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293화 (293/326)

< 대미궁 2 >

“허억! 허억!”

라이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싸웠는지 모른다. 마력은 바닥이었고, 몸도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라이언뿐 아니라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힐러인 류혜연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포션부터.”

라이언의 말에 다들 포션을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 상처에 아낌없이 쫙쫙 부었다.

상처가 급속히 치료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 났던 체력과 마력이 서서히 차올랐다.

“후우우.”

라이언은 숨을 길게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저 멀리 허공에 떠 있는 화이트홀을 바라봤다.

마족들은 저 화이트홀로 다 넘어갔다. 아마 그러지 않았으면 이렇게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마족의 수가 엄청났다.

“이제 어쩌죠? 저기에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저기에?”

라이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화이트홀을 바라봤다.

방금 저 안으로 어마어마한 수의 마족들이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다. 한데 거길 들어가자니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많은 마족들이 저 화이트홀을 넘어갔는데,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그런데 마족이 화이트홀을 넘을 수 있었나보네.”

라이언이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다들 표정이 굳었다. 그럴 리 없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까지 마족들이 그냥 갇힌 마계에 머물러 있었을 리 없으니까.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화이트홀로 향했다.

왠지 그냥 평범한 화이트홀은 아닌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단 들어가서 아니다 싶으면 바로 도망쳐 나오는 걸로. 오케이?”

라이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말이 나왔으면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게 낫다. 그게 라이언을 비롯한 팀 메인퀘스트의 성향이기도 했다.

다들 빠르게 화이트홀로 들어갔다.

세상이 확 뒤바뀌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다들 표정과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후다닥 화이트홀을 넘어갔다.

다시 돌아온 일행은 질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내가 지금…… 제대로 본 거 맞지?”

“마족이 마족을 먹고 있는 광경을 봤다면 저랑 똑같은 걸 봤네요.”

“일단…… 여길 피하자. 아까 그놈들……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우릴 신경 안 쓴 거 같은데, 들킨 건 확실해. 여기로 넘어오면 우리 못 살아남는다.”

라이언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그들은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그러면서 화이트홀 안에서 본 광경을 뇌리에 되새겼다.

화이트홀로 들어간 마족들은 그저 먹이에 불과했다.

저 안에는 그보다 훨씬 크고 강한 마족들이 있었다. 그 마족들이 약한 마족들을 마구 잡아먹고 있었다.

마족을 하나 잡아먹을 때마다 그 마족이 가진 힘이 마치 전이되기라도 하듯 포식한 마족의 힘이 대폭 늘어났다.

그것이 마력의 은은한 파장을 통해 확연이 느껴져서 더 끔찍하고 두려웠다.

“몇이나 있었지?”

“모두…… 열여덟이었어요.”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놈들이 여기로 뛰쳐나오면 정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대장이라면 막을 수 있을까?’

라이언의 뇌리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저 안에서 본 마족들이 준 느낌은 섬뜩하고 무시무시했다.

“설마…… 저것들이 지구까지 나가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마족들은…… 화이트홀을 못 넘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류지혜의 말에도 확신이 없었다.

불안감이 연기처럼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 * *

현석은 대미궁의 끝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어둠의 마수들을 처리했는지 모른다.

현석은 강한 마력을 품은 마수가 제일 많은 길만 골라서 갔다.

대미궁의 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로 자체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대미궁의 미로는 문이 열릴 때마다 달라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현석이 처음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한 것이 바로 지도를 만드는 일이었다.

대미궁의 지도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대미궁에 지도가 저장된 곳이 있었으니까.

애초에 미로를 구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마력패턴을 분석하면 끝이었으니까.

그렇게 만든 지도를 토대로 토벌대를 사방으로 보냈다.

그 토벌대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렇게 현석이 대미궁의 끝에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어둠의 마수를 죽이고 정화하는 일이었다.

대미궁의 끝에 도착한 현석은 거대한 동공 한가운데 놓인 새하얀 궤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순백의 알과 비슷한 방식의 봉인 마법진이 궤짝 전체에 새겨져 있었다.

또한 동공 전체에 빼곡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 역시 궤짝의 봉인을 강화하는 마법진이었다.

하지만 그 봉인 자체가 이제 한계에 달해 있었다. 아마 현석이 뭘 어떻게 하지 않아도 봉인이 깨지고 궤짝은 열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이 안에 있는 마왕에게 타격을 주려면 지금이 가장 큰 기회였으니까.

현석은 궤짝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성질을 통해 이 안에 어떤 힘을 가진 마왕이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대미궁을 가득 메운 마력도 그렇고, 마수들의 몸에 깃든 마력도 어둠이었다.

그리고 이 궤짝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마력도 마찬가지로 어둠의 마력이었다.

그러니 이 어둠에 타격을 주기 위해선 강한 빛의 힘이 필요했다.

현석은 양손을 가슴 앞으로 들었다. 마치 중간에 가상의 공이 있는 것처럼 공간을 띄웠다.

그리고 마력을 모았다.

화아악!

강렬한 빛이 손바닥 사이에 생겨났다. 빛의 마력을 한껏 머금은 빛의 구슬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석은 그 안에 자신이 가진 모든 마력을 쏟아 넣었다. 바닥 난 마력이야 보충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이 한 방에 모든 걸 건다는 생각으로 빛의 구슬을 만들었다.

응축되고 응축된 빛의 구슬이 이내 빛을 잃었다. 아니, 빛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투명한 구슬 하나가 현석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현석은 그 구슬을 가지고 가 궤짝에 올리고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놀랍게도 투명한 구슬이 궤짝을 통과해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거대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궤짝 안에서 일어난 것이 분명한데 그 강렬한 빛이 궤짝 밖으로 쭉쭉 뿜어져 나올 정도였다.

그 때문에 궤짝의 봉인 마법진이 깨져 버렸다. 그리고 그걸 강화하던 동공의 마법진도 깨졌다.

“크아아아아아!”

괴성에 가까운 비명이 동공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대미궁에 장착된 마지막 안배가 발동했다.

화아아악!

동공 전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것이 한데 모여 궤짝이 있던 자리를 직격했다.

“쿠워억!”

거친 비명과 함께 대미궁이 힘을 잃었다.

현석은 그 모든 난관을 뚫고 나타난 존재를 가만히 쳐다봤다.

[어둠의 마왕]

역시 예상했던 대로 어둠의 힘을 다루는 마왕이었다. 그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신기하군.”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싸울 준비를 했다. 빛이 폭발하는 동안 마력과 체력을 회복하는 데 온 힘을 다했기에 컨디션은 좋았다.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어둠의 마왕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둠의 마왕은 죽음의 마왕과는 달랐다. 그보다 훨씬 강했다.

“크으으. 드디어…… 드디어 이 지독한 속박에서 벗어났구나. 크하하하하!”

어둠의 마왕이 크게 웃었다. 그 순간 현석이 어둠의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꽈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막 마수 한 마리를 처리하고 정화를 끝낸 카니스는 갑자기 온몸에 엄습하는 섬뜩한 기분에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함께 있던 전사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카니스는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떠는 걸까 생각해보니 두려움 때문이었다.

대체 왜 이런 두려움이 드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 순간 허공에 새하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그 소용돌이는 순식간에 커지더니 카니스를 비롯한 모든 전사를 휘감았다.

이내 소용돌이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현상이 대미궁 곳곳에서 벌어졌다.

* * *

카니스는 소용돌이가 온몸을 휘감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덕분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소용돌이는 대미궁의 출구였다. 그것이 강제로 발동해 안에 있는 전사들을 밖으로 튕겨낸 것이다.

그 순간 온몸을 휘감으며 스며든 마력을 카니스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 다음에도 그 마력이 사라지지 않고 몸으로 녹아들었다.

우연치 않게 거대한 마력을 얻게 된 것이다.

어차피 대미궁이 사라지면서 함께 흩어져 버릴 마력이었는데, 미약하나마 그 중 일부가 카니스의 몸에 깃든 셈이었다.

카니스는 뿌듯하게 차오르는 마력의 힘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 흩어졌던 모든 전사들이 근처에 널브러져 있었다. 수는 500명 남짓이었다.

현석에게 장비를 지급받은 전사들만 살아남은 것이다. 따로 흩어진 자들은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하긴…… 어둠의 마수는 정말…… 지독했으니까.’

대미궁의 마수가 그렇게 무섭고 강한지 몰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들었던 것과 너무 달랐다.

현석이 지급한 장비가 아니었다면 아마 카니스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현석이 준 장비에는 빛 속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어둠의 마수를 상대하는 데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공격력이 강해진 건 물론이고 어둠의 힘을 상대로 하는 방어력도 월등히 단단해졌으니까.

카니스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500에 달하는 전사들이 모래 바닥에 누워 있었다.

개중에는 정신을 잃은 사람도 몇몇 보였다.

카니스는 그들을 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만일 이럴 때 마수라도 나타나면 큰일 아닌가.

‘사람들이 빨리 도착해야 할 텐데…….’

일단 대미궁에서 빠져나온 전사들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니 모든 도시에서 수색대를 운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티면 분명히 수색대를 만나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젠장.”

카니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 멀리서 거친 마력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래 거인…….”

모래 거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나 밖에 없다는 점이었는데, 그래도 여기서 싸우면 최소한 절반은 싸움에 휘말려 죽거나 다칠 것이다.

카니스는 모래 거인을 향해 이를 악물고 달려갔다. 그의 검에 막대한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카니스는 어느 순간부터 모래 거인에 모든 집중력이 꽂힌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모래 거인이 허무하게 허물어졌다. 단숨에 핵을 박살 낸 것이다.

카니스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아무래도 이번 대미궁에서 얻은 힘이 그저 평범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 * *

“후우우우.”

현석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놓인 검은 구슬을 쥐었다. 그것 역시 마왕의 심장이었다.

어둠의 마왕은 정말로 강했다. 현석의 몸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최후의 승자는 현석이었다.

현석은 어둠의 마왕을 물리치고 그 심장을 얻었다.

또한 마왕을 죽인 대가로 또 한 번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슬슬 성장 한계가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아마 이번 신의 파편을 깨우고 나면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까?

현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왕의 심장을 아공간에 넣었다.

[마왕의 심장]

[마왕의 힘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심장. 어둠을 지배하는 힘이 담겨 있다. 장비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다.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타이틀 어둠을 지배하는 자를 얻을 수 있다. 채현석에게 귀속되어 다른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다.]

예전에 얻은 마왕의 심장과 똑같았다. 다만 그때와 다른 건 죽음 대신 어둠을 지배하는 자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다는 것뿐이었다.

[어둠을 지배하는 자-어둠의 마왕이 남긴 심장을 소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호칭.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치가 크게 오른다. 오르는 능력치의 양은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른다. 스킬 어둠의 권역을 쓸 수 있다.]

[어둠의 권역-일정 시간 동안 주변을 어둠으로 감싼다.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과 범위는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른다.]

굉장한 스킬과 타이틀이었다. 특히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치가 크게 오르는 것은 숲의 은인, 숲의 주인과 함께 활용하면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다.

어둠의 권역으로 주변에 어둠을 깔고 숲의 주인으로 숲을 소환하면 대체 얼마나 큰 능력 향상이 있겠는가.

어쨌든 이젠 일곱 번째 파편을 깨울 차례였다. 당연히 일곱 번째 파편은 이 대미궁 자체였다.

현석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마력을 뿜어내 대미궁과 연결했다.

그동안 해본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순식간에 신의 파편과 동화되었다. 시야가 위로 확 올라갔다.

드넓은 사막이 한가득 펼쳐졌다. 또한 사막 너머에 있는 죽음의 대지도 시야에 들어왔다.

우르르르르르!

대미궁에 쌓였던 막대한 마력이 사막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 대미궁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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