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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56화 (256/326)
  • < 두 번째 세상으로 1 >

    후두둑!

    세 명의 사내가 화이트홀에서 쏟아지듯 나왔다. 그들의 몸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화이트홀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정화는 깜짝 놀라 주변의 플레이어들에게 외쳤다.

    “포션을 부어!”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이 가진 포션을 일단 마구 부었다.

    치이이익!

    뿌연 수증기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몇몇 플레이어들이 달려들어 세 사내의 입에 포션 병을 하나씩 물렸다.

    “쿨럭! 쿨럭!”

    포션이 만능 치료제는 아니다.

    팔다리가 잘라져도 얼른 갖다 붙이고 접합 부위에 잔뜩 붓고 엄청난 양을 마시면 말끔해지기도 하는 것이 포션이다.

    하지만 그 얘기는 치료 시기를 놓치면 큰 부상이나 상처는 치료가 어렵다는 뜻도 된다.

    지금 대련삼룡의 상태가 딱 그랬다.

    온몸에 쏟아 부은 포션 덕분에 피부는 간신히 재생시켰지만 근육과 인대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특히 사타구니 부분의 상처는 아예 회복이 불가능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대련삼룡은 포션을 잔뜩 받아 계속 마셨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레벨은 그대로이겠지만 스탯이 엄청나게 하락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정화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련삼룡을 바라봤다.

    ‘저런 꼴이 될 줄이야…… 피해가…… 너무 막심한데?’

    그녀는 벌써부터 대련방주에게 이번 일을 보고할 생각에 골머리가 지끈거렸다.

    분명히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이다.

    대련삼룡은 대련방의 역량을 잔뜩 동원해 공들여 키운 인재들이었다.

    차세대 대련방을 이끌어갈 기둥들이었는데, 저런 폐인 꼴이 되어버렸으니 그동안 헛돈과 헛시간을 쓴 셈이 되어 버렸다.

    ‘내 책임은 아닌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저들을 안에 들어가게 둔 것도 죄라고 우기면 죄가 될 수 있는데.

    소정화는 한숨을 푹 내쉬며 전화기를 들었다.

    * * *

    현석은 킹 젤리웜에게서 한참 떨어진 곳에 내려선 다음, 용을 돌려보냈다.

    아무래도 용을 타고 날아서 이동하는 것보다는 직접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았다.

    지금은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 전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 가는 것이니까.

    “정말 크긴 크네요.”

    류지혜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굉장히 멀리 왔는데도 여전히 커다란 젤리웜이 보였다.

    과연 나중에 저 마수 안으로 들어가 화이트홀을 찾을 수 있을까?

    킹 젤리웜의 크기는 거대한 산만 했다. 그냥 뒷산 정도가 아니라 마치 한라산이나 백두산 같은 높고 거대한 산 같았다.

    “저 마수를 죽일 수는 있을까요?”

    류지혜의 말에 라이언이 고개를 저었다.

    “저걸 어떻게 죽여? 보니까 복원력도 있는 것 같던데. 우리가 아무리 공격해 봐야 생채기 수준도 안 될걸?”

    그 말은 맞다. 백두산이나 한라산에 무수한 포격을 가한다고 해서 그 산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저 젤리웜은 복원력까지 갖고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복원력을 말이다.

    “저런 건 보통 안에 코어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은데 말이야.”

    라이언의 말에 추광열이 슬쩍 거들었다.

    “코어까지 단번에 깨트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하거나 코어의 위치만 파악할 수 있다면…… 어쩌면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거기에 답을 준 것은 현석이었다.

    “킹 젤리웜의 코어는 만 개가 넘는다.”

    그 말에 다들 질린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만 개가 넘는 코어가 있다니.

    “그럼 코어를 일일이 찾아서 다 박살을 내면 되겠군. 아까처럼 굴을 이리저리 파면서 말이야.”

    라이언이 얼른 떠올린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거대한 마수를 한 방에 소멸시킬 수 있을 만한 스킬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현석이 라이언의 의견에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참고로 코어도 재생한다.”

    그렇다면 저걸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진짜 한 방에 죽여야 한다는 뜻이니까.

    “저걸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라이언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현석을 바라봤다.

    ‘저 녀석이라면…….’

    왠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꼭 한 방에 죽이는 게 아니라도 왠지 저 거대한 산만 한 괴물을 죽일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저거 안 죽이고 그냥 갈 건가?”

    라이언이 현석에게 다가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현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굳이 길을 열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 말에 라이언이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휙 돌려 킹 젤리웜을 바라봤다.

    젤리웜이 꽉 채우고 있는 통로도 확인했다. 젤리웜은 절벽 사이에 끼어 있었다. 하지만 그 절벽은 그냥 보통 절벽이 아니었다.

    가서 직접 만지고 확인한 건 아니지만 비슷한 걸 이미 겪어봤기에 알 수 있었다.

    “설마…… 옆에 있던 화이트홀이 저쪽에 있는 거였어?”

    현석은 굳이 대답해주지 않고 걸음을 서둘렀다.

    라이언도 대답을 들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 정도야 척하면 착하고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라이언뿐 아니라 나머지 일행도 대부분 놀란 눈치였다.

    “저런 게 있으니……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라이언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현석을 바라봤다. 어느새 현석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다들 서둘러 움직였다. 이런 미지의 세상에서 현석과 떨어졌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사실 그림자들이야 답답하고 좀 괴롭긴 해도 죽이지는 않으니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 그림자들을 만나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아마…… 앞으로 만나게 될 건 그보다 훨씬 무서운 놈들일지도 몰라.’

    라이언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현석 뒤를 따라갔다. 나머지 일행도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현석을 따라가기만 했다.

    현석은 감각을 최대한 확장하면서 걸었다.

    지금까지는 들판을 지나왔다. 점점 넓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현석의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였다.

    한데 눈앞에 펼쳐진 숲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급격히 확장되는 듯했다.

    일단 숲부터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그래도 여기가 이쪽 세상으로 가는 입구인 건 분명했다. 그리고 장담컨대, 이쪽 세상에서도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위험한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현석은 그 위험한 숲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 * *

    콰드드득!

    현석의 검이 거칠게 마수의 머리를 쪼개 버렸다. 눈에서 빛이 사라진 마수가 서서히 쓰러졌다.

    쿠웅!

    쓰러진 마수의 크기는 엄청났다. 과장 조금 보태서 작은 건물만 했다.

    “레벨이 또 오른 것 같아요.”

    류지혜는 질린 눈으로 마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벌써 이게 몇 번째 전투인지 모른다. 23번째 까지 세다가 그 이후로 세는 걸 관뒀다.

    저렇게 집채만 한, 아니, 빌딩만 한 마수가 작은 마수들을 떼로 몰고 와서 달려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곳의 마수는 크든 작든 정말 돌아버릴 정도로 강했다.

    작으면 작은 대로 강하고, 또 크면 큰 대로 강했다. 하지만 그런 마수들을 이끄는 저 거대 마수는 그저 강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미안할 정도로 강했다.

    큰 전투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현석이 거대마수를 상대하는 동안 나머지 일행이 작은 마수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현석이 거대마수를 상대한다고 해서 작은 마수들을 내버려두는 건 아니었다.

    작은 마수들은 현석이 거대 마수와 싸우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모든 일행에게 공평하게 덤벼들었으니까.

    현석은 거대 마수를 심안과 마력으로 세심히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오길 잘했네.’

    일단 전투 자체가 훨씬 수월해졌다. 아무리 작은 마수들이 함께 달려든다고 해도 일행이 웬만큼은 다 막아주기 때문에 막상 현석에게 직접 달려드는 놈은 몇 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이곳의 거대 마수는 현석도 절대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시선을 분산시켜주는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현석은 마수를 간단히 해체했다. 가장 중요한 마정석을 챙기고 현석이 보기에 특별해 보이는 재료 몇 가지를 채취해 따로 담았다.

    그러는 사이 일행도 나머지 마수에서 마정석을 꺼냈다.

    뒤처리가 끝나자, 현석이 다시 걷기 시작했고,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마수를 만났고, 또 싸웠다.

    일행의 이동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전투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거 점점 마수들이 약해지는 것 같지 않아?”

    라이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상대하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아니, 처음 만났던 마수들에게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현석이 적절히 도와주면서 싸웠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아마 강한 마수들이 더 깊은 곳에서 사는 모양이에요. 어쩌면 저기 있는 킹 젤리웜이랑 관계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방금 처리한 거대 마수는 숲에 처음 들어와 만났던 작은 마수보다도 약하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슬슬 해가 질 것 같으니 서두르는 게 낫지 않을까? 잘하면 숲에서 노숙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라이언의 말에 다들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현석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쇳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수가 울부짖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현석은 그쪽으로 방향을 바꿔 빠르게 이동했다.

    가는 길에 마수를 만나면 늦을 게 분명했는데, 다행히 마수를 중간에 만나지는 않았다.

    “응? 사람들이 있네?”

    라이언이 눈을 빛내며 눈앞에 펼쳐진 싸움을 지켜봤다.

    가죽 갑옷을 입은 사내 세 명이 각자 검을 휘두르며 거대 마수와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열 명의 사내가 작은 마수들과 싸우고 있었다.

    다들 제법 잘 싸우고 있긴 했지만 마수가 너무 많았다. 그들은 점점 밀리고 있었다.

    세 명의 사내가 거대 마수를 빨리 처리해야 답이 나오는 전투였다.

    한데 그렇게 간단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세 사내가 오히려 거대 마수에게 아주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거대 마수의 회복력이 굉장했다. 세 사내의 공격력 정도로는 거대 마수에게 아무리 상처를 입혀도 회복이 너무 빨라 별 의미가 없었다.

    라이언이 현석을 보며 물었다.

    “우리가 가서 좀 도와줘야 되는 거 아냐?”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먼저 저들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무작정 도와봐야 좋은 소리 못 듣는다. 보아하니 저들은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여기 들어온 모양이니까.

    마침 기다리던 외침이 튀어나왔다.

    “구경만 하지 말고 좀 도와주시오!”

    거대 마수와 싸우던 사내 중 한 명이 목이 터져라 소리치자, 라이언이 눈을 빛내며 현석을 바라봤다.

    “지금 도와달라고 한 거 맞지?”

    그동안 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더니 이제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모양이다.

    “그럼 나부터 간다!”

    라이언은 즉시 거대 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오면서 거대 마수를 모두 현석이 상대했기 때문에 라이언은 싸울 기회가 없었다.

    그게 조금 아쉬웠는데, 이제 그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 버릴 수 있게 되었다.

    라이언의 검이 거대 마수의 다리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꾸워엉!

    지금까지와는 달리 마수가 고통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마수의 다리에 난 상처가 굉장히 깊고 거칠었다.

    라이언은 그 뒤로 신들린 듯 마수를 공격했다.

    거대 마수는 라이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나마 엄청난 회복력 덕분에 버티고 있었다.

    원래 마수와 싸우던 세 사내는 한숨 돌리며 강력한 기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팀 메인퀘스트와 추광열이 작은 마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작은 마수들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세 사내의 검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거대 마수를 훑고 지나가며 마수의 팔다리를 날려 버렸다.

    라이언이 그 순간 높이 뛰어올라 마수의 정수리에 검을 깊이 박아 넣었다.

    “흐아아압!”

    괴성과 함께 라이언의 검에서 강렬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피어났다.

    마수는 뇌가 곤죽이 되어 즉사했다.

    그렇게 싸움이 끝났다.

    * * *

    모닥불 몇 개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모닥불 주변에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아까 마수와 싸우던 사내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현석 일행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이들은 마수 사냥꾼이었다. 오늘 만난 마수는 이 근처에서는 거의 만날 일이 없는 위험한 마수였는데, 재수 없게 만났다고 했다.

    모닥불 위에는 각각 고기가 구워지는 곳도 있고, 커다란 솥을 올린 곳도 있었다.

    주변에 먹음직스러운 음식 냄새가 쫙 풍겼다.

    “이거 제법 괜찮은데?”

    가장 적응이 빠른 사람은 단연 라이언이었다. 라이언은 벌써 마수 사냥꾼의 대장인 쿠다툰과 제법 친해졌다.

    고기를 칼로 썰어 한 점 먹은 라이언의 눈이 커다래졌다. 지금 굽고 있는 고기는 마수의 고기였다.

    지금까지 마수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그 맛이 더 놀라웠다.

    “마수는 그냥 막 먹으면 탈이 나지. 우리 부족에만 전해지는 조리법이야.”

    쿠다툰이 가슴을 쫙 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확실히 자랑할 만했다.

    다들 마수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마수 사냥꾼들은 거의 흡입하듯 먹어치웠고, 현석 일행은 그래도 조심스럽게 조금씩 먹었다.

    다들 제법 맛있게 요리를 즐겼다.

    맛있는 요리를 먹으니 좀 더 분위기가 좋아졌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 두 번째 세상으로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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