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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53화 (253/326)
  • < 퀸급 화이트홀 2 >

    대련방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명국이 공항으로 갔다고?”

    “예. 누군가가 입국한 모양입니다.”

    “명단은?”

    “확보했습니다.”

    사내가 공손히 대련방주에게 명단을 넘겼다.

    물론 쉽게 얻은 건 아니었다. 어찌나 정보를 교란하는지 자칫하면 엉뚱한 명단을 가져올 뻔했다.

    하지만 그 고생을 대련방주에게 시시콜콜 생색 낼 수는 없었다.

    그저 알아서 짐작해주길 바랄 뿐.

    명단을 확인한 대련방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주 익숙한 이름 몇 개가 보이는구나.”

    “예. 설마 라이언과 추광열이 함께 들어올 줄은 몰랐습니다. 레드드래곤 길드에서 아무래도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무리수이긴 하지.”

    대련방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나머지 명단을 몇 번이고 유심히 살폈다.

    그의 눈에 채현석이라는 이름이 아프게 박혔다.

    “이놈이 또 왔군.”

    “보통 놈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건 철저히 숨긴 채 이득만 쏙쏙 빼먹고 있습니다.”

    “확실히 미래산업의 실 소유주가 이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

    그 많지 않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대련방주였다. 하지만 대련방주는 굳이 그 사실을 널리 퍼트릴 생각이 없었다.

    굳이 세상의 이목을 현석에게 집중시킬 필요가 없었다. 대련방주가 생각하기에 아직 현석에게는 여지가 남았다.

    “이놈의 뒤를 캐는 일은 잘 되어가고 있나?”

    “캐고는 있습니다만…… 나오는 게 별로 없습니다. 정보를 감춘 게 아니라,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가 저 정도 성장을 하고 미래산업을 보유할 수 있을까?”

    대련방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한국은 아니야. 한국의 조직이나 가문으로는 저런 자를 감당하지 못해. 그러니 저자의 뒤를 철저히 캐. 분명히 아주 특별한 가문이나 조직이 나타날 테니까.”

    대련방주의 눈이 번득였다.

    “진짜 대화는 그들과 나눠야지. 그 전까지는 그런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고.”

    “예. 명심하고 있습니다.”

    “일단…… 던전 생성지역을 저놈에게 열어줄지 말지부터 결정해야겠군.”

    “열어주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련방주와 그에게 보고를 하던 사내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득였다.

    “하긴, 던전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증명 자체가 쉽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역으로 당하면 모양새가 아주 나빠져.”

    “도를 넘을 정도로 신중하게 대처하겠습니다.”

    “저쪽에는 라이언과 추광열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채현석이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도 염두에 둬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고 대답하긴 했지만, 두 사람 다 심각할 정도로 경계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흑시의 전력은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다. 또한 대련방의 힘 역시 그 이상으로 강해졌다.

    이제 그 어떤 세력이 덤빈다 해도 힘으로 다 눌러 버릴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 정도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그 확신이 들었을 때, 화이트홀 공략을 다시 시도했고, 아주 멋지게 성공했다.

    그곳의 언데드들을 모두 토벌하는 데 걸린 시간과 들어간 돈은 엄청났다.

    하지만 결국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꿀을 빠는 중이었다. 일단 화이트홀에 들어가서 새 지역을 탐사할 때마다 아주 쓸 만한 아티팩트나 마력기반 재료를 들고 나올 수 있었으니까.

    그런 훌륭한 보물창고를 어찌 딴 놈들과 나눌 수 있겠는가.

    ‘그건 그놈의 것이 아니야. 그렇다고 흑시의 것도 아니지. 그건 우리 대련방, 아니, 내 것이다.’

    대련방주의 눈이 결연함으로 가득 찼다. 그는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는 놈들은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로 마음을 꽉 채웠다.

    * * *

    현석 일행이 운남에 들어서자마자 수십의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사람은 낯익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현석을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달려와 일단 인사부터 했다.

    “환영합니다. 저 기억나시죠?”

    일단 적대할 뜻이 없다는 것부터 보여줘야 했다. 그녀는 최대한 밝게 웃었다.

    그녀의 기억 한구석에는 예전 현석과 얽혔던 일이 화인처럼 박혀 있었다.

    그때 그녀가 느꼈던 절망감과 무력감은 여전히 그녀의 잠재의식 일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걸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현석을 보자마자 그때의 기억이 확 떠오른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그때의 내가 아니야. 그때와는 달라. 난…… 훨씬 더 강해졌어.’

    그녀는 억지로 더 환하게 웃었다.

    “일단 여독부터 푸시죠. 호텔과 식사를 준비해 뒀습니다.”

    현석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속이 뻔히 보이지만 굳이 주는 호의를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결과가 뻔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가지.”

    현석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반색하며 현석 일행을 모셨다.

    현석 옆에 바짝 붙어 따라가는 오명국의 얼굴만 살짝 초조해졌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현석에 대한 믿음이 워낙 확고해서 현석이 이런 결정을 내렸으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당연히 마음도 표정도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호텔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플레이어들만 이용하는 전용 호텔이었다.

    여인, 소정화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현석 일행을 식당으로 먼저 안내했다.

    아주 화려하고 맛도 기가 막힌 요리들이 즐비하게 준비되었다.

    현석 일행은 그 요리를 여유롭게 만끽했다.

    소정화는 최대한 일행의 비위를 맞춰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파악했다.

    그걸 하나하나 들어주며 시간을 끄는 것이 그녀가 맡은 임무였다.

    어쨌든 현석 일행이 화이트홀에 늦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대련방 입장에서는 유리했다.

    어떤 행동방침을 정하든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뭔가…… 급한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네.’

    소정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명국의 표정을 보면 상당히 초조한 게 분명했다. 그가 감정을 감추려 애쓰고 있지만 소정화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소정화는 이런 쪽으로 아주 특수한 훈련을 거쳤고, 경험도 풍부했다.

    아무리 감추려고 애써도 언제나 잡아낼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포인트들이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오명국은 극도로 초조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아주 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현석은 확실히 파악할 수 없었다.

    ‘담담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애매한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런 건 보통 그녀가 상상하기 어려운 성장과정을 겪었거나, 아주 특별한 일을 연이어 겪는 바람에 그녀의 경험치보다 아득히 위에 있는 경우에 해당했다.

    하지만 소정화는 그 두 가지 모두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건 너무나 당연했다. 현석의 과거를 이미 모두 파악했으니까.

    현석의 성장과정은 아주 평범한 건 아니었지만 드문 케이스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일을 연이어 겪는 것도 크게 보면 성장과정의 문제인데, 현석에게는 그런 게 별로 없었다.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게 최근의 파악되지 않은 시기인데…….’

    소정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것이다. 현석은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런 식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까지의 행적은 고스란히 파악했다. 그러니 더 혼란스러웠다.

    ‘대체 정체가 뭐지?’

    소정화는 생소한 음식들을 조금씩 가져다 맛을 보는 현석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조금이라도 그를 파악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물론 성과는 없었지만 말이다.

    * * *

    같은 생활을 정확히 이틀 동안 반복했다.

    소정화는, 아니, 더 정확히 대련방은 현석 일행에게 줄 수 있는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식사는 언제나 최고급 요리를 무한정 내주었고, 휴식도 호텔의 모든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건 물론이고 피로 회복에 좋다는 온천까지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렇게 정확히 이틀을 보낸 현석이 소정화를 찾았다.

    소정화는 현석이 찾는다는 말에 불안한 마음으로 그를 만났다.

    “휴식은 끝났다.”

    “예? 벌써요? 오신 김에 며칠 더 쉬시면…….”

    “훈련의 피로는 다 날아갔다. 더 쉬면 몸에 녹만 슬 뿐이지.”

    소정화는 할 말이 없었다. 현석이 그렇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이렇게 간다고 말이라도 해준 걸 감지덕지 해야 할 판이다.

    “화이트홀에 들어가실 건가요?”

    소정화의 말에 현석이 그녀를 가만히 쳐다봤다. 소정화는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현석이 자신을 보고 있는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화이트홀 두 군데 모두 들어갔나?”

    “예?”

    소정화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아뇨. 아직 한 군데만 들어갔어요.”

    정확히는 한 군데밖에 못 들어갔다. 나머지 한 군데는 아예 공략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소정화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설마 거기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흑시보다 현석 쪽이 훨씬 더 화이트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판단했기에 당연히 언데드 쪽 화이트홀에 들어갈 거라 여겼다.

    한데 그쪽이 아니라 반대쪽이라니. 만일 그렇다면 지금 뭘 해야 할까?

    ‘일단 방주님께 연락부터 해야 하나?’

    현석이 들어가겠다고 한 화이트홀은 대련방은 물론이고 흑시에서도 두 손 두 발 다 든 곳이었다.

    들어가면 빛 한 점 없는 깜깜한 공간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온몸을 녹여버릴 것 같은 강력한 산성 액체가 사방에 흐르고 있어서 아무도 버티질 못했다.

    그게 무엇인지 대충 짐작은 하지만 공략 방법이 아예 없었다.

    안에 들어가 무작정 공격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어찌나 복원력이 강한지 상처를 입어도 순식간에 원래대로 회복해 버리니 무슨 짓을 해도 그곳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가끔은 그곳에 마수가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는 죽거나 불구가 될 확률이 거의 100%에 가까웠다.

    마수와 잠깐이라도 싸우다가 산성 액체가 몸에 닿아 몸의 일부를 유실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어쨌든 마수도 거기서는 흐물흐물하게 녹아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그곳을 어떻게 공략하겠는가. 웬만한 플레이어는 명함도 못 내밀고 죽어야 하는 장소였다.

    상대적으로 나머지 화이트홀은 클리어 자체가 상식적이었다. 언데드도 거의 다 토벌해서 만날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그쪽에 집중하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만일 현석이 불가능해 보이는 화이트홀에 들어간다고 하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다.

    ‘이 사람이라면 성공할 수 있을까?’

    기대감과 의구심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현석은 혼자가 아니다. 라이언과 추광열이 있다. 세계 제일의 플레이어라는 그들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이, 일단 이동수단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버스는 이미 대기 중이고, 시간을 좀 주신다면 비행기도 수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소정화가 기대감 어린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그녀의 기대에 정확히 부응해 주었다.

    “비행기로 하지.”

    소정화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어딘가로 빠르게 달려갔다. 비행기를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대련방이 작정하고 나서면 당장 비행기를 띄우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여기서도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소정화도 눈치가 빠른 여인이었다. 현석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보면 자신의 의도에 일부러 따라와 준다는 느낌이 아주 역력했다.

    분명히 뭔가 노림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기회를 이용하지 않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녀는 현석과 최대한 멀어진 다음, 전화기를 꺼냈다.

    “예. 방주님, 당장 떠나겠다는 걸 비행기로 유혹해 시간을 좀 더 벌었습니다. 하지만 길게는 안 됩니다. 너무 길어지면 의심을 할 테니까요.”

    전화기 너머로 몇 마디를 듣던 소정화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채현석이 노리는 화이트홀은 언데드 쪽이 아니었습니다. 예. 애초에 우리가 딱 원하던 그림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어쩔까요?”

    너무 원하던 그림이 나와서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아무나 섣불리 붙이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예? 대련삼룡을요? 그들이라면야…… 하지만 그랬다가 채현석이 실패하기라도 하면 우리 쪽 피해가 너무 크지 않을까요?”

    대련방주로부터 몇 마디 말을 더 듣던 소정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명령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소정화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방주님의 욕심이 너무 큰 것 같은데…….”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련삼룡이 현석 일행을 몰래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특히 현석의 이목을 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만일 최선의 방향으로만 일이 진행된다면 대련방으로서는 정말 큰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두 번째 화이트홀을 안정적으로 탐사할 수 있는 길만 찾아낼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현석 일행이 마수의 위장으로 판단되는 그곳을 뚫고 마수 자체를 죽여 버린다면 그 뒤로는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듯, 세상일이라는 것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때보다 가장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어질 때가 훨씬 더 많은 법이다.

    한참 후, 소정화의 기대와 걱정을 안고 현석 일행을 태운 비행기가 하늘에 떠올랐다.

    < 퀸급 화이트홀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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