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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81화 (281/326)
  • < 전조 1 >

    [마왕의 심장]

    [마왕의 힘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심장. 죽음을 지배하는 힘이 담겨 있다. 장비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다.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타이틀 죽음을 지배하는 자를 얻을 수 있다. 채현석에게 귀속되어 다른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다.]

    설명을 읽은 현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왠지 마왕의 힘을 모두 얻도록 누군가 안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억측일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지. 마왕의 힘을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미리 요리를 해뒀다고 해야 맞겠지.’

    이렇게 공간을 가르고 봉인까지 하면서 마왕이 한데 모이지 못하도록 만들어뒀다.

    신의 파편을 깨우는 사람에게 마왕의 힘을 얻을 자격이 부여되는 셈이었다.

    ‘만일 내가 실패해서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걸로 그냥 끝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신의 파편이 다시 마왕을 봉인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마왕이 이곳 화이트홀의 세상을 모조리 부순 다음 힘을 모아 홀을 깨고 밖으로 나가거나.

    여기서 나가면 바로 중국이다. 아마 죽음의 마왕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사람이 많으니까.

    현석은 일단 타이틀부터 확인했다. 솔직히 말해서 최근에는 새로운 스킬 자체가 별로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레벨업도 워낙 많이 해서 레벨이 주는 힘도 굉장했고, 또 마력을 쓰는 능력이 늘어나서 그걸로 얻는 힘도 엄청났다.

    아마 같은 레벨, 같은 스탯을 가진 플레이어와 싸우면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의 계산으로는 그런 플레이어 둘을 동시에 상대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건 해보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죽음을 지배하는 자-죽음의 마왕이 남긴 심장을 소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호칭. 스킬 죽음의 군단, 죽음의 함성을 쓸 수 있다.]

    [죽음의 군단-시체에 죽음의 힘을 불어넣어 군단으로 만든다. 죽음의 군단에 소속된 시체는 죽기 직전에 보유한 능력의 절반을 가진다. 군단의 규모는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죽음의 함성-2시간 동안 소속 군단의 모든 능력치를 향상시킨다. 능력치 향상의 비율은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설명을 확인한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죽음의 마왕에 걸맞은 능력이었다.

    문제는 근처에 망자의 사체나 영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그거야 얼마든지 조달이 가능하다.

    세상에는 지나온 세월과 역사만큼의 시체와 영혼이 쌓여 있으니까.

    ‘뭐…… 과연 이 스킬을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석은 굳이 이런 스킬을 쓸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 레벨이 대폭 올라서 이제는 레벨에 의해 주어진 힘만으로도 세상을 발아래 둘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무려 400레벨이 넘어갔으니까.

    킹젤리웜과 죽음의 마왕을 죽인 것이 가장 컸다. 킹 젤리웜을 죽이면서 한 차례 벽을 넘어 폭발적인 레벨업을 했다.

    그리고 다시 막힌 벽을 죽음의 마왕을 처리하면서 뚫어버렸다.

    말이 400레벨이지 현석이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도 그 정도 레벨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현석은 이제 곧 450레벨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레벨이 높았다.

    물론 450레벨에서 부딪히는 벽을 과연 뚫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현석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 미지의 플레이어는 어쩌면 자신보다 훨씬 더 앞서 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그저 그냥 생각이 아니었다. 현석 특유의 예감이 발동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니 아마 그럴 것이다.

    그 미지의 플레이어가 아르포르 기사단과 싸운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생각보다 대단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한데 벽을 넘은 지금, 오히려 더 그자가 신경 쓰였다.

    ‘어쨌든…….’

    현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생각보다 숲은 많이 망가지지 않았다.

    이제 이 숲에 쌓인 마력이 자연스럽게 주술력으로 변하기만 하면 된다.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이 거대한 숲 지하에 있는 마법진으로부터 막대한 주술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순백의 알에 들어가는 주술력이 없기에 숲에 퍼지는 주술력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나마 마법진에서 변환된 주술력이 향하는 방향이 지하로 이어져 있기에 이 정도지, 만일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주술력이 숲에 쌓일 것이다.

    현석은 그 방향을 바꿀 능력이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 방식이 훨씬 나았다. 지하로 스며들어 이곳의 영토 자체에 주술력이 깃들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나중에 혹시라도 세상이 변해 모든 화이트홀이 연결된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주술력의 땅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은 몸을 돌려 일행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예전 죽음의 대지였던 곳에는 생명의 마력이 한껏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 생명의 마력 사이로 서서히 숲의 주술력이 스며들고 있었다.

    현석은 그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좀 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 *

    “설마 그냥 돌아가려는 건 아니지?”

    라이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단 라이언 혼자만의 생각이나 의견은 아니었는지, 나머지 일행도 침을 삼키며 현석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현석은 일행을 둘러봤다.

    “할 일이 남았나?”

    현석의 아무렇지도 않은 물음에 라이언이 답답하다는 듯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메디나툰! 메디나툰에 가봐야지! 가서 진짜 라일라가 왕이 되었는지 확인은 해봐야 할 거 아냐!”

    그리고 혹시 라일라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으면 좀 도와주고 말이다.

    어쨌든 그녀가 상대하려는 자들은 상당히 음흉한 놈들이니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렇게까지 해줬는데 실패할 수가 있을까?”

    현석이 여전히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풍기자 이번엔 류지혜와 류혜연이 동시에 나섰다.

    “그래도 우리가 한 일인데 확인은 해줘야죠.”

    “저도 그게 예의라고 생각해요. 또…… 라일라가 잘 있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

    현석은 그 말을 듣고 나머지 일행을 둘러봤다. 다들 말은 안하지만 메디나툰에 다녀왔으면 하는 심정이 표정에 가득 담겨 있었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알고 있나?”

    현석의 물음에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최대한 빨리 나가는 편이 나았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흑시의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려올 테니까.

    흑시의 플레이어들을 막고 있던 건, 킹젤리웜과, 죽음의 대지에 가득 쌓인 언데드들이었다.

    한데 이제 그 둘 모두 사라졌으니 어느 쪽으로든 흑시의 플레이어들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당장 들어오진 않을 것이다. 당한 게 있으니 최대한 전력을 갖춘 후에야 시도할 테니까.

    하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다들 인지하고 있었다.

    흑시는 중국의 암시장을 지배하는 조직이다. 당연히 소속된 플레이어의 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다면 서둘러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현석의 말에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간단한 조치를 하고 오겠다. 잠시 기다리도록.”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몸을 띄웠다. 어느새 나타난 용이 그런 현석을 등에 태우고 예전 죽음의 대지였던 숲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일행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방금 그 가벼운 동작과 물 흐르는 듯한 용의 소환을 보며 다들 느낀 것이다.

    “더…… 강해진 것 같지 않아?”

    라이언이 중얼거리자, 류지혜가 그 말을 받았다.

    “우리도 그 잠깐의 경험으로 이렇게 성장했는데, 그걸 주도한 분이니 당연하죠. 아마…… 이젠 우리가 상상도 못할 위치에 올라서신 것 같네요.”

    그녀의 말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줄 하나는 정말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현석이 다시 돌아왔다.

    다들 궁금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뭘 어떻게 하고 오신 거예요?”

    물론 현석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시선을 위로 올린 일행의 눈에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용이 보였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으니 저걸로 이동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잠시 후, 용이 하늘 높이 올라간 다음 빠르게 날아갔다. 목과 등에 끈을 매달고서.

    그 끈 아래에는 널찍한 판자가 매달려 있었다. 현석 일행은 그 판자 위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왠지 예전보다 속도가 훨씬 빠른 것 같았다.

    * * *

    현석 일행이 화이트홀을 모두 정리하고 메디나툰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중국의 화이트홀을 둘러싼 분위기가 슬슬 다시 달아오르고 있었다.

    레드드래곤 길드에서 인원을 더 파견했고, 피라밋 암시장에서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산업에서도 인력과 장비를 대거 투입해 경계를 강화시켰다.

    대련방은 한동안 그 상황을 그냥 관망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련방이 아니라 대련방주가 그렇게 했다.

    현재 퀸급 생성지역에 있는 대련방의 책임자는 소정화였는데,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냥 자리만 지키는 거였다.

    대련방주는 그녀에게 그 어떤 권한도 주지 않았다. 그저 매일 상황을 보고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당연히 대련방에서 파견된 사람도 별로 없었다. 소정화를 비롯해 열 명 정도가 교대로 자리를 지키는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가 깨지기 시작한 건 며칠 전부터였다.

    대련방주의 지시를 받은 플레이어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수는 제법 많았다. 또한 대련방이 아닌 사람으로 보이는 플레이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대련방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는 정말 쉬웠다. 인종이 달랐으니까.

    유럽이나 미국 쪽에서 온 사람들이 분명했다. 척 봐도 생김새나 분위기가 그랬다.

    그들 쪽에는 따로 책임자가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상당한 강자가 분명했다. 풍기는 마력의 파장이 엄청났다.

    그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마력을 풍겼다.

    마치 시비를 걸기라도 하듯이.

    레드드래곤 길드에서 파견된 플레이어들이나 피라밋에서 파견된 플레이어들은 상당한 강자였다.

    당연히 이런 도발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맡은 임무가 있기에 꾹 눌러 참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억눌렸던 모든 것이 일시에 폭발해 버릴 것이다.

    그런 와중에 대련방주가 등장했다.

    소정화는 깜짝 놀라 대련방주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대련방주를 바라봤다.

    “방주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다가 돌이킬 수 없는…….”

    “비켜라.”

    대련방주의 차갑고 단호한 말투에 소정화가 흠칫 놀랐다. 그녀는 한동안 대련방주를 바라보다가 이내 힘없이 옆으로 물러났다.

    대련방주 앞으로 장춘이 나섰다.

    “정말 이렇게 하셔야겠는가?”

    “어르신은 그저 한 번만 모른 척 해주시면 됩니다. 어르신에게까지 손쓰기 싫으니 그렇게 해주십시오.”

    대련방주는 비교적 누그러진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말투야 잔잔했지만, 실상 내용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장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뒤로 물러난 장춘은 레드드래곤 길드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다들 이를 악물고 대련방주를 노려봤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장춘의 표정을 살피고는 힘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장춘은 그들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잘 참았네. 때로는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강한 법이지.”

    “하지만 어르신.”

    장춘은 자신의 말에 반박하려는 플레이어를 보며 빙긋 웃었다.

    “내 들은 말이 있어서 그러네.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장춘의 말에 근처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춘에게 뭔가를 말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연히 현석일 것이다. 그리고 현석이 그랬다면 분명히 뭔가 준비된 것이 있을 테고 말이다.

    그제야 다들 대련방 일당이 뭘 어떻게 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대적자였는데, 갑자기 대적자가 아닌 그저 관람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관람자 입장으로 저들을 보기 시작하니 왠지 흥미로웠다. 과연 저들이 저 안에서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말이다.

    대련방주는 한쪽으로 비켜선 플레이어들을 힐끗 쳐다보며 입가에 비웃음을 걸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화이트홀로 향했다. 대련방주가 선택한 화이트홀은 당연히 언데드 무리가 있는 죽음의 대지였다.

    대련방주는 자신이 먼저 들어가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았다. 다른 플레이어에게 그 일을 맡겼다.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대련방주의 지시를 받은 플레이어는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반지를 끼고 있었으니까.

    준비된 플레이어들이 화이트홀로 뛰어들었다.

    꽝!

    “크윽!”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달려든 플레이어가 큰 충격과 함께 뒤로 튕겨난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기에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다들 황당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화이트홀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마치 단단한 바위가 입구를 떡 틀어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혹시나 해서 다른 화이트홀도 조사를 했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대련방주는 황당함과 당황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망연자실하게 화이트홀을 바라봤다.

    왠지 저 화이트홀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점점 더러워졌다.

    < 전조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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