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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68화 (268/326)
  • < 메디나툰의 대전사 1 >

    “우리, 생각보다 약한 거 아냐?”

    라이언은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몸은 지금 만신창이였다.

    이번 싸움으로 정말 크게 다친 것이다.

    그건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몸이 성한 사람은 힐러인 류혜연뿐이었다.

    적은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행이 이렇게 고전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주술이었다. 그리고 주술력이었다.

    모든 적이 주술력이라는 기괴한 힘을 기반으로 하는 무예를 익히고 있었다.

    그 무예 자체도 상당히 강력하고 까다로웠는데, 거기에 주술력이 깃들자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저 그것만이라면 이렇게까지 라이언 일행이 고전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주술력을 일행의 마력으로 깨뜨릴 수가 없었다. 물론 타격이야 줄 수 있었지만 마치 노끈으로 만든 거미줄을 검으로 후려치는 것처럼 모든 공격이 밋밋해졌다.

    “그게 정말 주술력 때문일까요?”

    류혜연은 그렇게 물으며 박승희를 바라봤다. 이번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단연 박승희와 류혜연이었다.

    아마 두 사람이 없었다면 일행 중 누군가는 정말 크게 다쳤을 것이다.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게 아니면 뭔데?”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요? 물론 주술력 때문이겠죠. 한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요.”

    문득 예전 디룬 족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현석의 마력은 분명히 그들에게 통했다.

    ‘물론 우리 대장이 아주 특별하니까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라이언이 생각에 잠기자, 류지혜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대책을 세워야 돼요. 당장 또 그런 놈들이 달려들면 막을 수 있겠어요?”

    절대 못 막는다. 이 도시에는 아까 왔던 놈들보다 훨씬 강한 강자가 즐비하다.

    메디나툰을 비롯한 모든 부족들은 전사를 우대하는 전투의 종족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부족에서 대전사라 불리는 자들은 정말로 강했다. 그리고 그 대전사 중에서 메디나툰의 대전사는 압도적이라고 한다.

    메디나툰의 전사들은 대전사의 영향 때문에 다른 부족에 비해 상당히 강하다고 했다.

    그러니 만일 아까 왔던 놈들보다 더 강한 놈들이 나타나면 쉽게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아까처럼 이쪽이 제대로 힘을 못 쓰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라이언이 류지혜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류지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라일라에게 도움을 청해야죠.”

    정답이다. 라이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라일라는 일행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

    일행이 없었다면 라일라가 무슨 꼴을 당했을지는 아주 뻔했으니까.

    그건 이 저택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가자.”

    라이언이 벌떡 일어났다. 나머지 일행도 따라 일어났다. 그들의 몸은 아직 정상이 아니었지만 지금 몸 상태나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잠깐만요. 일단 치료가 먼저죠. 자, 힘 돌아왔으니 다들 준비하세요. 두 번만 더 하면 끝날 거 같으니까.”

    류혜연의 말에 다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옹기종기 모여 있었기에 따로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시작합니다.”

    류혜연은 일행을 향해 두 손을 자연스럽게 뻗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쫙 펼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화아악!

    그녀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일행을 포근하게 감쌌다.

    그러자 다들 편안한 표정으로 축 늘어졌다.

    몸에 난 상처들이 빠르게 사라져갔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는 내상이 훨씬 더 문제였다.

    류혜연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마력을 내뿜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오던 새하얀 빛이 사그라졌다.

    “하아아. 정말 힘드네요.”

    세상 가득 퍼져 있는 주술력 때문에 마력을 기반한 스킬을 쓰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이래저래 일행에게는 악재가 겹친 것이다.

    “그래도 이제 몸은 얼추 회복된 거 같은데? 정말 대단한 거 같아.”

    “그래도 반복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네요.”

    류혜연은 이 던전에서 나가면 왠지 훨씬 급격히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뿐 아니라 일행 모두가 말이다.

    “자, 그럼 이제 라일라의 의견을 들으러 가 볼까?”

    그렇게 막 모두 일어나 움직이려는 찰나, 방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온 사람은 라일라였다.

    “힘드신데 움직일 필요 없어요. 제가 오면 간단한 일이잖아요?”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슥 둘러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덕분에 살았어요.”

    목숨을 구해준 것도 고마웠지만, 무엇보다도 아직 전쟁을 막는 것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해준 점이 훨씬 고마웠다.

    “궁금한 게 많으시죠? 뭐든 물어보세요.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는 건 다 얘기해 드릴 테니까요.”

    라이언이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그놈들 왜 이렇게 칼이 안 들어가는 건지 아십니까?”

    라일라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특별한 주술 때문이에요.”

    “주술? 주술력이 아니라?”

    라일라가 빙긋 웃었다.

    “그저 주술력만으로 그런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는 없죠. 여러분들처럼 강한 전사라면 모를까.”

    라이언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놈들은 약한 전사란 말입니까?”

    “예. 비교적…… 약한 편이죠. 얘기를 들어보니 진짜 전사는 30명 정도밖에 안 됐다고 하더군요.”

    “30명? 그럼 나머지는?”

    “아직 전사가 되지 못한 자들이죠. 좀…… 많이 어설픈 전사라고 해야 할까요?”

    믿을 수가 없었다. 고작 그 정도 수준의 전사들을 상대로 이렇게 힘들게 싸웠다고?

    만일 그렇다면 진짜 강한 전사가 나타나면 다 죽는 수밖에 없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측에는 아주 뛰어난 주술사가 있거든요. 이미 적의 수법을 다 파악했답니다.”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일행에게 각각 하나씩 나눠주었다.

    딱 어른 검지만 한 약병이었다. 안에는 푸른색 액체가 반쯤 들어 있었다.

    “몸에 좋은 약이랍니다. 쭉 드세요.”

    다들 병을 들고 망설이자 라일라가 빙긋 웃었다.

    “방금 말씀드린 특별한 주술에 대한 해법이 될 수도 있으니 어서 쭉 드세요.”

    하지만 누구도 그걸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준 약을 덥석덥석 마실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은 이중에 아무도 없었다.

    라일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지금 마시는 건 무리겠네요. 그래도 이거 정말 좋은 약인데…….”

    “좋은 약이 아무한테나 다 똑같이 적용된다고 믿으면 오산이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말에 라일라가 깜짝 놀라 돌아봤다.

    언제 들어왔는지 현석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현석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일행이 손에 들고 있는 약을 슥 훑었다. 심안을 통해 자동으로 정보가 보였다.

    [응축된 주술력]

    [주술력을 응축해 특별한 물에 희석시킨 약. 체내의 주술력을 향상시킨다. 확률적으로 막대한 주술력을 얻을 기회가 주어진다.]

    현석은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걸 그냥 마시면 죽는다.”

    그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라일라는 당황하며 현석에게 외쳤다.

    “그럴 리 없어요! 그건 정말 귀한 약이라고요! 저도 이제 더 구할 수 없는 약이란 말이에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귀한 약이지. 하지만 이건 너희 전사나 주술사들에게나 효과가 있는 약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죠?”

    라일라는 현석을 바라보며 눈을 꿈뻑였다. 꼭 이들은 주술력의 힘이 아닌 다른 힘을 쓴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현석은 더 말해주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의 일행이 저 약을 먹지 않는 것이니까.

    모두 슬그머니 약병을 내려놓았다. 그걸 본 현석이 말했다.

    “굳이 받은 걸 돌려줄 필요는 없다. 나중에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결국 약병은 일행의 아공간 아티팩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라일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현석은 몸을 돌려 라일라를 쳐다봤다. 그제야 라일라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현석을 똑바로 바라봤다.

    “습격한 놈들 뒤는 캐봤나?”

    라일라의 표정이 굳었다.

    “깔끔하게 꼬리를 잘랐어요. 하지만…… 짐작 가는 사람이 있긴 해요.”

    라일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고요. 짐작만으로 일을 벌일 수는 없으니…….”

    “아까 무슨 특별한 주술을 썼다고 하지 않았나?”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들은 결박, 보호, 연계의 주술을 절묘하게 섞은 특별한 주술을 걸고 왔어요.”

    “그 주술을 주로 쓰는 가문이 있을 텐데?”

    라일라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세 가지 주술은 워낙 자주 쓰이는 것들이라서 가문을 특정할 수 없어요. 그걸 절묘하게 섞은 방식이 특별한 건데…… 저희도 처음 접하는 생소한 방식이었어요.”

    “그걸 어떻게 확인했지?”

    “주술이 채 사라지지 않은 시체를 통해서요.”

    현석이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가지.”

    “예? 어디를요?”

    라일라는 당황해서 현석을 따라가며 물었다.

    “그 시체 있는 곳에.”

    라일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현석을 앞질러 갔다.

    어쨌든 그곳에 안내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으니까.

    현석은 라일라를 따라가며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점검했다.

    ‘일단…… 이 일부터 해결하고 떠나야겠군.’

    여길 떠남켠 다시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어쩌면 아예 안 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 라일라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전쟁도 벌어질 것이다.

    현석은 왠지 이 숲에서 전쟁이 벌어져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술 때문에 그런가?’

    이 숲은 주술의 원천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숲이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주술이라…….’

    현석은 주술에 대해 좀 더 공부할 필요를 느꼈다.

    어쩌면 주술을 공부하면 마법에도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특별한 아티팩트를 만드는 건 마법보다 주술이 더 좋을 수도 있어.’

    애초에 주술이라는 힘 자체가 힘을 부여하는 쪽에 더 비중이 있었다.

    그러니 이곳을 공격한 그 어설픈 놈들이 말도 안 되는 힘을 발휘한 것이고 말이다.

    라일라는 현석을 안내하면서 계속되는 침묵이 싫었는지 슬그머니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마 시간이 별로 안 남았을 거예요. 워낙 걸린 주술이 강해서 흔적을 붙들어 두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너무 불안정해서요.”

    “어떤 주술이라고 했지?”

    “결박, 보호, 연계요. 일단 연계는 주술에 걸린 모든 사람을 하나로 이어서 힘을 공유하는 거예요. 그걸 더 단단히 해주는 것이 결박이고요. 그 공유된 힘으로 보호하는 거죠.”

    각자의 주술력은 약하지만 그걸 연계해 하나로 이어버리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된다.

    “다수대 다수의 싸움이었으면 별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다수가 소수와 싸울 때는 정말 엄청난 주술이 되는 거죠.”

    딱 이번 싸움처럼 말이다.

    그렇게 몇 마디 주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목적한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술에 대해 좀 아세요?”

    현석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안다고 할 수도, 또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었으니까.

    현석은 라일라와 함께 지하에 마련된 석실로 들어갔다.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차갑게 달라붙었다.

    석실 한가운데 창백한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는데, 그냥 척 보기에도 복잡한 주술의 힘이 느껴졌다.

    현석은 시체 앞으로 다가가 차분히 그의 몸에 흐르는 주술력을 파악해봤다.

    ‘이것들은 원래 있던 주술력을 붙잡아놓기 위해 쓴 주술의 힘이로군.’

    현석은 일단 가장 위를 칭칭 감고 있는 주술력의 끈을 차근차근 들춰냈다.

    물론 손을 댄 건 아니었다. 그저 마력에 대한 장악력만으로 해냈다. 주술력도 어차피 마력의 일종이니 현석이 그걸 마음대로 움직이고 흐름을 조절하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주술력의 끈을 벗겨내자, 다른 주술력의 흐름이 보였다.

    ‘이게 보호인 모양이군.’

    보호가 가장 찾기 쉬운 주술이었다. 보호 마법에 쓰이는 마력의 흐름과 비슷해서 금방 구분할 수 있었다.

    다만 결박이나 연계의 경우 마법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 아닌지라 구분이 좀 어려웠다. 그래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현석은 일단 각각의 주술을 구분한 다음 그걸 섞은 방식을 찾아봤다.

    ‘결박이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거였군.’

    결박의 주술로 세 주술을 섞은 것이었다.

    거기까지 밝혀낸 현석은 고개를 돌려 라일라를 바라봤다.

    “결박의 주술에 능통한 가문이 따로 있나?”

    “결박이요? 글쎄요…….”

    라일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박의 주술은 생각보다 흔하고 쉬운 주술이다. 하지만 또 그렇게 자주 쓰이는 주술은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던 라일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결박을 이용해 주술을 섞었다. 결박의 주술을 엄청난 수준으로 익히지 않으면, 아니면 거기에 대한 연구가 엄청나게 되어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수법이야.”

    현석의 말에 라일라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제 추측이 맞았네요.”

    현석이 라일라를 빤히 쳐다보자 라일라가 말을 이었다.

    “말리쿤 가문이 결박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성과를 냈다는 얘긴 못 들었고요.”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추측을 확신으로 바꿨으면 이제 움직여 해결하면 된다.

    “음?”

    현석은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쳐다봤다.

    “손님이 온 모양이군.”

    현석의 입가에 드리워진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메디나툰의 대전사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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