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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91화 (291/326)

< 사막의 전사들 3 >

전사장은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현석이 마력을 한 차례 뒤흔드는 바람에 몸속에 있는 마력이 꼬여버린 것이다.

마력이 한 번 꼬였으면 어떻게든 몸을 추스르겠지만, 갑작스러운 충격 때문에 한 군데가 아닌 여러 군데가 꼬여 버렸다.

그 중에는 팔다리나 허리로 가는 중요한 마력도 있어서 몸을 움직이는 데 지장이 컸다.

아마 이걸 제대로 풀어내려면 최소한 이틀은 걸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한두 군데 꼬인 게 아니라 꼬인 걸 풀다가 역으로 다른 곳이 꼬일 수도 있었으니까.

전사장도 오랫동안 마력을 이용해온 사람이었다. 마력에 대해 상당히 많이 파악하고 있기에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마력을 최대한 억눌렀다. 여기서 마력이 날뛰기 시작하면 수습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다.

사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심하게 마력이 꼬인 사람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전사장은 잠시 현석을 노려보다가 이내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누굴 원망한단 말인가. 애초에 자신이 현석에게 몰래 마력을 접근시키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제는 원망보다는 자신을 이렇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실력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이 뇌리에 자리 잡았다.

“보통 전사가 아니군. 대단해.”

전사장은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한 다음 카니스를 바라봤다.

“날 좀 부축해서 저기 앉혀주면 고맙겠군.”

카니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달려가 전사장의 몸을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원래 자리에 앉혔다.

그걸 보고 있던 제사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전사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전사장의 아랫배에 손바닥을 올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내 눈을 뜬 제사장이 전사장을 똑바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

전사장은 그런 제사장을 바라보며 웃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나? 자업자득인데. 내 뒤를 이을 놈도 미리 준비해 뒀으니 걱정할 거 없네.”

“지금 내가 자네 후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은가!”

제사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현석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불편해 보였지만 그래도 적의는 내비치지 않았다. 사실 전사장의 말이 맞다. 자업자득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자신의 방관도 한몫 했다.

그 부분이 불편하고 미안했다. 아무리 제사장이라도 그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아니, 숨길 수는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게 원하는 게 뭔가? 아니, 그 전에 이 친구…… 고쳐줄 수 있나?”

제사장은 현석이 전사장의 몸을 고칠 열쇠를 들고 있다고 믿었다. 제사장 생활을 오래 하면서 키워온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제사장 역시 마력을 다룬다. 하지만 전사장과는 좀 다른 방향이었다.

그 마력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가 가진 마력이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현석과 반목해선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중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어서 제사장도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현석은 말없이 전사장에게 다가갔다.

제사장은 그걸 제지하기 위해 손을 올리려다가 이내 꾹 눌러 참았다.

현석에게 악의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또한 악의가 있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전사들을 불러서 싸울 수도 있지만, 그래선 안 된다. 제사장이 보기에 현석의 몸에 거대한 힘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직 그 힘의 겉도 제대로 못 핥아봤다. 만일 저게 진짜 마음먹고 드러나면 다들 끝장날지도 모른다.

현석은 전사장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에 손바닥을 척 얹었다. 현석의 손바닥에서 가느다란 마력의 실이 무수히 쏟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 마력의 실이 전사장의 몸에 있는 마력으로 파고들어갔다.

몸 곳곳의 흐름이 꼬여 있었다. 몇몇 군데는 기괴한 방향으로 꼬여 있어서 결코 아무나 풀어낼 수 없는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보다 수천 배나 더 복잡하고 난해한 마력 패턴도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낼 수 있는 현석에게 이 정도는 4조각짜리 퍼즐을 맞추는 것과 별다를 게 없는 간단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꼬인 마력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마치 현석이 마력을 뿜어 몸속을 한 차례 씻어낸 것처럼 보였다.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그걸 직접 몸으로 겪는 전사장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그는 경악어린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어느새 현석은 전사장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정말…… 놀라운 귀인이 손님으로 오셨군.”

전사장은 그렇게 말한 다음 지극히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말투까지 바뀌어 버렸다. 제사장은 그런 전사장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허겁지겁 전사장의 아랫배에 손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언제 움직였는지 전사장의 손이 제사장의 손목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으니까.

“그럴 필요 없네. 내 몸은 아주 멀쩡하니까. 아니,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몸속 마력의 흐름에 거침이 없었다. 예전에는 군데군데 흐름이 느려지거나 막힌 게 아닐까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조차 없었다.

전사장이 카니스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아무래도 네게 뒤를 맡길 때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구나.”

제사장은 그런 전사장의 모습을 보다가 이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그냥 털썩 앉으려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현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정중하기 그지없는 어조였다. 간단한 한 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제 현석은 이 두 사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현석의 모습을 카니스가 옆에서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자,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나눠볼까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제사장의 말에 멀찍이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가 얼른 의자 두 개를 더 가져와 탁자 옆에 놓았다.

그 자리에 현석과 카니스가 각각 앉았다.

제사장은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묻지요.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현석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그저 막연히 이 세상에 대해 좀 더 파악하고 정보를 찾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여기 오는 동안 모래 거인에 대한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모래 거인이 자주 나타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석의 물음에 두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가 다시 현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걸 알면 우리도 뭔가 조치를 취했겠지요.”

“짐작 가는 일도 없습니까?”

“그야…….”

제사장과 전사장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짐작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짐작만으로 모든 정답을 알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보통 짐작은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다.

카니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대화를 듣고 있었다.

설마 이런 얘기를 나눌 줄은 몰랐다. 모래 거인이라니.

전사장과 제사장이 계속 머뭇거리자, 현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원인부터 말씀 드리죠.”

원인? 다들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원인을 알고 있단 말인가? 하면 대체 왜 그런 질문을 했단 말인가. 설마 테스트라도 해 보려고?

“사막에 마력의 소용돌이가 너무 많습니다.”

“마력의 소용돌이?”

현석은 자신이 사막을 날아오면서 분석한 내용을 두 사람에게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마력의 소용돌이에 응집되는 마력이 모래 거인을 만들어 낸다고 말이다.

얘기를 모두 들은 제사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현석이 눈을 빛내며 제사장을 향해 물었다.

“짐작 가는 게 있으신 모양이군요.”

제사장과 전사장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주제로 두 사람이 자주 얘기를 나눴기에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대미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미궁이라는 말에 카니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 역시 대미궁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사막의 전사들 중에 대미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곳은 전사들에게 있어서 힘과 용기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현석이 담담히 그 말을 듣고 있자, 두 사람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미궁에 대해 모르시는군요.”

“외부인이니 당연한 거 아닙니까?”

현석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더욱 무거워졌다.

“대미궁은 10년에 한 번 열리는 곳입니다. 모든 도시의 중심에 입구가 생겨납니다.”

“검은 소용돌이가 생겨나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면 대미궁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현석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블랙홀과 흡사하지 않은가.

현석은 계속해서 대미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대미궁은 10년에 한 번씩 열리며, 블랙홀을 통해 들어간다. 일단 입구는 모든 도시에 열리지만 거길 통과해 도착하는 곳은 모두 같았다.

엄청나게 거대한 홀에 모두가 모이게 되어 있었다.

일정한 숫자의 전사를 받아들이면 입구가 닫힌다.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각 입구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전사의 수는 정확히 30명이었다.

그렇기에 10년에 한 번씩 전사장과 제사장이 대미궁에 입장할 전사 30명을 뽑는다.

어쨌든 그렇게 모인 전사들은 대미궁을 모험하게 되는데, 이름과 걸맞을 정도로 복잡하고 거대한 미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대미궁 안에는 어둠에 물든 마수들이 다수 나타나고, 그 마수들과 싸우며 밖으로 나갈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나가는 데 성공한 전사는 큰 힘과 대미궁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현석은 대미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그 정체를 금방 짐작했다.

대미궁 역시 마왕 중 하나를 봉인한 마법진일 것이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마왕의 힘이 어둠의 마수를 만들어내고, 그 어둠의 마수를 없애 힘을 줄이기 위해 대미궁의 문을 여는 것이다.

‘슬슬 그것도 한계에 도달했겠지.’

죽음의 마왕도 그랬다. 순백의 알에 감싸인 채, 그 힘이 한계에 달해 죽음의 대지가 훨씬 위험해졌다.

아마 이번에도 그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대미궁의 힘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제사장이 신중하게 말했다. 아마 다른 도시의 제사장이나 전사들도 비슷한 추측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말이다.

“대미궁이 언제 열립니까?”

“열흘 후입니다.”

현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현석의 몸에서 뭉클 일어난 마력이 바닥으로 스며들어갔다.

막대한 마력이 끊임없이 솟아났고, 그 모든 마력이 한 톨도 남김없이 땅속으로 사라졌다.

다들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셋 다 마력에 대해 예민했기에 현석이 일으키는 마력이 얼마나 크고 순수하고 강한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저 거대한 힘이 만일 이 도시로 향하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은 부디 저 힘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기보다는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길 신께 기도했다.

이내 현석이 눈을 떴다.

방금 현석은 대미궁의 존재를 확인했다. 제사장의 추측대로 대미궁은 지하 깊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대미궁은 거대한 봉인 마법진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다.

봉인 마법진의 요체를 파악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대미궁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이 바로 그 봉인 마법진의 역할이었다.

물론 외부의 충격이나 감시를 막고 보호하는 역할도 했고 말이다.

현석은 어렵지 않게 봉인 마법진 안에 있는 대미궁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대미궁 또한 거대한 봉인 마법진이었다.

그리고 대미궁이 봉인한 존재의 힘이 너무 커져서 지금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현석은 두 사람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대미궁을 강제로 열어야겠습니다.”

“예에?”

두 사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대체 저게 지금 무슨 말인가. 대미궁을 강제로 열겠다니.

“그, 그게 가능하긴 합니까?”

현석은 대답 대신 흔들림없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방안에 있던 세 사람이 멍하니 현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 사막의 전사들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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