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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62화 (262/326)
  • < 메디나툰으로 1 >

    “그게 뭐야?”

    라이언이 현석의 손에 있는 서류 뭉치를 보며 물었다.

    현석은 대답 없이 서류를 차분히 확인했다. 그리고 이미 확인한 서류를 라이언에게 내밀었다.

    라이언은 그것을 받아 열심히 들여다봤다. 인상이 이리저리 일그러졌다. 마치 서류에 싸움이라도 거는 것처럼 노려보기도 했다.

    “젠장. 말은 어느 정도 하겠는데 글은 영 서투네.”

    라이어는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받은 서류를 류혜연에게 넘겼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류혜연은 차분히 서류를 받아 읽고는 말했다.

    “이 근방의 정보를 정리해 놓은 서류 같은데요? 다른 부족들 얘기도 있고요.”

    “그래?”

    “네.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어요. 확실한 정보랑 소문을 수집해 정리한 거랑 구분도 잘 해뒀고요.”

    류혜연은 그렇게 말한 다음 나머지 서류를 모두 확인했다. 그리고 현석이 다 보고 넘기는 서류까지 받아서 차근차근 읽었다.

    “일단 이 근방의 마수에 대한 정보가 제일 많네요. 지도도 섞여 있고요.”

    그밖에 숲에서 채취할 수 있는 열매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도 정리되어 있었다.

    이건 사실 부족의 입장에서 보면 제법 중요한 정보였다.

    하지만 하툰 족은 모든 정보를 정말 아낌없이 싹싹 모아서 전해 주었다.

    현석은 정보를 모두 확인한 다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갑자기 태도가 변한 거지?’

    현석 일행은 아직 하툰 족에게 뭔가 특별한 일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처음에 쿠다툰 일당을 잡아온 게 다였다.

    한데 하툰 족의 태도가 갑자기 변해 버렸다.

    ‘그 시기가…… 아마 싸이프가 부족회의에 간다고 했을 때가 시작인 것 같지?’

    그 부족회의에서 분명히 뭔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아마 아주 멀리서 현석을 지켜보던 그 시선과 관계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어쨌든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호의였다.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추측만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지금은 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는 직접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당장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은…… 원래 하려던 일부터 해야겠지.’

    현석이 이곳 화이트홀에서 하려던 건, 예전 마수왕의 탑과 비슷한 무언가를 찾는 일이었다.

    정보를 받은 이유도 그걸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사실 하툰 족의 정보 중에는 생각보다 쓸 만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현석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메디나툰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군.’

    메디나툰은 숲에서 가장 큰 부족의 이름이었다. 다른 부족들이 도시라 부르는 부족이 바로 메디나툰이었다.

    그 정도로 규모가 크고 훨씬 많이 발전해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가진 정보도 많을 것이고, 그곳으로 모여드는 정보도 상당할 것이다.

    현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메디나툰으로 간다.”

    “예?”

    “이렇게 갑자기요?”

    “메디나툰이 어딘데?”

    현석은 대답 대신 밖으로 나갔다. 일행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현석을 따라서 나갔다.

    모든 일행이 나오니 현석은 집을 아공간으로 넣어 버렸다. 그제야 일행들이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정말 지금 당장 가시려고요?”

    “굳이 여기서 시간 낭비할 필요 있나?”

    현석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낫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지난번에 화이트홀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하지 않았던가.

    아직 밖에는 렉스턴 에너지라는 강력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미래산업과 볼텍스 암시장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 그리 쉽게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서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툰 족의 정보 중에는 지도가 포함된 것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것이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또한 절반 정도는 그림이 아닌 글로 설명이 되어 있었기에 그것만으로 어딘가를 찾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석은 나름대로 그것들을 하나로 모아 머릿속에 담았지만, 대충이라도 그려진 큰 지도가 없으면 그것들을 활용할 방법이 없었다.

    현석 일행이 공터를 벗어나자 어딘가에서 하툰 족 사람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 중에는 족장인 싸킨도 있었다.

    싸킨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혹시 저희 부족에 뭔가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메디나툰에 가야 한다.”

    싸킨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메디나툰 말씀이십니까?”

    메디나툰은 사실 모든 부족들이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힘이 워낙 크기 때문에 그들이 딴맘을 먹는 순간 거대한 전쟁의 불길이 숲을 뒤덮을 게 뻔했다.

    “메디나툰에 가시려면 지도가 필요하실 겁니다.”

    싸킨은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선 전사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 전사가 부리나케 어딘가로 달려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도를 드리겠습니다.”

    지도라는 말에 현석이 눈을 빛냈다. 안 그래도 지도가 하나 필요하던 참인데 이렇게 내주겠다니.

    “메디나툰에 가시려면 그쪽으로 이어지는 부족들을 거쳐 가시는 게 좋습니다. 지도도 그런 식으로 그러져 있습니다.”

    싸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걸 가져가시면 대부분의 부족을 지나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문제가 될 만한 부족은 지도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곳만 피해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싸킨이 내민 것은 목걸이였다. 마수의 뼈로 만들어진 목걸이였는데, 상당히 특이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주술의 힘이 깃든 목걸이였다.

    “우리 하툰 족을 상징하는 신물(信物)입니다.”

    더불어 그것은 족장을 대리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다른 부족에 가서 협상을 할 때, 족장의 권위와 권한이 필요할 때 책임자에게 주는 물건이었다.

    이걸 내준다는 건 현석을 자기 자신만큼이나 믿고 있다는 의미였다.

    현석도 그걸 알기에 눈에 이채를 띠고 족장을 쳐다봤다.

    설마 부족의 신물을 내줄 줄은 몰랐다.

    잠시 후, 전사가 가져온 지도가 현석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현석은 지도와 신물, 그리고 싸킨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본 다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중에 다시 오지.”

    그 말을 남기고 하툰 족을 떠나간 현석 일행을 싸킨이 더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끝까지 배웅하며 바라봤다.

    * * *

    대련방주는 심각한 눈으로 병실 침대에 누운 대련삼룡을 둘러봤다.

    “상태가 어떤지 말해보아라.”

    소정화가 공손히 대답했다.

    “회생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마력이 소실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련방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다는 뜻이로구나.”

    소정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련방주는 잠시 대련삼룡을 둘러보다가 냉정히 몸을 돌려 병실에서 나갔다.

    소정화가 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어차피 그녀도 병실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전 생성지역에 가보겠습니다.”

    소정화의 말에 대련방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나도 같이 갈 테니 잠시만 기다리거라.”

    소정화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예. 일단 차부터 대기시키겠습니다.”

    잠시 후, 대련방주를 태운 차가 퀸급 던전 생성지역으로 향했다.

    어차피 근처에 있는 병원이었기에 금방 도착했다.

    소정화는 대련방주를 던전으로 안내하면서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데 여긴 왜 오셨는지…….”

    “한쪽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예?”

    “이쪽 화이트홀이 언데드가 나오는 곳인가?”

    대련방주가 화이트홀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꾸준히 보고를 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소정화는 속으로 살짝 투덜거렸지만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대련방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오늘 대대적인 언데드 소탕에 들어간다. 이쪽 화이트홀을 완벽하게 정리해 버릴 예정이야.”

    “예?”

    소정화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애초에 그런 얘기는 못 들었다.

    또한 대련방의 전력으로는 아직 이곳 화이트홀을 단숨에 쓸어버리기엔 많이 모자랐다.

    “우릴 도와주기로 한 사람들이 조만간 도착할 게다.”

    소정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외부의 힘을…… 빌리실 생각이십니까?”

    “외부의 힘이라니. 외부와 손잡아서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또 외부의 힘을 빌릴 리가 있겠느냐? 예전부터 갖고 있던 우리 힘이니라.”

    대련방주의 입가가 음험하게 비틀렸다.

    * * *

    화이트홀 앞에 100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복장이었고, 같은 장비를 착용했는데, 가슴 부분에 대련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들이 착용한 장비 중 손목보호대나 다리에 찬 각반, 그리고 들고 있는 검에 진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상당히 귀한 아티팩트였다.

    그런 걸 100명이 넘는 인원에게 똑같이 지급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도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장비보다 오히려 그들 자체가 가진 힘이 더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 앞에 선 대련방주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운 보람이 있었다. 물론 예전에 그가 우연히 그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절대 키울 수 없는 무사들이었다.

    대련방주는 자신이 평생 가질 수 있는 모든 행운 중 절반을 거기에 썼다고 여겼다. 그 정도로 훌륭한 발견이었다.

    대련방주의 손가락에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는데, 같은 모양의 반지가 모든 플레이어들의 손가락에도 끼워져 있었다.

    대련방주가 발견한 건 바로 그 반지였다.

    그 반지는 아주 특별한 아티팩트였다. 그 덕분에 절대 배신할 수 없는 강력한 무사를 이렇게나 많이 키워낼 수 있었다.

    ‘반지가 좀 더 있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이 반지는 마치 전설에 나오던 고독(蠱毒)과 비슷했다. 대련방주가 낀 반지가 모고(母蠱)인 셈이고, 무사들이 낀 반지가 자고(子蠱)인 셈이었다.

    자고를 낀 무사들은 모고를 낀 대련방주의 말에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단 한 번 끼운 반지는 절대 빠지지 않았다.

    마치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건 대련방주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반지를 끼우고 나니, 그걸 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왠지 좀 꺼림칙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이 반지 자체도 굉장한 아티팩트였다.

    일단 반지를 낀 순간부터 힘이 훨씬 강해지고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리고 체력이나 마력도 대폭 늘어났다.

    그러니 굳이 뺄 필요가 없는 아티팩트였다. 아마 이보다 더 좋은 아티팩트를, 그것도 반지 형태의 아티팩트를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대련방주는 플레이어들을 슥 둘러봤다. 더없이 든든했다.

    “이제부터 이 화이트홀을 정복하러 간다. 보이는 모든 마수를 박살 내라. 너희는 그거면 된다.”

    대련방주는 허리춤에 매단 아공간 아티팩트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제부터 자신이 직접 가서 저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걸 여기에 담아올 것이다.

    대련방주는 이번에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이 화이트홀을 지금 자신이 집어 삼키겠다고 말이다.

    이미 흑시 측과도 얘기를 끝냈다. 이제부터 이 퀸급 던전 생성지역은 흑시의 소유가 될 것이다.

    지금 피라밋 암시장 측과 협상 중이니 아마 조만간 결판이 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이 화이트홀을 완벽하게 정복하는 것뿐이었다.

    이곳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얻을 게 많았다. 어쩌면 이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었다.

    그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화이트홀이었다.

    자신이 이곳을 단숨에 클리어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차근차근 확장해 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얻은 걸 생각하면 앞으로 얻게 될 것들이 얼마나 대단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자, 가자.”

    대련방주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플레이어들이 화이트홀로 진입했다.

    대련방주는 가장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느긋하게 뒤따라 들어갔다.

    대련방주는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기겁을 했다. 사방이 언데드로 가득 차 있었다.

    “뭐, 뭐야! 다 소탕했다고 했잖아!”

    가만히 서서 놀라고 있을 틈도 없었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언데드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꽈득! 꽈득! 꽈득!

    대련방주의 검에 언데드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한 방에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너무나 빨랐다. 그리고 그들의 힘이 생각보다 셌다.

    먼저 들어갔던 플레이어들은 다들 사방에 흩어져 언데드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언데드의 힘이 보고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것 같았다.

    이대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대련방주는 서둘러 외쳤다.

    “일단 후퇴한다! 다들 이쪽으로 모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언데드의 수가 너무 많아서 한데 뭉쳐있지 않으면 각개격파 당하기 십상이었다.

    대련방주의 명령을 들은 플레이어들이 언데드와 싸우며 조금씩 이동했다.

    그래도 대련방주가 있는 곳이 출구와 가장 가까웠기에 그쪽으로 모여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이내 다들 대련방주 근처로 모여들었다.

    대련방주는 분노에 찬 눈으로 이를 갈았다. 서른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죽은 것이다.

    ‘그나마 반지는 대부분 회수해서 다행인가?’

    플레이어들이 죽은 동료의 손가락을 잘라 반지를 회수해 왔다. 그 반지 회수 과정에서 대여섯 명이 더 죽었다는 사실이 짜증났지만 어쨌든 도망칠 준비가 다 되었다.

    “가자.”

    대련방주는 가장 먼저 출구로 나갔다. 그러자 나머지 플레이어들도 따라 나갔다.

    이내 그 자리는 언데드들로 다시 채워졌다.

    < 메디나툰으로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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