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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89화 (289/326)

< 사막의 전사들 1 >

현석은 용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곳 세상의 지형부터 확인했다.

정말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군데군데 푸른 지역이 보였다.

오아시스였다.

예상했던 대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도시나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현석은 용을 타고 날아가며 전체적인 지형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른 화이트홀과 마찬가지로 막힌 곳이 있는지도 살펴봤다.

이곳 역시 호리병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언데드가 잔뜩 있는 죽음의 대지가 있었고, 그곳에 화이트홀 하나가 있었다.

죽음의 대지로부터 풍기는 죽음의 마력이 정말 엄청났다.

‘그럼 여기도 마왕이 잠들어 있는 건가?’

죽음의 마왕을 죽일 때의 일이 잠깐 떠올랐다. 그때 남은 마왕이 둘이나 더 있다고 했다.

그 두 마왕 중 하나가 이곳에 봉인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의 파편이라는 것이 하도 다들 제각각이라서 같은 방식으로 봉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 다른 방법을 썼을 것이고, 그걸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언데드들은 신기하게도 죽음의 대지를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 모래뱀이 중간에서 그걸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줄 알았는데, 모래뱀이 없는 지금도 저들은 죽음의 대지를 벗어나지 않았다.

‘일단 신의 파편부터 찾아보자.’

아마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없을 수도 있고 말이다.

얼핏 생각하면 남은 퀸급 생성지역이 둘이니 신의 파편도 각각 하나씩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한데 현석은 왠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둘 중 하나가 정답이라면…… 여기 같군.”

화이트홀에 들어온 순간부터 신의 파편이 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이번엔 어떤 식으로 존재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신의 파편은 단 한 번도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용에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현석은 문득 이번 신의 파편은 저 모래를 이용해서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현석은 순간적으로 느껴진 강렬한 마력의 파동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마력이 뿜어져 나온 방향을 쳐다봤다.

“이쪽 마수는 주로 모래와 관계된 모양이군.”

저 멀리 거대한 모래 거인과 전사로 보이는 사내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전사들의 실력이 상당하긴 했지만 모래 거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현석은 빠르게 그쪽으로 날아갔다.

* * *

“하아압!”

카니스는 기합을 내지르며 거대한 반월도를 휘둘렀다.

촤아악!

모래 거인의 손가락 하나가 싹둑 잘려나갔다. 하지만 언제 잘려 나갔느냐는 듯 다시 자라난 손가락에 이를 악물었다.

모래 거인은 빠르고 강했다. 벌써 다섯 명의 전사가 당해 모래 거인에게 먹혀 버렸다.

모래 거인에게 먹히면 뱃속에서 모래로 변해 버린다.

모래거인은 생명체가 가진 마력을 빨아들여 자신의 양분으로 삼고, 남은 찌꺼기를 모래로 만들어 몸에 흡수하는 마수였다.

괴성도 포효도 내지르지 않는다. 움직일 때 사각거리는 모래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무섭고 위험한 놈이었다.

언제 어디서 불쑥 솟아나 사람을 잡아먹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이놈도 갑자기 불쑥 솟아나면서 전사 둘을 동시에 잡아챘다. 채 반항할 틈도 없이 전사 두 명이 이놈의 입으로 사라졌다.

‘이대로 끝인가?’

카니스의 눈에 암담함이 떠올랐다. 모래 거인은 여전히 건재했고, 전사들은 지쳐갔다.

부족 최고의 전사들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벌써 전부 모래 거인의 한 끼 식사로 전락했을 것이다.

촤아아악!

모래 거인이 갑자기 양팔을 쫙 펼치며 빙글 돌았다. 모래 거인의 손이 채찍처럼 늘어나더니 사방을 휩쓸었다.

카니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런 방식으로 공격하는 모래 거인에 대한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보통 모래 거인이 아니야!’

하지만 특별한 모래 거인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보통 모래 거인은 주먹질과 발길질로 싸운다. 그것만 해도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강한 놈이 바로 모래 거인이었다.

‘변종!’

카니스는 변종 모래 거인에 대한 얘기가 떠올랐다. 자신의 몸을 변형시키거나 특별한 힘을 쓰는 모래 거인, 변종에 대한 얘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이놈은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쪽의 변종 모래 거인인 모양이었다.

그냥 싸워도 승산이 없는데 저렇게 몸을 변형시키기까지 하니 승산이고 뭐고 이젠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촤아아악!

모래 채찍이 전사 하나를 휘감았다.

“으아아아!”

전사가 비명을 지르며 모래 채찍을 칼로 마구 베었다. 하지만 칼은 그저 모래 채찍을 허무하게 관통했다.

그 때마다 모래가 우수수 쏟아졌지만 그뿐이었다. 모래 채찍은 여전히 건재했다.

전사가 순식간에 모래 거인의 입으로 사라졌다.

카니스는 모래 거인이 아까보다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촤아아악!

모래 거인의 몸에서 모래 채찍이 무수히 솟아났다. 마치 모래로 만든 촉수 같았다.

카니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모래 채찍을 칼로 마구 베었다.

촤촤촤촤촥!

하지만 모래 채찍은 그런 카니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그를 휘감고 위로 휙 들어 올렸다.

카니스는 빠르게 다가오는 모래 거인의 입을 보며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끝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 순간 모래 거인의 위로 뭔가가 뚝 떨어졌다.

꽈르릉!

카니스는 모래 거인의 입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아래로 떨어져 모래에 푹 파묻혔다.

“푸하!”

황급히 모래에서 빠져나와 상황부터 파악했다.

놀랍고 황당하게도 모래 거인은 더 이상 없었다. 대신 방금 모래 거인이 있던 자리에는 한 무더기의 모래 언덕과 그 위에 서 있는 낯선 사내의 모습만 보였다.

그는 손에 태양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하나를 들고 있었다.

빛에 휩싸여 있어서 윤곽만 대충 보일 뿐 얼굴이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카니스의 뇌리에 문득 전설 하나가 떠올랐다.

태양빛에 휩싸여 강림하는 태양신의 사자에 대한 전설이 말이다.

“시, 신의 사자?”

카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흠칫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럴 리 있겠는가. 신의 사자는 그저 전설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한 얘기는 이미 동료 전사들의 귀에 들어갔다. 문제는 그들의 반응이었다.

다들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카니스는 그걸 보며 당황스러웠다. 왠지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서였다.

모래 언덕 위에 서 있던 사람이 천천히 다가왔다.

카니스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왠지 시선을 피해선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현석은 조금 묘한 눈으로 그런 카니스를 쳐다봤다. 그리고 손에 든 다이아몬드를 카니스에게 휙 던졌다.

카니스는 깜짝 놀라 그것을 받았다. 그제야 다이아몬드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정석?”

카니스는 멍하니 마정석과 현석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렇게 크고 투명한 마정석은 처음이었다. 오죽했으면 처음 현석이 이걸 들고 있었을 때, 마정석이 아니라 다이아몬드인 줄 알았겠는가.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세공을 거친 다이아몬드와 비슷하게 생겼다. 물론 세공이 너무 투박해서 가치는 좀 떨어지겠지만.

어쨌든 무슨 상관인가. 이건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마정석인데.

카니스는 마정석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에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이걸 왜…….”

이건 변종 모래 거인이 죽으면서 남긴 마정석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 담긴 힘이나 마정석의 크기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걸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카니스는 질문의 의도를 몰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사장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현석은 제자상이라는 말에서 주술사나 마법사의 느낌을 받았다.

“안내해라. 보수는 그걸로 충분하겠지?”

“무, 물론입니다!”

카니스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고작 제사장한테 안내하는 대가로 이 마정석을 준다고?

이런 마정석 하나면 보통 사람은 인생이 달라질 정도로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냥 갖다 팔아도 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잘게 쪼개서 야금야금 팔아도 된다.

보통 마정석은 모래알 정도로 쪼갤 수 있다. 그 모래알만 한 마정석 하나만 있어도 죽을 목숨을 한 번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카니스 같은 전사에 한해서이긴 하지만.

어쨌든 카니스는 마정석을 소중히 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 있는 전사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일어서! 도시로 돌아간다!”

카니스의 명령에 전사들이 슬그머니 일어나 현석과 카니스의 눈치를 살폈다.

엎드려있긴 했지만 카니스가 현석에게 무엇을 받았는지 다 듣고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그에 대해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모래 거인으로부터 목숨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평생 갚기 어려운 빚을 진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카니스는 그런 전사들을 보며 말했다.

“똑같이 나눌 테니까 걱정 마라. 그보다 은인께서 기다리신다. 서둘러!”

카니스의 말에 다들 후다닥 움직였다.

“제가 앞장서서 모시겠습니다. 가시지요.”

현석은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카니스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뒤를 따라갔다.

나머지 전사들이 넓게 퍼지더니 사방을 경계하며 이동했다.

그걸 본 현석이 카니스에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 걸어서 다니나?”

카니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들 말을 타고 왔는데 모래 거인에게 먹혀 버렸습니다.”

카니스는 일부러 좀 더 밝은 목소리를 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말을 안 타고 걸어도 이틀이면 도착합니다.”

이틀이라는 말에 현석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모래가 어마어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런 곳을 이틀이나 걸어가겠다고?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인 걸 보면 이런 상황에 제법 익숙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이틀이나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나와라.”

현석은 용을 꺼냈다. 이걸 타고 날아가면 몇 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굳이 걸어서 이동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갑자기 등장한 용의 모습에 카니스를 비롯한 전사들이 깜짝 놀라 칼을 뽑아 겨눴다.

하지만 다들 긴장과 두려움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놀랄 필요 없다. 내가 불러낸 용이니까.”

카니스가 얼떨떨함과 놀람이 뒤섞인 표정과 눈빛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

“소, 소, 소환사이셨습니까?”

현석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용을 얻었다고 다 소환사가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현석은 미리 꺼내 준비한 금속판의 고리를 용의 몸에 척척 걸었다. 그 다음 용의 등에 올라타자, 용이 서서히 상승했다.

용의 몸에 연결된 금속판이 공중에 살짝 떴다.

“타라.”

현석의 말에 카니스가 조심스럽게 금속판에 올랐다. 그러자 나머지 전사들도 따라서 금속판에 올라탔다.

“꽉 잡지 않으면 떨어질 거다. 떨어져도 구해주지 않으니 알아서 잘 버티도록.”

현석의 말에 불안함을 느낀 카니스가 금속판에 매달린 끈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다들 어딘가 붙잡을 만한 곳을 찾아 매달렸다.

“몸을 최대한 낮추는 게 유리할 거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용이 하늘 높이 쭉 날아올랐다.

“으헉!”

다들 놀라서 헛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그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슈아악!

용이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

카니스는 줄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니, 아예 온몸으로 줄을 힘껏 끌어안았다.

마치 바람의 거인이 나타나 자신을 줄에서 떼어내 허공에 던져 버리려는 것만 같았다.

“으아아악!”

전사 몇 명은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까지 질렀다. 그들이 이런 경험을 언제 해봤겠는가.

놓치면 떨어져 죽는다는 생각에 다들 온몸에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올 정도로 힘을 주었다.

카니스는 그 와중에 귓가에 또렷이 들려오는 현석의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향을 확인해라.”

카니스는 놀람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눈을 떴다. 그리고 감탄했다.

눈앞에 펼쳐진 사막의 광경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놀라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는 서둘러 방향을 확인했다.

“저쪽입니다!”

방향을 확인하는 건 태양의 위치와 몸에 새겨진 감각이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방향으로 용이 빠르게 날아갔다.

카니스를 제외한 나머지 전사들은 눈을 질끈 감은 채 그저 매달리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카니스는 날아가며 사막의 풍경을 최대한 눈에 담으려 애썼다.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볼 수 있겠는가.

카니스는 가슴이 점점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저 멀리 도시가 보였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 그리고 자신이 지켜야 할 곳이었다.

< 사막의 전사들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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