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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95화 (295/326)

< 변화의 시작 1 >

현석이 향한 곳은 미래산업이었다. 팀 메인퀘스트 쪽도 불안한 건 비슷했지만 왠지 이쪽이 더 끌렸다.

라이언이나 추광열이 상당한 성장을 했고, 그들이 가진 장비가 제법 뛰어나기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단숨에 끝장이 나진 않을 것 같아서였다.

미래산업 상공 구름 위에서 용을 돌려보낸 현석은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용을 타고 미국에 진입한 셈인데도 아무 일 없었다. 현석이 가진 특별한 은신 스킬 덕분이었다.

아니, 사실 이제 현석에게 스킬은 큰 의미가 없었다. 아주 특별한 스킬이 아니면 마력을 이용해 대부분 구현이 가능했으니까.

어쨌든 아래로 뚝 떨어진 현석은 미래산업 빌딩의 옥상에 가볍게 착지했다.

아무 소음도 충격도 없을 정도로 가벼운 착지였다.

착지 시 일어나는 모든 소음과 충격은 하늘로 날려 보냈다. 이 역시 마력을 이용한 특별한 기술이었다.

옥상에 착지한 현석은 재빨리 양동욱을 찾아갔다.

양동욱은 갑자기 나타난 현석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이내 환한 표정으로 현석을 맞이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현석은 양동욱의 태도를 보며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평소에도 환대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좀 지나쳤다.

“위험한 일이라도 생겼나?”

현석의 물음에 양동욱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아직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느낌이 안 좋습니다.”

“느낌?”

현석은 의아한 눈으로 양동욱을 쳐다봤다. 양동욱은 느낌보다는 데이터를 따르는 쪽이었다.

한데 그가 느낌만으로 저런 표정을 짓는걸 보니 기분이 좀 묘했다.

“예전에 제가 드린 목록 기억하십니까?”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에 출발하기 직전에 받은 목록이다. 기억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양동욱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전쟁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못지않습니다. 한데 집결하고 있습니다.”

“집결을 해?”

현석이 눈을 빛냈다. 만일 그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거라면 그냥 저렇게 집결만 하고 끝낼 리 없었다.

그 전에 소속된 조직이나 국가에서 뭔가를 시도했어야 한다. 그래야 향후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현석의 눈빛을 읽은 양동욱이 씨익 웃었다.

“의심스러운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정보를 살살 풀었습니다.”

현석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동욱이 작정하고 나서서 정보를 풀었다면 아마 그들도 쉽게 뭔가를 시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설프게 움직이다가는 시작도 못해보고 끝장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들도 머리가 있는 조직이라면 그쯤이야 알아서 파악하고 피하는 게 정상이다.

“그들이 정보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흐름을 역이용해서 수뇌부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현석은 양동욱이 실패했다는 말에 솔직히 살짝 놀랐다. 양동욱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뭔가 특별한 방법을 통해 명령을 지시하는 듯했습니다. 얼핏 보면 연결된 조직 같지만, 사실상 점조직이나 다름없는 놈들입니다.”

“그래서 그놈들이 어디에 집결하고 있지?”

“렉스턴 에너지입니다.”

“렉스턴 에너지?”

현석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건 너무 대놓고 일을 벌이는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양동욱이 저렇게 느낌이 안 좋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만일 그 많은 플레이어들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또 그들의 목표가 미래산업이라면 정말 큰 피해를 각오해야만 할 테니까.

거기에 렉스턴 에너지가 살짝 손을 보태기만 해도, 어쩌면 미래산업의 미래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양동욱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긴 합니다. 렉스턴 에너지가 저렇게 대놓고 움직일 리가 없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리다가 한 방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쪽의 대비는?”

“일단 선별한 플레이어들을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한데…… 성장 자체에도 시간이 필요한지라…….”

현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레인보우 엘릭서가 대단하다고 해도 레벨을 강제로 올리는 일인데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저 포션 한 병 먹고서 격을 높이는 것이니 몸에 상당한 충격이 오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 충격을 견디고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꺼번에 많은 엘릭서를 연달아 마실 수 없다는 뜻이다.

이건 격을 높이는 충격이기 때문에 익숙해지지도 또 약해지지도 않는다.

매번 같은 충격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고통스러우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엘릭서 복용 간격을 각자 알아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또한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다.

“어쨌든 제가 500명을 선별했고, 그들을 차근차근 성장시키고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겁니다. 문제는…….”

양동욱이 진지한 표정으로 진짜 용건을 꺼냈다.

“저게 연막일 경우입니다.”

그것이 진짜 양동욱의 예감을 안 좋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아무래도 렉스턴 에너지에 모인 저 플레이어들은 다른 중대한 사실을 감추기 위한 연막일 가능성이 제법 높았다.

만일 그렇다면 대체 저들의 진짜 꿍꿍이가 무엇일까? 양동욱은 그걸 알아낼 수 없어서 불안했다.

“진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 같아서 불안해요. 그리고 그걸 전혀 알아낼 수가 없어서 더 불안합니다.”

양동욱의 말에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단 이쪽에만 신경 쓰면 돼. 500명이나 있는데다가 아르포르 기사단도 있으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잠깐은 버틸 수 있겠지?”

“그야…… 드러난 저쪽 전력이 저게 전부라면 버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기죠.”

물론 선별한 500명의 플레이어들이 최대한 성장할 시간만 벌 수 있다면 말이다.

현석은 이 정도면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이 이곳으로 온 이유가 떠올랐다.

한국의 퀸급 생성지역과 미래산업 둘 중 더 불안한 쪽을 선택해서 온 것이다.

한데 막상 와보니 별 거 없었다고? 정말 그럴까?

지금까지 현석의 감은 한 번도 현석을 배신한 적 없었다. 현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찾게 해주었고, 가장 중요한 쪽으로 길을 안내했다.

한데 이제 와서 이런 헛걸음을 하게 만든다고? 과연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그럴 리 없지.’

현석은 눈을 빛내며 창가로 걸어갔다.

미래산업 빌딩은 굉장히 높은 고층건물이었다. 그리고 양동욱의 사무실은 최상층에 위치해 있었다.

사방이 강화유리로 만들어져 과장 좀 보태면 뉴욕의 모든 곳을 다 볼 수 있다고 자랑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현석은 창가로 다가가 렉스턴 에너지를 쳐다봤다.

‘저기 분명히 뭔가가 있어.’

분명히 저기서 뭔가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 막지 않으면 안 된다. 미뤄도 되는 거라면 이렇게까지 불안할 리 없을 테니까.

현석은 양동욱을 보며 한 마디 던졌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 철저히 하도록.”

“어디 가십니까?”

현석은 대답 대신 씨익 웃고는 방에서 나갔다.

양동욱은 그런 현석의 뒷모습을 불안함 반, 든든함 반이 뒤섞인 기묘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바라봤다.

* * *

현석은 렉스턴 에너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다른 탈 것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다.

이젠 현석의 이동 속도가 웬만한 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으니까.

하늘을 이용해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비행기나 헬기보다 현석의 용이 훨씬 빠르고 안전했다.

어쨌든 그렇게 렉스턴 에너지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짙게 풍기는 기묘한 마력의 흐름에 현석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묘한 마력흐름이었다. 흐름 자체에 패턴이 담겨있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마법진이기도 했다.

현석은 렉스턴 에너지로 향하면서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려 애썼다.

최근 급격히 높아진 마력 컨트롤 능력과 마력에 대한 감각이 아니었다면 아예 분석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은밀한 패턴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현석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쩌면 렉스턴 에너지에서 큰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할 정도로 험난한 전투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이 정도 마력 흐름을 미리 오랫동안 준비한 마법진을 통해서 한 게 아니라 즉석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해낸 거라면 현석이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만일 정말 그렇다면 현석조차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니 모든 걸 내던질 각오로 가야한다. 다행히 현석에게는 쓸 만한 패가 몇 가지 있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용을 불러내 돕게 할 것이고, 죽음의 지배자 타이틀을 확실히 이용할 것이다.

도시가 제법 파괴되겠지만, 나중을 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현석은 렉스턴 에너지에 도착할 무렵, 마력패턴의 분석을 어느 정도 끝냈다.

그래서 걸음을 멈췄다.

현석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여기가 아니었다.

아니, 여기가 맞지만 아니라고 해야 정확하다. 시작은 여기서 하고 있지만 진짜 일이 벌어지는 곳은 다른 쪽이었다.

어차피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 현석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변 마력의 흐름을 더욱 세밀히 읽기 시작했다.

렉스턴 에너지 안에 있다던 그 많은 플레이어는 하나도 감지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들의 힘이 감지되지 않았다.

‘저들이 양동욱의 술수에 말려들어서 이쪽으로 집결한 게 아니야. 애초에 이럴 생각이었어.’

결과적으로 양동욱이 말려든 셈이었다. 만일 양동욱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면 이들의 움직임을 좀 다른 관점으로 판단했을 테니까.

현석은 돌아섰다. 더 이상 렉스턴 에너지에는 미련이 없었다.

여기에는 이제 그야말로 쭉정이들밖에 안 남았으니까.

이제부터는 진짜를 찾아내야만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 더 이상 미래산업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현석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다리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현석의 몸이 쭉 위로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은신 스킬이 발동하며 현석의 모습과 기척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용이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은신 스킬이 씌워진 채였다.

현석은 용에 올라타 더 높이 올라갔다.

구름 위로 치솟은 현석은 한국의 퀸급 생성지역을 향해 날아갔다.

불안감이 조금씩 더 커지고 있었다.

* * *

라이언 일행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십 척의 배를 보며 슬그머니 움직였다.

왠지 이 자리에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그 느낌을 받은 건 라이언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머지 일행도 라이언을 따라서 슬금슬금 움직였다.

그들은 배들과 저 멀리에서 다가오고 있는 마족들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이었는데, 거기서 조심스럽고 빠르게 비켜났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범선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 보면 그냥 화려한 빛이겠지만, 라이언 일행 같은 뛰어난 플레이어들의 눈에는 마력의 향연으로 보였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각각의 범선을 중심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우우우웅!

눈부신 빛이 범선에 모여들었다. 그러더니 강렬한 빛줄기가 쭉 뻗어 나갔다.

꽈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거친 충격파가 밀려왔다.

라이언 일행은 이를 악물고 그 충격파를 참아냈다.

모든 범선에서 빛줄기가 쭉쭉 쏘아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강렬한 폭발음이 울렸다.

꽈앙! 꽈앙! 꽈앙!

무수한 충격파를 견디며 라이언 일행은 마족들이 다가오는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 강력한 공격을 손으로 쳐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충격은 계속 누적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큰 피해 없이 여기까지 다가왔다.

“진짜 괴물들이네.”

라이언이 중얼거리며 범선 쪽을 바라봤다.

“저쪽도 당황한 모양인데?”

그리고 라이언도 당황했다. 이제 뭘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저놈들과 싸울 수 있을까요?”

라이언이 이를 악물었다.

“해봐야지.”

한 놈이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려 18놈이나 된다.

“1분쯤 버티면 다행인 것 같긴 하지만…….”

하지만 이미 피하기엔 늦었다. 마족들이 라이언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족들 중 일곱이 바닥을 미끄러지듯 라이언 일행에게 돌진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준비해!”

라이언의 외침에 다들 진형을 갖추고 마족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

죽음을 각오한 결연함이 그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 변화의 시작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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