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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85화 (285/326)
  • < 전조 5 >

    시야에 보이는 것만 해도 수십 개는 될 듯했다. 화이트홀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흩어져 있었다.

    이곳은 거대한 동공이었다. 그리고 몇 개의 동굴이 사방에 뚫려 있었다.

    아직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저 동굴로 들어가면 이런 동공이 또 나올 것이고, 거기에도 이런 식으로 화이트홀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 대체 뭐죠?”

    뒤이어 화이트홀에서 나온 일행도 다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이런 광경이 펼쳐져 있을 줄은 몰랐다.

    “설마 세상 모든 투명 던전과 연결된 건 아니겠지?”

    라이언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현석이 굳은 표정으로 화이트홀들 사이로 걸어갔다.

    사방을 둘러봤다. 각 화이트홀의 이름이 보였다.

    [???]

    이름을 하나도 파악할 수 없었다. 전부 물음표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이곳의 정체를 확인할 유일한 방법은 직접 들어가 보는 것뿐이었다.

    현석은 그곳에 있는 모든 화이트홀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직접 들어가 확인해본 것이다.

    정말 투명 던전과 연결된 것인지, 또 현석이 이미 클리어한 투명던전도 그 안에 섞여 있는지 말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화이트홀을 확인한 현석은 굳은 표정으로 일행을 둘러봤다.

    “왜요?”

    “뭔데? 왜 그런 표정이야? 무섭게.”

    현석은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화이트홀은…… 전부 마계야.”

    다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모두 마계라니. 그럼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란 말인가.

    “여기서 기다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섣불리 대응하지 말고 시간을 끌고.”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황급히 몸을 날렸다.

    일단 동공에 있는 동굴을 통해 다른 곳으로도 가봐야 한다. 그래서 이 안에 대체 뭐가 있는지,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정확히 알아내야만 한다.

    동공에는 네 개의 동굴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 있었는데, 현석은 그 중 하나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처음 왔던 동공과 똑같이 생긴 동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이곳은 그 규모가 훨씬 컸다.

    화이트홀의 수도 훨씬 많았다. 모든 화이트홀의 이름이 물음표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같았다.

    화이트홀의 마력을 분석해보니 첫 번째 동공에 있던 화이트홀과 비슷했다.

    이곳도 전부 마계와 연결된 것이다.

    현석은 다시 첫 동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나머지 동굴도 모두 확인했다.

    이곳의 구조는 지극히 대칭적이었다. 가운데 좀 작은 동공이 있고, 사방으로 동굴이 나 있었으며 그 동굴의 끝에 엄청난 규모의 동공이 연결된 구조였다.

    그 모든 동공에 있는 화이트홀의 수를 다 합하면 정확히 480개였다.

    각 거대 동공에 108개의 화이트홀이 있었고, 가운데 작은 동공에 48개의 화이트홀이 있었으니까.

    그 모든 화이트홀이 마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지구가 분명했다.

    * * *

    현석은 다시 일행을 데리고 처음 왔던 마계로 넘어왔다.

    그리고 화이트홀을 끌어다가 땅속 깊은 곳에 숨겼다. 아마 웬만한 놈들은 이곳으로 다시 넘어오지 못할 것이다.

    현석은 화이트홀을 땅에 묻을 때, 그냥 묻지 않았다. 아주 신경 써서 주변에 정교한 마법진을 덧씌웠다.

    그저 땅만 파내 마력을 담아 밖으로 빼낸다고 들어갈 수 있으면 곤란하니 그게 불가능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아마 이 화이트홀에 들어가려는 자들은 단단한 벽을 마주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억지로 힘을 쓰다가는 온몸이 바스러질 수도 있었다.

    문제는 아주 강력한 놈이 나서는 경우였다. 현석이 설치한 마법진을 한 방에 부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타격을 줄 수 있는 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놈이 있긴 하지.’

    그런 놈이 있다. 그리고 아마 예감과 추측뿐이지만, 그놈이 이 무수한 화이트홀과 관계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나선다면 어렵지 않게 마법진을 부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좀 끌 수 있을 거야.’

    현석은 그가 마법에 대해서는 그리 조예가 깊지 않다고 판단했다.

    만일 마법에 조예가 깊었다면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왔을 테니까.

    아까 화이트홀이 잔뜩 있던 동공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해 놓진 않았을 것이다.

    마법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대비를 하기 마련이니까.

    현석이 설치한 마법진은 화이트홀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충격을 분산시키고 속성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거기에 강력한 방어력을 부여하는 복합 마법진이었다.

    화이트홀을 둘러싼 마법진을 부수기 위해선 그것이 들어있는 바위를 박살 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다만, 충격을 분산하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충격이 누적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어쩌려고?”

    마계로 돌아온 현석이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구로 돌아가야지.”

    돌아가서 다시 저기를 찾을 것이다. 저곳은 지구에서도 극지나 오지에 숨겨져 있을 테니 지구 자체에서 찾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아까도 지하에 형성된 동공이었다. 그곳의 위치를 제대로 특정하지 않는 한, 공간이동 마법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하 어딘가 쯤에 공간이동을 방해하는 아티팩트라도 숨겨져 있으면 공간이동을 시도하다가 낭패를 겪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현석은 다른 마계를 통해 저기에 가기로 했다.

    저곳과 연결된 다른 마계를 찾는 건 아주 간단했다. 이미 알고 있는 곳이 있으니까.

    인도와 한국에.

    현석은 문득 아까 동공에서 봤던 마계들이 떠올랐다.

    ‘그냥 마계가 아니었어.’

    잠깐 들어갔다가 나온 것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현석이 토벌했던 마계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마력에 대한 감각이 이 정도로 뛰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마계가 아닌 다른 세상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마치…… 진짜 마계와 유사 마계 같은 차이가 나다니.’

    그동안 현석이 토벌한 마계는 이곳과 비교하면 유사 마계나 누군가 마계를 모방해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마계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절대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토벌한 마계도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다. 또한 화이트홀처럼 생생했고 말이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왠지 지구와 마계가 연결된 통로가 개방될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그게 마계 놈들이 바라던 거 아닌가?’

    신의 파편, 화이트홀, 투명 던전. 이런 것들이 생긴 이유가 바로 마계의 침공 때문 아니었는가.

    한데 그 마계가 다시 침공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물론 저 화이트홀을 그냥 마족이 훌떡훌떡 넘어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지만 말이다.

    현석은 그런 불안감을 안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일단 중국 쪽 투명던전을 통해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그쪽 화이트홀은 이제 폐쇄해 버리고 말이다.

    과연 그게 가능할지는 아직 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 * *

    현석 일행이 투명 던전에서 툭툭 튀어나갔다.

    나오기 전에 현석이 먼저 마력을 풀어 근처에 누가 있는지 파악했기 때문에 이쪽에 신경 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온 것이다.

    살짝이라도 시선이 스쳐간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퀸급 생성지역의 투명 던전은 두 화이트홀 사이에 있기 때문에 화이트홀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현석 일행이 화이트홀에서 나와 레드드래곤 길드와 미래산업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제야 그걸 발견한 사람들이 환한 표정으로 달려와 저마다 인사를 했다.

    가장 반가이 맞아준 사람은 장춘이었다.

    “걱정 많이 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군. 어디 다친 데도 없어 보이고…… 갑자기 화이트홀이 이상해져서 깜짝 놀랐지 뭔가.”

    “화이트홀이 이상해졌다고요?”

    현석은 일부러 모른 척 화이트홀에 대한 얘기를 이어나갔다.

    다들 귀를 열고 현석과 장춘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건 저 멀리 서 있는 소정화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와 좀 거리를 두고 서 있는 흑시 측 플레이어들도 시선은 이쪽으로 안 돌렸지만 귀에 마력까지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염탐 스킬의 일종인 모양이었다.

    장춘의 설명을 모두 들은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곧 사라질 겁니다.”

    “사라진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현석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아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두 개의 화이트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으니까.

    이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화이트홀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갖은 수를 동원해 화이트홀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화이트홀은 마치 바다에서 가라앉는 배처럼 아래로 내려가더니 이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어어……!”

    다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막을 수가 없으니 그저 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현석에게로 향했다.

    화이트홀이 사라질 거라는 얘기를 한 사람은 현석이다. 그러니 뭔가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가 무슨 짓을 했거나.

    소화정은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다가 터벅터벅 그를 향해 걸어갔다.

    “대체…… 무슨 일을 하신 거죠?”

    현석은 소화정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물었다.

    “저렇게 된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안에서 들었다. 무너질 거라고. 설마 저렇게 될 줄은 몰랐군.”

    “들었다고요?”

    소화정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설명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현석은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현석은 레드드래곤 길드와 미래산업, 그리고 피라밋 암시장의 플레이어들을 보며 말했다.

    “우린 철수한다.”

    현석의 말에 다들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한 마디 항변이나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무조건 명령에 따르겠다는 듯 서둘러 움직였다.

    “이제 우린 어쩌죠?”

    류지혜의 물음에 현석은 팀 메인퀘스트와 라이언, 추광열을 한 명 한 명 둘러봤다.

    이들의 레벨은 이제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아마 곧 300레벨의 벽을 부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정도면 어디에 내 놔도 뭐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너희는 한국으로 간다.”

    “한국이요?”

    류지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맡겨주세요.”

    현석이 뭘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의 퀸급 생성지역을 맡긴 것이다.

    이제 그들끼리 화이트홀을 탐사해야한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들어간 화이트홀을 떠올리면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엄청나게 강력한 언데드들이 등장하는 죽음의 대지. 그리고 킹젤리웜의 뱃속으로 이어진 화이트홀.

    둘 중 어디로 가든 쉽지 않았다.

    현석은 류혜연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반짝이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저걸 열 수 있나?”

    현석이 투명 던전이 있는 쪽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류혜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한참을 고심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게요.”

    류지혜는 그 대화를 들으며 자신이 좀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현석이 원하는 건 화이트홀이 아니라 투명 던전이었다.

    ‘투명 던전이라면…….’

    그녀가 생각하기에 투명 던전은 오히려 화이트홀보다 나았다. 그곳을 클리어하고 마계로 들어가 마계만 토벌하면 되니까.

    아마 마계를 토벌하고 나면 그 다음 길이 보일 것이다.

    “알아들었으면 출발해. 난, 따로 가볼 데가 있으니까.”

    그 따로 가볼 데가 어디인지는 뻔했다.

    이제 중국에는 더 이상 볼일이 없었다. 현석은 인도로 갈 생각이었다.

    현석 일행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차근차근 철수를 시작했다.

    그렇게 중국의 퀸급 생성지역에는 다섯 개의 블랙홀만 남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투명 던전 한 개와 더불어.

    < 전조 5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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