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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03화 (303/326)
  • < 마지막 파편을 찾아서 2 >

    미래산업을 나온 현석은 일단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용을 불러 하늘 높이 날았다.

    현석은 그렇게 구름 위로 떠오른 다음 허공에 딱 멈췄다.

    현석을 태운 용은 마치 허공에 박혀 있는 조형물처럼 멈춰선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현석의 용은 원래 처음 소환수로 얻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강해졌다.

    처음에는 벼락의 힘만 다룰 줄 아는 용이었는데, 현석이 성장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조금씩 성장하더니 이젠 불의 힘도, 또 물의 힘도 제법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현석에게 상당히 많은 편인 암흑의 힘과 그림자의 힘까지 더해져서 이렇게 허공에 뜬 채 자신의 존재감을 아예 지워버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현석에 비하면 아직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그래도 웬만한 플레이어나 마수들은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

    어쨌든 용은 그렇게 허공에 뜬 채 존재감을 지웠다. 그러면서 불과 물의 힘을 적절히 이용해 주변에 구름을 피워냈다.

    현석은 그 상태로 가만히 눈을 감고 용의 등 위에 누웠다.

    이제 생각을 한 번쯤 정리할 시점이 되었다.

    ‘난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나?’

    있었다. 아직 마지막 신의 파편을 찾지 못했다. 아마 그걸 찾으면 어떤 식으로든 레벨업에 관계된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때의 성장은 지금까지처럼 폭발적이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레벨업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레인보우 엘릭서를 쓰는 건 그때부터다.

    아마 단숨에 성장 한계를 부수고 훨씬 높은 곳으로 쭉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레인보우 엘릭서를 떠올리니 라이언 일행이 함께 떠올랐다. 아마 지금쯤 어딘가에 갇혀서 레인보우 엘릭서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레인보우 엘릭서를 마시고 레벨을 강제로 올리는 일은 사실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레벨을 올린 다음 적응할 시간도 필요했고, 마실 때 엘릭서를 몸에 받아들이는 과정도 견뎌내야 했다.

    당연히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걸 속성으로 빠르게 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세상일은 무엇이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대가가 필요한데, 이 경우의 대가는 바로 고통이었다.

    지금쯤 레인보우 엘릭서를 먹으면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왠지 미소가 지어졌다.

    고통의 대가는 아마 더없이 달콤할 것이다. 지금도 300레벨이 넘어가는데 레인보우 엘릭서를 이용해 한계까지 강제로 성장시키면 과연 레벨이 얼마나 될까?

    못해도 400은 훌쩍 넘어갈 것이다. 어쩌면 500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현석이 라이언 일행을 굳이 지금 이 순간 남긴 건, 사실 양동욱의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물론 레인보우 엘릭서를 이용해 한계에 도달한 그들의 성장을 가속시키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 그들의 성장을 서둘러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고.

    하지만 그 못지않게 양동욱에 대한 걱정이 컸다.

    플레이어들 간의 암투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 이상 양동욱을 방치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양동욱은 현재 현석이 하는 일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인재였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라도 철저히 보호해야만 한다.

    막상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오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산업의 힘이 대단하긴 하고, 그곳에 상주하는 플레이어들도 제법 강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도 라이언 일행이 양동욱과 함께 한다면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레인보우 엘릭서를 이용해 끊임없이 강해지고 있는 라이언 일행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렉스턴 에너지가 잠잠한 것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당장 뭔가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그 미지의 플레이어도 마음에 걸렸다. 그때 본 무수한 화이트홀도 마찬가지로 계속 불안했고 말이다.

    하지만 당장 거기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당장 가서 거길 싹 무너뜨려 버려?’

    그 생각은 예전에도 해봤다. 그곳의 화이트홀은 모두 마계와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각각의 마계가 상당히 넓었는데, 그곳을 모두 클리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곳을 무너뜨리는 일은 왠지 해선 안 될 것 같은 거부감이 계속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절로 고개가 저어지니까.

    어쨌든 이제 남은 건 마지막 파편이었다.

    그걸 찾아 깨워야 한다.

    ‘그나저나 그걸 깨우면 어떻게 되는 거지?’

    왠지 파편을 모두 깨우면 정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동안은 파편을 깨울 때마다 던전 세상에 뭔가 변화가 생겨났다.

    세상과 세상이 합해지는 형태의 변화가 가장 많았다.

    그러니 마지막 파편을 깨우면 그 모든 세상이 하나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도시와 평야, 농지와 숲이 어우러진 세상, 그리고 온통 숲으로만 이루어진 곳과 사막지대, 그리고 섬과 바다.

    그곳들이 하나로 모이면 상당한 넓이의 세상이 완성될 것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커다란 섬 형태의 세상이.

    물론 섬이라고 하기엔 그 규모가 지나칠 정도로 거대하긴 하지만.

    한데 만일 그렇게 모든 세상이 하나로 합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마 그렇게 합해진 세상이 현실에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나오면 대체 어디서 나오겠는가. 현석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신의 파편이 모이면서 화이트홀이 모두 없어질 확률은 분명히 존재했다.

    마왕의 기억을 보면 신이 세상을 조각냈다고 했다. 화이트홀은 그 여파로 생겨난 조각난 세상의 통로이고 말이다.

    만일 화이트홀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측이 불가능했다. 어쩌면 그 세상에 있던 무언가가 이쪽 세상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역시 파묻으면 안 돼.”

    현석은 예전에 자신이 파묻었던 화이트홀도 슬슬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땅속 깊은 곳에다가 이상한 걸 토해 놓기라도 하면 자칫 세상에 큰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현석은 용의 등에 누운 채 가만히 잠을 청했다.

    생각해보니 최근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늘에 누워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용이 차단한 덕에 바람이고 추운 기운이고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극히 안락했다.

    과연 마지막 파편은 어디 있을까?

    현석은 그 생각을 하며 서서히 잠들었다.

    * * *

    현석은 하늘 높은 곳에 떠 있었다. 아니, 몸은 없이 그저 시야만 존재했다.

    지구가 분명했다. 하늘 높은 곳까지 올라가니 지구의 곡면이 분명히 보였다.

    그리고 새파란 바다가 쫙 펼쳐진 모습도 보였다.

    그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대륙이 있었다.

    지금 지구에 있는 대륙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래서 좀 의아했다.

    여긴 지구가 아닌 걸까?

    하지만 분명히 지구였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현석은 높은 곳에서 그 생소한 대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도 대륙 위의 것들이 낱낱이 구분되어서 보인다는 점이었다.

    마치 지면에 살짝 떠서 보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보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라면 이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

    이거야말로 인간의 시야와 인지능력을 아득히 벗어나는 전지의 능력 아닌가.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석의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금 대륙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과 마족과의 전쟁이.

    경계의 마왕으로부터 흡수한 기억에 있던 내용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서 더 흥미롭게 확인했다.

    전쟁은 마족이 한창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현석이 보기에도 조금만 더 전쟁이 길어지면 인간은 전멸할 것 같았다.

    그 순간 신이 개입했다.

    대륙 전체가 빛나더니 그 빛이 여덟 군데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빛이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아 스며들었다.

    그렇게 빛을 흡수한 여덟 사람이 바로 신의 전사가 되었다.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마족이 정신없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전쟁이 막바지로 흘러갔다. 마왕이 힘을 나누고 그렇게 나뉜 각각의 마왕들이 성장해 신의 전사들과 싸웠다.

    그 와중에 마왕 하나가 죽긴 했지만 이대로는 전쟁에 승리해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인간들이 다시 학살당하기 시작했으니까.

    다시 대륙 전체가 빛났다. 그러더니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만들어졌다.

    그 균열이 대륙을 쪼갰다. 그리고 신의 전사들이 자신을 희생해 봉인을 완성시켰다.

    거대한 대륙이 쪼개지면서 시커먼 공간의 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렇게 대륙 전체가 사라져 버렸다.

    대륙이 사라지자, 그동안 봐 오던 완벽한 지구의 모습이 되었다.

    * * *

    현석은 서서히 눈을 떴다. 꿈을 꾼 것이다. 아니, 꿈을 통해 마지막 신의 파편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비록 꿈이긴 했지만 너무나 현실감이 넘쳤다. 현석은 그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생생하게 뇌리에 저장했다.

    대륙이 쪼개지던 순간 지구 전체를 뒤덮었던 그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분명히 기억했다.

    그때 지구에 있던 모든 마력이 그곳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다.

    지구에 마력이 다시 등장한 것은 던전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던전이 왜 등장했는지 현석은 이제 알 것 같았다.

    마력이 넘치는 바람에 그것이 빠져나갈 구멍이 뚫린 것이다. 포화를 넘어서서 폭발할 지경이 되었기에 그렇게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던전의 정체였다.

    어쨌든 이번에 꾼 꿈은 현석에게 정말로 큰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경지가 어디쯤에 있는지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파편의 대략적인 위치도 유추할 수 있었다.

    마지막 파편은 현석이 보기에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사라진 대륙이 있던 바로 그 자리 말이다.

    현석은 다시 용 위에 바로 앉았다. 알아냈으면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꿈을 꾸긴 했지만 그래도 푹 잔 덕분에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말끔히 풀렸다.

    뭐, 육체적으로는 피곤을 느낄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말이다.

    현석은 머릿속으로 사라진 대륙이 있던 자리를 떠올렸다. 그러자 용이 그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현석은 대서양에 도착했다.

    * * *

    라이언은 파김치가 되어 축 늘어졌다.

    “진짜…… 못해먹겠네.”

    라이언이 투덜거리자, 옆에서 함께 늘어져 있던 추광열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럼 포기하든가.”

    라이언은 어이없는 눈으로 추광열을 바라봤다.

    “내가 왜? 이 꿀 같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라고?”

    추광열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무슨 소리를 해도 포기하지 않을 걸 알고 있기에 한 말이었다.

    “그런데 넌 괜찮아? 난 진짜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힘들다.”

    추광열의 대답을 들은 라이언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봤다.

    힘들다는 말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진짜 그런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힘들다는 말에 영혼이 전혀 안 담겨 있는데? 이거 혹시 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겠지?”

    라이언의 말에 추광열이 앞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팀 메인퀘스트 전원이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정말 힘들긴 힘든 모양이었다.

    “젠장. 먹을 때는 괜찮은데 그걸 소화하는 게 진짜 힘드네.”

    “그럼 편한 길로 가면 되잖아.”

    라이언이 씨익 웃었다.

    “그럴 수야 없지. 편하면 성장이 덜 되는 법이거든.”

    누가 설명해준 건 아니었지만 라이언의 생각은 그랬다.

    그 말에 대꾸해준 사람은 어느새 다시 나타난 양동욱이었다.

    “맞습니다. 500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이 몸으로 얻은 데이터니 확실합니다.”

    양동욱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라이언이 이를 갈았다.

    “저놈,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래도 틀린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으니 뭐라 하기도 애매했다.

    딱히 웃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 성질을 부리기도 그랬다.

    “자, 너무 몰아치기만 하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니 두 시간만 푹 쉬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몸을 완벽하게 회복시키시면 됩니다.”

    양동욱이 생각하기에 이런 휴식이 가장 중요했다. 그 와중에 잠재력 자체가 성장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데이터로 확인된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동욱도 나름의 감이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최적의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라이언은 그대로 누워 버렸다. 급격히 성장한 레벨 덕분에 회복력도 엄청나게 좋아졌다.

    그리고 고통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감각도 예리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 예리한 감각이 사방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라이언도 그런 현상에 당황했다.

    자신의 통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각의 통제권을 가져오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통제권을 가져온 라이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기묘한 느낌이 그의 감각을 맹렬히 자극했다.

    “이거…… 손님이 온 모양인데?”

    라이언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 마지막 파편을 찾아서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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