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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58화 (258/326)
  • < 두 번째 세상으로 3 >

    주술사도 그렇고 쿠다툰도 그렇고 지금 벌어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머지 사냥꾼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냥 주술이 깨진 게 아니었다. 주술이 역으로 들어왔다.

    방금 주술사가 펼친 주술에 쿠다툰 일당이 걸려든 것이다.

    다들 지독한 무기력에 휩싸였다. 그리고 온몸에서 힘이 쭉쭉 빠져나갔다.

    주술사와 쿠다툰이 불신 가득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두 사람의 시선에 피식 웃었다.

    “내가 마력에 좀 민감한 몸이라서.”

    이해할 수 없었다. 마력에 민감한 게 뭐가 어쨌단 말인가. 주술은 마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힘이었다. 적어도 쿠다툰이나 주술사가 알기로는 그랬다.

    현석도 이들에게 더 얘기할 생각이 없었다. 굳이 주술도 마력을 기반으로 쓴다는 사실을 말해줘서 뭐하겠는가.

    주술에 쓰이는 힘은 비틀린 마력이었다. 아마 현석 정도 되는 수준이 아니라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그렇지 않았다. 현석은 마력의 주인이었다. 그것도 아주 완숙한.

    “크윽!”

    쿠다툰이 신음과 함께 주저앉았다. 눈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그저 무기력하고 힘이 없을 뿐이었다. 그리고 몸에서 마력이 슬슬 빠져나갔다.

    이 모든 것이 주술의 힘이었다.

    현석은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아공간에서 로프를 꺼냈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물어볼 것도 많고, 이들의 부족에도 가봐야 한다.

    보아하니 이곳은 지난번에 갔던 세상과는 좀 다른 듯했다. 그러니 일단 최대한 정보를 많이 얻는 것이 좋았다.

    현석은 쓰러진 마수 사냥꾼들을 로프로 칭칭 묶었다.

    다들 멍하니 그런 현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주술에 안 걸렸으면 독기 어린 눈으로 노려봤겠지만, 지금은 그럴 의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술의 위력은 정말 지독했다.

    * * *

    “으아아! 진짜 간만에 푹 잔 것 같네. 몸이 왜 이렇게 상쾌하고 날아갈 것 같지?”

    라이언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리고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다른 일행도 비슷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다들 반응이 라이언과 똑같았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모든 피로가 싹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다들 어디 갔죠?”

    “설마 일찍 일어나서 먼저 가버린 건가요?”

    일행의 반응에 현석이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빽빽하게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뭔가가 보였다. 꽁꽁 묶인 채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 저 사람들!”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입에 재갈을 물려놓긴 했지만 얼굴 자체를 가린 건 아니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류지혜가 황당한 얼굴로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현석은 담담히 어젯밤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었다. 당연히 얘기를 모두 들은 일행은 분개했다.

    “뭐 저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 다 있죠?”

    “우리가 구해줬는데!”

    라이언이 벌떡 일어났다.

    “그냥 잡아두고 끝이야? 몇 대 때리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릴 거 같은데?”

    현석 일행의 모든 것을 빼앗고 노예로 만들고자 한 놈들이었다.

    “그냥 싹 죽여 버릴까?”

    죽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라이언이 섬뜩한 눈으로 쿠다툰 일당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저들은 현석이 잡았다. 사실 현석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저들의 수작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새삼 정말 위험한 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쩌실 건가요?”

    류지혜의 물음에 현석이 나무 옆에 묶여 있는 마수 사냥꾼들을 서늘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저들의 부족으로 가야지.”

    * * *

    현석 일행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나무를 몇 그루 잘라 대충 이어 붙여 넓적한 판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쿠다툰 일당을 묶은 채로 다 실었다.

    그리고 로프를 판 앞에 매달아 그걸 질질 끌고 갔다.

    당연히 승차감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그저 튼튼함에만 초점을 맞추고 만들었는지라 묶인 채 태워진 쿠다툰 일당은 이동 내내 죽을 맛이었다.

    바닥은 울퉁불퉁했고, 그걸 끌고 가는 라이언과 추광열은 탄 사람들의 안전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실제로 가다가 허공에 퉁 하고 튀어 올라 밖으로 튕겨 나가 버리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그런 자들은 뒤에서 따라가던 팀 메인퀘스트가 알아서 처리했다.

    그냥 지나가면서 목덜미를 꽉 쥐고 판 위로 휙 던지면 끝이었다.

    온몸이 칭칭 묶여 있어서 허공에서 자세를 제어해 착지한다거나 충격을 흡수한다거나 하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기에 그럴 때마다 모진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몸을 단단히 보호해주던 마력의 힘이 지극히 약해졌기에 더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의 마력을 약화시킨 건, 그들이 현석 일행에게 걸려고 했던 주술이었다.

    한 마디로 자승자박인 셈이었다.

    어쨌든 쿠다툰은 이 고통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서라도 부족으로 가는 가장 짧고 빠른 길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중간에 위험한 마수가 출몰하는 지역 한 군데를 지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보통 마수 사냥을 할 때 피하는 지역인데, 거길 관통해 가면 못해도 다섯 시간은 절약할 수 있었다.

    쿠다툰의 망설임을 포착한 현석은 그를 다그쳐 이유를 알아냈다.

    그리고 당연히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현석도 굳이 마수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그 마수들은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몽땅 몰려온다고!”

    마수 출몰지역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쿠다툰의 발악이 심해졌다.

    “빠르고 힘도 세고 머리도 좋은 마수들이야! 절대 우릴 가만 내버려 둘 리가 없다고!”

    쿠다툰의 말에 현석이 힐끗 그를 쳐다봤다.

    “머리가 좋으면 너희는 안전할 텐데? 일단 움직이는 우리부터 잡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 말에 쿠다툰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실 다른 마수라면 저런 말에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마수한테 살육의 본능 빼고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가는 지역의 마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로 영악했다.

    ‘그리고 포악하고 강하지.’

    부족의 누구도 그놈들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놈들을 만나면 일단 도망치는 것이 정답이었다.

    어쨌든 이제 늦어버렸다. 그놈들의 영역에 들어와 버렸으니까.

    ‘더럽게 빨리도 가네.’

    어찌나 이동 속도가 빠른지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그러니 벌써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는가.

    현석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따라가던 일행도 다들 제자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마수다.”

    현석의 말에 다들 살짝 긴장했다. 어쨌든 이 숲의 마수는 하나하나 쉬운 놈이 없었다.

    물론 처음 만났던 놈들에 비해 바깥쪽에 있는 놈들은 훨씬 상대하기 수월했지만, 그래도 위험한 건 분명했다.

    이내 마수들이 나타났다. 다들 덩치가 거대했다. 5층쯤 되는 빌딩이 우뚝 서 있는 것 같았다.

    “공룡?”

    라이언이 마수를 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뿐 아니라 다들 마찬가지 생각을 했다. 나타난 마수의 생김새가 육식 공룡 같았다.

    흔히 영화나 사진으로 보던 티라노 사우르스와 비슷했다. 물론 정확히 그런 모양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보아하니 성질도 육식 공룡이랑 비슷한 것 같았다.

    쿠워어어어!

    한 차례 포효를 내지른 마수가 냅다 달려들었다. 마치 육중한 전차가 달려드는 듯했다.

    나타난 마수의 수는 무려 열, 하지만 달려드는 건 셋뿐이었다.

    나머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포위망을 구축하면서 말이다.

    똑똑한 놈들이라더니 정말로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수는 마수일 뿐이었다.

    쿵쿵쿵쿵쿵!

    마수가 지축을 울리며 달려들었다.

    현석은 오히려 마수에게 성큼 다가가 마수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마수의 다리가 단숨에 잘렸다. 그리고 균형을 잃은 마수가 그대로 쓰러졌다.

    꽈아앙!

    바닥에 쓰러진 마수는 동료 마수 앞으로 쭉 미끄러졌다. 달리던 방향은 그쪽이 아니었는데, 현석의 교묘한 힘조절이 방향을 약간 비틀어 버린 것이다.

    뻐어억!

    마수와 마수가 부딪혔다. 하나는 다리가 잘려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걸려 허공에 붕 떠올랐다.

    꽈아앙!

    바닥에 떨어진 마수를 밟고 현석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남은 한 마리 마수의 목을 그대로 쳐버렸다.

    슈각!

    아주 깔끔하게 목이 잘렸다.

    세 마리 마수를 장난하듯 간단히 처리한 것이다.

    바닥에 쓰러진 두 마리 마수는 라이언이 나서서 정리했다. 싸우자고 달려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쓰러져 있는 놈들의 멱을 따는 것쯤 라이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석은 남은 마수들을 스윽 둘러봤다. 그리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마수들의 눈빛에서 분노의 감정을 읽은 것이다.

    ‘재미있군.’

    현석은 사실 마수의 반응보다는 심안을 통해서 확인한 이름이 더 흥미로웠다.

    [양산형 용]

    이름만 두고 추측하자면, 이 마수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마수였다.

    그것도 양산을 통해 생산해낸 생체병기다.

    현석은 직감적으로 이놈들의 비밀을 캐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을 본 순간 신의 파편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식의 예감은 거의 틀린 적이 없었다. 아마 이번에도 맞을 것이다.

    현석은 남은 일곱 마리 마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놈들을 정리해 버렸다.

    꾸워어어어어!

    그놈들도 그냥 맥없이 죽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단말마를 뱉어 동료를 불렀다.

    그 소리를 들은 쿠다툰 일당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도, 도망쳐! 더 늦기 전에 피해야 돼!”

    쿠다툰의 외침에도 현석은 그를 힐끗 쳐다봤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쿠다툰은 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방금 저놈들이 동료를 불렀어! 피하지 않으면 이 지역에 있는 저 마수들이 몽땅 몰려온다고!”

    현석은 서늘한 눈으로 쿠다툰을 쳐다봤다.

    “그러라고 기다리는 중이다.”

    “뭐?”

    쿠다툰은 현석의 말에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현석의 표정이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상황 자체를 염두에 두고 일을 벌였다는 뜻이다.

    ‘미친 놈. 어디 나중에도 저따위 표정을 지을 수 있나 보자.’

    쿠다툰은 포기한 얼굴로 누워버렸다.

    이제 살아남기는 글렀다.

    두두두두두두!

    저 멀리서 마수들이 맹렬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진짜 늦었다.

    * * *

    “이런…… 미친!”

    쿠다툰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사방이 마수의 시체로 뒤덮여 있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는데, 방금까지 들었던 감정은 그저 불쌍함과 연약함이었다.

    저 무서운 놈들이 불쌍하고 약해 보이다니, 새삼 현석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 마음에 사무쳤다.

    “자, 이제 상황 끝났으니 다시 이동한다.”

    현석은 일행이 마수로부터 마정석을 모두 뽑아내자, 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쿠다툰 일행은 이제 쥐죽은 듯 웅크리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는 건 무모한 짓이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무모한 짓을 한 건 자신들이었다.

    어쩌자고 저렇게 강하고 무서운 놈들을 건드렸단 말인가.

    “부족까지 얼마나 남았지?”

    현석의 무심한 물음에 쿠다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쩌면 오늘 자신의 부족이 정말 몹쓸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그러면서도 길을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현석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젠 공포에 질려서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마수 위험지역을 벗어나면 부족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길을 설명해 주는 편이 나았다.

    아무리 고통을 견디고 감춰봐야 결국 발견하고 말 테니까 말이다.

    현석 일행을 여기까지 안내한 이상, 모든 게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저 쪽으로 가라. 일단…… 이 지역은 벗어나야지.”

    체념한 듯한 쿠다툰의 말이 이어졌다.

    “여길 벗어나서 강 하나를 건너면 도착할 거다.”

    쿠다툰이 사는 부족의 입장에서 그 강은 아주 중요했다.

    기본적인 식수를 해결해 주기도 하거니와, 이곳에 사는 무시무시한 마수들이 그 강을 건너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강이 있었군. 이 마수들이 잠길 정도로 깊은 물에 들어갈 리 없으니까.”

    쿠다툰은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대체 그건 또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이놈…… 설마 다 알면서 날 떠본 건가?’

    쿠다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왠지 조금 전보다 현석이 훨씬 더 무서워졌다.

    < 두 번째 세상으로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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