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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64화 (264/326)
  • < 지하수로 1 >

    현석 일행은 여관에서 가장 큰 방을 잡았다.

    이곳의 화폐 역시 금이었다. 현석은 아낌없이 돈을 썼다. 어차피 현실 세계에서는 지금도 꾸준히 금이 모여들고 있으니 돈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현석이 금을 열심히 모은 이유가 바로 이럴 때 써먹기 위함이었다.

    현석은 회귀 전에도 이와 비슷한 모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금이 더 많이 필요했다.

    그때 현석이 갔던 화이트홀은 한국에 있는 퀸급 던전 생성지역에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정말 상당한 수준의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금이 필요했다.

    한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회귀 전에야 굉장한 아티팩트였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막대한 금을 주고 구입할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이제 현석은 마탑의 주인이 되었다.

    사실 여기서 좀 더 마력에 대해 이해하고 마법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 스스로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제작한 아티팩트가 한국의 화이트홀에서 돈을 주고 사는 아티팩트 보다 성능이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제 수준이 달라졌으니 거기서도 더 좋은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모든 건 직접 가봐야 안다. 이제 회귀 전과는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달라졌으니까.

    현석은 여관에 홀로 남아서 방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은 하나라도 정보를 모아 오겠다면서 다들 밖으로 나갔다.

    딱히 현석이 시킨 것도 아닌데 그들이 알아서 움직인 것이다.

    현석 일행은 이곳 던전 속 세상에 대해 상당한 흥미와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메디나툰에 대해 샅샅이 알아오겠다고 장담을 하고 나갔다.

    현석은 그들이 그렇게 정보를 수집하는 동안 메디나툰에 흐르는 마력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방 한가운데 앉아 지그시 눈을 감은 현석은 온몸의 감각을 이용해 주변을 꽉 채우고 있는 주술력을 차근차근 파악해 나갔다.

    주술력 자체가 마력이 기괴하게 뒤틀리면서 만들어진 힘인지라 파악 자체가 좀 난해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마력은 마력이었다. 현석은 주술력을 차근차근 분해하듯 파악해 그 근원을 파고들어갔다.

    ‘대단한데?’

    사방에 꽉 찬 주술력의 흐름이 사실은 규칙적인 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술력 자체를 이곳 메디나툰에서 생성하고 있었다.

    메디나툰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마법진이 아닌 전혀 새로운 마법진이 그 아래에 넓게 퍼져 있었다.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마력을 비틀어 주술력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변형된 주술력이 이곳 숲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것이 이 세상에 퍼진 주술력의 정체였다.

    ‘아직도 끝이 안 보여.’

    마법진의 정체는 파악했는데, 그 마법진 자체를 분석할 수 없었다. 크기가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법진의 중심이 바로 이곳 메디나툰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이 메디나툰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마법진에 주술력을 공급하는 원천이 바로 그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그 거대한 마법진이 만들어낸 주술력의 일부를 메디나툰이 빨아들여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이곳 지하에 거대한 마법구조물이 존재했고, 그 구조물을 이용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메디나툰을 건설한 거였군.’

    극히 일부의 주술력을 빨아들일 뿐인데도 메디나툰의 방어를 완벽히 해내고 있었다.

    그럼 대체 얼마나 어머어마한 양의 주술력이 생산된단 말인가.

    현석은 좀 더 감각을 확장시켰다. 주술력을 생산하는 마법진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자 함이었다.

    ‘정말 크군.’

    아무리 감각을 확장해도 마법진의 끝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지하에 깔려 있었다.

    게다가 메디나툰에서 멀어질수록 마법진의 존재감이 흐려졌다.

    아마 이곳은 메디나툰 때문에 마법진의 존재감이 드러난 것이고, 원래 이 마법진은 굉장히 은밀한 모양이었다.

    ‘분석 자체가 잘 안 되는군.’

    고작 일부가 드러났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하고 복잡한 마법진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현석은 더욱 집중해서 마법진에 흐르는 마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마법진을 분석하는 건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현석은 마력의 주인이다. 그러니 마력 자체를 분석하는 편이 훨씬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집중했을까. 마력의 흐름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물론 워낙 거대한 마법진이고 마력의 흐름도 상당히 급격하고 복잡하게 변화하는지라 분석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정보들을 알아낼 수는 있었다.

    ‘이 마법진이 만들어낸 주술력은 애초에 위로 올라오는 게 아니라 아래로 보내지고 있어.’

    원래부터 더 아래쪽을 위해 만들어진 마법진이었다.

    즉, 마법진 아래에 이 거대한 주술력이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 세상에 퍼져 있는 주술력은 그렇게 쓰고 남은 부스러기만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렇게나 막대한 주술력이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현석은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딱 거기까지 파악했을 때, 밖으로 나갔던 일행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들 제국어를 제법 잘 하기에 돌아다니면서 가벼운 정보를 얻어내는 것쯤은 쉽게 해낼 수 있었다.

    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밥 먹을 시간이었다.

    * * *

    “놀라지 마. 여긴 왕이 있어.”

    “왕? 정말요?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

    “그런 게 있었다면 다른 부족에 들렀을 때 얘기를 못 들었을 리 없잖아요.”

    라이언은 놀란 일행을 슥 둘러보며 씨익 웃었다.

    “그야 당연하지. 지금은 없으니까.”

    “예?”

    “그게 뭐예요?”

    “곧 왕을 선출한다는 얘기지.”

    다들 입을 다물고 라이언을 바라봤다. 그동안 이곳을 돌아다니며 얻은 정보를 떠올려보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얘기가 아니었다.

    “하긴…… 귀족들은 있으니까요.”

    “메디나툰이 다른 부족들과는 좀 다르긴 하죠.”

    이곳은 왠지 지난번에 갔던 화이트홀 쪽에 있는 도시들과 비슷했다.

    그 도시들 중 하나를 규모만 엄청나게 키워놓은 느낌이었다. 건물의 형태도 묘하게 비슷했다.

    “그 귀족들끼리 모여서 이번에 왕을 선출한다고 하더라고.”

    라이언의 말에 류지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왕을 선출하는 걸까요? 그렇게 오랫동안 이 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일행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메디나툰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존재해 왔고, 그때도 지금 이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된 체계를 이제 와서 갑자기 바꾼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확실한 건 아닌데…… 메디나툰이 전쟁을 준비하는 모양이야.”

    “전쟁이요?”

    “힘을 너무 많이 축적한 거지. 이걸 분출할 구멍을 찾고 있는 거야.”

    “그게 전쟁인가요?”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니까.”

    라이언의 말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류지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라이언과 현석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크락실리아 같은 도시에는 왕이 없을까요? 생각해보니 각각의 도시마다 왕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가문은 있었잖아요?”

    “확실히…….”

    확실히 그 점이 좀 이상하긴 했다. 사실 그때는 그저 도시 규모라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생각해보면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각각의 도시는 나라라고 칭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다면 왕이 하나쯤 나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그 모든 도시에 왕이 없었다.

    귀족은 제법 많은데 말이다.

    그들이 가진 귀족 작위도 그렇다. 후작 이상의 작위를 가진 사람은 그저 대대로 가문에 내려오는 작위를 대를 이어서 그대로 썼다.

    백작 이하의 작위는 후작이나 공작들이 가끔 내려주곤 했지만, 애초에 귀족의 인장 자체가 한정적이어서 작위를 남발할 수도 없었다.

    ‘인장 정도야 새로 만들면 되는데.’

    인장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세련된 술식의 마법진이 들어간다. 그러니 함부로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마법이다. 마탑까지 있는데 인장을 못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도 인장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니까.’

    현석은 마탑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인장에 새겨진 마법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어쨌든 왕을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곳에 있던 그 많은 도시 중 단 한 곳도 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왕에 대한 욕망이 아예 없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그곳의 귀족들은…… 아마 모든 도시를 통합하지 않으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고 믿는 것 같다.”

    현석의 말에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들도 그때 그런 분위기를 분명히 느꼈으니까.

    “제논 백작은 잘 하고 있겠죠?”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충분히 잘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 근처의 도시들을 통합하는 건 끝났겠군.”

    현석은 제논 백작에게 인페르노와 인페르노에 불의 마력을 채울 수 있는 마정석을 넘기면서 주변 도시들을 정리하라고 했다.

    그때 크락실리아를 먹겠다고 수작을 부리던 도시들은 아마 다 크락실리아 아래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 도시들을 지배하던 귀족들도 대부분 정리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거기도 한 번 가봐야 하는데.’

    하지만 이번에 거기에 갈 때는 기존의 화이트홀을 통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쪽과 연결된 것이 분명한 화이트홀을 찾아 두 세상을 연결할 생각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왕이 뽑혀서 전쟁을 시작하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요?”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류혜연이 나서서 물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동안 우릴 도와줬던 부족들이 전쟁에 휘말린다는 뜻이잖아요. 최소한 그들에게 알리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우리도 고작 하루 만에 얻은 정보잖아.”

    각 부족을 돌아보며 느낀 건데, 그들은 메디나툰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마 메디나툰이 전쟁을 준비한다면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류혜연의 말에 다들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려주지?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라이언은 그렇게 말하며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현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꼭 부족에 직접 알려줄 필요는 없지.”

    그 말에 다들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부족에 직접 알려주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모든 귀족들이 다 전쟁에 찬성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 말에 류지혜가 눈을 반짝였다.

    “전쟁을 반대하는 귀족들에게 각 부족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거란 뜻인가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냐? 그걸 어떻게 장담해?”

    라이언이 살짝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현석이 대답했다.

    “전쟁을 반대하는 귀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각 부족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모여 있는 건 확실하지.”

    “그걸 어떻게 알아?”

    “확인했으니까.”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다들 멍하니 그런 현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확인했다고? 대체 언제?”

    “지금까지 계속 방에만 계셨던 거 아니었어요?”

    “그랬지. 내가 들어올 때 여기 종업원들한테 확인까지 했어. 방에서 나간 적 한 번도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럼 대체 언제 확인하신 걸까요?”

    상식적으로 그럴 시간은 없었다.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니라면 말이다.

    “원래부터 알고 계셨던 거 아닐까요?”

    “원래부터? 어떻게? 이 화이트홀에 처음 들어왔다는 건 다 똑같은데?”

    “아니면…… 각 부족에 들렀을 때 들었거나요.”

    그건 좀 신빙성이 있었다. 확실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랬다면 자신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어야 한다.

    현석과 따로 움직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이해할 수가 없네.”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을 나섰다. 저 멀리 복도 끝을 지나고 있는 현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지하수로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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