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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49화 (249/326)
  • < 미래산업의 도약 2 >

    거대한 원탁에 일곱 명의 남녀가 둘러앉아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보는 게 어떻습니까?”

    머리에 하얀 터번을 두른 사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렇게 침묵만 지키고 있다고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칼슨과 얘기해본 분 있나요?”

    요염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 자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과 태도였지만 다들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얘기해봤습니다. 아직은 그냥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더군요.”

    “대응할 생각 자체가 아예 없을 거예요. 우리의 영향력을 끌어내릴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칼슨이 언제까지 저 허황된 꿈을 꾸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까? 이참에 정리해 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말쑥한 정장을 입은 젊은 사내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칼슨이 무서워서 이러는 게 아닌데 그 자를 쳐봐야 무슨 소용인가요? 우리가 신경 쓰는 건 칼슨 뒤애 있는 미카일이에요.”

    “그놈의 미카엘, 미카엘. 우리 가문의 어르신들도 그렇고 다들 미카엘에게 뭔가 당하기라도 했습니까?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 겁니까?”

    사내의 어조에는 살짝 조롱도 담겨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미카엘 따위 언제든 정리해 버릴 수 있다는 듯 자신감이 철철 넘쳐흘렀다.

    “젊다는 건 참 좋네요.”

    “아직 인생의 쓴맛을 못 봤으니 자신감도 넘치고요.”

    “어른의 말을 잔소리로 받아들일 나이죠.”

    젊은 사내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발끈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조롱을 담았는데 저들이 조롱한다고 발끈하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로 낙인찍힐 테니까.

    “어쨌든 우리도 이제 변할 준비를 할 때가 된 건 확실해요.”

    “준비야 이미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우린 언제나 변화를 주도해 오지 않았습니까.”

    “주도가 아니라 달리는 황소의 등에 잠깐 올라탔던 것뿐이죠. 이제 그 황소가 미쳐 날뛰고 있고요.”

    “그리고 황소를 잡겠다고 투우사도 나타났고?”

    여인이 요염하게 웃었다.

    “정확해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다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이내 여인이 침묵을 깨뜨렸다.

    “자,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뭘까요?”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눈만 지그시 감고 있던 가장 늙은 사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최소 70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하기 그지없었다.

    “맹수를 투입해야지. 황소도 투우사도 다 잡아먹어 버리게 말이야.”

    노인의 말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렉스턴 에너지와 미래산업을 동시에 견제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면 된다.

    어차피 돈이야 넘치도록 있었고, 회사를 성장시킬 방법도 무궁무진하니까.

    “무작정 회사만 만든다고 끝이 아닐 텐데요?”

    아까 그 젊은 사내였다. 그의 눈빛이 뱀처럼 번들거렸다.

    “우린 기술이 없습니다. 미래산업처럼 고효율 정제 마정석을 만들 기술도, 또 거기서 전기를 뽑아낼 기술도. 대체 뭘로 회사를 만들 생각입니까?”

    “일단 에너지를 뽑아낼 기술은 있네.”

    노인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언제 그런 기술을 개발했단 말인가.

    “우리가 괜히 렉스턴 에너지에 그 막대한 돈을 투자한 건 아니지 않나. 조금씩 기술을 빼돌려서 이젠 제법 그럴듯하게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네.”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들 심란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은 그동안 이 모임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벌써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자리였다. 노인이 리더가 된 이후 누구도 그 자리를 넘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이 너무 오래 되었다.

    각자 나름대로 가문의 힘을 키워왔고, 또 역량도 제법 높아졌다.

    그래서 슬슬 노인의 자리를 탐내고 있었는데, 오늘 노인이 정말 오랜만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여줬다.

    “정말 놀랍네요. 대체 언제부터 진행을 하셨기에 벌써 기술을 개발했죠?”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빙긋 웃기만 했다.

    사실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부터 진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되지 않으면 굳이 쓰지 않을 생각이기도 했다.

    노인에게는 이런 식으로 언제든 버릴 각오를 하고서 준비한 카드가 아직 무수히 많았다.

    그건 비단 렉스턴 에너지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른 가문들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럼 이제 우리와는 전혀 관계 없는 것처럼 위장해서 회사 하나를 만들면 되겠군요.”

    그 뒤, 미래산업과 계약해서 정제 마정석을 공급받으면 당장 렉스턴 에너지를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미래산업이네요. 대체 그들의 정체가 뭐죠?”

    “너무 뜬금없어서 이제부터 슬슬 우리도 알아봐야 할 것 같아. 한데 칼슨은 그들이 국가연합일 거라고 판단한 것 같더군.”

    노인의 말에 다들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가능성 있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렉스턴 에너지에 투자했듯이 역량 있는 국가들이 미래산업에 투자했을 수도 있었다.

    “만일 그런 거라면 일이 훨씬 쉬워지겠네요.”

    그들은 모두 움직일 준비가 되었다. 아직까지 세계의 에너지는 그들 손아귀에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걸 빼앗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회의가 끝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벗어났다. 하지만 노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노인의 비서가 다가와 조용히 보고했다.

    “성공적으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흥미진진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럴 때 참 답답하고 짜증이 나지. 하지만 또 재미있기도 해.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겠어.”

    노인은 빙긋 웃었다.

    “그래도 결국은 모두 내 것이 되겠지. 언젠가는 말이야.”

    노인은 비서로부터 서류를 건네받았다. 거기에는 미래산업에 성공적으로 입사한 사원이자 스파이들의 명단과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회사 중추로 올라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사실 렉스턴 에너지의 기술도 이런 식으로 뽑아낸 것이다. 렉스턴 에너지는 솔직히 미래산업보다는 훨씬 쉬웠다.

    애초에 투자를 하면서 칼슨의 눈을 가리고 막대한 인력을 밀어 넣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래산업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늘 함께 회의를 한 나머지 가문에 사람을 심었을 때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하고 싶군.”

    비서가 깊이 허리를 조아렸다.

    “모시겠습니다.”

    * * *

    양동욱은 언제나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현석에게 보고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엇나갔을 때 제대로 잡아줄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그동안은 현석이 자리에 없었으니 혼자서 모든 걸 진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최근 현석이 계속 남아 있어서 최대한 자주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했다.

    오늘도 양동욱은 마치 현석의 비서처럼 아침부터 찾아가 보고서를 올렸다.

    현석은 굳이 이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그 말을 꺼내진 않았다.

    이미 예전에 몇 번이나 했던 얘기고 그때마다 같은 답을 들었다.

    이제 이건 양동욱만의 고집이나 철학이라고 판단해 그냥 존중해 주기로 했다.

    “예상대로 난리가 났습니다.”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고는 씨익 웃었다. 이제 이쪽도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정보력이 훨씬 높아졌다.

    양동욱은 그동안 정보에 꾸준히 돈과 인력을 늘려갔다. 그렇게 차츰차츰 늘린 정보력이 이젠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키운 정보력을 또 마음껏 써먹었다. 조사가 필요한 조직이 있으면 계속 투입하고 또 키우고 또 투입하는 걸 반복해서 이뤄낸 정보력이었다.

    당연히 그 정보력을 집중시킨 곳은 렉스턴 에너지였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렉스턴 에너지에 투자한 거대 에너지 기업들과 가문들에게도 선이 닿았다.

    “이들이 렉스턴 에너지를 견제할 모양입니다.”

    그 말에 현석이 어이없는 눈으로 양동욱을 쳐다봤다.

    “그리고 우리 쪽에 스파이를 심었습니다.”

    “스파이?”

    “뭐…… 일종의 산업스파이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조직의 중추에 자리를 잡은 다음 차근차근 정보를 빼가는 방식입니다. 렉스턴도 그렇게 당한 모양입니다.”

    현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양동욱을 쳐다봤다.

    거기까지 파악했다는 건 그들에 대해 정말 굉장히 깊고 많은 조사를 했다는 뜻이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 전공입니다. 사실 이런 기업 운영보다는 정보나 모략 쪽이 훨씬 쉽고 편하거든요.”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양동욱은 기업을 운영하는 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제법 많이 섭외해 놓았다.

    그들에게 조금씩 일을 분산시켜서 맡길 계획이었다. 물론 총괄은 자신이 해야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조금 더 지켜보는 중입니다. 렉스턴 에너지 쪽에도 슬쩍 정보를 흘려뒀습니다.”

    아마 렉스턴 에너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곳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칼슨은 이런 일을 절대 그냥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적절한 시점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두 가지 무기를 동시에 꽝 터트릴 생각입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알아서 해도 된다. 지금 현석은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었으니까.

    왠지 서둘러 투명 던전을 찾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 강해졌다.

    더 정확히는 투명 던전 속에 연결되어 있는 마계를 정벌하고 싶었다.

    현석이 그렇게 딴 생각에 잠깐 빠져 있을 때, 양동욱이 물었다.

    “언제쯤 터트릴까요? 사실 양산은 이미 시작해서 충분한 재고를 쌓아뒀습니다. 대장님이 주신 아공간 창고 아주 잘 써먹고 있습니다.”

    현석은 아공간 창고 몇 개를 개조해서 양동욱에게 주었다. 굳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도 열고 닫을 수 있는 아공간 창고였다.

    게다가 용량은 어마어마하게 커서 그 창고 두 개로 새로 만든 두 가지 물건을 양산해 엄청나게 쌓아뒀다.

    아마 당분간 생산하지 않아도 몇 달은 충분히 팔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세상에 던질 충격을 감안해도 그 정도였다. 그러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을 비축해둔 것이다.

    현석은 대답하지 않고 양동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런 건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양동욱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지금 당장 확 발표하는 겁니다. 일단 암시장에서 먼저 팔면서 정부 승인을 진행하면 되니 아마 시장에 굉장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양동욱의 입가가 길게 늘어났다.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그리고 두 번째는 렉스턴 에너지와 그쪽에서 만든 회사, 제롬 에너지가 가장 크게 격돌한 순간 발표하는 겁니다.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습니까?”

    현석은 양동욱의 말을 들으며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그냥 다 풀어버리고 끝내지.”

    양동욱이 씨익 웃었다.

    “역시 대장님은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냥 화끈하게 가는 게 대장님 스타일 아닙니까.”

    현석은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말았다. 양동욱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솔직히 그런 데에 나눠줄 심력이 없었다.

    지금은 온통 다른 일로 머리가 꽉 차 있었다.

    일단 투명 던전과 마계도 정리해야 하고, 또 다른 화이트홀로 들어가 그쪽 세상도 확인해야 한다.

    아직 미처 찾지 못한 신의 파편도 더 찾아야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세 개 남았네.’

    퀸급 던전 생성지역에 있는 화이트홀을 다 합하면 총 6개다.

    왠지 그곳을 모두 돌아도 신의 파편을 전부 찾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현석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뉴욕의 전경이 쫙 펼쳐져 있었다.

    현석은 뉴욕을 보는 게 아니라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불현듯 어떤 생각 하나가 현석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럼 지금 당장 소문부터 내겠습니다.”

    양동욱이 그 말을 남기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현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문을 나서는 양동욱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아마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뭐…… 이걸로 모자라면 다른 걸 또 주면 되니까.”

    아직 현석에게는 무궁무진한 물건이 남아 있었다. 이걸로 안 되면 또 주면 된다.

    아마 당장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그럼…… 나도 슬슬 시작해 볼까?’

    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시간을 끌어서 좋을 일이 아니었다. 현석이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일단…… 기억에 남은 것들부터 처리하자.’

    현석은 회귀 전에 무수한 투명던전을 발견했다. 물론 그 모든 투명던전을 다 공략한 건 아니었다.

    그저 괜찬아 보이는 걸로 골라서 공략을 했다.

    현석은 머릿속으로 그 모든 던전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이번에는…… 다 데려가야겠군.’

    그동안 충분히 쉬었을 팀 메인퀘스트와 라이언, 추광열이 다시 움직일 때가 되었다.

    < 미래산업의 도약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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