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조 7 >
현석의 목적지는 인도였다.
인도의 퀸급 생성지역으로 가서, 그곳의 투명 던전을 클리어하고, 화이트홀까지 확인해 보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한국의 생성지역으로 갈 예정이었다.
문제는 과연 시간이 얼마나 남았느냐였다.
‘슬슬 마탑에도 들러야 하는데…….’
생명수가 섞인 레인보우 엘릭서를 최상의 품질로 뽑아내려면 마탑의 장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현석은 슬슬 자신의 레벨업 한계에 도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때가 되면 레인보우 엘릭서를 이용해 폭발적인 레벨업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마계의 통로가 수백 개나 있는 동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마계의 침공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저쪽 세상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다. 적어도 현석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현석이 보기에 조각조각 갈라진 저쪽 세상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물론 하나하나 따로 봐도 보통 크기가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걸 지구와 비교한다면 애초에 게임이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물론 그건 현석의 추측이고, 실제로는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현석은 자신의 추측이 거의 맞을 거라고 믿었다.
‘기껏해야 호주 정도?’
아무리 갖다 붙이고 더 있을 거라 예상해 이리저리 꿰맞춰 봐도 호주보다 더 크지는 않을 듯했다.
그런 세계가 조각조각 나뉘어 차원의 공간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비교적 큰 조각들이 퀸급 생성지역에 있는 화이트홀과 이어져 있었다.
‘어쩌면…… 퀸급 생성지역이 더 있을 수도 있지.’
회귀 전에 현석이 얻은 지식으로는 세 군데가 전부였지만, 그때도 미처 발견되지 못한 곳이 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석은 왠지 그건 아닐 것 같았다.
그 세 군데 생성지역의 화이트홀은 왠지 다른 지역의 화이트홀에 비해 상당히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어느 곳보다 그 세 곳의 화이트홀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일단 그 녀석들이 잘 해줘야 하는데…….’
그곳에 있는 투명 던전을 여는 건 류혜연에게 맡겼다. 아마 잘 해낼 것이다.
그 투명 던전에 걸려 있는 패턴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그건 중국에 있는 것도 그렇고 인도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중국의 투명 던전은 이제 현석이 손을 대서 패턴을 복잡하게 바꿔 놓았다.
아마 류혜연이 간다고 해도 중국의 투명 던전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현석은 인도의 투명 던전도 그렇게 만들어 놓을 계획이었다. 그것을 감지하고 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현석은 지금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용을 타고서.
비행기를 이용하기엔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냥 이렇게 용을 타고 이동하는 편이 기동성 면에서 훨씬 나았다.
게다가 인식을 방해하는 마력패턴을 주변에 깔아 뒀기 때문에 들킬 염려도 없었다.
이 패턴은 인간의 감각은 물론이고 전자장비에도 충분히 통할 만한 방식이었으니까.
그렇게 용을 타고 날아가던 현석은 문득 숲의 부족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숲을 침공한 놈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정체는 투명 던전에 있던 병사들이다. 그리고 그 투명 던전은 전쟁을 하던 곳이었다.
한데 전쟁을 멈추고 숲으로 진군한 것이다.
처음 그들과 싸울 때는 그저 싸움을 막고 거기서 새로 발견한 화이트홀을 비롯해 무수한 마계로의 통로가 잠들어 있는 동공을 발견하는 바람에 그냥 넘어갔다.
한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투명 던전의 요새를 지키던 것들은 지구의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현석의 기억에 그곳에서 병사들과 전쟁을 벌인 건 마계의 병사들, 즉 마족이었다.
비록 최하급에 간신히 발을 걸친 약한 마족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까다로운 적이었다.
그 마족들과 대치하고 전투를 벌이는 장소가 바로 퀸급 생성지역의 투명 던전이었다.
이건 한국의 생성지역도, 또 인도의 생성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투명 던전은 전쟁터였다. 그래서 아무 대비없이 들어가면 낭패를 겪는 것이고 말이다.
물론 지금의 현석이나 팀 메인퀘스트에게는 별다른 대비가 필요 없다.
고작 그 정도 전쟁에 휘말려 어떻게 될 정도로 약하지는 않으니까.
‘그나저나…… 그럼 거기 있던 마족들은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이 다 죽인 건가?’
현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시 적의 총사령관이나 요새의 플레이어들이 힘을 모은다고 해서 그 마족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텐데…….”
물론 불가능하진 않다. 그리고 다른 조력자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렇게 투명 던전과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이리저리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인도에 도착했다.
현석은 마력을 넓게 퍼트리며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 * *
양동욱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메일부터 확인했다. 보고서들이 쭉 쌓여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확인하고 승인 버튼을 누른 다음, 비밀 보고서를 확인했다.
현재 미래산업은 한국의 퀸급 생성지역을 장악했고, 인도의 생성지역은 피라밋 암시장과 절반씩 나눠 먹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쪽에는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당장 철수했지만 별로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퀸급 블랙홀은 클리어 했을 때 얻는 것이 정말 많았다.
일단 레벨업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물론 그만큼 위험한 던전이기도 했다.
또한 이곳에서 얻는 재료나 아티팩트는 상당히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한국의 생성지역은 미래산업에서 비밀리에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도의 생성지역은 미래산업과 피라밋 암시장이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미래산업은 아티팩트를 비롯한 마력 관련 사업에서 엄청난 성장세를 자랑했다.
지금은 현석의 도움이 없이 미래산업의 연구소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물건들이 전 세계에 깔리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현석이 준 물건의 가치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여전히 미래산업의 근간은 현석이 준 물건들이었다.
힐링 포션, 파워업 키트, 페레인 엑기스, 재생 연고, 그리고 아이기스.
여전히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래산업의 무기들이다.
또한 특별한 마정석 정제법까지 더해서 미래산업의 성장률은 매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양동욱은 한국의 종로 암시장까지 미래산업에 끌어들였다. 믿을 만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다.
어쨌든 비밀 보고서는 양동욱이 가장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맡긴 정보조직으로부터 온 보고서였다.
‘렉스턴과 원탁의 싸움이 절정에 이르렀군.’
양동욱은 제롬 에너지가 등장했을 때부터 렉스턴과 원탁의 가문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스파이를 심었다.
그리고 이쪽에 있는 그들의 스파이를 파악해 역공작을 준비했다.
그들이 나서서 제롬 에너지를 박살 내는 동안 양동욱은 더 철저한 준비를 했다.
양동욱은 그렇게 준비를 마친 다음, 그것을 모두 종로 암시장에 있는 자신의 형 양진욱에게 일임했다.
양진욱은 양동욱과 경쟁할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 당연히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그들을 견제하고 싸움을 부추겼다.
심지어 균형추가 무너지지 않도록 교묘한 작업을 통해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양측은 극심한 피해를 강요당했다.
중간에 멈추면 더 이상 피해 볼 일이 없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너무 멀리 왔고,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쨌든 그러는 사이 미래산업은 어부지리를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원래 그 두 집단이 작정하고 미래산업에게 달려들었으면 이렇게 자체적으로 마력 기반 상품을 개발해 발표하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미래산업이 아무리 성장하고 강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세계를 주무르는 두 공룡을 상대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
지금 이대로 저들의 싸움이 흐지부지 끝난다고 해도 미래산업이 흔들릴 일은 없었다.
그 정도로 성장해 버렸으니까.
“너무 급격히 성장해서 삐걱거리는 곳이 좀 있지만…… 그거야 슬슬 정리하면 되겠지.”
기한은 저 두 공룡의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다. 그리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남은 시간은 아주 충분했다.
“자, 이건 이쯤 하면 됐고…… 이제 선별한 플레이어들을 모아볼까?”
양동욱은 작성한 플레이어 목록을 보며 그들에게 한꺼번에 문자를 날렸다.
이제 조만간 미래산업에는 한계를 초월한 플레이어 수백 명이 추가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향후 있을지 모를 렉스턴과의 싸움에서 선봉에 서게 될 것이다.
* * *
팀 메인퀘스트과 라이언, 추광열은 한국의 퀸급 생성지역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미래산업에서 파견된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블랙홀을 클리어하고 있었다.
“휘유,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데?”
“그러게요. 저희도 여기 떠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그때랑은 분위기가 아예 딴 판이네요.”
류지혜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플레이어 한 명이 다가왔다.
“미리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는 일행을 동굴 안쪽으로 안내했다. 동굴의 시설이 제법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안쪽에는 상당히 잘 꾸며진 휴계실이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혹시 주무시고 싶으시면 저쪽 방에 마련된 침대를 이용하십시오.”
일행은 알았다고 하고는 휴계실에 앉아 간단히 커피 한 잔 마시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컨디션 확인해.”
라이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마력의 흐름을 점검했다.
너무 긴장해도 안 되지만, 약간의 긴장감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들이 지금 가려는 곳은 전장이었다.
현석에게 듣기로 숲에서 싸웠던 그 병사들과 마족들이 전쟁을 하는 장소라고 했다.
어쩌면 그 전쟁 자체가 다 끝났을 수도 있다고 했다.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을 발휘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러니 한시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특히 일행을 은연중에 이끄는 입장이 된 라이언과, 실질적으로 팀 메인퀘스트를 이끄는 류지혜는 더더욱 그러했다.
라이언은 류혜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가능할 거 같아?”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류혜연이 투명 던전의 문을 열 수 있어야 시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류혜연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투명 던전의 패턴을 파악하는 작업을 했다.
위치조차 모르고 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투명 던전이 어디 있는지는 알기에 그 정도 시도는 할 수 있었다.
물론 그저 지나가듯 파악했기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고, 그녀도 정밀하게 확인하진 못했다.
하지만 가능할지 아닐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물론 더 정확한 건 직접 앞에 가서 마력 패턴을 맞춰봐야 알 수 있다.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라이언의 뒤를 나머지 일행이 따랐다.
어느새 동굴 안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당분간 동굴을 비우라는 지시를 미리 받은 것이다.
덕분에 류혜연은 집중해서 투명 던전의 마력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다.
“됐어요.”
생각보다 쉽게 문을 열자, 다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동안 정말 많은 발전을 한 모양이었다.
모든 일행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류혜연이 들어갔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열렸던 투명 던전이 다시 닫혔다.
* * *
“아무것도 없는데?”
라이언은 황당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전쟁터라고 듣고 왔다.
한데 전쟁은커녕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일단 가보죠. 여기도 요새 같은 게 있지 않겠어요?”
류지혜의 제안에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저 멀리 서 있는 요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요새에 분명히 플레이어가 있겠죠?”
“글쎄. 일단 있다고 가정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빠르고 은밀하게 요새 쪽으로 이동했다.
“어? 저기 뭐가 있는데요?”
일행 중 가장 눈이 좋은 박승희가 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과연 정말로 뭔가가 있었다. 까만 점 여러 개가 저 멀리 지평선에 찍혀 있는 듯했다.
직감적으로 요새 보다는 저쪽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리로 가보자.”
라이언은 일행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쪽으로 내달렸다. 나머지도 어차피 같은 의견이었는지라 군소리없이 따라갔다.
처음에는 까만 점처럼 보이던 것이 점점 커져 형체를 갖춰갔다.
“마족?”
라이언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것들은 마족이 분명했다. 물론 그렇게까지 강해보이진 않았다.
다만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을 뿐이었다.
여기서 병사들과 전쟁을 벌이던 마족들이 분명했다. 그들이 어딘가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 전조 7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