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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92화 (292/326)
  • < 대미궁 1 >

    “정말…… 정말 대미궁을 강제로 여실 수 있는 겁니까?”

    현석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 아니라 입구를 하나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두 사람의 눈빛에 놀람과 기대감이 뒤섞였다.

    만일 이곳에서만 입구를 열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로 모든 도시는 자신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으리라.

    아니면 더 큰 피바람이 몰아치거나.

    하지만 지속적으로 대미궁을 통해 힘을 모으면 그 어떤 도시가 감히 자신들에게 대적할 수 있겠는가.

    사막의 전사들은 애초에 먹고 먹히는 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생각의 흐름도 그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뒤이은 현석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대미궁은 이제 사라질 겁니다.”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은 이내 마음을 수습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미궁이 사라진다니요?”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평소였다면 버럭 화를 냈을 것이다.

    대미궁은 전사들의 힘을 키우고 시험하는 기회의 장이다. 그걸 누가 마음대로 없앤단 말인가.

    물론 없앨 수 있다고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대미궁의 끝을 본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제사장과 전사장은 현석이 하는 말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저렇게 하려는 건 분명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감정이 든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일이 지금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미궁은 모든 도시의 전사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곳이기도 합니다.”

    현석은 두 사람의 공손한 반응에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해주지 않을 답을 해주었다.

    “대미궁이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넘어서다니요? 무슨 한계 말입니까?”

    “대미궁은 마왕을 봉인하고 있습니다. 한데 마왕의 힘이 너무 커져서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미리 문을 열겠다는 거였습니까?”

    그게 가능하냐는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가능하니 말했을 테니까.

    문득 제사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왕을 봉인했다는 말에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럼…… 그동안 우리 전사들이 제대로 어둠의 힘이 깃든 마수들을 처리하지 못해서…… 그래서 대미궁이 버티지 못하게 된 거로군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그저 수명이 다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이곳에서 사는 인간들이 마왕이 내뿜는 어둠의 힘을 정화하고 막아낼 정도로 강하진 못했을 테니까.

    물론 그동안 그런 전사가 태어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사가 죽고 난 다음에는 다시 힘이 강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수천 년의 세월을 쌓아왔다.

    아무리 대미궁이 대단한 봉인 마법진이라고 하더라도 마왕의 힘을 지금까지 버틴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 대미궁의 수명이 다했습니다.”

    현석의 말에도 제사장과 전사장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석이 일부러 자신들을 생각해 저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면 저희가 어쩌면 되겠습니까?”

    현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냥 당장 일을 벌여도 된다. 하지만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는 건 도의가 아니지.’

    그동안은 한 번도 도의니 뭐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한데 난데없이 지금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다른 도시에 제가 한 말을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럼 입구는…… 이곳에만 여시겠습니까? 저희 전사들이 별로 못 미더우시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현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열겠습니다.”

    두 사람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대미궁이 한계를 넘은 상황이니까요.”

    만일 대미궁을 이대로 방치해서 폭발해 버린다면 이 세상 자체가 마왕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다.

    그 전에 마왕의 힘을 최대한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죽음의 마왕을 상대할 때처럼 말이다.

    지금은 그 역할을 대미궁이 하고 있으니, 대미궁에 흩어져 있을 어둠의 마수들을 최대한 죽이고 정화해 나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연락할 방법이야 있으니까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이 시간에 입구를 열겠습니다.”

    현석이 밖으로 나가자, 전사장과 제사장이 벌떡 일어나 황급히 어딘가로 달려갔다.

    이제부터 진짜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내일까지 30명의 전사를 준비해야 할 테니까. 그들뿐 아니라 사막의 모든 도시에서 말이다.

    * * *

    카니스는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려 애썼다. 그는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현석을 바라봤다.

    ‘정말 열 수 있는 건가?’

    사실 아직도 잘 믿기지가 않았다. 대미궁의 문을 강제로 열 수 있다니.

    대미궁의 문이 제대로 열리려면 아직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아직 대미궁으로 갈 전사를 선출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어제 부랴부랴 전사를 뽑느라 정말 전사장과 제사장이 엄청난 노력을 퍼부어야 했다.

    그냥 실력 순으로 뽑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정치적, 경제적, 인간적 문제가 얽혀 있기에 그걸 다 조율해서 뽑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간이 별로 없기에 반쯤은 어거지가 들어갔지만 그래도 전사장과 제사장이 이렇게까지 애쓰지 않았다면 그 조율이 절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카니스는 주위를 힐끗 둘러봤다. 자신과 함께 안에 들어갈 전사들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사실 그들의 표정도 긴가민가했다. 진짜 대미궁이 열릴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미궁의 문은 열리기 열흘 전부터 전조를 내비친다.

    문이 열리는 장소에 검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기 시작하고, 근처에 다가가면 강력한 힘을 느끼게 된다.

    한데 지금은 그 어떤 전조도 없었으니 다들 반신반의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나마 전사장과 제사장이 동시에 나서서 강력하게 주장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이렇게 전사를 모으로 조율을 하는 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후욱.”

    카니스가 숨을 훅 내뱉었다. 그걸로 긴장감을 상당히 내뱉었다. 그의 시선이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전사장과 제사장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과연 다른 도시에서도 준비를 했을지 걱정이군.”

    “뭐…… 준비를 안 했어도 문이 열리면 어떻게든 하지 않겠나?”

    “그야 그렇겠지만…….”

    하지만 대미궁이라는 곳이 급조한 전사들을 들여보내도 될 정도로 어설픈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자칫 분위기나 질서를 흐리기라도 하면…… 다 죽을 걸세.”

    제사장의 말에 전사장이 빙긋 웃으며 턱짓으로 현석을 가리켰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걸세.”

    현석을 보고 나서야 제사장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의 말을 믿고 여기까지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슬슬 시작할 모양이군.”

    전사장의 말에 제사장이 눈을 빛냈다. 아닌 게 아니라 현석의 몸에서 마력이 뭉클뭉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막대한 마력이었다. 이 근처에서 구경하는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 그리고 기가 질린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잠시 후, 현석 앞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까만 소용돌이가 허공을 빙글빙글 도는 광경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대미궁이…… 열렸다.”

    진짜 대미궁의 문이 열린 것이다.

    현석은 망설임 없이 대미궁의 문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전사장이 다급히 외쳤다.

    “출정!”

    전사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니스가 대미궁의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나머니 전사들이 그 뒤를 우르르 따라갔다.

    현석까지 해서 정확히 30명의 전사가 들어가자, 대미궁의 문이 스르르 닫혔다.

    전사장이 그 모습을 보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만 남았군.”

    대미궁으로 들어간 전사들은 대미궁 곳곳에서 생겨나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문은 꼭 하나가 아니었고, 모든 문이 다른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어디로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렇게 대미궁을 빠져나온 전사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는 것이었다.

    “내일부터 수색대를 출발시킨다! 다들 준비하도록!”

    전사장의 명령에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지친 채 대미궁을 빠져나온 전사를 구하러 돌아다니는 것이 어쩌면 대미궁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사막의 모든 도시에 대미궁의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당연히 미리 준비한 도시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도시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들 30명의 전사는 들여보냈다. 이제부터는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 * *

    대미궁은 생각보다 밝았다. 그리고 처음 도착한 장소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다.

    대미궁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현석이었다. 현석이 들어온 다음 시간차를 두고 전사들이 속속 들어왔다.

    전사들이 모두 들어오니 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되었다. 그만큼 도시의 수가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정도로 사막이 넓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말이다.

    현석은 옆에 있는 카니스를 보며 물었다.

    “내가 한 말을 모든 도시에 다 전달했나?”

    “네. 일단 전달은 했습니다.”

    하지만 전달만 했을 뿐 그 이후의 일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아마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뉠 것이다.

    현석은 카니스보다 훨씬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일단 전사들의 수준과 마력의 흐름을 통해 준비해서 온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을 구분해냈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대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을 안 듣는 자들까지 살려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대미궁보다 위험할 거다.”

    현석의 말에 카니스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카니스와 함께 온 전사들 역시 카니스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사실상 카니스의 부하들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석은 카니스에게 그런 말을 하는 동안 마력을 풀어 대미궁 내부를 구석구석 훑어보고 있었다.

    어디에 마력이 많이 모여 있는지, 또 어디를 공략해야 대미궁의 수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지부터 파악했다.

    마력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는 마수가 많이 모여 있거나 강한 마수가 있다는 뜻이다.

    그곳은 반드시 정리해야만 한다. 그래야 대미궁이 수용할 수 있는 마력이 늘어날 테니까.

    현석은 그러면서 대미궁이 봉인하고 있을 마왕을 약화시킬 방법을 찾아봤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게 없었다. 그저 이 안의 마수들을 정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답이 나왔으면 움직여야 한다.

    “천 명이 함께 움직일 필요는 없다. 100명씩 나눠서 움직이도록.”

    현석의 말에 카니스가 황급히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각 도시에서 온 전사들의 책임자를 모았다.

    잠깐 고성이 오가고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그리고 몇몇 전사들이 떨어져나갔다.

    잠시 후, 카니스가 돌아왔다. 그는 면목이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절반 정도밖에 확보를 못했습니다. 다들…… 제 갈길을 가겠다고 합니다.”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반이나 확보했으면 그걸로 됐다.

    고개를 돌려 전사들 쪽을 보니 벌써 떠나는 무리가 있었다. 각각 서른 명씩 짝을 지었는데, 도시들끼리도 힘을 모으지 않는 특성이 고스란히 나타난 듯했다.

    “이들이 다 함께 하겠다고 했다고?”

    현석은 좀 의외인 듯 남은 전사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금세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카니스의 힘이었다. 카니스는 다른 도시들에도 제법 명성과 인망이 쌓여 있었다.

    흩어진 전사들은 카니스의 인망이나 명성이 미쳐 닿지 않거나 카니스를 시기하는 쪽이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공간에서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꺼냈다.

    이들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일단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부터 장비를 지급한다. 사용법은 카니스에게 말해둘 테니 알아서 전해듣도록.”

    현석은 상당히 쓸 만한 장비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각각 100명씩 부대를 나누고, 나뉜 부대의 리더에게 대미궁의 지도를 넘겼다.

    카니스는 지도를 받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지, 지도가 있었습니까?”

    “정확한 지도가 아니라 너희가 가야 할 길만 표시된 지도다. 거길 따라가면서 나오는 모든 마수를 토벌해야 한다.”

    카니스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수를 토벌한 다음에는 반드시 이걸 써야 한다.”

    현석은 은색으로 빛나는 팔찌를 건넸다. 정화의 마법이 새겨진 팔찌였다.

    마수를 죽여 봐야 그 마수가 품고 있던 어둠의 마력을 정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걸 마무리한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니스가 전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다섯 갈래로 나뉘어 흩어지는 전사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현석이 이내 몸을 돌렸다.

    대미궁의 입구인 거대한 공간에는 사방에 무수한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대미궁이라는 이름에 정말로 걸맞은 모습이었다.

    현석은 그 중 하나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짙은 어둠의 마력이 가장 많이 모인 길 중 하나였다.

    < 대미궁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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