반투명한 곳이 많았다. 손을 갖다 대면 안으로 쑥 들어가곤 했다.

    그래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많이 안착된 모습이었다.

    마탑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현석은 마력을 뿜어내 특별한 패턴을 만들었다.

    안착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마력을 이용하면 된다.

    현석은 마탑의 주인이다. 그렇기에 마탑을 가장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사람도 현석이었다.

    현석의 몸이 마탑 꼭대기에서 아래로 그대로 스며들었다. 순식간에 마탑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마탑의 모든 층을 그냥 쭉쭉 거쳐 내려간 현석은 마탑의 3층에 도착했다.

    현 마탑의 실질적 운영자인 베르딘의 방이 바로 그곳에 있었으니까.

    베르딘은 갑자기 눈앞에 누군가가 뚝 떨어지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그 나타난 사람이 현석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얼굴 한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폐하!”

    베르딘은 그렇게 외치고는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경을 담은 인사였다.

    현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폐하?”

    자신이 이 도시의 왕이 된 건 맞다. 여길 떠나기 전에 그렇게 되는 것까지는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폐하라는 호칭을 받을 정도인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현석은 여전히 엎드린 베르딘에게 말했다.

    “일어나라.”

    베르딘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현석은 그런 베르딘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무래도 들어야 할 말이 좀 많을 것 같았다.

    베르딘은 현석이 묻기 전에 얼른 필요한 말을 꺼냈다.

    “폐하께선 이제 이 모든 도시를 지배하시는 왕이 되셨습니다. 아직 사소한 절차가 좀 남아있긴 하지만 그거야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도시?”

    베르딘이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서 커다란 지도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쫙 펼쳤다.

    대륙 전도가 그려진 지도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확히 세력들이 선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베르딘이 도시와 평야가 모인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모든 땅이 폐하의 것입니다.”

    현석이 고개를 들어 베르딘을 쳐다봤다.

    “제논 백작, 상당히 유능한 사람입니다.”

    현석은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제논 백작과 베르딘이 손을 잡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도시를 통합하는 데 걸린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건 확실히 제논 백작의 능력이었다.

    “아직 숲과 사막, 바다 쪽에서는 왕이 돌아왔다는 얘기가 없으니 우리가 제일 우위에 섰습니다. 전 그게 더없이 기쁩니다.”

    베르딘이 더없이 기쁘게 웃었다.

    “금방 대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놈들 코를 아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베르딘은 크게 웃다가 얼른 표정을 관리하고 다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 연달아 무례를 범하는 것 같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베르딘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의 표정은 너무나 담담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시작해라.”

    “예?”

    “대회의. 사막과 숲과 바다의 대표들이 모이는 거 아닌가?”

    “마, 맞습니다.”

    “모으라고.”

    현석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일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하라고 했다.

    베르딘이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현석을 모실 시녀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현석은 시녀들의 안내를 받아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저 멀리 거대한 궁전이 보였다.

    < 전설의 대륙 5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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