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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05화 (305/326)
  • < 전설의 대륙 2 >

    현석은 나타난 대륙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딱 예상했던 대로였다.

    각각의 화이트홀로 존재하던 세상이 저 아래에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현석은 문득 걱정이 되었다. 과연 그곳에 살던 사람들도 모두 함께 왔을까?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대륙을 둘러싼 바다를 돌아다니는 배가 보였기 때문이다.

    무수한 섬이 있었고, 그 섬에서 배가 출발해 근처 해역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막의 오아시스들도 보였다. 그리고 숲의 부족들이 사냥하는 모습도 보였다.

    거대한 들판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가 보였다. 그리고 강도, 산도. 그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모든 것이 고스란히 이쪽으로 넘어왔다.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까지 전부다.

    현석은 하늘에 높이 뜬 채로 그 광경을 계속 지켜보기만 했다.

    과연 저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긴 할까? 그리고 저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마수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갑자기 마수의 존재가 거슬렸다. 그러자 그 순간 몸에서 소화하지 못하고 저장만 되어 있던 힘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현석은 지금이 이 힘을 소화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늘에 뜬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우우웅!

    현석의 몸이 나직이 진동하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빛나는 채로 천천히 하강했다.

    현석의 몸에 담긴 힘이 차근차근 진짜 현석의 것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 모든 힘을 다 소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상당히 많은 힘이 그 와중에 밖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렇게 빠져나간 여력이 빛으로 변해 현석을 감싸고 있었다.

    아마 저 아래 대륙에서는 하늘에 거대한 태양이 하나 더 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기적이 시작되었다.

    슈슈슈슉!

    현석을 집어삼킨 거대한 빛 덩어리에서 무수한 빛줄기가 쏟아져 나갔다.

    그 빛은 커다랗게 호를 그리며 휘어서 대륙으로 쏟아졌다.

    대륙 전역에 새하얀 빛의 비가 내렸다.

    퍼버버버버버벅!

    현석은 빛 속에 갇힌 채, 대륙에 빛이 쏟아지면서 만들어 내는 결과를 온몸으로 느꼈다.

    각각의 빛줄기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거대한 힘이 담긴 빛이 대륙에 사는 마수들을 덮쳤다.

    정말 신기하게도 딱딱 마수에게만 빛줄기가 직격했다.

    마치 빛줄기가 의지를 가지고 마수들을 찾아다니면서 공격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빛의 세례가 끝났다.

    현석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어느새 빛은 모두 사라진 뒤였다. 현석은 자신의 몸에 남은 힘을 점검했다.

    상당히 많은 힘이 빛줄기로 변해 사라졌다. 하지만 잃은 것보다는 남은 것이 훨씬 많았다.

    또한 대륙의 모든 마수를 소탕하면서 얻은 것도 많았다.

    더 이상 오르기 어려울 줄 알았던 레벨이 또 올랐으니까.

    현석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대륙에 잠깐 내려갔다가 갈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왠지 지금은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행동은 그 다음이다.

    현석의 몸이 미래산업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대륙에서 가장 먼저 이상을 느낀 사람은 제논 백작이었다.

    그는 현석의 명령을 정확하게 이행한 다음, 마탑과 손을 잡고 모든 도시를 차근차근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나중에 현석이 돌아왔을 때, 그를 자연스럽게 왕으로 모실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 놓고자 한 것이다.

    마탑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마탑의 도시인 베를루니의 힘도 엄청났다.

    그 엄청난 힘과 제논 백작의 능력, 그리고 크락실리아를 비롯해서 그가 장악한 도시들의 힘이 하나로 모이니 그 어떤 곳도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제논 백작의 능력은 무력보다는 오히려 탁월한 정치 감각과 외교력에서 나왔다.

    그가 전쟁 없이 포섭하고 병합한 도시의 수가 무력을 이용해 장악한 도시의 수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휘하에 들어온 도시의 수가 많아지니, 힘의 격차가 훨씬 커졌고, 그러니 외교력이나 정치력을 발휘하기 훨씬 수월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도시를 장악한 다음 그것들을 차근차근 정비하고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지금 당장에라도 현석이 도착하기만 하면 왕으로 모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머지 문제는 자신과 마탑이 알아서 하면 된다.

    마탑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했기에 그들의 도움만으로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자신이 있었다.

    오늘도 그걸 위해 산처럼 쌓인 서류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에 매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무언가 온몸의 감각을 건드렸다.

    잠들어 있던 전투감각이 요동치며 올올이 곤두섰다.

    제논은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가장 큰 느낌이 오는 곳, 하늘을 바라봤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한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바람의 느낌도 묘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달라진 건 분명한데 그게 뭔지 모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제논은 하염없이 그곳에 서서 하늘만 바라봤다.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가 알게 된 건 며칠 후였다.

    정말 어마어마한 변혁이 일어났다.

    세상이 넓어졌다. 그리고 바다가 생겼다.

    제논이 모르던 세상이 새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공허의 산맥이 뚫리면서 말이다.

    제논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면서 어쩌면 거대한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행정적인 정리고 뭐고 전쟁준비부터 해야할 판이었다.

    제논은 모든 도시의 체제를 전쟁준비로 바꿨다.

    같은 일이 숲과 사막, 그리고 바다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 * *

    제논 백작은 긴장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이곳은 크락실리아에 있는 제논 백작의 저택이었다.

    저택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홀에 테이블을 마련해 놓고,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같은 테이블에 세 사람이 더 앉아 있었는데, 각자 복장이 달랐고, 풍기는 기세도 달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제논 백작은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그들의 마력에서 풍기는 느낌이 비슷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렵게 만든 자리이니 부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합니다.”

    제논 백작이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제논 백작은 속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전쟁을 불사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싸움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 아니겠는가.

    “일단 서로 가진 정보를 나눴으면 합니다.”

    제논 백작은 그렇게 말하며 함께 한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사실 대충 기본적인 정보는 서로 주고받은 상태였다.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은 해야 했으니까.

    놀랍게도 다들 비슷한 상황이었다.

    각자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다가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세상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 전에는 이런 세상에 다들 모여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그래야 말이 되니까.

    그러니 서로 더 많은 정보를 나눠야 한다. 그래서 달라진 세상에 대해 더 알아가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적응하고, 혹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다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제논 백작은 조심스럽게 가장 중요한 얘기를 꺼냈다.

    “일단 동맹을 맺고 서로를 알아갔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별다른 반대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던 사람들이 동맹 얘기가 나오니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건 제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은 바다 쪽에서 온 자, 마르티우스였다.

    마르티우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머지 두 사람, 사막의 카니스와 숲의 무팔룬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도 곤란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제논 백작이 난감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둘러봤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제논 백작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 몇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제법 오랫동안 전해지는 전설 몇 개를 모아봤습니다. 아마…… 다들 이와 비슷한 전설 한두 개쯤은 갖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제논 백작에게 받은 서류를 차분히 읽었다.

    그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서류의 내용은 이곳 크락실리아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왕의 전설이었다.

    왕은 곧 신의 사자이자 신의 전사였고, 신 그 자체이기도 했다.

    세상이 열려 더 큰 세상이 될 것이고, 왕은 그 모든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전설이었다.

    또한 그렇게 왕을 따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었다.

    다른 자잘한 전설들도 몇 가지 정리되어 있었지만 큰 줄기는 그거였다.

    서류를 모두 확인한 카니스와 무팔룬, 마르티우스는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귀국의 왕께서 정말 이 전설대로 하시길 원하십니까?”

    이 서류를 읽고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은 카니스였다.

    “더 큰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전설이 이루어졌군요.”

    그렇게 말한 카니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귀국의 왕이 모든 세상의 주인이 된다고 한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만일 정말로 전설을 이루겠다고 나서면 전쟁을 통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들 역시 모셔야 할 왕이 있으니까.

    사나워지는 분위기에 제논 백작이 진정하라는 듯 두 손을 살짝 내밀어 누르는 시늉을 했다.

    “진정하십시오. 저 역시 아직 왕의 뜻을 묻지 못했습니다.”

    “왕의 뜻을 묻지 못했다고요? 그런데도 이런 도발이나 동맹 제의를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제논 백작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것이 왕을 위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왕께서 돌아오시기 전에는 그 어떤 결정도 함부로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럴 권한도 없고 말입니다.”

    세 사람은 방금 제논 백작이 한 말 중에서 왕이 돌아온다는 말에 집중했다.

    카니스가 얼른 나섰다.

    “동맹보다는 당분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정도 선에서 정리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러자 마르티우스가 나섰다.

    “만일 그러다가 외부에서 적이 침입하면 어쩌시렵니까?”

    마르티우스는 확실히 바다 쪽을 맡고 있기에 외부의 상황에 대해서도 민감했다.

    “저희 바다의 일족은 바다에서 수천 년을 살아왔습니다.”

    마르티우스가 지도 한 장을 내밀었다.

    하나로 모인 이곳 세상의 지도였다. 이곳은 거대한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주변에 무수한 섬이 떠 있었다.

    마르티우스는 그 섬들을 손가락으로 스윽 훑었다.

    “여기가 우리 일족의 영토입니다.”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자신들의 영토를 감싸고 있는 듯해서였다.

    하지만 마르티우스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 바깥쪽도 나름 조사를 했습니다.”

    마르티우스의 손가락이 대륙 바깥쪽, 그러니까 넓은 대양 쪽으로 슥 움직였다.

    그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봤다.

    “다른 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결국 제논 백작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상황이 좀 복잡해졌군요.”

    이대로는 외부의 침입을 바다의 일족이 모두 막아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외부에서 침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럴 때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나중에 탈이 없는 법이다.

    제논 백작이 무거운 표정으로 마르티우스를 바라봤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외부의 공격에 대해 협조하겠습니다. 지원 병력을 항상 준비해 두겠습니다.”

    제논 백작의 말에 카니스와 무팔룬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수도 몽땅 사라졌는데 그 정도야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잠정적으로 손을 잡았다. 혹시 있을지 모를 외부의 적을 함께 상대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렇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회담 내내 별다른 반감이나 적의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호의가 생겼다.

    왠지 한가족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회담 내내 네 사람 모두 자부심에 젖어 있었다.

    빛의 비를 내려 대륙의 모든 마수를 소탕한 사람이 바로 자신의 왕이라고 굳건히 믿었으니까.

    물론 그걸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하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눈치 챘다.

    은근한 자존심 경쟁이 끼어들었다.

    나중에 각자의 왕이 만났을 때 모든 것이 밝혀질 테니까. 다들 지신의 왕이 최고라는 데에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그렇게 네 나라가 교류를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섞여갔다. 모든 방면에서.

    < 전설의 대륙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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