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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50화 (250/326)
  • < 투명 던전 공략 1 >

    칼슨은 앞에 앉은 노인을 담담히 쳐다봤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깊은 곳에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굳이 이러셔야 했습니까?”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설마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그 역시 몰랐으니까.

    “제롬 에너지를 그놈에게 맡긴 것부터가 실수입니다.”

    “원탁회의의 결정을 무시하진 않을 걸세.”

    칼슨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과연 그럴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우리를 견제하지 못해서 안달이 났는데?”

    “이미 통보해 놨네. 더 이상 엇나가면 경질시키겠다고.”

    “미래산업과 손잡겠다고 다각적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그걸 포기하겠습니까?”

    “당연하지. 안 그러면 다 끝장날 테니까.”

    노인의 눈에서 순간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그걸 본 칼슨이 그제야 비웃음을 지웠다.

    저 노인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물론 결국은 칼슨의 충실한 신하로 만들기야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이 세상의 왕에 가장 가까이 선 사람이었다.

    그러니 굳이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미래산업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설마 그런 물건을 들고 나올 줄이야…….”

    그렇게 말하는 칼슨의 손목에도 미래산업에서 출시한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아이기스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팔찌였다.

    불의의 사고로 인한 죽음을 한 차례 예방해주는 획기적인 아티팩트였다.

    게다가 굳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도 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아이기스의 출시는 세상을 정말 크게 뒤흔들었다.

    칼슨뿐 아니라 원탁회의에 참석하는 가문의 대표들도 모두 아이기스를 하나씩 착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여분의 아이기스를 갖고 다니기까지 했다.

    아이기스는 하나를 착용하나 둘을 착용하나 효과는 똑같다. 더구나 둘을 착용해도 작동할 때는 두 개가 동시에 작동해 버리기 때문에 하나씩 차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걸 몸에 닿지 않는 곳에 따로 지니고 다니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칼슨은 가방에 여분의 아이기스를 다섯 개 정도 넣어가지고 다녔다.

    여차하면 쓰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지극히 낮지만 말이다.

    아이기스는 그야말로 미친 듯한 속도로 팔려 나가고 있었다. 가격은 천 달러 정도에 형성되어 있었다.

    결코 싸지 않았지만 여분의 목숨이라는 걸 생각하면 절대 비싼 값이 아니었다.

    심지어 총을 맞아도 살려주니 말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재생연고는 의학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다.

    이건 그냥 아티팩트 같은 수준을 벗어났다.

    약화된 힐링포션 같은 물건이었으니까. 게다가 플레이어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반인도 다 쓸 수 있다.

    이번에 미래산업에서 출시한 물건들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반인들도 쓸 수 있다는 것.

    “그 약삭빠르고 원탁에 대한 반감이 제일 큰놈이 과연 쉽게 포기하겠습니까? 그리고 미래산업에서 고작 그런 것도 모르겠습니까?”

    노인이 무서운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칼슨을 노려봤다.

    칼슨도 지지 않고 노인을 노려봤다.

    “렉스턴과 제롬 사이에 정보를 흘려서 싸움을 붙인 놈들입니다. 고작 그런 애송이 하나 못 구워삶을 것 같습니까?”

    “그래도 결국은 굴복할 걸세.”

    칼슨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결국은 굴복하겠죠. 아니면 가문이 박살 날 테니까. 하지만 그때까지 낭비한 시간은 어쩝니까? 과연 미래산업이 그때까지 기다려줄까요?”

    칼슨이 손을 들어 손목에 있는 팔찌를 흔들었다.

    “이런 대단한 물건을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들고 나온 놈들이?”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가?”

    칼슨이 이를 갈며 말했다.

    “당장 실력행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그 애송이 놈도 아마 정신을 차릴 겁니다.”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가문이 대체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칼슨이 피식 웃었다.

    “그 애송이가 권력 때문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겁니다.”

    칼슨이 한 말은 비단 그 애송이 놈 하나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원탁에 소속된 다른 가문 역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경고하고 대비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탁은 이미 돈과 권력이라는 괴물에 먹혀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결국 한참을 뜸들이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원탁을 한 번쯤 정리할 때가 되긴 했다.

    ‘피바람이 몰아치겠어.’

    칼슨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맴돌았다. 피바람이 몰아친다는 건 자신에게 기회가 온다는 뜻이다.

    아마 노인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이득을 취하게 되는 것도 바로 노인이리라.

    ‘그럼…… 나중을 위해 준비를 좀 해둬야겠군.’

    이제부터는 전쟁을 준비할 차례다.

    피바람으로 원탁을 정리하고 나면 렉스턴과 원탁이 손을 잡고 미래산업을 견제할 것이다.

    ‘아마…… 쉽진 않겠지.’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다. 미래산업과 원탁이 최대한 피를 많이 흘리고 그 와중에 렉스턴은 몸을 사려야 한다. 그것도 드러나지 않게 말이다.

    칼슨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정말 재미있겠어.’

    그건 칼슨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의 싸움이었다.

    * * *

    현석은 팀 메인퀘스트를 긴급히 소집했다. 사실 아르포르 기사단도 여기 써먹으면 좋겠지만 그들은 볼텍스 암시장을 보호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지금은 렉스턴 에너지가 조용히 있다고 해도 언제 또 무슨 위험한 일을 벌일지 모르니 충분히 대비해 두는 편이 나았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건가요?”

    류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요즘 그녀는 맹훈련 중이었다.

    그녀뿐 아니라 팀 메인퀘스트 전원이 굉장히 열심히 훈련했다.

    원래는 킹급 던전에서 사냥을 하면서 실전 훈련을 하려고 했다.

    한데 막상 킹급 던전에 가니 오히려 퀸급 던전보다 못했다.

    나오는 마수 자체는 강력한 것 같은데, 왠지 퀸급보다 훨씬 수월하게 사냥이 가능했다.

    그래서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다른 방식으로 훈련을 했다.

    어차피 레벨이야 사냥을 꾸준히 하고 모험을 하다보면 오르는 것이니, 레벨이 아닌 더 근본적인 훈련을 통해 강해지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선택은 라이언, 추광열과의 대련이었다.

    라이언과 추광열이 같은 편이 되어 팀 메인퀘스트를 상대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것이 의외로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팀 메인퀘스트뿐 아니라 라이언과 추광열에게도 도움이 되는 훈련방식이었다.

    훈련을 빙자한 그들의 대련은 정말로 격렬했다. 수시로 부상자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힐링포션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지독한 훈련에 매진하고 있을 때 현석이 갑작스럽게 호출했기에 다들 무슨 일인지 궁금해 했다.

    그래서 류지혜가 질문했을 때,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현석만 바라봤다.

    “던전을 공략하러 간다.”

    “던전이요? 퀸급 던전 말인가요?”

    “그 화이트홀에 드디어 가는 건가?”

    다들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던전 공략이라고 하니 화이트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 마치 딴 세상이 펼쳐진 듯한 화이트홀에서 굉장한 모험을 하고 오지 않았던가.

    그 모험을 통해 얼마나 성장하고 또 얼마나 가슴뛰는 경험을 했던가.

    그런 모험을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현석은 가타부타 대답해주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현석은 미래산업 빌딩 옥상으로 향했다. 일행은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저길 왜 가는 거지?’

    그 의문은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해결되었다.

    “어? 헬기?”

    옥상에 헬기 한 대가 있었다. 앞으로는 헬기로 이동할 모양이었다.

    ‘일단 미국에서 내가 아는 투명 던전의 수는 총 일곱.’

    현석은 그 위치를 다시 되새기며 헬기에 올라탔다.

    모두 타자, 헬기가 날아올랐다.

    * * *

    “여기가 어디죠?”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던전에 가자고 해서 왔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석은 일행을 슥 둘러본 다음 말했다.

    “여길 클리어하고 나면 저 헬기를 타라. 다음 장소로 데려다줄 테니까.”

    “예? 다음 장소요?”

    “어딜 클리어하라는 건데?”

    류지혜와 라이언이 의아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현석은 말없이 한쪽을 가리켰다. 다들 그쪽을 바라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여긴 그저 도로 한가운데일 뿐이었다.

    “저기 던전이 있다.”

    “예에?”

    모두 어이없는 표정으로 현석과 현석이 가리킨 곳을 번갈아 바라봤다.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그냥 나오면 안 된다. 그 안에 화이트홀이 있을 테니 그걸 찾아내.”

    다들 멍하니 그런 현석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뭐 하자는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는 현석은 절대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화이트홀에 들어가면 마족과 마수가 있을 거다. 그걸 모두 토벌하는 것이 너희가 할 일이다.”

    마족이라는 말에 다들 표정이 굳었다.

    현석이 도로 한가운데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얼른 가보라는 뜻이었다.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전부 투명 던전에 들어갔다.

    현석이 미리 일행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마력패턴을 맞춰둔 것이다.

    이 안에는 아무 플레이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정확히 현석이 방금 지정한 사람들만 들락거릴 수 있었다.

    이제 마력 컨트롤 능력과 마법의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 것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으니 투명 던전이야 금방 클리어할 테고, 문제는 마계인데…….’

    마계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충분히 그곳을 무사히 토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아마 나올 때쯤에는 제법 성장해 있을 것이다.

    현석은 서둘러 움직였다. 이들이 저길 클리어하는 동안 자신도 다른 투명 던전과 마계를 클리어 해야 한다.

    ‘다음 던전은 샤텐한테 맡기고…….’

    현석은 자신까지 총 세 팀을 만들어 투명 던전을 클리어 해 나가기로 계획했다.

    샤텐은 걱정이 없다. 아마 투명 던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이 알고 있는 투명 던전 중에는 샤텐을 힘들게 할 만한 곳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팀 메인퀘스트도 충분히 클리어가 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회귀 전과 지금은 플레이어들의 수준 자체가 아예 다르니까.

    ‘생각해보니…… 뭐가 이렇게 빠르지?’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너무 빨랐다. 마치 뭔가 특별한 힘이 개입된 것처럼 말이다.

    팀 메인퀘스트나 라이언, 추광열이야 현석이 도와줬으니 그렇다 쳐도 다른 플레이어들의 수준도 회귀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뭔가 특별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닐까?’

    왠지 모르지만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나도 서둘러야겠어.’

    투명 던전과 마계를 모두 클리어한 다음은 서둘러 신의 파편 퀘스트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나마 렉스턴 에너지를 견제하는 일을 양동욱이 도맡아 해주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현석은 왠지 렉스턴 에너지는 곁다리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두 번째 투명 던전에 도착했다.

    현석은 샤텐을 불렀다.

    그림자에서 쑥 솟아난 샤텐은 마치 미리 명령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투명 던전에 들어가 버렸다.

    “그럼 여기도 해결됐고…… 다음은 내 차례인가?”

    현석은 남은 투명 던전 중 가장 크고 위험한 던전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 투명 던전 공략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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