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251화 (251/326)
  • < 투명 던전 공략 2 (10권 끝) >

    현석은 뒤에서 들려온 말에 돌아서서 일행을 둘러봤다.

    다들 초췌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과 눈빛으로 현석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벌써 몇 군데를 돌았는지 모른다. 아니, 몇 나라를 돌았는지 모른다.

    잠은 비행기에서 잤고,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헬기를 타고 이동해 던전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끝없는 싸움이 이어졌다.

    마족과의 싸움은 위험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일행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지금은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또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차례였다.

    현석은 물끄러미 일행을 쳐다봤다. 모두가 간절한 눈빛으로 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 흔들림 없던 추광열과 전투를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라이언까지 그랬으니 다들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현석은 최대한 냉정하게 돌아섰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다들 절망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비행기가 떴다.

    그 비행기는 한참 동안 하늘을 날아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 * *

    “말도 안 돼…….”

    다들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봤다.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초원 끝에 거대한 강이 있었고, 강 너머에 밀림이 있었다.

    라이언은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멍하니 위를 올려다봤다.

    거대한 용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날갯짓도 하지 않고 그냥 미끄러지듯 빠르게 날아가는 중이었다.

    “여기서도 소환이 되는 거였어?”

    현석이 소환하는 용은 마수의 일종이니 당연히 던전에서만 소환될 거라고 여겼다.

    한데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용을 불러냈다. 그리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철판에 일행을 태우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생각해보면 안 될 이유가 없긴 한데…….”

    “이쪽 세상 물건은 저쪽으로 잘 안 넘어가잖아. 그러니 저쪽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 같아.”

    “잘 안 넘어오는 게 맞아요. 던전에서 바위 같은 거 갖고 나오려고 시도해봤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그럼 이 용은 대체 뭐야?”

    “글쎄요…… 우리 대장님한테 귀속되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라이언은 류지혜의 말에 수긍하고는 다시 먼 곳을 바라봤다. 하늘에서 보는 아프리카 초원과 밀림의 경치는 정말 장관이었다.

    물론 얼마 안 있어 저 안으로 들어가 또 개고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지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엔 좀 쉬운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난 이제 마족만 봐도 치가 떨릴 거 같아.”

    “그래도 레벨 많이 오른 거 같지 않아요?”

    “아직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10이상 오른 건 확실하지.”

    라이언은 눈을 빛냈다. 투명 던전과 마계는 레벨을 올리는 데에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그냥 단순한 레벨업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싸우면 같은 레벨을 올려도 훨씬 더 능력이 많이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무 미묘한 차이라서 알아차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내려간다!”

    라이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그는 싸우는 게 즐거웠다. 아니, 싸움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무리 애써도 현석에게는 안 된다는 걸 벌써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 현석이야 포기한다고 해도, 현석을 제외한 나머지 플레이어 중에서는 최고를 찍어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는가.

    ‘뭐…… 저쪽은 규격이 달라. 존재 자체가 반칙인 사람이니까 예외.’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상황을 추측하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현석의 용이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바람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마치 위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행은 바닥이나 용에 고정한 끈을 단단히 잡았다.

    쿠웅!

    강한 충격과 함께 바닥에 내려섰다.

    “다 온 건가?”

    라이언이 온몸을 주무르며 물었다.

    현석은 용을 돌려보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일행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현석은 이곳에 쫙 펼쳐진 투명던전들이 느껴졌다. 아니, 보였다.

    회귀 전에 여길 발견했을 때는 위에 보고하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투명던전에서 풍기는 느낌은 정말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던전의 수가 너무 많았다.

    얼핏 봐도 100개는 되는 듯했다. 그 정도 던전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절대 평범한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판단이 옳았네.’

    제대로 된 판단을 했다. 이곳의 던전은 하나하나가 위험한 곳이다.

    그때는 막연히 위험하다는 느낌만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느낌이 좀 더 명확했다.

    죽음과 광기, 살기와 투기로 점철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이름도 그렇고.’

    각 던전의 이름도 아주 의미심장했다.

    [켄트로 제12전장], [쿠르모 제3전장], [티그리안 제8전장], [켄트로 제2전장].

    가장 앞에 있는 투명 던전들의 이름이었다.

    하나같이 전장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 얘기는 이곳이 전부 전쟁터였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본 투명 던전은 모두 제국과 관계되어 있었다.

    즉, 저 전장들도 제국의 전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을까?‘

    ‘뻔하지.’

    마족이다. 물론 100% 확실한 건 아니다. 하지만 현석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저긴 마족과 전쟁하던 지역이 분명했다.

    ‘더 자세한 건 안으로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현석은 일행을 돌아봤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도착하자마자 던전에 밀어 넣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현석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좀 위험하다.”

    현석의 말에 다들 눈이 커다래졌다. 지금까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위험하다고 말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던전은 언제나 위험했다.

    ‘그럼 대체 이번 던전은 얼마나 위험하다는 거야?’

    진득한 불안감이 일행을 휘감았다.

    * * *

    “여기, 여기, 여기. 너희가 클리어해야 할 던전의 순서다.”

    현석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아니, 다른 것도 대부분은 마찬가지지만, 특히 던전에 관해서 하는 현석의 말은 진리의 법칙 같은 거였다.

    “확인해보니 마족과 언데드가 함께 군단을 이루고 있어. 그 둘을 동시에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숫자는 수천이 넘으니까 그것도 염두에 두고.”

    그 말에 다들 어이가 없어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 마족과 섞인 수천 마리의 언데드 군단을 우리끼리 토벌하라 이거지?”

    라이언이 황당함을 억지로 억누르며 물었다.

    그러자 현석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 아니잖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라이언은 결국 다시 황당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 상황이 황당하지 않으면 대체 뭐가 황당하겠는가.

    “네가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우리 한계는 우리가 아주 명확하게 알거든?”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안다. 그래서 방금 던전을 지정해준 거고.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칠 정도의 던전이다.”

    현석은 여러모로 노림수가 있었다.

    일단 투명 던전을 클리어하는 건 근본적인 목적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일행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아슬아슬이라…….”

    라이언이 눈을 가늘게 뜨고 현석을 바라봤다.

    아슬아슬한 수준이라면 사실 해볼 만했다.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다. 강한 다수의 적과 싸우다보면 레벨업을 하게 된다.

    즉, 처음에는 아슬아슬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다.

    라이언은 현석이 지목한 세 개의 던전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물론 실제로 보이진 않았다. 그저 거기에 던전이 있나보다 할 뿐이지.

    그냥 시키는 대로 그쪽으로 가면 된다. 그럼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문제는 저 세 던전의 수준이지. 아마…… 다 비슷하진 않을 거야.’

    현석이라면 아주 치밀하게 계산해서 일행의 성장까지 염두에 뒀을 것이다.

    즉, 처음에만 힘들고 나중엔 괜찮은 게 아니라 셋 다 피똥 쌀 정도로 고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기 부터라고 했나?”

    일행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저 제발로 걸어 들어가느냐, 아니면 강제로 내던져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절대 후자는 사양이었다. 일단 스스로 들어가야 들어가자마자 있을지 모를 위험에 여유롭게 대처할 테니까.

    라이언을 선두로 다들 던전에 입장했다.

    현석은 그걸 확인한 다음 남은 던전들을 슥 둘러봤다.

    ‘일단…… 저기부터.’

    현석은 위험한 마력이 물씬 풍기는 던전으로 향했다.

    아마 전장이 이렇게 모여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유가 궁금하진 않았다.

    나중에 필요하면 다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일단 이곳에 있는 투명던전을 다 클리어하는 것이 먼저였다.

    아마 여기가 제일 급한 곳일 것이다.

    현석은 가볍게 목을 몇 번 꺾은 다음 던전으로 슥 들어갔다.

    * * *

    콰콰콰콰콰!

    현석의 검에서 마력을 잔뜩 머금은 바람이 쏟아져나갔다. 바람의 결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마력이 담겨 절삭력이 어마어마했다.

    그 바람은 단숨에 근처에 있던 언데드들을 휩쓸어버렸다.

    뼈만 남은 병사 스켈레톤들이었다.

    수천이 아니라 수만은 족히 되는 엄청난 수였다. 당연히 한 방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일단 수를 줄이긴 했으니 그걸로 됐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다보면 다 사라지지 않겠는가.

    이미 수만에 달하는 스켈레톤들을 박살 냈다. 그러니 또 그만큼을 더 박살내는 게 어려울 리 없었다.

    더구나 현석은 여전히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 스켈레톤들은 마족의 지휘를 받고 있어서 사실 상대하기 까다로운 편이었다.

    물론 힘의 격차가 너무 커서 별 의미는 없었지만 말이다.

    투명 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한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현석은 아공간에 넣어둔 숙소를 꺼내 이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다.

    당연히 라이언을 비롯한 팀 메인퀘스트도 함께였다.

    샤텐의 힘까지 더해지니 투명 던전을 클리어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팀 메인퀘스트도 처음에는 아슬아슬했지만 이젠 언데드 상대하는 데 이력이 붙어서 훨씬 능숙하고 빠르게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투명 던전을 클리어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물론 현석이나 샤텐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현석은 빠르게 전장을 정리했다.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모든 언데드를 정리한 다음, 그들을 지휘하던 마족을 찾아 하나씩 처리했다.

    숨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기에 마족을 처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차라리 마족들이 언데드와 뒤섞여 달려드는 쪽이 훨씬 까다롭고 위험했다.

    지금처럼 뒤로 빠져 있으면 오히려 간단하다. 물론 현석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오는 편이 훨씬 빨리 끝나서 좋지만.

    어쨌든 마족까지 모두 처리한 현석은 마계로 이어지는 화이트홀을 찾았다.

    이곳 전장과 연결된 마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른 마계에 비해 마족의 수가 절반에도 못 미쳤다. 나머지 절반이 투명 던전에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화이트홀로 들어가 마계까지 완벽하게 토벌한 현석은 투명 던전에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샤텐과 팀 메인퀘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할당된 던전을 모두 토벌한 것이다.

    현석은 다음으로 토벌해야 할 던전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샤텐이 곧장 움직였다.

    그리고 팀 메인퀘스트에게 다음 던전을 정해주었다.

    그들은 요 며칠 새에 또 한 번 탈피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그들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던전에 들어갔다.

    현석은 남은 던전들을 둘러봤다.

    ‘이제 마지막이군.’

    현석은 마지막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나왔다.

    마지막 던전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했다. 마계 토벌이 좀 더 시간이 걸렸는데, 그래도 마족들만 상대하면 되니 오히려 더 편했다.

    어쨌든 그렇게 모든 던전을 클리어한 현석은 숙소를 정리해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고 근처 바위에 앉아 동료들이 나올 때까지 쉬기로 했다.

    “음?”

    쉬기 시작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양동욱이었다.

    전화를 받은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흑시가 움직였다고?”

    흑시가 퀸급 던전 화이트홀을 다시 한 번 공략하겠다고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나선 모양이었다.

    “그럼 다음은…… 중국인가?”

    현석의 다음 목표가 정해졌다.

    < 투명 던전 공략 2 (10권 끝)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