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306화 (306/326)

< 전설의 대륙 3 >

“이것이 대서양의 위성사진입니다.”

커다란 스크린에 대서양의 위성사진이 떠올랐다. 원래는 바다밖에 없어야 할 곳에 거대한 대륙이 떠 있었다.

대륙이라고 하기엔 살짝 작은 감도 있었지만, 이걸 섬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규모가 너무 컸으니까.

보고자가 손에 든 버튼을 누를 때마다 사진이 바뀌었다.

사진을 조금씩 확대한 것이다.

“보시다시피 이곳은 사막 지역입니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사진이 또 넘어갔다.

“이곳은 대수림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부족 단위로 모여서 살아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숲 안에 거대한 규모의 도시도 존재합니다.”

보고자는 계속해서 사진을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다.

“대륙 주변에 있는 무수한 섬들에도 각각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배의 모습을 보면 문명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범선의 모양으로 유추하건대 중세 시대 정도인 듯했다. 그게 아니라도 증기기관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설명을 듣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물었다.

“그럼 별다른 위협은 없는 셈인가?”

“지금으로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한 사항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아직 우린 저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그나저나 저런 거대한 대륙이 갑자기 나타났는데, 지구에는 아무 이상반응이 없었나? 최소한 해일이나 지진 정도는 있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그게 저희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30일 이전까지의 모든 데이터를 확인해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심지어 작은 지진조차 없었습니다.”

“정말 이상하군.”

아마도 이 방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내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분위기는 어떤가?”

“일단 보도 통제는 하고 있습니다만, 더 이상은 막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눈치를 챈 기업과 가문들이 있습니다.”

그 말에 콧수염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았다.

“하여간 문제야. 이런 일은 국가적으로 해결을 해야지 어떻게든 못 뜯어먹어서 안달이니…… 들개 같은 놈들.”

“어찌 할까요?”

“다른 나라의 반응은 어때?”

“기업체나 힘 있는 가문들과 비슷한 반응입니다. 안달이 나 있습니다.”

“쯧쯧. 멍청한 것들.”

그가 생각하기에 저곳은 자원의 보고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자원 개발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저길 어떻게 차지하느냐에 따라 향후 세상의 흐름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예전과는 다르다. 저곳의 원주민에 대한 인권이 대두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저들을 착취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콧수염 사내는 화면을 보며 손가락을 휙휙 돌렸다. 계속 하라는 의미였다.

보고자가 사진을 또 넘겼다.

“특이 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거대한 나무를 확대시킨 사진이었다. 한데 보고 있다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이거…… 나무가 커도 너무 큰데?”

“비정상적으로 큰 나무입니다. 사실 이 사진도 간신히 얻은 겁니다. 위성으로도 파악이 잘 안 되는 지점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이 나무가 그 중 하나인데, 그나마 유일하게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보고자는 또 사진을 넘겼다. 연달아 몇 장의 사진이 넘어갔는데, 하나같이 뿌연 안개 같은 사진뿐이었다.

“그 파악이 안 되는 지점의 사진입니다. 언제 확인을 해도 이런 사진 외에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대륙 사진이 나왔다.

보고자는 지시봉을 이용해 그 사진의 몇 군데를 탁탁 짚었다.

“이곳들이 바로 그 지점입니다.”

“흐음. 좀 꺼림칙하군. 뭐, 위험하면 그 근처에 안 다가가면 되겠지.”

던전도 있고 하니 초자연적인 일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워졌다. 콧수염 사내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모르면 안 건드리면 된다.

그렇게 보고가 막바지로 가고 있을 때, 갑자기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온 사람을 콧수염 사내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무슨 일이지?”

“크, 큰일났습니다!”

“큰일?”

“더, 던전이……! 던전이!”

“던전이 뭐 어떻게 됐는데?”

“던전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던전이 사라지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멀쩡하던 던전이 갑자기 왜 사라진단 말인가.

“무슨 소리인지 자세히 설명해!”

“생성지역 내의 던전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단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원인은? 원인은 파악되었나?”

“아직 상황 파악부터 하고 있습니다. 우리 쪽만 그런지 아니면 세계적으로 동시에 벌어지는 일인지 확인 중입니다.”

콧수염 사내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그는 미국에서 국가에 속한 모든 플레이어들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플레이어를 이용한 국가 방어 사업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러니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던전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그런 중요한 자원이 모조리 증발해 버렸다는 보고를 듣고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고 있을 때, 전화를 통해 상황을 전달받은 사내가 침중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전 세계적인 일이랍니다. 세계의 모든 던전이 방금 소멸했습니다.”

콧수염 사내는 말문이 막혀서 가만히 사내를 노려보기만 했다. 무슨 지시를 내려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새로 나타난 대륙을 어떻게 요리할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던전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일단 원인을 파악 중입니다. 감지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던전 생성지역을 조사 중이니 어떻게든 결과가 나올 겁니다.”

“나와야지. 무조건 나와야지. 그게 아니면…….”

콧수염 사내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새로 나타난 거대한 대륙의 모습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더 이상 던전에서 아무것도 뽑아낼 수 없다면 그게 가능한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저길 공략할 계획을 세워야겠어.”

콧수염 사내는 결연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일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플레이어를 다수 보유한 국가의 경우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동안 던전을 통해 얻은 게 많은 나라일수록 움직이는 속도가 빨랐다.

얻은 게 많다는 얘기는 앞으로 잃을 것도 많다는 뜻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세계의 흐름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 *

현석은 미래산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푹 쉬었다.

신의 파편을 받아들여서 그런 걸까? 다른 때보다 피로감이 훨씬 더 심했다.

처음 이틀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니 몸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역시 피로감은 신의 파편 때문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피로가 싹 날아가고 몸이 더없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신의 파편으로부터 받아들인 힘이 몸에 완벽하게 안착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안착한 힘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꼬박 하루를 더 소모했다.

신의 파편을 받아들이면 레벨이 더 올라갈 줄 알았는데, 그건 레벨과는 전혀 상관 없는 힘이었다.

그냥 타이틀이나 스킬 등의 방식으로 힘이 되었다.

그러니 여기서 레벨이 더 올라간다면 아마 엄청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과연 생명수를 이용해 만드는 레인보우 엘릭서가 현석에게 통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현재의 힘이 너무 강해서 어쩌면 레인보우 엘릭서로도 레벨을 올리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현석의 레벨은 한계에 달했다. 더 이상 사냥이나 전투를 통해 레벨을 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레인보우 엘릭서뿐이었다.

현석은 그렇게 새로 얻은 힘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방을 나섰다.

이제 라이언 일행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더불어 양동욱도 만나고 말이다.

아마 새 대륙이 나타난 사실이 어느 정도 알려졌을 것이다.

아무리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났다고 해도 그렇게 큰 변화가 생겼는데 조용할 리 없었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격렬할지도 모르지.’

미국을 비롯해서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의 정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위성도 있다. 하늘에서 바다의 변화를 확인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방을 나선 현석은 곧장 양동욱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차피 같은 건물 안에 있으니 찾아가기도 쉬웠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현석은 안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닫고 방안을 슥 훑었다.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특히 케틀러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양동욱은 정신없이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바쁘긴 하지만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양동욱 근처에는 라이언 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혹시 있을지 모를 일에서 양동욱을 지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면서 사람들의 대화나 행동, 혹은 스치듯 보이는 서류를 통해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중에서 류지혜는 확실히 그 정도 능력은 있었다.

현석은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제야 라이언 일행이 현석을 발견했다. 다들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해서였다.

아니, 현석에게 존재감 자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또 달랐다.

직감적으로 현석이 자신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로 올라섰다는 걸 알아차렸다.

라이언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현재 그의 레벨은 500을 넘어섰다. 이제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더불어 누가 와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한데 현석을 보니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대체 레벨이 몇이야? 설마 1000레벨이 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실 현석의 레벨은 라이언과 그렇게까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물론 라이언보다는 높다. 하지만 그래봐야 수십 레벨 정도의 차이였다.

만일 신의 파편이 아니었다면 라이언도 이 정도까지 격차를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언제 오셨어요?”

가장 먼저 반가이 맞아준 사람은 류혜연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항상 변하지 않았다.

현석만 보면 언제나 반짝였고, 그 안에 무한한 호감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말에 그제야 양동욱도 현석을 발견했다. 양동욱 역시 환하게 웃으며 현석을 맞이했다.

“아,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요.”

양동욱은 커다란 사진 한 장을 펼쳐들었다. A4 정도 크기의 사진이었는데, 거기에는 이번에 새로 나타난 전설의 대륙을 위성에서 본 모습이 찍혀 있었다.

“지금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산업을 견제하고 공격하던 움직임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런 전력까지 모두 저쪽으로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군사력을 움직이는 나라도 상당했다.

물론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없었다. 여기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섣불리 움직였다간 집중포화를 맞을 수도 있었다.

렉스턴 에너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칼슨은 자신의 인맥과 힘을 최대한 동원해 그곳에 대한 우선권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미래산업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쪽은 추구하는 방향이 살짝 달랐다.

“여기가 거기 맞지? 그렇지?”

라이언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 역시 화이트홀에 다녀왔으니 확대된 사진을 보면 다 알 수 있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했으니 정확한 답을 줄 수 있었다.

“역시 그랬어. 이제 어쩔 거야?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지?”

라이언이 불타오르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저곳이 현대의 승냥이 떼에게 짓밟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현석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일행을 슥 둘러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뭔가 착각하고 있군.”

“착각?”

현석이 사진을 손가락으로 툭 짚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그리 쉬운 곳 아니야.”

왠지 현석의 말이 무겁게 심장을 내리눌렀다.

< 전설의 대륙 3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