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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07화 (307/326)
  • < 전설의 대륙 4 >

    양동욱의 사무실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따로 자리를 만들어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처음부터 다시 계획을 짜기로 했다.

    정보도 새로 수집하고 말이다.

    사무실 안에는 양동욱과 라이언 일행, 그리고 현석만 남았다.

    잦은 회의 때문에 준비한 넓은 탁자 위에는 새로 나타난 대륙을 위에서 찍은 커다란 사진이 놓여 있었다.

    아니, 사진이 아니라 특별하게 제작된 스마트패드였다.

    당연히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런 것도 있었나요? 정말 대단하네요.”

    류지혜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러자 양동욱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특별주문의 위력이죠. 돈은 제법 들어갔지만 어쨌든 최신 기술이 모두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뭐…… 이걸 만든 회사가 우리 소유이기도 하고요.”

    “전자도 취급하시는 거예요?”

    “전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쓸 일이 많을 것 같아서요.”

    양동욱은 다시 시선을 탁자 위 사진으로 옮겼다.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해보죠.”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우리 대장님도 오셨으니 해볼 만한 일들이 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다들 사진을 보며 곳곳을 확대했다.

    놀랍게도 이 사진은 실시간으로 위성에서 보내주는 동영상이었다.

    물론 화질은 좀 떨어지고 움직임도 부자연스러웠다. 아직 프레임이 많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상황파악은 이걸로도 충분했다.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을 확대하고 다시 축소하며 세심히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물론 최종 결정은 현석이 내리겠지만 의견을 하나라도 제시해서 현석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다들 확인하고 생각하느라 입을 열 틈이 없었다.

    가장 먼저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라이언이었다.

    “일단 바다 쪽에 먼저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라이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들고 현석과 라이언을 번갈아 바라봤다.

    “일단 이쪽이 제일 호의적인 거 아니었나? 우리도 마족들이랑 제법 잘 싸웠고 말이야.”

    라이언이 동의를 구하듯 그렇게 말하며 팀 메인퀘스트와 추광열을 둘러봤다.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쪽은 호의가 넘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쪽은 안 그러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물론 저기 있는 사막 지대에는 함께 가지 않아서 알 수 없다. 하지만 숲과 도시들에는 함께 다녀왔기에 그쪽 분위기는 제법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마탑부터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쨌든 마탑주잖아요.”

    류지혜가 눈을 빛내며 동의를 구했다. 그녀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정보력은 마탑이 최고 아닐까요? 아무리 세상이 하나로 모였다고 해도 말이에요.”

    그 말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마 마탑은 가진 정보력을 총동원해서라도 다른 지역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수집했을 것이다.

    “이 숲의 전사들을 먼저 만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쪽도 슬슬 왕이 결정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만일 그랬다면 무팔룬과 손잡은 라일라가 왕으로 뽑혔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했다.

    그곳의 왕은 공석이고, 그 자리에 내정된 건 현석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니 당연한 추측이었다.

    다들 시선을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사막 쪽은 어떻게 됐어요?”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쪽은 정말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막의 전사들은 분명히 현석에게 큰 호의를 갖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들도 파편의 힘에 노출되었으니 그저 호의 정도로 끝나지 않고 좀 더 숭배에 가까운 감정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숲의 전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말이다.

    당시 사막의 전사들 자체가 상당한 지위였고, 그들의 힘도 대단했는데, 거기서 또 성장을 했으니 아마 사막 지역에서도 현석이 제법 힘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모든 건 그저 추측일 뿐이다. 진짜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려면 만나야 한다.

    현석은 일단 순서부터 짰다.

    “먼저 마탑에 간다.”

    마탑에는 정보 말고도 반드시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어야 하니까.

    재료는 아공간에 보관 중이었으니 재료와 생명수를 함께 넘겨 레인보우 엘릭서를 제작하도록 지시를 내려야 한다.

    더불어 자세한 정보도 좀 얻고 말이다.

    “어딜 가든 좋으니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방금 말을 꺼낸 양동욱에게 향했다. 양동욱은 일행의 시선을 탁자 위에 놓인 스마트 패드로 보냈다.

    패드 하단에 글자 몇 개가 떠 있었다.

    렉스턴 에너지가 출발했음.

    몇 개 안 되는 단어의 조합이었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파급력은 상당했다.

    다들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났다. 현석만 빼고.

    “얼른 가자! 저놈들보다는 최소한 먼저 도착해야지!”

    라이언이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현석은 여전히 느긋했다.

    “마탑 다음에는 바다로 가는 게 낫겠군. 일단 제대로 방어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 같으니까.”

    바다의 일족은 이미 현석을 왕으로 모시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또한, 그들의 믿음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현석은 양동욱을 보며 말했다.

    “레인보우 엘릭서를 충분히 준비해. 바다 쪽에 좀 나눠줄 생각이니까.”

    “레인보우 엘릭서를 나눠준단 말입니까?”

    양동욱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석을 바라봤다. 그게 어떤 물건인데 함부로 나눠준단 말인가.

    적어도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나눠줘야 할 것 아닌가.

    라이언이 나서서 양동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건 걱정할 거 없어. 각 지역마다 최소한 500명 이상은 의심없이 믿어도 괜찮으니까.”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동욱은 왠지 자신만 소외되는 느낌이 들어서 내심 투덜거렸다. 하지만 저들이 모두 저렇게 주장하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뭐……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양동욱은 레인보우 엘릭서 문제는 그렇게 넘어가기로 하고 다시 표정을 바꿔 현석을 바라봤다.

    “그럼 이제 언제 출발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현석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일행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렉스턴 에너지가 실패한 다음에 출발한다.”

    “예? 실패요?”

    다들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지금 렉스턴 에너지의 실패를 확신하고 있었다.

    ‘대체 저기 뭐가 있기에 그런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게 당연했다. 저 대륙에 직접 가서 대륙 내부와 주변에 흐르는 마력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저 대륙은 아직 이 세상에 완벽하게 안착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륙이 지구의 모든 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말이다.

    * * *

    칼슨은 직접 움직였다. 사실 마음이 좀 급했다.

    “이럴 때 미카엘이 있어야 하는데.”

    그 말에 래리가 살짝 달래듯 얘기했다.

    “어차피 있었어도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면 나중에라도 미카엘이 알아서 할 겁니다.”

    “그건 그렇지.”

    칼슨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사실 좀 못미더웠다. 어느 순간부터 미카엘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그래도 아직까지 칼슨과 렉스턴 에너지에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미카엘이었다.

    아니, 애초에 미카엘이 아니었다면 렉스턴 에너지라는 거대한 사업을 시작하는 건 물론이고 여기까지 이끌어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미카엘은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지? 이제 그 열쇠인지 뭔지는 안 찾는다고 하지 않았나?”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래리도 사실 좀 궁금했다. 대체 미카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하지만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제한적이었다. 미카엘에 대한 정보는 칼슨 선에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다.

    그러니 칼슨이 모든 걸 알려주지 않는 이상, 래리가 미카엘에 대해 더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아니면 아예 미카엘이 찾아와서 직접 얘기해 주거나.

    “그나저나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되어갑니다.”

    벌써 출발한 지 며칠이 지났다. 마음 같아선 비행기로 단숨에 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거대한 배를 타고 이동했는데, 렉스턴 에너지의 특별한 기술이 가미되어 보통 배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했다.

    또한 크기가 엄청나서 함께 데려온 플레이어와 무장 병사의 수도 상당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웬만한 작은 나라와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있었다.

    달랑 배 한 척만 온 게 아니었다. 무려 다섯 척의 배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미래산업과 싸우기 위해 움직이던 모든 플레이어와 용병들을 싹 데려왔다.

    “아틀란티스를 최초로 정복한 사람이 되는 건가?”

    칼슨의 말에 래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곳이 아틀란티스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놈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좀 더 파악했어야 하는데 살짝 아쉽긴 하군.”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 한데 이곳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위성사진으로 판단한 것밖에 없었다.

    “별 거 없을 겁니다. 우리가 보유한 무기를 그들이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기관총에 수류탄은 물론이고 작은 미사일까지 준비했다. 그런 화력을 고작 중세 정도 문명에서 막아낼 수 있을 리 없다.

    혹시나 원주민들이 마력을 다룰지도 몰라 플레이어들도 잔뜩 데려왔다.

    그러니 변수가 있을 리 없다.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래리가 신경 쓰는 건, 이 대륙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일이었다.

    이 전쟁에서 아무리 크게 승리해도 그 다음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정치에서 실패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된다.

    사실 래리나 칼슨은 이 거대한 대륙을 혼자 다 먹겠다는 생각으로 온 게 아니었다.

    그저 확실한 영토와 원주민을 적당히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여기서 얼마나 제대로 된 땅을 얻느냐가 향후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적어도 칼슨과 래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세계 유수의 국가나 가문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말이다.

    “육지가 보입니다.”

    래리는 앞을 바라보다가 어른거리는 육지를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아마 칼슨의 눈에는 아직 안 보일 것이다. 어쨌든 래리는 플레이어였으니 일반인보다 시력이 월등히 좋다.

    래리의 눈에 점점 선명한 육지가 보였다. 보아하니 아직 대륙은 아니고, 그 근처에 있는 섬인 듯했다.

    위성 사진을 통해 대륙 근처의 섬에도 원주민이 나름의 문명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걸 이미 확인했다.

    “드디어 첫 전투가 시작되는 건가?”

    칼슨이 기대감 어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그의 눈에도 섬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섬 주변을 배회하는 범선들도 보였다.

    “자, 일단 배 몇 척만 박살을 내 보자고. 피를 보지 않고 항복을 받아내면 좋겠지만, 절대 그럴 리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래리는 즉시 휘하 용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서둘러 휴대용 미사일을 준비했다.

    뛰어난 전자장비로 떡칠이 된 미사일이었기에 화면으로 목표를 찍기만 하면 끝이었다.

    다섯 발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슈우우우우!

    칼슨과 래리는 범선을 향해 날아가는 다섯 발의 미사일을 보며 당연히 범선이 박살 날 거라고 여겼다.

    퍼버버버벙!

    다섯 개의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칼슨과 래리의 눈이 커다래졌다.

    물기둥은 정확히 범선이 있는 곳에서 솟아올랐다. 그런데도 범선은 아주 멀쩡했다.

    심지어 물살에 흔들리지도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래리도 고개를 젓는 수밖에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으니까.

    “일단 근처로 다가가 봐야 정확한 걸 파악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럼 그렇게 해!”

    래리는 손짓을 해서 배를 전진시켰다. 한데 그때 저 멀리 범선에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불안한데?’

    래리는 갑자기 엄습하는 불길한 느낌에 근처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특히 감각이 뛰어난 플레이어들을 근처에 두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 중 몇 명이 고개를 돌려 래리를 바라봤다.

    “굉장한 마력입니다!”

    래리는 깜짝 놀라 다급히 손짓으로 명령을 보냈다. 즉시 배들이 멈추고 선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범선의 빛이 폭발적으로 강렬해지더니 무언가가 배를 향해 날아왔다.

    꽈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전설의 대륙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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