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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97화 (297/326)
  • < 변화의 시작 3 >

    현석은 용에 탄 채 하늘 높은 곳에 떠 있었다. 아래는 새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제법 커다란 섬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이 정도면 인구가 10만은 훌쩍 넘겠는데?”

    섬에는 수많은 건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섬 주변에는 여러 척의 배가 떠다녔다.

    섬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규모였다.

    라이언이 위를 보며 현석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저쪽에서도 우릴 발견한 거 같은데 그냥 내려가는 게 낫지 않겠어?”

    라이언의 말대로 섬에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의 시선이 느껴졌다.

    실제로 섬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일곱 개의 탑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하늘 높이 떠 있는 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바닥에 박힌 쇠막대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쇠막대기 끝에 수정구슬이 달려 있었다.

    탑에서 하늘을 보는 사람들은 다들 그 수정구슬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있었다.

    수정구슬의 용도는 그냥 보기에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현석은 좀 더 명확하게 수정구슬에 담긴 마력패턴과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제 현석이 가진 마력에 대한 지배력은 그저 마력의 주인이라고 칭할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현석은 벽 하나를 또 깰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아주 쉽게 이뤄질 수도 있다. 하지만 평생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이건 어떤 특별한 계기나 깨달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이었으니까.

    어쨌든 그 얘기는 이제 현석은 마력에 대한 감각이나 지배력이 플레이어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직 발동하지도 않은 아티팩트를 분석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저 수정구슬은 탑으로 마력을 끌어들여 단숨에 거대한 힘을 분출하는 아티팩트였다.

    보아하니 힘의 분출 방향도 하늘이건 바다건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위력도 상당했다. 아까 범선에서 쏘던 빛줄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정확한 위력은 실제 쓰는 걸 봐야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마력패턴을 분석하면 대략적인 위력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현석은 그냥 대충 위에서 섬을 확인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좀 더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유추하기 위해서 굳이 마르티우스와 함께 오지 않고 따로 날아서 온 것이다.

    현석은 섬 위를 몇 바퀴 선회하다가 이내 방향을 바꿔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라이언이 당황했다.

    “어? 저기 안 가? 어디 가려고?”

    현석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다들 대충 왜 그러는지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아직 마르티우스가 오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다. 그동안 계속 허공에 머무는 건 시간 낭비였다.

    그러니 남은 시간 동안 전체적인 바다를 돌면서 이곳의 구조와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현석은 더 높이 날아올랐다. 어차피 시력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데다가 마력의 도움까지 받기에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아래를 세밀히 확인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봤던 모든 화이트홀 중에서 가장 넓었다. 지금까지 있던 모든 화이트홀을 다 합해야 이 정도 넓이가 될까?

    게다가 신기한 건 또 있었다. 이곳은 다른 화이트홀과 달리 호리병 구조가 아니었다.

    솔직히 다른 화이트홀은 억지로 만들어 붙인 호리병 같았다.

    원래 있던 땅에 죽음의 대지를 갖다가 붙인 느낌이 강했다. 당연히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잔뜩 들었었다.

    한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구조였다. 아니, 사실 직사각형이라고 하기보다는 끈 같은 구조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엄청나게 넓은 폭을 가진 강이 흐르는 듯한 구조였다.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끝과 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만일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 이 공간을 객관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타원형 모양을 하고 있지 않을까?

    현석은 공간의 모양을 머릿속에 재구성하면서 바다에 군데군데 떠 있는 섬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이 처음 왔던 곳도 확인했다.

    놀랍게도 처음 이곳으로 왔던 곳과 똑같이 생긴 장소가 무수히 많았다.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것들 마족 아냐?”

    라이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이 급강하했다.

    “으아악!”

    라이언은 비명을 지르다가 입을 꾹 다물고는 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려가는 바람에 놀라서 소리친 것이다.

    “아…… 진짜, 좀 말이나 해주고 내려가지.”

    부끄러움에 나직이 투덜대며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저기에 있는 마족들은 아까 그 18마족들과는 좀 달랐다. 왠지 더 약해보였다.

    그리고 그곳으로 다가가는 범선들도 보였다.

    “우리가 먼저 가서 해치우자!”

    라이언이 흥에 겨워 그렇게 말하고는 온몸에 마력을 휘감았다.

    이내 어느 정도 적당한 높이가 되자, 라이언이 그대로 뛰어내렸다.

    꽈아아앙!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마력을 풀어 사방을 휩쓸어 버렸다. 그야말로 엄청난 힘이 마족들을 덮쳤다.

    나머지 일행들이 우수수 뛰어내렸다. 그리고 마족들과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정말로 딱 적당했다.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딱 치열하게 맞서 싸우기 좋은 정도였다.

    그런 놈들은 일행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자양분이나 다름없었다.

    이내 싸움이 끝나고 다시 용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렇게 바다를 쭉 돌면서 나타나는 마족들을 모조리 휩쓸어 버린 현석 일행은 다시 마르티우스의 섬으로 향했다.

    마침 마르티우스가 섬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 되었다.

    현석은 섬으로 가지 않고 마르티우스의 범선 위에 내려섰다.

    마르티우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섬으로 바로 갈 것처럼 날아가 놓고는 다시 배로 돌아오다니. 하지만 금세 그 이유를 파악했다.

    ‘하긴. 따로 날아서 가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금세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한 마르티우스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모습이 보기기 시작한 섬을 바라봤다.

    범선은 빠른 속도로 섬을 향해 쭉쭉 나아가고 있었다.

    * * *

    섬의 중앙에는 거대한 저택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족장의 거처이자, 섬의 모든 행정과 정치가 이뤄지는 장소였다.

    마르티우스는 족장의 저택으로 들어서며 눈살을 찌푸렸다. 경계의 눈초리가 사방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족장님은?”

    “대회의 중이십니다.”

    “대회의?”

    대회의는 오직 족장만이 참석할 수 있는 바다 전체의 회의를 뜻한다.

    두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대회의가 열리는데, 마르티우스가 알기로 오늘은 그 날이 아니었다.

    즉, 뭔가 바다 전체를 위협할 만한 중차대한 일이 벌어져 긴급회의에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마르티우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긴급회의이니 만큼 이게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뒤의 분들은 누구십니까?”

    저택을 지키는 전사의 물음에 마르티우스는 간단히 답했다.

    “손님이다.”

    전사들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누구도 경계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다들 현석 일행을 살펴보며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췄다.

    그걸 보던 마르티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사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

    말 그대로였다. 긴장해봐야 소용이 없을 테니까.

    마르티우스는 현석이 마족들을 쓸어 버리는 광경을 멀리서나마 지켜봤다.

    그 마족들은 수십 척의 범선이 미리 준비한 공격에도 끄떡없던 놈들이었다.

    한데 그런 놈들을 홀로 부숴버렸다.

    그런 현석이 마음먹고 날뛰면 과연 여기가 남아날까? 아니, 과연 도망이라도 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게다가 용까지 갖고 있다. 이래저래 긴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마르티우스의 생각이고, 다른 전사들은 여전히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안쪽이 부산스러워졌다. 대회의가 끝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회의가 끝나 마르티우스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는 전사들을 보며 말했다.

    “회의가 끝난 모양이군. 족장님께 알려라. 내가 아주 중요한 손님을 모시고 왔다고.”

    전사 한 명이 그 말에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머지 전사들은 여전히 긴장한 눈으로 현석 일행을 경계했다.

    잠시 후, 마르티우스와 현석 일행은 족장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족장은 의외로 상당히 젊었다. 그는 담담한 눈빛으로 현석 일행을 슥 둘러봤다. 하지만 그의 눈빛 깊은 곳에서는 날카로움이 번득이고 있었다.

    과연 아무나 족장을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싶었다.

    “이분들이신가?”

    족장이 마르티우스를 보며 물었다. 설명이 필요했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또 왜 중요한 손님인지.

    “용을 타고 오셨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 한 마디에 족장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족장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현석 일행은 손님에서 귀빈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마르티우스는 자신이 원하던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자신이 겪은 일을 자세히 보고하기 시작했다.

    마르티우스의 얘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족장의 표정이 점점 더 심각해졌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족장이 현석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오신 겁니까?”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만으로 대답한 거나 다름없었다.

    사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알고 싶은 건 벌써 다 알아냈다.

    그저 바다를 한 바퀴 돌아본 것만으로 충분했다.

    다른 화이트홀을 경험하기 전이라면 좀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이젠 그렇지 않았다.

    이곳은 숲이나 사막 대신 바다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신의 파편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또한 끊임없이 마계와 전쟁을 벌이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마계는 어쩌면 진짜 마계가 아니라 그저 마족들이 살고 있는 공간일 확률이 높았다.

    마왕이 지배하는 공간 말이다.

    마계에서 침공한 마왕은 모두 넷이었다. 그 중 하나는 이미 죽었고, 나머지 셋이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셋 중 둘을 현석이 처리했다. 이제 하나 남았는데, 그 하나 남은 마왕이 바로 그 마계의 주인일 것이다.

    그리고 현석은 그 마왕마저도 처리할 생각이었다. 어떤 마왕인지 모르지만, 그가 뭔가 열쇠 하나를 쥐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 마왕을 처리하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밀어닥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건 현석이 최근 끊임없이 느끼는 아주 강력한 예감 중 하나였다.

    현석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족장을 보며 물었다.

    “용을 타고 온 사람에 대한 전설 같은 게 있나?”

    “예. 있습니다.”

    족장은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바다의 왕이 용을 타고 날아가 마왕을 처단하고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전설은 워낙 유명해서 사실 바다에 사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족장이 결연한 표정으로 단호히 말했다.

    “우리 바다의 전사들은 언제나 왕을 모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화이트홀의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다.

    언제나 마족과의 전투를 치러야 하기에 항상 죽음의 위협에 시달렸다.

    또한 그렇기에 강했고, 전설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이들에게 있어서 바다의 왕은 신앙에 가까웠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운 환경이었으니까.

    한데 진짜로 용을 타고 현석이 나타났다. 족장이 거기에 열망의 시선을 보내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족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마르티우스가 본 것 말고도 마족과 싸우신 적이 있으십니까?”

    현석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부연설명은 뒤에 서 있던 라이언이 했다.

    “보니까 바닷길을 따라서 마족이 출몰하는 지역이 쭉 늘어서 있더군요. 마침 마족들이 나타났기에 싹 쓸어버렸습니다.”

    라이언의 말에 족장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번 긴급대회의가 열린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한데 그 당사자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족장의 가슴이 갑자기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이, 일단 여독을 푸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족장이 고개까지 숙여가며 부탁했다. 현석은 그가 왜 이러는지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자신은 몰라도 나머지 일행은 좀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격렬한 전투를 수십 차례나 연달아 치렀으니 육체적 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 피로도 엄청날 테니까.

    족장의 명령을 받은 마르티우스가 직접 현석 일행을 안내해서 쉴 곳으로 떠났다.

    족장은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금 끝난 긴급대회의를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우리 바다의 일족의 세상이 다시 등장하는 것인가!”

    그리고 길고 길었던 마족과의 전쟁도 끝나게 될 것이다.

    만일 진짜 전설에서 말하던 바다의 왕이 나타난 거라면 말이다.

    족장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현석이 바다의 왕이라고 믿었다.

    안쪽 깊은 곳에 있는 방으로 들어온 족장은 준비된 수정구슬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순식간에 회의장이 생겨나고, 다른 족장들의 모습이 허공에 툭툭 나타났다.

    두 번 연속 긴급회의가 열린 건 수천 년을 이어오는 세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의아함과 당혹감이 섞인 다른 족장들의 표정을 보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했다.

    두 번째 긴급대회의가 열렸다.

    < 변화의 시작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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