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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80화 (280/326)
  • < 죽음의 마왕 2 >

    죽음의 마왕이 당황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기이한 압박감이 온몸을 옥죄고 있었다. 움직이려면 움직일 순 있었는데, 힘을 주거나 마력을 일으키면 압박감이 더 강해져서 왠지 조심스러워졌다.

    “이제야 차분히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됐군.”

    현석의 말에 마왕이 그를 노려봤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당연히 현석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싸우는 내내 바닥에 마력패턴을 깔았다.

    그 마력패턴이 일제히 활성화 되면서 마왕에게 압박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마왕은 지금 이 순간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만한 마법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속적으로 죽음의 마력이 은근히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이건 감각을 교란시키는 마법이었다. 마왕 정도 되는 존재의 감각을 교란시키기 위해서는 보통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현석이 마왕 주위에 깔아 놓은 수천 개의 마력패턴이 그걸 증명한다. 적어도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마왕을 잡아 놓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마왕은 현석을 한동안 노려봤다. 그러자 현석이 검을 몇 번 휘두르면서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걸 본 마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좋아. 할 얘기가 있으면 해보도록.”

    “너 같은 마왕이 또 있나?”

    죽음의 마왕은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당연히 또 있지. 이 세상에 남겨진 마왕은 모두 넷이다. 그 중 하나는 죽었고, 이제 셋이 남았지.”

    “셋이라고? 나머지 둘은 어디 있지?”

    “알게 뭐야. 나만 봉인 당했으면 억울하니 그놈들도 같은 꼴이었으면 좋겠군.”

    현석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나머지 두 마왕도 봉인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해낸 것이 바로 신의 파편이고 말이다.

    아마 남은 두 개의 파편도 이런 식으로 마왕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석은 죽음의 마왕을 가만히 쳐다봤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지?”

    마왕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현석을 노려봤다. 불같이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가라앉히는 모습이었다.

    사실 마왕은 지금 현석과 이러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현석이 대체 무슨 짓을 한건지 정확히 파악한 다음 움직이기 위해서 말이다.

    ‘다 박살 내주지. 그리고 저기 서 있는 거슬리는 놈도 마찬가지로 박살을 내주마.’

    마왕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현석을 노려봤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감각을 넓게 퍼트려 대체 이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했다.

    ‘음?’

    마왕이 막 그 가닥을 잡았을 때, 현석이 마왕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저 한 발 걸었을 뿐인데 어느새 마왕의 코앞에 도착해 있었다.

    당황한 마왕이 손을 휘둘렀다.

    현석은 가볍게 마왕의 손목을 잡았다.

    “보아하니 별로 아는 게 없는 모양이군.”

    “뭐?”

    “그럼 더 시간을 끌 필요도 없겠지. 이제 곧 비도 그칠 것 같으니까.”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손목을 쥔 손에 마력을 모아 힘을 꽉 주었다.

    꽈득!

    마왕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손목이 부서지는 고통은 엄청났다. 하지만 그가 놀란 건 고작 그런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내…… 손목을 이렇게 쉽게 부숴?”

    현석은 그게 뭐 대수냐는 듯 손목을 던지듯 놓고 검을 휘둘렀다.

    슈각!

    마왕의 멀쩡한 쪽 팔뚝이 싹둑 잘려 나갔다.

    이쯤 되니 당황을 넘어 공포가 슬슬 찾아올 지경이었다. 현석의 공격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몸이 둔해져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뭔가 달랐다.

    “네놈……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마왕이 격노하며 잘린 팔뚝을 다시 만들어냈다. 시커먼 마력이 뭉클뭉클 쏟아져 나와 팔뚝이 되었다.

    그리고 덜렁거리던 손목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경이로운 회복력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왕이 트랩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면 저렇게 마력만 소모하다가 죽을 테니까.

    현석은 빠르게 마왕에게 다가갔다. 직선으로 다가가 급격히 방향을 틀어 옆을 공격했다.

    슈슈슈슈슉!

    수십 번의 찌르기가 마왕의 몸에 꽂혔다.

    마왕은 그 중 고작 다섯 번을 피했을 뿐이었다. 몸에 검 모양의 구멍이 숭숭 뚫렸다.

    뚫린 구멍에서 마력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이젠 그걸 회복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왕은 억지로 마력을 끌어올려 자신을 속박한 무언가를 끊으려했다.

    하지만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그걸 완벽히 끊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임시방편으로는 훌륭했다.

    마왕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다. 상처에서는 여전히 마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아무리 상처를 입었어도 빠져나가는 마력의 양이 너무 많다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였다.

    마왕은 현석에게 달려들어 어마어마한 힘과 속도로 검을 내리쳤다.

    너무 빨라서 현석도 그걸 피할 수는 없었다. 검을 들어 막았다. 물론 비스듬하게 힘을 흘리는 건 잊지 않았다.

    꽈아아앙!

    아무리 타격을 흘려내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상당한 충격이 현석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마왕이 그 충격을 이용해 뒤로 쭉 물러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속박하는 권역의 경계를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조금 무리하면 쫓아갈 수도 있었지만 현석은 굳이 무리하지 않았다. 지금 몸에 받은 충격을 해소하는 게 차라리 나았다.

    속박의 권역을 벗어난 마왕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상처를 회복시켰다.

    이제 더 이상 마왕의 몸에서는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마왕은 현석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절대 쉽게 죽이지 않는다. 영원한 고통이 어떤 건지 똑똑히 알려주지.”

    마왕의 말에 현석은 피식 웃었다.

    “그러시든가. 그나저나…… 마왕이면 제법 오래 살아온 거 아닌가? 싸움도 많이 했을 테고.”

    현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거에 비하면…… 영 기술이 모자라는데? 꼭 머리 좀 있는 마수를 상대하는 기분이야.”

    현석의 말을 들은 마왕의 머리에서 시커먼 김이 피어올랐다. 마왕의 눈에서 섬뜩한 핏빛 광채가 뿜어져나왔다.

    “감히…… 날 마수따위와 비교해?”

    현석은 자신의 말에 지나칠 정도로 분노하는 죽음의 마왕을 보며,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긴. 뭔가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때. 그냥 죽이면 되지.’

    이제 마왕의 힘도 많이 줄어들었다. 지속적인 치고 빠지기와 속박의 권역을 잘 이용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아직 그치지 않고 내리는 생명수의 비도 한몫했다.

    이 생명수의 비는 신의 파편이 정화의 마력을 담아 비를 내렸던 걸 응용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비가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구름을 만들어 양을 조절했기 때문에 아직도 제법 생명수가 많이 남아 있었다.

    ‘어쨌든 빨리 끝내는 게 좋은 건 사실이지.’

    현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을 박차고 돌진했다.

    마왕을 향해 앞으로 쭉 나간다 싶더니 순식간에 앞에 도착해 검을 찔렀다.

    마왕은 깜짝 놀랐다. 현석이 갑자기 가속해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진했기 때문이다.

    꽈앙!

    “크윽!”

    제대로 된 대비 없이 막는 바람에 또 자세가 흐트러졌다.

    푹푹푹!

    현석의 검이 그 빈틈을 세 번이나 찔렀다. 이번엔 하나하나의 검격에 담긴 힘이 상당했다.

    “크아아악!”

    마왕은 괴성을 지르며 거칠게 검을 마구 휘둘렀다. 현석은 굳이 거기에 대항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마왕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방금 현석이 마왕의 몸을 찌르며 그 안에다가 정화의 마법진을 새겨놓은 것이다. 그것도 세 개나.

    “너…… 너 뭐야! 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해!”

    간신히 몸속 마법진을 소멸시킨 마왕이 경악어린 표정으로 현석을 노려보며 그렇게 외쳤다.

    현석은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마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또 한 번 폭발적으로 가속해 마왕의 코앞으로 들이닥쳤다.

    쩌저저정!

    슈가각!

    수십 번의 검격이 쏟아졌지만 마왕은 그것을 모조리 막거나 피했다. 하지만 세 번의 검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크어억!”

    마왕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또 세 개의 마법진이 몸속에 새겨졌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강력한 마법진이었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보호까지 해주는 마법진이 새겨진 것이다.

    몸속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정화가 되어 마력이 사라지는 고통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마왕은 입에서 검은 피를 토했다.

    “쿠웨에엑!”

    마왕의 몸에서 나오는 건 모조리 죽음의 마력 덩어리였다. 마왕이 가진 힘이 급격히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현석은 마왕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마왕은 이를 악물고 현석을 노려봤다. 하지만 어느새 코앞에 도착한 현석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대체 왜 저 움직임을 감지해낼 수가 없단 말인가. 자신은 마계의 지배자인 죽음의 마왕인데!

    현석은 마왕의 목을 꽉 움켜쥐었다. 물론 그대로 있으면 마왕의 반격에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잡자마자 내던져 버렸다.

    마왕은 허공에서 몸을 돌려 중심을 잡은 뒤 가볍게 착지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간신히 빠져나간 속박의 영역에 다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속박의 영역에 들어가니 몸속 마법진이 더욱 맹렬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마력이 썰물 빠져나가듯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 마왕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현석은 마왕을 향해 걸어가 그 앞에 섰다. 마왕이 현석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이젠 움직이기도 버거웠다. 속박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아니, 마왕의 힘이 약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속박이 강해진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너 같은 놈이 아직 둘이나 더 있단 말이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무심히 검을 휘둘렀다.

    서걱!

    마왕의 목이 잘렸다. 그러자 온몸이 마력으로 변해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숲 전체에 죽음의 마력이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그 위로 생명수의 비가 쏟아지다가 그쳤다.

    현석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문득 만일 이 죽음의 마왕을 다른 파편을 깨우기 전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죽었겠지.’

    절대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신의 파편을 깨우면서 무수한 레벨업을 통해 훨씬 강해졌으니 이 정도였지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쉽게 해치우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여섯 번째 파편을 깨우면서 만났고, 이렇게 마왕을 물리쳤다.

    아마 다른 마왕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어쩌면 다른 마왕은 죽음의 마왕과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죽음의 마왕은 마왕이라기보다는 마왕의 힘을 가진 마수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마왕은 제대로 된 전투기술을 가진 진짜 마왕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이긴다.’

    현석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려 주위를 둘러봤다.

    숲은 이제 제대로 균형을 잡아가고 있었다. 마왕이 죽으며 남긴 죽음의 마력이 어찌나 강력했는지 생명력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숲에 죽음의 힘이 스며들며 조화를 이뤄냈다.

    정말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이다.

    현석은 고개를 돌려 마왕이 죽은 자리를 쳐다봤다.

    그곳에 새까만 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자그마치 마왕을 잡았는데 얻은 것이 저거 하나뿐이었다. 물론 레벨도 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천천히 걸어 구슬 앞에 도착한 현석은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심안을 통해 자동으로 이름이 보였다.

    [마왕의 심장]

    < 죽음의 마왕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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