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294화 (294/326)
  • < 사막의 왕 >

    “지진이다!”

    카니스는 갑자기 대지가 마구 흔들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외쳤다.

    정말 지진인 줄 알았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거대한 땅의 마력이 바닥을 타고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지진으로 오해했다.

    땅이 진짜 흔들린 게 아니라 힘의 흐름 때문에 흔들린다고 착각한 것이다.

    카니스는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500여명의 전사들은 정말로 기묘한 경험을 시작했다.

    대지를 타고 흐르는 힘에 그들의 의지가 슬쩍 섞인 것이다. 아니, 그들의 의념이 힘의 흐름에 올라탔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현석처럼 모든 마력과 의념이 신의 파편에 동화된 게 아니라 그저 슬쩍 올라탄 것에 불과했지만, 그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경험이었다.

    촤촤촤촥!

    갑자기 모래가 쫙쫙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 아래에서 폭발형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모래가 위로 치솟아 올랐다.

    그렇게 치솟은 모래가 얇은 벽을 만들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야말로 신비로운 장관이었다.

    얇은 모래의 막이 흘러내리면서 기묘한 패턴을 벽 한가득 만들었는데, 어디서 모래가 생기는 것인지 끊임없이 모래가 흘러내렸다.

    “이런 게 가능하긴 한 건가?”

    카니스는 멍하니 흘러내리는 모래벽을 바라봤다. 시선을 더 위로 올려 모래가 시작되는 부분을 확인하고자 했는데, 그건 불가능했다.

    모래벽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나머지 전사들도 카니스와 비슷한 심정과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느새 몸에 났던 상처와 바닥난 마력과 체력도 회복되었다.

    끊임없이 몸에 힘이 공급되고 있었다.

    카니스는 안 그래도 새로운 힘을 얻었기에 시너지가 발휘되면서 훨씬 막대한 힘을 추가로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으읏!”

    다들 기묘한 신음을 흘렸다. 갑자기 막대한 힘이 추가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그 힘이 모래벽으로 스며들더니 모래벽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신의 파편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우우우우!

    사방으로 거대한 힘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몇 차례나 되는 힘의 파동이 사막을 내달렸다. 그리고 거기에 걸려드는 마수를 모조리 갈아엎었다.

    카니스는 마수가 죽을 때마다 그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힘의 격이 조금씩 올라간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힘의 파동이 이내 죽음의 대지로 스며들었다.

    그곳의 언데드가 모조리 소멸했다. 또한 죽음의 대지에 깃든 모든 부정적인 마력을 정화했다.

    카니스는 희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급격히 격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의념이 누군가에게 귀속되는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광스러웠다. 만일 자의로 이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없이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확신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전사들도 똑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표정 변화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카니스의 뇌리에 한 사람의 얼굴과 그가 가진 마력의 기질이 또렷하게 새겨졌다.

    이내 모든 것이 끝났다.

    카니스는 여운에 젖어있는 전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돌아간다.”

    그들은 무수한 모래벽을 건드리지 않으려 애쓰며 그곳에서 빠져나갔다.

    그곳은 신의 성소였다. 그리고 아마 누구도 이 자리를 쉽게 찾아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신의 성소에서 빠져나온 카니스는 따라 나온 500여명의 전사들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따로 움직일 사람은 따로 움직여도 좋다.”

    하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사막의 전사이자 왕의 전사였다.

    그러니 왕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카니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가자.”

    처음 대미궁에 들어갈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강해진 500여명의 전사들이 근처 가장 가까운 도시를 향해 나아갔다.

    이제 이곳 사막의 모든 도시는 왕께 충성을 바쳐야 할 것이다.

    * * *

    현석은 감았던 눈을 떴다. 신의 파편을 깨우고 죽음의 대지를 정화하면서 또 한 번 폭발적인 레벨업을 했다.

    하지만 워낙 레벨 자체가 높았기에 지금까지처럼 어마어마한 성장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높은 레벨이기에 레벨업 하나에 들어가는 시간과 공이 많이 필요한 만큼 레벨업 하나당 올라가는 능력치도 상당하긴 했다.

    하지만 현석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레벨업이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일단 어마어하만 벽에 부딪혔다. 그것부터 부숴야 한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투명 던전에 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을 정리하고 투명던전과 이어진 마계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곳과 이어진 화이트홀도 찾아야 한다. 무수한 마계로의 입구가 모인 그곳으로 이어진 화이트홀 말이다.

    “그나저나…….”

    현석은 새로 얻은 타이틀 두 개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숲의 왕-숲의 전사들을 지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새로 태어나는 숲의 전사들도 왕의 지배를 피할 수 없다.]

    [사막의 왕-사막의 전사들을 지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새로 태어나는 사막의 전사들도 왕의 지배를 피할 수 없다.]

    아주 단순한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는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타이틀을 얻는 순간 숲의 전사들과 사막의 전사들이 현석의 의지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게다가 전사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따로 타이틀이나 스킬로 등록된 건 아니었지만 현석은 자연스럽게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숲의 전사나 사막의 전사가 되면 그에 걸맞은 호칭을 받게 되며, 그 호칭에 담긴 힘은 상당했다.

    현석은 그렇게 새로 얻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대미궁은 이미 사라졌다. 그리고 그 대신 거대한 모래탑이 생겼다.

    진짜 탑이 아니라 마력패턴이 새겨진 모래의 장막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었다.

    다른 신의 파편과 비슷한 구조물 말이다.

    현석은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서둘러 출구로 향했다.

    * * *

    투명 던전을 공략하는 건 아주 간단했다. 사실 공략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곳에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원래라면 마족과 전쟁을 벌이는 병사들이 있어야 하는데, 한 명도 없었다.

    또한 그 병사들과 싸우는 마족들도 없었다.

    현석은 투명던전이 사막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을 떠올리고 그것을 찾아 나섰다.

    당연히 찾기 어렵지 않았다.

    이곳과 연결된 사막을 금세 발견할 수 있었고, 사막을 통해 진군하는 병사들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병사들을 이끄는 플레이어도 볼 수 있었고 말이다.

    그들은 이제 막 사막으로 들어선 것 같았다.

    타이밍이 잘 맞은 건 아니었다. 현석이 신의 파편을 깨우면서 사막과 투명 던전이 연결된 것이었으니까.

    그걸 확인한 건, 현석이 플레이어를 사로잡은 다음이었다.

    플레이어를 죽이자, 그때까지 대열을 맞추로 진군하던 병사들이 혼란에 빠졌다.

    현석은 그 병사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은 이미 죽었어야 할 존재들이었다. 마족과의 전쟁 때문에 이곳에 붙들려 있었을 뿐이었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는 병사들에게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싸우도록 만들어진 병사도 아니었다.

    현석은 그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몰살시키지는 않았다. 강력한 광역 스킬을 이용해 큰 타격만 주었다.

    나머지는 사막의 도시들이 알아서 정리할 것이다. 어차피 당분간 마수도 나타나지 않을 테니 실전 경험을 쌓기 딱 좋은 적이었다.

    그렇게 사막에서의 일을 마무리한 현석은 이곳과 이어진 화이트홀을 찾아 다시 마계의 입구가 모인 동공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석은 무수히 많은 화이트홀을 보며 이 모든 화이트홀을 지하로 내려 버리고 봉인 마법진을 통해 봉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수가 많긴 하지만, 높아진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을 생각하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현석은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시도했다.

    이젠 굳이 손을 댈 필요도 없었다. 웬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그걸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실제로 중국에서 그렇게 했고 말이다.

    한데 이곳에 있는 화이트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현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현석은 화이트홀에 다가가 손을 대고 집중했다. 하지만 화이트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며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이 화이트홀은 그냥 이 공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화이트홀과는 구조 자체가 달랐다.

    ‘그럼 파괴해볼까?’

    하지만 그 시도도 실패했다. 파괴 자체가 불가능했다. 현석은 그제야 왜 이 화이트홀이 고정된 것처럼 느껴지는지 알아냈다.

    이 화이트홀은 그저 이 세상에 투영된 것뿐이었다. 실제로는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었다.

    현석은 살짝 착잡한 눈으로 동공의 화이트홀을 둘러봤다. 그리고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동공에 있는 화이트홀을 어쩌지는 못했지만, 투명 던전과 연결된 화이트홀은 그래도 움직이고 봉인하는 게 가능했다.

    현석은 인도의 생성지역으로 돌아가 그곳의 화이트홀을 지하로 묻고 봉인해 버렸다.

    그리고 한국으로 향했다.

    인도의 화이트홀에서 나왔을 때부터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계속 감각을 자극했다.

    그 원인이 왠지 잘 파악되지 않았다.

    ‘어디부터 가야 하지?’

    지금 현석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미래산업, 혹은 팀 메인퀘스트가 있는 한국의 퀸급 생성지역.

    현석은 용을 꺼내 하늘로 날아오르며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한 쪽을 정해 빠르게 날아갔다.

    구름 위를 날아가는 용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 * *

    라이언 일행은 투명 던전을 헤매고 있었다. 이곳과 화이트홀의 세상이 연결된 부분이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거길 찾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런 걸 찾을 수는 없었다.

    “여기도 화이트홀 한 쪽은 죽음의 대지고, 나머지 다른 한쪽은 굉장한 괴물이 길을 막고 있는 구조겠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정반대쪽이 이곳이랑 연결되어 있는 거고.”

    “그렇겠죠?”

    라이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때는 분명히 두 세계의 문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던 것 같은데…… 안 그래?”

    “그랬죠. 그래서 제 생각에는 여기가 바로 거기인 거 같아요.”

    “여기?”

    “마계로 가는 화이트홀과 정반대쪽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류지혜는 진짜 풍경 같은 벽을 툭툭 두드려 보았다.

    “이 벽이 사라지면서 저쪽 세상이랑 연결되는 거 아닐까여?”

    벽을 통해 보이는 저쪽 세상의 모습은 그야말로 광활했다.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으니까.

    “바다가 보이고 모래사장이 보이죠? 아마 여긴 어떤 섬이랑 이어져 있을 거예요. 아니, 여기가 섬이라고 해야 할까요?”

    과연 연결되면 여긴 어떻게 변할까?

    류지혜와 라이언은 문득 그 점이 궁금해졌다.

    어쨌든 지금은 이 막힌 문을 뚫어야 한다는 게 중요했다.

    “그때는 우리 대장님이 저쪽 세상에서 뭔가를 하셨던 거 같은데…… 우리는 그런 게 없잖아요?”

    보아하니 한국의 퀸급 화이트홀은 절대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될 것 같았다.

    만일 바다와 연결된 거라면 해양 마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뜻인데, 대체 얼마나 거대하고 강력하겠는가.

    “저 세상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가능성 있죠. 숲에는 숲의 전사가 있었으니까 바다에는 바다의 전사가 있지 않을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는 이걸 열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일단…… 돌아가는 게 낫겠지?”

    여기 있다가 마계의 마족들이 툭툭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안 나타나는 걸 보면 꼭 그럴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다.

    “어?”

    라이언과 류지혜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려 류혜연을 바라봤다.

    “왜?”

    “벽이…… 벽이 약해지고 있어요!”

    “약해져?”

    류혜연은 이 중에서 마력에 대한 감각이 가장 뛰어나다. 그러니 뭔가 변화를 감지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들은 황급히 벽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짚어봤다. 하지만 별달리 느껴지는 게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나머지 일행도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벽이…… 사라졌어.”

    류지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바다의 짠내가 확 밀려왔다. 진짜 벽이 뚫린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일행은 굳은 표정으로 돌아서서 존재감이 느껴지는 방향을 바라봤다.

    “마족이…… 넘어온 모양인데?”

    멀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 강렬하고 사악한 존재감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쏴아아아!

    바다 쪽에서 물살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선 일행의 눈에 거대한 범선 수십 척이 보였다.

    < 사막의 왕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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