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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82화 (282/326)

< 전조 2 >

현석 일행을 태운 용이 메디나툰 근처에 내려섰다. 그리고 사라졌다.

“아우, 이번에는 너무 빨라서 그런지 몸이 좀 뻐근한데?”

균형을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왔는데, 어찌나 힘을 줬는지 온몸이 쑤실 지경이었다.

그래도 고생만 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빠르고 거칠게 날아가는 판자 위에 앉아 있으면서 제대로 균형을 잡고 떨어지지 않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 자체로 수련이 되었다. 그냥 몸만 잘 다룬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마력을 썼는데, 그것이 마력 컨트롤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이제 현석 일행은 마력 컨트롤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관련된 타이틀도 얻었고, 또 그걸 정말 굉장한 방식으로 응용해서 써먹는 현석을 계속 보면서 제대로 느낀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일행은 살짝 긴장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하늘에서는 보였지만 내려오고 나니 메디나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숲이 워낙 울창해서 시야가 상당히 비좁았다.

아마 높은 나무를 찾아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보이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흑시 놈들이 들어오면 어쩌지? 이제 진짜 막을 게 아무것도 없을 텐데?”

예전에야 언데드가 그들을 막았다지만 이제는 그냥 숲이 되어버렸으니 이쪽 세상을 온통 활보하고 다니지 않겠는가.

물론 숲의 부족들도 상당히 강력하고 그들이 쓰는 주술력에 적응하지 못하면 금세 당하겠지만, 그래도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면 숲의 부족들이 어찌 당해내겠는가.

마수들도 강력하긴 하지만 인해전술을 상대하기에는 수가 부족했다.

자고로 인해전술에는 인해전술로 맞불을 놓는 것이 답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데드 군단은 흑시의 전력을 막는 데 제대로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행의 걱정스런 표정을 본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 툭 던졌다.

“어차피 당분간 못 들어온다.”

“예? 못 들어온다고요?”

다들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왜요?”

류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막아버렸으니까.”

현석은 그렇게만 말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위 같은 걸로 화이트홀을 막은 건가?”

“하지만 그런 건 한계가 있을 텐데요? 다들 플레이어잖아요. 바위 같은 걸 부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텐데…….”

“그럼 바위가 아니라 강철로 막았나?”

“강철이라고 남아나겠어요?”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추광열이 가만히 있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럼 홀을 파묻었나보지.”

그 말에 모두가 멍하니 추광열을 바라보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예전에 라이언의 화이트홀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땅에 좀 파묻는다고 그들이 못 들어올까요? 땅이야…… 파내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당분간이라고 한 거지. 처음에는 당황할 거 아냐. 나중에 방법을 찾다가 차츰 그런 것도 알아내고 하는 거지.”

라이언의 말에 류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덧붙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땅 깊숙한 곳에 묻었으면 파내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기본적으로 마력을 머금지 않으면 홀을 통과하기 힘드니까.”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그렇다. 현대 무기를 던전으로 가져가기 쉽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니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쪽 세상에 있는 물질은 마력을 머금기가 쉽기 때문에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좋다는 거였다.

일행은 서둘러 현석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메디나툰으로 들어섰다.

* * *

메디나툰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뒤숭숭했다.

현석 일행은 그 분위기가 왕을 선출하는 일 때문이라고 여기고 일단 라일라를 찾아갔다.

하지만 가는 동안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통해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냈다.

“전쟁?”

“정말 전쟁을 하는 모양인데요?”

“그러게. 그럼 결국 라일라가 진 건가? 이상하네. 이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보다 우리 메디나툰을 떠난 지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벌써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났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류지혜의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확실히 좀 이상했다.

설사 라일라가 왕이 되지 못했다고 해도 그 영향력은 충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그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결정이 늦어지게 시간이라도 끌거나.

한데 이건 너무 빨리 결정이 난 것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는 전부 전쟁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라일라부터 만나지.”

현석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서둘렀다.

분위기를 보니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얘기해도 상황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되도록 정확한 사실을 먼저 듣는 게 나을 테니까.

그렇게 걸음을 서두르다보니 어느새 라일라의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의 입구에는 다섯 명의 전사가 서 있었는데, 그들은 현석 일행을 보자마자 얼른 문부터 열었다. 안에 기별도 넣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현석을 향해 극도의 공경을 담아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일행이 희한한 눈으로 바라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그런 걸 물을 시간도 아까웠다. 빨리 라일라에게 진실을 듣고 싶었다.

현석 일행이 안으로 깊이 들어가자, 정문에서 보낸 신호를 받았는지 라일라가 황급히 뛰어나왔다. 무팔룬은 보이지 않았다.

“어서오세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왜요?”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다 말씀드릴 테니까요. 아마…… 믿기 어려우실 거예요.”

라일라의 말은 일행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다.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응접실에 앉아 라일라와 마주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라이언이 나서서 물으려는 찰나,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혹시 여러분은 우리 세상이 닫혀 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그 말에 다들 눈을 빛냈다.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의문이었다.

이들은 왜 그 사실에 대해 잘 모르는지 말이다.

그냥 끝까지 가보면 다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역시 다들 알고 계셨군요.”

라일라는 묘한 표정으로 현석 일행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어쩐지 처음부터 좀 특이하다 생각했어요.”

류지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라일라는 모르고 있었나요?”

라일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모르고 있었어요. 사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정말요?”

류지혜가 놀란 눈으로 라일라를 바라봤다. 대체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대부분의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지배계층의 사람인데.

“이제 와서 깨닫는 건데…… 그쪽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동하는 걸 무의식중에 꺼렸던 것 같아요.”

“꺼렸다고요?”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알게 되었죠.”

일행의 눈도 일제히 빛났다. 라일라는 그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친 다음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막힌 곳이 뚫렸거든요.”

“뚫렸다고요?”

“그럼 전쟁은…….”

라일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맞아요. 막혔던 벽이 뚫리고 그쪽 세상의 군대가 진격해 왔어요. 우린…… 그들과 싸워야 해요.”

라일라의 말을 듣던 현석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군대라고 했나?”

“네. 정말…… 엄청난 수의 군대가 밀려오고 있어요. 벌써 다섯 부족이 당했어요.”

즉, 당한 다섯 부족의 전사 중, 살아남아 도망친 자들이 메디나툰에 와서 그 사실을 알린 것이다.

지금 메디나툰은 전쟁 준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 있는 모든 부족에게 정신없이 연락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라일라와 함께 있던 자들은 각자의 부족을 향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침략군의 진격 방향에 있는 부족은 빨리 퇴각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또한 반대 방향에 있는 부족이라 해도 최대한 빨리 메디나툰으로 집결해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 메디나툰을 중심으로 방어전을 펼치면 훨씬 수월하게 전쟁을 이끌어갈 수 있을 테니까.

현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시려고요?”

디들 눈을 크게 뜨고 현석을 바라봤다. 일행의 눈빛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일렁였다.

“설마…… 전쟁터로 달려가실 생각은 아니시죠?”

류지혜가 불안감을 안고 묻자,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응접실을 나섰다.

“확인해볼 게 있어서.”

현석이 밖으로 나가자 다들 멍하니 그가 나간 문만 바라봤다.

대체 어디서 뭘 확인하겠다는 걸까?

“당연히…… 전쟁터로 간 거겠죠?”

류지혜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류혜연이 벌떡 일어났다.

“따라갈 거예요.”

현석 혼자서 위험 속으로 달려드는 걸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이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다.

류혜연의 고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아는 류지혜는 힘없이 따라 일어났다.

“그럼 나도 가야지.”

라이언이 자신의 머리를 양 손으로 벅벅 긁으며 헝클었다.

“으아! 진짜 내가 편한 꼴을 못 봐요!”

그렇게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라이언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앉아 있는 일행을 힐끗 쳐다봤다.

물론 다들 라이언과 동시에 일어났기에 앉은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자 라일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히 말했다.

“그들은 보통의 군대가 아니에요! 인간이 아니라고요!”

라일라의 말에 라이언이 그녀를 보며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얘기. 좀 더 자세하게 부탁합니다.”

“그들은…… 인간이지만 인간 같지가 않은 자들이에요. 마치…… 마치 마수나 언데드 같았다고요.”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직접 본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병 하나를 사로잡아 왔으니까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요?”

일행 중 가장 빠른 라이언이 득달같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일단 현석을 붙잡을 필요가 있었다.

적을 먼저 알고 가는 편이 살아남을 확률도 높지 않겠는가.

물론 현석은 그저 살아남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싸워 이기는 게 목적인 것 같았지만 말이다.

* * *

어른 몸통만 한 쇠창살로 이루어진 감옥 안에 벌거벗은 사내 한 명이 있었다.

그 사내는 괴성을 지르며 쇠창살을 마구 공격했다.

“끄아아아!”

쩡! 쩡! 쩡! 쩡!

엄청난 힘이었다. 감옥을 이루고 있는 쇠창살은 두께도 두께지만 강력한 주술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한데 사내가 주먹질을 한 번 할 때마다 주술력이 깨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감옥 밖에서 사내를 가만히 관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석 일행과 라일라였다.

“다섯 번째로 무너진 부족의 족장이 주박술로 잡아온 적병이에요. 그 부족에서 살아남은 건 오직 족장뿐이었죠.”

그 족장은 주박술 하나만큼은 숲에서 제일이라고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걸 이용해 병사를 잡아왔는데, 이 병사를 보고 적을 상대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 족장은 그 말을 끝으로 죽었다. 생명력과 주술력을 맞바꿔 여기까지 병사를 끌고 온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병사의 약점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병사를 상대할 때, 주술력이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적병은 마치 주술력에 대한 면역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주술력에 대해 강한 면모를 보였다.

지금 저 쇠창살에 걸린 주술도 굉장히 강력한 수준이었는데 그게 잘 버티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굉장히 강력해 보이지만…… 가장 하급의 병사라고 해요.”

그래서 지금 난리가 난 상태였다.

오죽했으면 왕의 선출까지 무기한 연기되었을까.

참고로 왕의 자리를 노리던 네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왕의 선출이 미뤄지면서 시간이 흐르자, 힘이 대폭 약화된 사실이 까발려진 것이다.

그들은 사실상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선봉에 서야 할 테니까.

지금 메디나툰에 있는 대부분의 가문들이 그렇게 몰아가고 있었다.

어쨌든 라일라는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조용히 서서 현석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석 일행은 심각한 표정으로 병사를 살폈다. 하지만 그들이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이놈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마수에 더 가깝다는 라일라의 말을 조금 이해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다른 사람과 좀 달랐다.

현석의 표정은 시종일관 심각했다. 이내 적병에게서 눈을 떼고 돌아섰다.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이 일행을 보며 말했다.

“투명 던전이다.”

“예?”

이제 일행도 투명 던전이 뭔지 알고 있다. 거기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걸 잊었겠는가.

투명 던전에 들어가 그것과 연결된 마계에 가서 마족과 싸운 일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한데 난데없이 투명던전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뜻인가.

“설마…… 막힌 곳이 뚫렸다는 게 투명 던전이랑 연결되었다는 뜻인가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퀸급 생성지역에 있는 투명던전과 연결된 모양이다.”

좌중에 싸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 전조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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