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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01화 (301/326)
  • < 경계의 마왕 2 (12권 끝) >

    손바닥 위에 놓인 마왕의 심장을 가만히 보던 현석의 눈에 투명한 구슬 하나가 더 보였다.

    투명 구슬은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마왕의 심장 옆에 놓여 있었다.

    [마왕의 눈]

    마왕의 심장에 이어 마왕의 눈이 나왔다. 눈이라면 두 개가 있어야 하는데, 구슬은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이름이 눈일 뿐, 진짜 마왕의 눈알은 아닐 것이다. 뭔가 상징적인 의미를 표현했음이 분명했다.

    현석은 일단 두 구슬의 설명부터 확인했다.

    [마왕의 심장]

    [경계의 마왕이 가진 모든 힘이 담긴 심장. 소유한 것만으로 타이틀 공간의 지배자를 얻을 수 있다. 채현석에게 귀속되어 다른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다.]

    공간의 지배자라는 타이틀이 뭔가 의미심장했다.

    [공간의 지배자-경계의 마왕이 남긴 심장을 얻은 자에게 주어지는 호칭. 공간을 다룰 수 있는 힘이 담겨있다. 스킬 영역구축을 쓸 수 있다.]

    [영역구축-자신만의 고유영역을 만들어낸다. 고유영역 내에서는 모든 능력치가 큰 폭으로 상승한다. 능력치 상승은 레벨, 마력의 양,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까지 확인한 현석은 문득 얼마 전에 얻은 두 마왕의 심장이 떠올랐다.

    경계의 마왕은 자신이 나머지 세 마왕을 만들어 냈다고 했다. 그렇다는 얘기는 자신의 힘을 그 마왕들에게 나눠 뒀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그 심장들도 결국 여기에서 왔다는 뜻이겠지?’

    현석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아공간에 있던 마왕의 심장 두 개를 꺼냈다.

    한 손 위에 올려진 검은 구슬 세 개를 보고 있으니 왠지 투명 구슬이 여기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석은 얼른 투명 구슬, 마왕의 눈을 아공간에 보관했다.

    그러자 손바닥 위에 있던 세 개의 구슬이 서로 힘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작은 원을 그리며 세 구슬이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현석은 직감적으로 이 세 구슬이 하나로 합쳐지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럴 때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현석은 마력을 살짝 풀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확인했다. 그걸 확인하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세 구슬이 서로의 마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다. 그 세 마력이 서서히 한 종류로 변해가고 있었다.

    현석은 그 과정을 세심히 살피며 머릿속에 단단히 기억해뒀다.

    왠지 이 과정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찾아온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회전하던 구슬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내 딱 달라붙어서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회전이 끝났을 때, 세 구슬은 하나의 구슬로 변해 있었다. 크기는 하나일 때나 세 개일 때나 똑같았다.

    하지만 구슬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양이 전혀 달랐다. 세 개가 합해진 정도의 마력이 아니라 열 배는 늘어난 듯했다.

    [마왕의 심장]

    [경계의 마왕이 남긴 심장. 어둠, 죽음, 피, 공간의 힘이 담겨 있다.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타이틀 마왕의 힘을 얻게 된다.]

    ‘피?’

    어둠과 죽음, 공간은 원래 갖고 있었으니 그렇다 치고, 피의 힘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경계의 마왕이 원래 피의 힘도 갖고 있었던 모양이네.’

    아마 죽었다는 그 마왕의 심장에 피의 힘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한데 이렇게 하나로 합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원래 힘을 어느 정도 회복한 모양이었다.

    타이틀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모든 타이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한 각 타이틀에 딸려온 스킬도 그대로였다.

    더불어 피의 힘을 얻으며 새 타이틀도 얻었다.

    [피의 지배자-경계의 마왕이 남긴 심장을 얻은 자에게 주어지는 호칭. 피의 힘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깃들어 있다. 스킬 흡혈을 쓸 수 있다.]

    [흡혈-상대의 피를 흡수해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라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피의 양과 그 피를 통해 회복시킬 수 있는 힘의 효율이 결정된다.]

    예상했던 대로의 스킬도 이렇게 얻었다.

    그리고 심장이 하나로 모이면서 새로운 타이틀과 스킬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마족지배자-마왕을 죽이고 그 심장을 얻은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하위 마족에게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정신력으로 지배력을 극복한 마족은 지배가 불가능하다.]

    [마왕의 불길-심장이 가진 모든 힘을 한꺼번에 폭발시켜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낸다. 쏟아낸 모든 마력이 사라지기 전까지 불길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칭호와 스킬을 확인한 현석이 눈을 빛냈다. 확실히 쓸만한 스킬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현석은 마왕의 심장을 아공간에 넣고, 이번엔 마왕의 눈을 다시 꺼냈다.

    [마왕의 눈]

    [마왕의 지혜와 기억이 담긴 보석. 복용 시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라 담긴 지혜와 기억을 얻을 수 있다.]

    설명을 확인한 현석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걸 먹으면 그동안 풀지 못했던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석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투명한 구슬이 현석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녹아 온몸으로 퍼졌다.

    화아악!

    거대한 빛이 현석의 몸을 휘감았다.

    아득한 고양감이 뇌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현석은 거기에 정신을 맡기지 않았다.

    마력 컨트롤 능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러니 정신줄을 놓지 않고 끝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최대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온몸을 휘감고 있던 빛이 바로 마왕의 눈에 깃들어 있던 마력이었다.

    그것들이 서서히 현석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현석은 정신을 놓지 않은 덕분에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마력 패턴의 일종이었다.

    마력 패턴을 분석하는 건 이제 현석의 특기나 다름없었다. 현석은 순식간에 그걸 분석했다.

    상당히 복잡한 패턴이었고, 규모도 굉장했다. 하지만 분석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현석은 이와 비슷한 형태의 마력 패턴을 이미 겪어본 적이 있었다.

    황궁의 대마법사를 만날 때였다. 거기에 있던 마력 패턴이 이와 비슷한 형태였다.

    즉, 무언가를 기록하고 저장해 놓았다는 뜻이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는 이것만으로 알 수 없다.

    이걸 잘 이끌어 모든 기억을 머릿속으로 받아들이는 일만 남은 것이다.

    현석은 그 작업을 시작했다.

    점점 정신이 고양되어 아득한 어딘가로 날아가려했다. 그걸 참아내면서 마력 패턴을 이끌어 나가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현석의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정신의 끈을 그대로 놓아 버렸다.

    * * *

    “마계는 이제 한계다.”

    경계의 마왕은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들고 황제를 바라봤다.

    핏빛 옥좌에 앉아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이 모든 마계를 지배하는 마계의 황제였다.

    마계의 황제 밑에는 다섯 마왕이 있었고, 경계의 마왕은 그 다섯 마왕 중 하나이자, 황제의 오른팔이었다.

    “그래서 이제 밖으로 나가려 한다.”

    경계의 마왕이 고개를 바닥에 거의 닿을 듯 엎드렸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황제가 손을 슥 내밀었다. 그러자 그 위에 새까만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새까만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황제의 심장에서 뽑혀 나온 기운이 거기에 융합되었다.

    그것은 이내 콩알만 한 구슬이 되었다.

    “내가 곧 마계다.”

    황제의 말에 경계의 마왕은 고개를 조아렸다. 그 말이 옳다. 황제는 마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마신이나 다름없었다.

    황제만 있다면 어디에 있건 그곳을 마계화 시킬 수 있었다.

    피와 어둠, 죽음이 가득한 세상이 황제를 중심으로 펼쳐질 테니까.

    “이걸 받아라.”

    경계의 마왕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황제의 손바닥 위에 떠 있던 검은 구슬이 그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경계의 마왕은 그것을 소중히 받아들었다.

    “씨앗이다. 네 사명은 그것을 제대로 심는 것이다.”

    경계의 마왕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나를 비롯한 마왕들이 길을 열 것이다.”

    경계의 마왕이 다시 고개를 조아렸고, 그대로 사방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새하얗게 물들었던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경계의 마왕은 대규모 마족 부대를 이끌고 차원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마족 군단은 인간들을 그야말로 휩쓸어 버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쟁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때 신이 등장했다.

    신의 힘은 굉장했다. 신의 여덟 전사가 나타나 마족들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경계의 마왕은 방법을 바꿔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힘을 나누어 세 마왕을 만들어냈다.

    일부는 인간을 공격하고, 일부는 마족을 이끌고 신의 전사와 싸웠다.

    그 방법이 먹혀들었다.

    힘을 나눠 만들어낸 마왕이었지만 전투를 치르고 경험을 쌓고 마력을 흡수하면서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승기를 잡았다고 여겼을 때, 세상이 조각났다.

    신이 마계화를 이룬 대지를 잘라내 봉인해 버린 것이다.

    경계의 마왕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여겨 황제의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다시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현석은 천천히 눈을 떴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진실은 단순했다.

    그저 마계가 침공한 것뿐이었다.

    경계의 마왕이 남긴 기억을 봤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황제의 씨앗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치 기억에서 그 부분만 도려내 버린 것 같았다.

    “그나저나…… 신의 전사가 플레이어였구나.”

    현석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경계의 마왕은 몰랐겠지만 그의 기억을 더듬은 현석은 확실하게 그들의 능력이 느껴졌다.

    그냥 마력을 깨달아서 쓰는 사람이 아닌, 진짜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그 여덟 플레이어가 신의 파편을 받아들인 것이 분명했다.

    신의 파편을 깨울 때마다 느껴졌던 힘이 그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졌으니까.

    현석은 경계의 마왕과 싸우기 전에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려봤다.

    ‘안배…… 내가 신의 안배라고 했지. 그리고 계획이 성공했다고도 했고.’

    그 계획이라는 것이 아마 황제의 씨앗을 심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회귀 자체가 신의 안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회귀에 대한 기억은 경계의 마왕에게도 없었던 걸로 봐서, 그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아니면 현석이 그걸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제 얻을 건 다 얻었다. 마왕의 눈을 흡수하면서 심안이 급격히 성장하게 된 건 덤이었다.

    현석은 문득 예전 우연히 얻었던 단검이 떠올랐다. 온통 물음표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단검 말이다.

    심안이 성장했으니 이제 그걸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현석은 즉시 단검을 꺼냈다.

    [신의 의지가 깃든 단검.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의지가 봉인되어 있다. 봉인이 풀리는 순간 신의 의지가 세상에 내려앉을 것이다.]

    현석은 눈살을 찌푸린 채 그 설명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신의 의지가 봉인된 단검이라니. 대체 신의 의지가 무엇이고, 그게 세상에 내려앉으면 뭐가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심안이 성장했다는 건 어쨌든 즐거운 일이었다.

    현석은 다시 단검을 아공간에 보관하고는 용을 불러냈다.

    이제 이곳에서의 일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용에 올라탄 현석은 이 세상의 경계를 향해 날아갔다.

    저 멀리 마족들과 바다의 전사들이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라이언 일행도 지금쯤 저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것이다.

    경계의 마왕은 공간을 창출하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임시 마계를 구성하고 그곳에서 마족을 키우고 있었다.

    한데 그가 죽으면서 키우던 모든 마족이 일시에 풀려나게 된 것이다.

    현석은 그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그렇게 마족과의 싸움이 차근차근 정리되어갔다.

    < 경계의 마왕 2 (12권 끝)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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