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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86화 (286/326)
  • < 전조 6 >

    현석이 향한 곳은 미래산업이었다. 그가 가진 지구에서의 기반은 이제 미래산업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니 틈나는 대로 확인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돕는 것이 당연했다.

    미래산업은 양동욱이 맡아 확실히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동욱만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는 법이었다.

    일단 렉스턴 에너지 측에서 강력한 플레이어를 동원해 뭔가 일을 벌인다면 양동욱이 막기 버겁다.

    레드드래곤 길드를 비롯해 다양한 인재와 플레이어를 영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렉스턴 에너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애초에 렉스턴 에너지의 역사가 더 길기에 보유 플레이어의 수는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한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플레이어의 수준도 월등히 차이 났다.

    아마 아르포르 기사단이 아니었다면 미래산업은 벌써 끝장났을 것이다.

    그런 양동욱에게 현석의 방문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가셨던 일은 잘 되셨습니까?”

    양동욱이 살가운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는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다가 슬그머니 물었다.

    “그나저나…… 세희는 좀 어떻습니까? 이 녀석이 요즘은 아예 연락도 없어서…….”사실 양동욱이 백수처럼 지낼 때는 여동생 바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양세희를 과보호했다.

    양세희도 그런 양동욱과 굉장히 친했고 말이다.

    사실 일반적인 남매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큰오빠와 더 사이가 좋고, 나이차가 얼마 안 나는 둘째 오빠와는 원수처럼 싸우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좀 특이한 케이스였다.

    양세희는 오히려 큰오빠보다 둘째인 양동욱과 훨씬 더 친했으니까.

    오히려 큰오빠와는 좀 데면데면했다.

    어쨌든 그러던 것이 이렇게 되었으니 양동욱은 살짝 박탈감까지 느꼈다.

    “연락 안 했나? 한국에 있는 퀸급 생성지역으로 갔는데.”

    “예? 거길 또 갔습니까?”

    양동욱이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사실 미래산업에는 좋은 일이다. 한국의 던전 생성지역은 중국이나 인도와 달리 오직 미래산업이 장악한 곳이다.

    그리고 그곳의 블랙홀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팀 메인퀘스트였고 말이다.

    지금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거기를 운영하고 있지만 예전 팀 메인퀘스트가 그곳을 쓸 때에 비해 효율이 반도 안 나왔다.

    하지만 거기에 가면서 자신에게 언질도 안했다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

    “아마 지금 정신없을 거다.”

    “예? 정신없다고요?”

    양동욱은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자주 클리어하던 곳인데 정신이 없을 거라니.

    “설마…….”

    양동욱은 퀸급 생성지역에 있는 두 개의 화이트홀이 떠올랐다.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의 흐름이 흑시 쪽으로 이어졌다.

    그들이 그렇게 들어가려고 애쓰다가 막대한 피해만 입고 결국 물러난 그곳이 말이다.

    “화이트홀에 들어가는 겁니까? 그들끼리?”

    “화이트홀은 아니니까 걱정 마라.”

    “아…… 그럼 다행이고요.”

    안 그래도 중국 쪽 퀸급 생성지역에서 철수하면서 그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화이트홀이 땅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얘기 말이다.

    만일 양세희가 화이트홀에 들어갔는데, 홀이 그렇게 가라앉아 버리면 결국 그 안에 갇히는 거 아니겠는가.

    양동욱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절대 그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화이트홀이 아니라 투명 던전과 거기에 연결된 마계에 가는 거였지만, 현석은 굳이 그 얘기를 해주진 않았다.

    어차피 달라질 건 없는데 괜히 양동욱만 불안하게 할 테니까.

    문득 자신이 이런 생각까지 한다는 사실이 좀 신기했다.

    예전 같았으면 눈앞의 목표만을 위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나 감정 따위는 아예 없었을 것이다.

    “요즘 특별한 문제는 없나?”

    양동욱이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고질적인 문제는 좀 있습니다.”

    “고질적인 문제?”

    “우리 플레이어들이 너무 약합니다. 수도 적고요.”

    사실 약하고 적다는 얘기를 하기엔 미래산업이 보유한 플레이어의 수와 수준이 너무 높았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렉스턴 에너지이고, 경쟁상대도 렉스턴 에너지이니 어쩔 수 없었다.

    현석은 양동욱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걸 단숨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

    “예? 정말입니까?”

    “하지만 아무에게나 힘을 줄 수는 없다는 거 잘 알겠지?”

    양동욱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만한 자들을 추려보겠습니다.”

    “믿을 만한 걸로는 안 된다. 강해야 한다.”

    강해야 한다고? 양동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강한 플레이어를 모아서 뭘 어쩐단 말인가.

    “강해야 한다고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양동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건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좋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명확한 기준을 선별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디에 어떻게 쓸지 알려주셔야 고르기 편합니다.”

    현석은 양동욱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제로 레벨을 올릴 방법이 있다.”

    “예?”

    양동욱은 깜짝 놀랐다. 강제로 레벨을 올린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 순간 최근 렉스턴 에너지에서 아주 어렵게 빼낸 극비정보 하나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설마…… 레인보우…… 프로젝트!”

    “알고 있으니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구할 수 있나?”

    양동욱이 목이 부러질까 두려울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구할 수 있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정체기에 접어들었는데 너무 아까운 인재들이 정말 많습니다!”

    역시 양동욱은 척하면 착이다. 딱 어떤 사람이 필요한 건지 벌써 파악은 물론 선별까지 끝낸 것이다.

    “몇 명이나 가능합니까?”

    “몇 명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거지.”

    “믿을 수 있는 놈들입니다.”

    양동욱의 자신만만한 말에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 이 순간 현석에게는 필요 없는 레인보우 엘릭서의 재료가 너무 많이 쌓여 있었다.

    현석은 최근 경지가 오르고 레벨이 오르면서 레인보우 엘릭서가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석에게 진짜 필요한 레인보우 엘릭서는 마탑에서 정확한 재료와 생명수를 이용해 제조한 것이었다.

    그 외의 레인보우 엘릭서는 현석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레인보우 엘릭서는 플레이어의 레벨, 즉, 격을 높이는 약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플레이어의 격과 엘릭서의 격이 맞아야 한다.

    덕분에 초기에 모았던 그 많은 재료는 이제 다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현석에게 쓸모없다고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마력의 정수라는 게 구하기 쉬운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미래산업에 투자하는 거였다. 양동욱이 믿을 만한 플레이어를 선별해서 그들에게 격이 낮은 레인보우 엘릭서를 먹이는 것이다.

    그렇게 강제로 레벨을 올린 플레이어는 아무래도 더 성장하기 어려운 법이지만, 어차피 성장의 벽에 부딪힌 플레이어는 마찬가지로 성장이 어려우니 별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아직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었는데, 그거야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었다.

    자동으로 만드는 시설을 지어도 되고 말이다.

    ‘그래. 차라리 대량생산을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어차피 그리 높은 격이 필요치 않은 엘릭서를 만들 테니 굳이 엄청난 마력이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그저 레벨을 올려줄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렇게 레벨을 올려도 마력은 올라갈 것이고, 또 스탯도 적당히 상승할 테니까.

    레인보우 엘릭서를 생산할 공장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적당한 투명 던전을 하나 끌어오면 될 테니까. 볼텍스 암시장처럼 말이다.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도 별로 어려울 게 없다. 마법진을 이용하면 모든 걸 자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저 적당한 시간마다 들어가 재료를 보충하고, 만들어진 엘릭서를 갖고 나오면 된다.

    이런 일은 생각났을 때 바로 처리하는 게 낫다. 어차피 시간도 별로 없으니 서두르는 편이 나았다.

    현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양동욱이 다급히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서랍을 열쇠로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현석에게 내밀었다.

    “최근 이상한 조짐을 보이는 곳을 정리해둔 목록입니다.”

    “이상한 조짐?”

    “뭔가……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라고 할까요?”

    현석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 양동욱을 쳐다봤다. 그러자 양동욱이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그동안 정보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력으로 플레이어를 다수 보유한 조직을 살펴봤습니다.”

    현석은 묘한 눈으로 양동욱을 쳐다봤다. 양동욱도 아마 저 일을 시작한 계기가 어떤 논리적 흐름에 의한 건 아닐 것이다.

    아마 감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정보 쪽에 관심이 많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현석 역시 그와 비슷한 예감이 들었다. 아마 양동욱이 알아서 나서지 않았다면 조만간 현석이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이 목록은 그 중에 갑자기 흐름이 변한 곳을 정리한 겁니다. 제가 보기에…… 전쟁 준비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전쟁이라…….”

    현석은 그 말을 들으며 왠지 그 미지의 플레이어가 떠올랐다. 그와 관계된 일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렉스턴 에너지는?”

    “평소와 비슷합니다. 어차피 그쪽은 그동안 하던 일이 그리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지금 당장 전쟁을 벌여도 이상할 게 없는 곳입니다.”

    양동욱은 그렇게 말한 다음 한 마디 덧붙였다.

    “뭐…… 힘은 계속 늘리고 있더군요.”

    현석은 왠지 렉스턴 에너지보다 지금 양동욱이 넘긴 목록의 조직들이 더 위험해 보였다.

    목록을 대충 살피던 현석의 눈이 빛났다.

    “흑시? 흑시도 이상한가?”

    “흑시를 비롯한 거대 조직에 대한 건 뒤쪽에 부연설명이 있습니다. 그들 전부가 그러는 게 아니라 일부가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일부가 가진 힘이 상당하다는 점이었다. 그 조직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이상한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현석은 서류를 한 번 슥 훑어본 다음 다시 양동욱에게 넘겼다.

    “계속 살펴보도록.”

    “예.”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현석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고, 양동욱은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 * *

    양동욱은 출근하자마자 자신의 사무실 벽에 새로 만들어진 문을 보고는 할 말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문 앞에 현석이 서 있었다.

    “지금 막 설치가 끝났는데 타이밍 잘 맞췄군.”

    말하는 모양새가 마치 지금 출근하지 않았으면 그냥 문만 만들어 두고 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양동욱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문으로 다가갔다.

    “이게 뭡니까?”

    현석은 대답 대신 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양동욱은 현석과 팔찌, 그리고 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그것을 받아 손목에 찼다.

    짜릿한 느낌이 온몸에 쫙 퍼졌다가 사라졌다.

    “그게 열쇠 같은 거다. 들어가 봐.”

    현석의 말에 양동욱은 문을 열었다. 그냥 벽이 나왔다. 볼텍스 암시장의 경우도 있기에 양동욱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세상이 휙 하고 바뀌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 한가운데였다. 그곳에 몇 가지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마법진이 그려진 넓은 돌판이 빙 둘러 있었는데, 각 돌판 앞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양동욱은 쪽지를 확인했다. 각 돌판의 사용법과 역할을 적어 놓은 쪽지였다.

    그의 시선이 돌판을 하나하나 돌아보게 만들었다.

    양동욱은 숲으로 들어갔다. 그것 역시 쪽지에 적혀 있던 내용이었다.

    숲을 빠져나가니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구조물이 보였다. 그것이 바로 재료를 쌓아둔 창고였다.

    양동욱은 창고 안에 들어가 보았다.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핵심재료인 마력의 정수가 보관된 창고였다.

    마력의 정수는 젤리웜의 체액으로 보존되고 있었는데, 필요할 때 손을 쑥 넣어 재료만 쏙 빼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모든 걸 확인한 양동욱은 첫 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정말 별 거 없었다. 마법진 위에 필요한 재료만 딱 넣으면 끝이었으니까.

    다만 각 마법진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달랐기에 그것만 조심하면 됐다.

    마법진이 설치된 돌판이 워낙 컸기에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의 양도 엄청나게 많았다.

    아마 당분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어차피 레인보우 엘릭서는 액체 형태가 아닌 젤리 형태로 만들어져 차곡차곡 쌓일 테니까.

    그렇게 작업을 마무리한 양동욱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현석이 떠나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이상한 점이나 의문이 가는 점이 있으면 설명해 주기 위함이었다.

    “질문은?”

    “없습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런 현석에게 양동욱이 충동적으로 물었다.

    “제가 배신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다 맡기십니까?”

    양동욱의 질문에 현석이 다시 돌아섰다.

    “그래서, 배신하려고?”

    당연히 안 한다. 하지만 이렇게 너무 덮어놓고 사람을 믿는 건 분명히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이야 뒤통수를 칠 일이 없겠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다 그렇다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하고 싶으면 해.”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양동욱은 왠지 그 말이 하지 말라는 말보다 더 무서웠다. 또한, 저 말을 듣고 나니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현석이 사라졌다.

    양동욱은 두 손으로 뺨을 짝짝 두드린 다음 힘차게 자리로 돌아갔다.

    “자, 그럼 슬슬 명단을 작성해 볼까?”

    조만간 미래산업의 플레이어 구도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양동욱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명단을 작성해 나갔다.

    < 전조 6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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