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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57화 (257/326)
  • < 두 번째 세상으로 2 >

    마수 사냥꾼들은 술까지 갖고 다녔다. 놀랍게도 그들은 아공간 아티팩트를 갖고 있었다.

    거기에 술과 음료, 그리고 각종 사냥 소모품들을 넣고 다녔다.

    현석은 그들이 갖고 다니는 아공간 아티팩트를 보며 눈을 빛냈다.

    지금까지 현석이 보거나 경험한 아공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아티팩트였다.

    가죽주머니 형태의 아공간과 호리병 형태의 아공간, 두 가지가 있었는데, 호리병 형태의 아공간에는 술이나 음료 같은 액체를 보관하고, 가죽주머니에 마수의 시체나 각종 소모품을 보관했다.

    그 정도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데, 그 아티팩트들의 마력 운용 방식이 상당히 특이했다.

    일반적인 마법을 통해 만든 아티팩트는 절대 아니었다.

    “자자, 일단 마시자고!”

    쿠다툰이 술이 든 호리병 아공간을 들며 외쳤다. 그는 일일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컵에 술을 가득가득 부어주었다.

    현석은 컵을 내밀었다. 현석의 컵을 본 쿠다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컵은 뭔가? 설마 유리로 컵을 만든 건가?”

    현석이 피식 웃었다. 이건 그저 커다란 머그컵이었다. 하지만 쿠다툰의 눈에는 정말 대단해 보였다. 게다가 머그컵에 그려진 그림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굉장하군.”

    쿠다툰은 현석의 컵에 술을 따르며 중얼거렸다. 그들 부족의 컵은 다들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모양도 투박하고 크기에 비해 안에 들어가는 술의 양도 그리 많지 않았다.

    쿠다툰은 현석 일행의 컵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다들 커다란 머그컵을 들고 있었다.

    그제야 마수 사냥꾼들도 현석 일행의 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머그컵을 바라봤다. 정말 갖고 싶은 모양이었다.

    “저…… 이거 하나 드릴까요?”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류혜연이었다. 그녀는 마수 사냥꾼들의 그 간절한 눈빛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그런 귀한 걸 주시겠다고요? 저, 정말입니까?”

    류혜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흔하디흔한 머그컵일 뿐이었으니까.

    “그럼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휴대용 아공간을 뒤져 머그컵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마수 사냥꾼에게 내밀었다.

    사실 마음 같아선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주고 싶었지만 그녀도 가져온 머그컵이 그것뿐이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어쨌든 류혜연에게 머그컵을 받은 마수 사냥꾼은 뛸 듯이 기뻐하며 그것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그리고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술을 따라 마셨다.

    다른 마수 사냥꾼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들의 눈에 담긴 간절함이 더욱 짙어진 것이다.

    특히 류혜연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마수 사냥꾼 중 절반 이상이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한 번 준 사람이 더 잘 줄 거라고 여긴 것이다.

    현석은 그 광경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머그컵을 꺼내기 시작했다.

    현석의 아공간은 다른 사람의 아공간과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 얻었던 칸으로 구분되는 아공간은 벌써 1000칸이 넘었다.

    그리고 공간으로 이루어진 아공간은 몸 곳곳에 소지하고 있었다. 각각 엄청난 크기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아공간들이었다.

    그 중 몇몇은 아예 마트 하나를 통째로 옮겨다 놓은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많은 물건을 담아 두기도 했다.

    그러니 머그컵 몇 개 정도 주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건이 떨어지면 컨테이너박스를 꺼내 다시 채우면 되고 말이다.

    류혜연에게 받은 한 명을 제외하고 12개의 머그컵을 꺼내놓은 현석을 보며 모든 마수 사냥꾼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쿠다툰이 대표로 나서서 현석에게 물었다.

    “이거…… 설마 우리 주려고 꺼낸 건가?”

    “맞아. 그런데 그냥 주면 서로 불편하잖아. 그렇지?”

    쿠다툰이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대로 그냥 받으면 우리도 마음이 편치 않지. 다들 안 그래?”

    “맞습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일제히 외쳤다. 그들의 눈에는 이미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머그컵만 보였다.

    ‘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집착들을 하는 거야?’

    문득 현석은 이 상황이 뭔가 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게 분명하니 일단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대가로 뭘 주면 되겠나? 오늘 잡은 마수의 시체를 넘기면 될까?”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너희 부족으로 우릴 한 번 초대해 주는 건 어때?”

    쿠다툰의 입이 좌우로 쫙 찢어졌다.

    “그거야 얼마든지! 환영하네, 친구들. 으하하하!”

    쿠다툰은 크게 웃으며 머그컵 하나를 냉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품고는 술을 조심스럽게 따라 마셨다.

    다들 우르르 달려와 조심스럽게 머그컵을 하나씩 들었다.

    어찌나 소중하게 다루는지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시 떠들썩한 술판이 시작됐다.

    현석 일행은 자연스럽게 한데 모였다. 일단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여기 사람들도 제국어를 쓰네요.”

    “그러게. 뭔가…… 발음이 살짝 미묘하긴 하지만 말이야.”

    라이언이 그렇게 말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자신도 제법 말 좀 한다고 자랑이라도 하는 듯했다.

    어쨌든 확실히 이곳 사람들도 제국어를 썼다. 생김새는 크락실리아가 있는 세상의 사람들과 좀 달랐다.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색, 그리고 얼굴형이 좀 달랐다.

    그래도 이들 역시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는 꼭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숲의 종족도 있고, 수인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머그컵을 왜 저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거죠? 심지어 저걸로 술도 안 마셔요.”

    몇몇은 머그컵에 술을 따라 조심스럽게 마셨다. 하지만 대부분 머그컵을 안전한 아공간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다.

    “술 때문이 아니라는 건 이걸로 확실해졌네요.”

    “가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왠지…… 저들의 부족에 뭔가가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좀 쉬는 게 좋겠어. 어쨌든 잠은 자야하니까.”

    다들 현석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저 마수 사냥꾼들이 없었다면 아마 현석은 아공간에 보관한 집을 꺼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 된다. 저들까지 모두 머무르기에는 집이 좁다. 그리고 그런 걸 함부로 공개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다들 각자 준비한 침낭을 꺼냈다. 그리고 적당히 자리를 잡고 침낭에 들어갔다.

    현석 일행은 되도록 흩어지지 않고 모여서 잤다.

    솔직히 아직 저들을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 아닌가.

    그리고 사람을 일부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 지금이야 은인처럼 대해주고 있지만, 잠든 사이에 일행을 붙잡아 노예로 삼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도 일단은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긴장감도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순식간에 잠이 찾아왔다. 안 그래도 오늘 강행군을 하는 바람에 피로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그 피로가 현석 일행을 깊은 잠의 세계로 데려갔다.

    현석은 근처 나무에 기대고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편히 잘 생각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현석은 누운 채 자신의 마력을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사방으로 풀어놓았다.

    그리고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쿠다툰을 비롯한 마수 사냥꾼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모닥불은 점점 더 크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위에 익어가는 음식들이 더 짙은 냄새를 풍겼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 * *

    쿠다툰은 옆에 있던 마수 사냥꾼에게 눈짓을 했다. 그가 가죽 주머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파란색 가루가 다득 들어 있었다.

    그는 그 파란 가루를 모닥불에 솔솔 뿌렸다.

    화르륵!

    모닥불이 더욱 크게 타올랐다.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확 풍겼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모닥불에 굽던 고기와 비슷한 냄새였다.

    나머지 마수 사냥꾼들이 모닥불에서 나는 연기를 다른 쪽으로 보내려고 커다란 나뭇잎으로 연신 부채질을 했다.

    그들이 하려는 건 연기를 현석 일행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여러 번 해본 솜씨인 듯 부채질이 아주 익숙했다. 푸른 연기가 현석 일행을 향해 날아갔다.

    쿠다툰은 계속 하라는 듯 손을 빙빙 돌렸다.

    그러자 주머니를 든 사내가 푸른 가루를 더욱 많이 모닥불에 뿌렸다.

    화르륵!

    불길이 더욱 거게게 타올랐고,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훙! 훙! 훙!

    부채질이 더욱 강해졌다. 연기들이 훅훅 밀려나 현석 일행에게 날아갔다.

    마치 푸른 안개가 현석 일행을 감싼 듯했다. 푸른 연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

    쿠다툰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주머니를 든 사내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주머니 입구를 꽉 묶고 그것을 아공간에 넣었다.

    쿠다툰의 시선이 이번엔 다른 사내에게 향했다.

    그는 쿠다툰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품에서 기묘한 모양의 작은 지팡이 하나를 꺼냈다.

    마치 기괴한 모양의 나무뿌리를 중간에 뚝 때어내서 만든 듯한 지팡이였다.

    나무뿌리 지팡이에 기묘한 빛이 어렸다. 사내는 그것을 들고 눈을 까뒤집으며 기괴한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지팡이가 가볍게 떨렸다. 사내의 주문은 너무 낮고 이상해서 뭐라고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주변 마력이 크게 요동치며 지팡이로 빨려 들어갔다가 특이한 파장을 안고 다시 튀어나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걸 본 쿠다툰이 씨익 웃었다.

    “끝났군.”

    지금 한 건 적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주술이었다.

    여기 한 번 걸려들면 어찌나 깊게 잠드는지 자는 동안 팔다리를 잘라가도 모른다.

    실제로 이들은 살을 찢거나 꿰매는 시술을 할 때 이 주술을 이용한다.

    일단 주술이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으니 저들은 깊은 잠에 빠져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를 게 확실했다.

    “그나저나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쿠다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현석 일행에게 다가갔다.

    “어쩔까요?”

    옆으로 따라온 주술사가 물었다. 그는 쿠다툰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다.

    “어쩌긴. 일단 다들 아공간 하나씩 갖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부터 빼앗아야지. 그리고 무기랑 장비도 제거하고. 옷도 싹 벗겨.”

    “예.”

    주술사가 공손히 대답했다. 쿠다툰은 그저 단순한 마수 사냥꾼들의 대장이 아니었다.

    그는 부족장의 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의 말만 잘 듣고 따르다보면 언젠가 부족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노예 낙인도 찍으면 좋은데, 보아하니 다들 수준이 높아서 쉽지 않은 것 같아. 그러니까 일단 단단히 구속부터 해. 괜히 상처내지 말고.”

    “예. 수준 높은 자들은 예민한 법이니까요.”

    “그렇지. 괜한짓 하다가 중간에 깨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아까 봤지? 마수들 상대하는 거. 저놈들 보통이 아니야.”

    그렇다는 얘기는 노예로 만들면 정말 써먹을 데가 많다는 뜻도 된다.

    쿠다툰은 씨익 웃으며 주술사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주술사가 남은 사냥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냥꾼들이 현석 일행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현석이 눈을 번쩍 떴다.

    콰우우우우!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몰아쳤다. 현석 일행에게 다가가던 사냥꾼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다들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인해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현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일행은 여전히 세상모르고 곯아 떨어져 있었다.

    일행을 힐끗 돌아본 현석이 피식 웃었다.

    방금 맡은 푸른 연기와 주술은 사실 이런 일만 당하지 않으면 아주 몸에 이로웠다.

    쌓인 피로를 빠르게 풀어주고 몸에 활력을 심어준다. 그리고 독을 비롯한 속성에 대한 내성까지 키워주는 훌륭한 주술이었다.

    물론 고작 한 번 겪었다고 큰 효과를 보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피로를 풀어주고 몸에 활력을 심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너희 부족은 은인을 이렇게 대하나?”

    현석이 살짝 빈정거리듯 말했다. 쿠다툰은 그 말에 울컥했다. 하지만 욱해서 덤벼들 수는 없었다.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는 아까 충분히 확인했다.

    ‘그래도 승산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쿠다툰은 현석에게 안 보이게 손을 슬그머니 뒤로 하고 주술사에게 손짓을 보냈다.

    안 그래도 주술사는 이미 다음 주술을 준비 중이었다.

    주술 준비가 끝난 주술사가 씨익 웃었다.

    “오늘 우리와 함께 술과 음식을 먹은 이상, 절대 피할 수 없을 거다.”

    주술사가 나무뿌리 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지팡이에서 핏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주술사의 팔은 피로 그린 문양이 가득했다. 그 문양들도 붉게 빛나고 있었다.

    현석은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핏빛이 계속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현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내 주술사가 지팡이를 내리고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허억!”

    그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도대체…… 도대체 뭐냐? 뭘 어떻게 한 거지? 대체 왜 주술이 안 먹히는 거야!”

    주술사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현석은 담담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깨진 지 오래니까.”

    차갑고 무거우면서도 경악에 휩싸인 분위기가 장내를 칭칭 휘감았다.

    < 두 번째 세상으로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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