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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66화 (266/326)
  • < 지하수로 3 >

    구멍은 정말로 깊었다. 현석은 끝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온몸을 옥죄는 주술력의 힘이 강해졌다.

    그냥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몸에 압력이 가해졌다. 주술력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그것이 물리적 힘을 발휘할 정도가 된 것이다.

    현석은 아래로 떨어지면서 점점 속도가 줄어드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찰박.

    바닥에 내려선 순간 물이 밟혔다. 바닥에는 아주 얕은 물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물로 이루어진 얇은 막이 덧씌워진 것 같았다.

    현석은 사방을 둘러봤다.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곳이었다. 하지만 현석의 시야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곳은 수로였다.

    위를 올려다보니 방금 현석이 내려온 곳만 천장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통로 자체가 굉장히 거대한 수로였는데, 바닥에 흐르는 물의 양이 너무 적었다.

    현석은 일단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살펴봤다. 한 쪽은 100미터쯤 나아가면 막다른 곳이 나오는 길이었다.

    나머지 한 쪽도 마찬가지였는데,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 있었다.

    당연히 그쪽을 선택해서 걸어갔다.

    이내 막다른 곳이 나왔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통로도 보였다.

    ‘여기서 부터가 진짜 수로로군.’

    통로는 짧았고, 그 통로가 끝나는 곳에 진짜 수로가 이어져 있었다.

    현석은 일단 통로로 들어섰다.

    쏴아아아!

    세찬 물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하게도 통로에 들어서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통로 자체가 소리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통로 끝에 선 현석은 앞을 내려다봤다.

    처음 떨어졌던 곳보다 훨씬 크고 넓은 수로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물이 흘렀다.

    현석은 일단 수로에 흐르는 물의 깊이부터 파악해봤다.

    ‘허리쯤 오겠군.’

    물의 흐름이 상당히 거셌기 때문에 아마 이 안에 들어가 물살을 헤치고 걷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보통사람이라면 말이다.

    현석은 수로 안쪽을 슥 훑어봤다.

    직선으로 수백 미터나 길게 이어진 수로였다. 한데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지는 통로가 군데군데 나 있었다. 그리고 끝은 좌우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꼭 삼거리 같군.’

    수로를 보고 있으니 마치 현대의 도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수로를 도로처럼 이용한 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하기엔 수로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현석은 수로에 흐르는 물을 잠시 살피다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여기였군.”

    메디나툰 아래에 있는 거대한 마법진이 위치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주술력이 생산되어 위로 연기처럼 아른거리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마법진이 이 수로 아래에 있는 건가?’

    현석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력에 대해서는 이제 제법 굉장한 수준에 올랐다고 여겼는데, 지금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력의 흐름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아니, 흐름이 너무 강해서 다른 세밀한 흐름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게 정답이다.

    ‘그래. 주술력이 아니라 마력이야.’

    이 아래에 흐르는 것은 분명히 마력이었다. 그 마력이 비틀려 주술력으로 변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현석은 수로에 흐르는 물에 가득한 마력을 보며 그 아래를 확인하고자 감각을 집중했다.

    ‘음? 잠깐.’

    현석은 감각을 집중하다가 뭔가 묘한 위화감이 느껴져 감각의 범위를 극도로 좁혔다.

    ‘물에 담긴 마력이 너무 많은데?’

    그냥 많다고 하기에도 지나친 수준이었다. 현석은 좀 더 집중했다. 감각의 범위를 극단적으로 좁혀서 물의 극히 일부만 확인했다.

    그렇게 하니 물의 정체를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어이가 없네.”

    현석은 집중을 풀고 수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 물을 내려다봤다.

    이건 물이지만 물이 아니었다.

    마력이 고도로 압축되어 물처럼 응축된 마력의 결정체였다. 아니, 결정체로 가는 과정에 있는 액화 마력이었다.

    솔직히 이런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지금 처음 알았다.

    ‘이러니 감지가 안 됐지.’

    마법진에 들어가는 마력의 원천이 바로 이 물이었으니 마법진이나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그렇다면…….”

    이 물이 마력이라면, 마법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겠는가. 현석은 길게 이어진 수로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확인했다.

    “이게 마법진이었어.”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마법진의 정체가 바로 이 수로였다. 수로를 이용해 마법진을 만든 것이다.

    ‘이걸 내가 확인할 수 있을까?’

    정확한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아직 모른다. 한데 이걸 그저 감각만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할까?

    현석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심이 선 즉시 현석은 물에 뛰어들었다.

    촤악!

    마력 그 자체인 물이 현석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현석은 즉시 마력을 뿜어내 그걸 막아냈다.

    ‘아니, 이래선 안 돼.’

    현석은 다시 마력을 거둬들였다. 갑자기 뇌리를 스친 아이디어를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물로 이루어진 마력이 현석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현석은 그 자리에 서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력에 몸을 그냥 맡겨 버렸다.

    마력에 자신을 내던진 건 아니었다. 이곳을 흐르는 마력과 동화되는 것이 현석의 목적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잘 안 됐다. 갑자기 밀려든 이질적인 마력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가기도 했다.

    하지만 현석이 가진 자연회복 스킬에 의해 망가진 몸이 다시 회복되는 걸 반복하며 어떻게든 버텨 나갔다.

    현석은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서서히 흐르는 마력과 동화되어갔다.

    * * *

    팀 메인퀘스트와 라이언, 추광열은 저택에서 머물며 현석을 기다렸다.

    현석이 나간 지 벌써 하루가 꼬박 지났다.

    라일라의 저택에 온 것이 어제 낮이었는데, 밤을 보내고 또 낮이 된 것이다.

    “대체 언제 돌아올까요?”

    “모르지. 예전 마탑 일을 생각하면…… 며칠 걸리지 않을까?”

    류지혜는 라이언의 대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요?”

    “뭔지는 몰라도 아마 돌아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져서 오겠지.”

    라이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들이 보기에 현석은 불가사의한 사람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빨리 강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석은 상식을 넘어선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힘쓸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지긴 하겠죠?”

    “그냥 대충 얘기한 건 아닐 거야. 어떤 분위기나 흐름을 개치했겠지.”

    그 뒤로 대화가 두런두런 이어졌다. 사실 일행은 여기서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차라리 이럴 시간에 가서 사냥을 통해 레벨업이나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다들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더 버티지 말고 메디나툰 근처를 돌아다니며 마수나 찾아다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 류혜연이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류지혜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류혜연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공기가 달라졌어.”

    “공기?”

    류지혜는 물론이고 나머지 일행들도 류혜연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들었다.

    저택 내부에 흐르던 평온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깨진 것이다.

    뭔가 사건이 벌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싸한 긴장감이 일행을 휘감았다.

    “우리 대장님이 말한 게 이건가보군.”

    라이언은 그렇게 말하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류혜연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현석을 논외로 치면 자신의 감각이 일행 중에서 가장 예민하다고 자부했다.

    한데 지금 보니 류혜연의 감각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

    ‘일단…… 추광열보다는 한 수 위야.’

    그건 정말 대단한 수준이었다. 추광열도 마력에 대한 감각 하나만큼은 엄청났으니까.

    그리고 마력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면 다른 감각은 더 뛰어나기 마련이다.

    “일단 싸울 준비를 좀 해볼까?”

    일행은 각자 가진 아공간 아티팩트에서 자신의 전투 장비를 꺼내 착용했다.

    이제 다들 가진 장비가 굉장한 수준이었다. 장비를 착용하고 그렇지 않고의 차이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날 정도였다.

    장비를 완벽하게 착용하고 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감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그렇게 전투준비가 끝났을 때, 방문이 벌컥 열리고 라일라가 방으로 뛰쳐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일행을 보고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고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전투 준비가 끝난 모습이었다.

    “어, 어떻게 알았죠?”

    “분위기가 달라졌잖아요. 무슨 일이죠? 싸우는 일이라면 맡겨 주세요.”

    류지혜가 나서서 라일라에게 말했다.

    라일라의 표정이 굳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벌써 외곽에 있던 사람들은 많이 당했어요.”

    외곽에 있던 사람들이라면 공터를 빙 둘러싸고 살아가는 다른 부족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라일라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일단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택 안으로 피신시켰어요.”

    그 얘기는 저택이 포위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사람들을 쫓아온 정체불명의 적이 그냥 돌아갔을 리는 없으니까.

    “저택에 전사가 몇 명이나 있죠?”

    라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스무 명 정도에요. 하지만 다들 강하죠.”

    “적의 수는요?”

    “일단 대충 눈에 보이는 걸로 파악한 것만 200명이 넘어요. 어쩌면 뒤에 더 오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류지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을 돌아봤다.

    “제법 힘든 싸움이 되겠는데요?”

    라이언과 추광열이 씨익 웃었다.

    “재미있는 싸움이 되겠어. 이런 거 정말 오랜만이지?”

    그 말을 신호로 다들 일제히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서둘러 밖으로 달려갔다.

    라일라는 그런 일행의 뒷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어쩌면…….’

    그녀의 눈빛에 기대감이 슬며시 떠올랐다.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나저나 대체 누구지?’

    사실 뻔한 질문이었다.

    라일라가 전쟁을 반대한다는 건 메디나툰에서 모르는 귀족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 가장 왕의 자리에 유력한 사람은 말리쿤이다.

    아마 이번 일은 말리쿤이 직접 계획했거나, 아니면 그를 추종하는 귀족 중 하나가 벌였을 것이다.

    “일단…… 막아내는 것부터.”

    라일라는 입술을 깨물며 방에서 나갔다. 나중에 이 일을 벌인 원흉을 찾아내 박살을 내 버릴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걸음을 옮겼다.

    * * *

    마력의 물에 완벽하게 동화된 현석은 의식이 크게 확장되는 걸 느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기에 당황하지 않고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건 신의 파편을 깨울 때와 비슷했다. 항상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면 막대한 보상을 받았다.

    그렇게 확장된 의식이 흘러가는 물의 길을 뇌리에 새기기 시작했다.

    현석은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듯 수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지하수로의 규모는 정말 거대했다. 어느 정도냐하면 숲 전체를 아우를 정도였다.

    그리고 수로는 저 멀리 디룬 족이 있는 곳 근처에 있는 강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강의 물도 마력으로 이루어진 액화 마력이었다.

    ‘그래서 양산형 용이나 마수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거였군.’

    마력은 힘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되기도 한다. 이런 액화 마력은 그 안에 있으면 마력에 먹혀버리기 십상이다.

    현석이나 되니까 이렇게 마력에 동화되어 뭔가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이지 보통은 마력에 먹혀 그대로 소멸해 버리는 게 정상이었다.

    어쨌든 현석은 그 거대한 수로의 구조를 모두 파악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수로로 이루어진 마법진을 완벽하게 확인했다는 뜻이다.

    이 마법진은 비록 아주 거대했지만 그 구조는 크기에 비해 그렇게까지 복잡하지 않았다.

    물론 크기에 비해서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지 마법진 자체는 굉장했다.

    이 마법진은 수로에 흐르는 마력을 주술력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또한 세상에 흩어진 마력을 수로로 모아 액화 마력으로 응축하는 역할도 했다.

    그 두 가지만으로도 굉장한 마법진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주술력을 마법진 지하에 있는 어딘가로 보내는 일까지 했다.

    현석의 관심은 이제 이 주술력이 어디로 가는지로 이어졌다. 그건 마법진을 파악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상당히 깊은 곳으로 주술력을 보내고 있었기에 의념을 따로 나눠서 그곳을 탐사해야만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현석은 결국 주술력이 모이는 곳을 찾아냈다.

    ‘알?’

    거기에는 거대한 동공이 있었고, 그 동공 중심에 커다란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더없이 새하얀 순백의 알이.

    < 지하수로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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