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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54화 (254/326)
  • < 퀸급 화이트홀 3 >

    비행기에서 내린 현석 일행은 곧장 던전 생성지역으로 향했다.

    마치 1초도 낭비하기 싫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물론 그건 현석의 의지였다. 다른 일행은 그저 현석이 하자는 대로 따르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소정화는 그런 현석 일행을 보며 초조한 마음을 감추려 애썼다.

    현석이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어서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지 못했다.

    대련삼룡에게 연락을 하긴 했지만 그들이 시간 맞춰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소정화가 대련삼룡이 제 시간에 도착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현석은 빠르게 걸어가며 회귀 전 일을 잠시 회상하고 있었다.

    중국에 있는 퀸급 화이트홀에 들어갔던 경험은 없었다. 현석이 경험한 퀸급 던전은 한국에 있는 것이 유일했다.

    당연히 한국의 퀸급 화이트홀은 둘 다 겪어봤다.

    하나는 어마어마한 언데드 군단이 몰려오는 화이트홀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대한 마수로 짐작되는 것의 위장 속이었다.

    소정화가 묘사한 그것과 아주 똑같았다.

    현석은 세 군데 퀸급 화이트홀이 모두 같은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화이트홀 사이에 위치한 투명 던전 역시 세 군데가 모두 같았다.

    그러니 중국의 화이트홀을 겪어보지 않았지만, 사실 겪어본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실패했었지.’

    회귀 전에는 마수의 위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곳에서 지독한 산성 액체를 뒤집어쓰고 죽은 동료의 수도 제법 많았다.

    사실 회귀 전 화이트홀에 도전한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이 160정도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던전의 재료와 아티팩트를 연구해 얻은 성과들로 인해 훨씬 더 큰 힘과 효율을 발휘할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고작 그 정도 레벨로 퀸급 화이트홀을 헤쳐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언데드 군단은 어찌어찌 해치우긴 했는데.’

    하지만 마수의 위장을 벗어나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쏟아지는 산성액을 피해 위벽에 상처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마수의 회복력이 너무 강력해서 상처를 내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할 수 있어.’

    그리고 해내야만 한다. 안 그러면 화이트홀을 탐사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마 흑시의 플레이어들은 조만간 거대한 벽을 만나겠지.’

    그 벽의 정체를 현석은 알고 있다.

    그건 회귀 전에 퀸급 화이트홀을 공략하고 무수한 피해와 죽음을 담보로 유추해낸 사실이었다.

    어느새 던전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은 예전과 달리 중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바리케이트까지 치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 안쪽에 중요한 군시설이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현석이 다가가자 군인들이 총을 겨누며 막아섰다.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입니다.”

    군인들의 어조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했다. 은근한 위압감까지 깃든 말투였다.

    허튼짓 하면 총을 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군인들은 반사적으로 그렇게 행동하고는 현석 뒤쪽에 서 있는 오명국을 발견했다.

    “아! 관계자셨군요.”

    군인들이 총을 내리고 길을 막은 바리케이트를 치워주었다.

    현석은 그 광경을 묘한 눈으로 쳐다봤다.

    “군까지 동원한 건가?”

    현석의 물음에 오명국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부가 개입되면 대련방이나 흑시가 가져가는 몫이 턱없이 줄어들 텐데요. 저들은 대련방에서 고용한 사병들입니다.”

    “사병?”

    “얼핏 보면 군인 같지만 자세히 보면 복장이 좀 다릅니다. 무기는 아마…… 불법으로 구했을 겁니다.”

    현석이 피식 웃었다.

    “대련방이 아주 작정을 했군.”

    “예. 어쩌면 전부 내쫓아 버릴지도 모릅니다.”

    레드드래곤 길드는 사실 처음에 이곳에 플레이어를 파견할 때는 순수한 호의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 얻는 소득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퀸급 블랙홀에서 나오는 재료와 아티팩트의 수준이 제법 좋았다. 더구나 퀸급에서 나오는 마수의 마정석은 질이 상당했다.

    이제는 이곳이 레드드래곤 길드의 주요 소득원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러니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슬슬 압박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피라밋 쪽도 관련이 있으니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만…….”

    오명국은 흑시가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낼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상황 설명을 듣다보니 어느새 던전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왠지 심상치 않았다.

    화이트홀이 플레이어들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미 토해낸 플레이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흑시 측 인물들이 그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상처가 엄청나게 심했다.

    소정화는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죠?”

    화이트홀이 토해낸 플레이어는 모두 13명이었다.

    안에 들어간 플레이어가 50인데 고작 13명만 되돌아온 것이다. 나머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뻔했다.

    소정화는 바닥에 널브러진 플레이어들의 상태가 왠지 낯익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꼭…… 저쪽 화이트홀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아.’

    산성액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정신이 들어요?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괴물…… 괴물이…….”

    플레이어는 괴물 얘기만 몇 번 반복하다가 결국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의미는 아주 명확히 전달되었다.

    저 안에는 50명의 고레벨 플레이어를 이렇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마수가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소정화는 반사적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담담한 표정으로 소정화가 있는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소정화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해!’

    소정화는 등줄기를 치닫고 지나가는 소름에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대체 어떻게?’

    그녀가 알기로 현석은 한 번도 이곳 화이트홀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화이트홀에 대한 정보는 흑시, 그 중에서도 오직 대련방만 보유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현석의 눈빛과 태도를 보면 원래부터 화이트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 화이트홀을 처음 찾은 것도 나와 함께인데?’

    이 퀸급 던전 생성지역은 발견 이후부터 지금까지 소정화의 통제와 감시 아래에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CCTV의 위치를 확인해봤다. 모두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잘못되었을 리가 없지. 내가 매일 확인했는데.’

    그녀는 다시 한 번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입가에 슬쩍 미소를 걸고는 천천히 화이트홀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언데드가 있는 곳이 아닌, 마수의 위장이 있는 화이트홀 쪽이었다.

    그녀는 다급히 현석을 불렀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현석이 걸음을 멈추고 소정화를 돌아봤다.

    그녀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이제부터는 일단 저지르고 나중에 보고해야 한다. 이대로 현석을 마수의 위장 속으로 밀어 넣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그녀의 생각을 다 안다는 듯 현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이제 너희들의 힘만으로 안 될 것 같으니 우리보고 이쪽으로 들어가라고?”

    소정화는 말문이 콱 막혀 입을 다물었다. 현석의 말이 아주 정확했으니까.

    물론 아직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충분히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일 전력을 동원해 저 안에 있을 마수를 사냥한다면 어찌어찌 성공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력의 태반을 잃어버릴 텐데 말이다.

    이런 위험한 일은 무조건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이쪽의 피해를 줄일 수 있으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어차피 너희가 뚫을 텐데. 나야 그저 기다리기만 해도 충분히 얻을 건 다 얻을 수 있는데, 굳이 내가 나서서 피를 흘릴 이유가 있나?”

    소정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걸 본 현석이 빙긋 웃었다.

    “꼭 힘으로 해보려는 표정인데? 할 수 있으면 해 보든가.”

    소정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절대 그럴 의도는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저희를 도와주실까 고민을 좀 했을 뿐이에요.”

    현석이 씨익 웃었다.

    “그럼 다녀올 동안 잘 고민해 보도록.”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돌아선 현석은 망설임 없이 화이트홀로 들어갔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도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소정화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어느새 도착한 대련삼룡이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소정화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대련삼룡이 조심스럽게 화이트홀로 다가갔다.

    그리고 최대한 기척을 감추며 화이트홀 안으로 들어갔다.

    소정화는 모든 상황이 일단락되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냈다.

    “변수가 생겼습니다.”

    * * *

    대련방주는 전화를 끊고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꽈직!

    전화기가 그대로 박살 났다.

    옆에 서 있던 사내가 공손하게 새 전화기를 대련방주에게 내밀었다.

    “후우우.”

    대련방주는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는 전화기를 받아 품에 넣었다.

    “일이 꼬였어. 어쩌면 좋겠느냐?”

    사내도 대련방주와 소정화의 통화 내용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채현석에게 의뢰 형식으로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뢰? 과연 그놈이 맡을까? 보아하니 우리 꿍꿍이를 다 파악한 모양인데.”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걸면 됩니다.”

    대련방주가 턱을 쓰다듬었다.

    “미래산업의 실질적 주인한테 그런 게 있기나 할까?”

    “뭐든 주겠다고 하면 됩니다. 보아하니 금을 좋아하는 모양이더군요. 금을 몇 톤쯤 주겠다고 해도 됩니다.”

    대련방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금 몇 톤이 장난인가?”

    아무리 대련방이 대단해도 금을 몇 톤이나 마련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전의 대련방이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고, 지금의 대련방은 가능하긴 해도 조직의 기둥이 흔들릴 정도의 일이었다.

    “어차피 줄 일을 안 만들 거 아니었습니까?”

    대련방주는 사내의 말에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고민 끝에 대련방주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방의 전력을 투입하는 걸로 하지. 그리고 흑시에서 우리가 끌어올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다 끌어와.”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어선 안 돼.”

    무엇보다 그게 제일 중요했다. 현석이 나서고 전력을 투입해도 안 되는 거라면 절대 시도해선 안 되니까.

    “예.”

    사내가 간결하게 대답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대련방주의 눈에서 야망의 빛이 번득였다.

    처음부터 화이트홀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예측이 맞아 떨어졌다.

    대련방주가 보기에 화이트홀은 블랙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보물창고였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그러면 그때는 정말 한 번 해볼 만하다.

    대련방주는 흑시의 주인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성공시켜 화이트홀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때는 그저 기회만 엿볼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그러려면 이번 일을 그저 성공만 해선 안 된다. 전력을 보존해야 한다.

    대련방주는 문득 대련삼룡이 떠올랐다.

    그들은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플레이어들이었다. 용이라 부르고 있긴 하지만 사실 용이라기보다는 뱀 같은 놈들이었다.

    잠입, 암살, 추적 등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얻은 스킬도 그런 쪽이었다.

    “만일 거기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낸다면…… 얘기가 또 달라지긴 하지.”

    대련삼룡은 자신들의 임무를 아주 충실히 완수할 것이다.

    물론 현석이 새로운 길을 찾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현석이 찾을 수 있는 길이라면 지금까지 흑시에서 못찾을 이유가 없으니까.

    대련방주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이후의 일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꼭 현석만 이용하라는 법은 없다. 레드드래곤 길드와 피라밋 암시장도 끌어들일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렉스턴 에너지에도 손을 내밀 것이다.

    물론 그건 철저한 조사를 한 다음의 일이다.

    대련방주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왠지 모든 일이 생각대로 잘 풀릴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 퀸급 화이트홀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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