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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72화 (272/326)
  • < 숲의 왕 2 >

    “뭐? 대전사가 거긴 왜 가! 그럼 숲그림자가 실패한 것도 대전사 때문인가?”

    말리쿤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묻자, 수하 전사가 고개를 숙였다.

    “들어간 숲그림자가 몽땅 잡혔기에 아직 거기까지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황상……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대전사가 갑자기 그 시간에 왜 거기에 갔느냔 말이다.”

    수하 전사는 사실 대전사가 라일라의 저택에 방문한 타이밍이 좀 맞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만일 그 얘기를 하면 자신에게 질책이 내려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말리쿤은 수하 전사를 노려보며 씩씩대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대전사가 그렇게 강했나? 숲그림자가 자그마치 20명이나 들어갔는데 그들을 다 잡았다고?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데?”

    숲그림자 프로젝트에는 말리쿤 가문의 지분도 상당히 들어가 있었다.

    그렇기에 비교적 싼 의뢰금으로 숲그림자를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지분률에 따라 20명이 한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동안은 원하던 모든 것을 순조롭게 얻어낼 수 있었다.

    어쨌든 숲그림자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발을 담갔기에 어떤 식으로 숲그림자가 힘을 얻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숲그림자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대전사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도 제법 명확한 데이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대전사가 나섰다지만 숲그림자 20명을 홀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일라의 저택에 있던 손님들이 도와준 거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힘을 고려해도 숲그림자 20명이 당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가서 그래. 솔직히 열 명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숲그림자는 정면대결보다는 잠입과 암습, 기습에서 굉장한 힘을 보여준다.

    당연히 그들이 정면대결을 시도했을 리 없다. 애초에 정면대결은 최후의 수단으로 삼도록 훈련이 되어 있으니까.

    “제가 좀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뭔가…… 함정 같은 걸 준비한 게 아닐까요?”

    “고작 함정 따위에 숲그림자가 걸려들 것 같나? 오히려 역으로 함정에 빠뜨리면 모를까.”

    말리쿤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내저었다.

    “가서 알아봐. 아마…… 따로 개입한 놈이 반드시 있을 거야. 그놈이 누군지 알아내. 사사건건 우릴 방해하는 귀족 놈이 몇 있었지? 그놈들을 중점적으로 감시하고 확인해.”

    수하 전사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말리쿤은 소파에 앉은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천장에서 사람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는 말리쿤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조아렸다.

    “지금 나간 저놈, 확실히 감시해. 우리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면 바로 저놈일 테니까.”

    대답도 없이 사내가 사라졌다. 그는 항상 말리쿤 곁을 지키던 숲그림자 중 한 명이었다.

    숲그림자의 지분은 넷으로 나뉘어 있었다.

    활동하는 숲그림자의 수가 총 100명이니 그 중 말리쿤이 언제라도 쓸 수 있는 수는 25명이었다.

    물론 그에 해당하는 돈은 지불해야만 한다.

    그래야 숲그림자가 제대로 운영되고, 자금을 축적해 다음 대 숲 그림자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방금 나간 숲그림자처럼 말리쿤이 항상 곁에 두고 쓰는 자들이 세 명이었다.

    이제 한 명 보냈으니 두 명이 근처 어딘가에서 말리쿤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정말 쓸모는 많은데…… 효율이 너무 떨어져.”

    말리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숲그림자는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이었다.

    어찌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운영이 힘들 정도였다.

    그 이유는 막대한 자금을 축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숲그림자는 숲의 선택을 받은 전사들 중, 가장 오랫동안 견뎌낸 최상위 100명을 뽑아 강제로 각성시키고 훈련해서 쓴다.

    혹은 훈련을 먼저 하고 나중에 각성을 시키거나.

    예비 그림자를 200명 더 선출하긴 하지만, 그들은 그저 지독한 훈련만 시킬 뿐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숲그림자에 결원이 생기면 그 수만큼 강제로 각성시켜 써먹는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강제 각성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평소에 받는 의뢰금만으로 충분히 유지가 가능했다.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친다. 숲그림자의 의뢰금은 정말로 비쌌으니까.

    문제는 대전사가 죽었을 때다.

    이 숲의 힘이라는 것은 대전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즉, 대전사가 죽으면 그동안 숲의 힘을 받아 쓰던 모든 전사들이 힘을 잃어버린다.

    강력한 숲그림자가 그저 그런 예비 그림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 어찌 해야겠는가.

    새로운 대전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새 대전사가 등장하면 또다시 선택받은 전사들을 찾아내서 숲그림자를 다시 조직해야 한다.

    그걸 위해 막대한 자금을 축적해 놓는 것이다.

    숲의 선택을 받은 전사를 찾아내는 데에도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또 강제각성을 하는 데에도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이번에 라일라의 저택에 잠입한 20명이 만일 다 죽었다면, 새로 20명을 강제각성 해야 한다.

    말리쿤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또 돈이 잔뜩 깨지겠군. 숲그림자에 모아놓은 자금만으로는 어림도 없겠지?”

    무팔룬이 새 대전사로 뽑힌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숲그림자에 모인 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각자의 지분에 맞게 또 돈을 모으는 수 밖에.

    ‘이래서 대전사가 얽히면 짜증이 난다니까.’

    만일 무팔룬이 죽기라도 하면 더 골치 아파진다. 무팔룬은 그냥 살려놔야 한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채로 잡아놓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말리쿤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 * *

    “어디로 가는 거요?”

    무팔룬은 현석을 따라가며 의심의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현석이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건 몸으로 겪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석이 한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었다.

    솔직히 현석이 한 말 대부분은 좀 허황되게 여겨졌다.

    숲의 선택을 받은 전사들을 다 찾아낼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신빙성이 떨어졌다.

    대체 그자들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각성을 해서 숲의 주술력을 몸에 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가는 건지 말 안 해줄 거요?”

    “다 왔으니 기다려.”

    현석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무팔룬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칼자루를 쥔 쪽은 현석이었기에 그냥 묵묵히 따라갔다.

    현석이 도착한 곳은 메디나툰의 중심에 있는 첨탑이었다.

    “여긴 왜 왔소? 이 첨탑은 아무나 건드릴 수 없소.”

    누가 지켜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건축물이었다.

    여기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대전사를 비롯한 몇 명뿐이었다.

    그들의 특징은 숲을 사랑하고 강력한 주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전사가 아닌 주술사였다.

    첨탑 근처에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첨탑에 흐르는 특별한 힘이 근처에 다가가는 사람의 힘을 계속 갉아먹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전사인 무팔룬이라 해도 이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몸속에 있는 주술력이 줄어드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멀어지면 서서히 다시 힘이 차오르긴 했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혹시라도 사라졌던 힘이 돌아오지 않으면 모험을 감행한 사람만 손해다.

    게다가 이곳에는 주술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다가오지도 못했다. 기이한 힘이 주술력이 없는 사람을 강하게 밀어냈으니까.

    현석은 거침없이 첨탑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 저기에 갈 생각이오?”

    무팔룬은 현석이 첨탑에 손을 댈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 정도 주술력이야 갖고 있을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현석이라도 이곳에 오래 머물면 주술력이 줄어들 거라고 여겼다.

    무팔룬이 생각하기에 그건 이곳의 법칙 같은 거였다.

    이내 현석이 첨탑에 도착했다. 현석은 첨탑에 손을 갖다 댔다.

    그걸 본 무팔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탑에 직접 손을 대면 힘이 더 빨리 소모되니 얼른 떼는 게 좋을 거요.”

    하지만 무팔룬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너무 놀라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무, 문?”

    아무것도 없는 밋밋한 첨탑에 문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현석이 손바닥을 올린 부분에.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러자 문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무팔룬은 화들짝 놀라 문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첨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또 비어있지 않기도 했다.

    그 안은 농밀한 주술력으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주술력은 특정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흐름이 바로 첨탑에 걸려 있는 주술 중 하나였다.

    “대체 어떻게 문을 연 거요?”

    물론 현석은 무팔룬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공간 한가운데로 걸어가 가만히 서서 위를 올려다봤을 뿐이었다.

    무팔룬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다. 그리고 또 놀랐다.

    첨탑 위가 뻥 뚫려 있었다.

    밖에서 볼 때는 분명히 첨탑 위가 뾰족하게 막혀 있었다. 한데 안에서 보니 뾰족한 끝 자체가 없었다. 뻥 뚫린 원통형이었다.

    물론 삼각뿔에 더 가까운 원통이었다.

    뻥 뚫린 천장을 통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구체가 보였다. 주술력을 가득 머금고 있는 새하얀 구체가.

    현석은 무팔룬을 보며 말했다.

    “잘 느껴봐라. 도움이 될 테니까.”

    그렇게 말한 현석의 몸에서 진득한 마력이 뭉클 쏟아져나왔다.

    그 마력은 훅 비틀리며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 탑의 벽에 차자작 달라붙었다.

    현석의 몸에서 뻗어 나간 비틀린 마력의 거미줄은 마력을 주술력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담당하는 마력패턴의 일종이었다.

    막대한 마력이 주술력으로 변환되어 탑에 전달되었다.

    우우우웅!

    첨탑 위에 떠 있는 새하얀 구체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맹렬히 주술력을 뿌렸다.

    무팔룬은 집중해서 사방에 흐르는 주술력과 그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비단 현석의 말 때문에 그렇게 한 건 아니었다. 꼭 해야만 한다는 예감이 들었다.

    지금이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무팔룬이 가진 주술력으로부터 느껴졌다.

    마치 주술력이 자신에게 충고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무팔룬은 깜짝 놀랐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지금 그는 새하얀 구체가 뿌려대는 주술력이 메디나툰을 온통 뒤덮는 광경을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착각 중이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진짜 느끼고 있었다. 주술력에 자신의 의념이 가볍게 실려서 메디나툰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제야 현석이 어떻게 숲의 선택을 받은 전사를 찾아내려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냥 보였다. 숲의 선택을 받은 전사가 어디 있는지, 또 누구인지, 어떤 주술력을 몸에 갖고 있는지.

    아마 이 특별한 경험이 끝나더라도 그 전사들을 언제든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이 되었다.

    ‘저들은…… 아주 특별하군.’

    이미 각성이 이루어진 전사들도 보였다. 그들이 누군지는 너무나 뻔했다. 그들이 바로 숲그림자였다.

    또한 200명이나 되는 전사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도 보였다.

    그들도 누구인지는 아주 자명했다. 숲그림자로 키우기 위해 훈련 중인 전사들이었다.

    아마 그들은 강력한 세뇌에 지속적으로 당했을 것이다. 다시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편히 보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숲그림자가 되어 귀족들의 피 묻은 손이 되어 살아가느니 말이다.

    후우웅!

    메디나툰을 뒤덮었던 주술력이 일시에 회수되었다.

    “커억!”

    주술력이 온몸으로 쳐들어오는 느낌은 정말 격렬했다. 그리고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무팔룬은 정신을 차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괜찮소?”

    현석의 표정이 너무나 담담한 걸 본 무팔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문득 숲의 왕에 대한 전설이 떠올랐다.

    ‘이런 사람이 그 전설에 제일 어울리는 거 아닐까?’

    무팔룬이 현석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현석은 다시 벽에 문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밖으로 쑥 나가 버렸다.

    무팔룬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젓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는 힘차고 빠르게 문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문이 좁혀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제 선택받은 숲의 전사들을 찾아갈 시간이었다.

    < 숲의 왕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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