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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48화 (248/326)

< 미래산업의 도약 1 >

칼슨은 초조하게 보고를 기다렸다. 이제 슬슬 결과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무런 연락도 없으니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예상 시간을 까마득하게 넘긴 다음에 래리가 들어왔다.

칼슨은 불안한 표정으로 래리를 바라봤다.

“어떻게 됐나?”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습니다.”

“뭐? 실패했다고? 틀림없나? 정확히 확인한 사실이야?”

“아직 더 확인해봐야 하지만…… 들어간 자들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니 실패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래리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사실 이렇게까지 일이 안 풀릴 거라고는 그도 생각지 못했다.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뭔가 큰 피해는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얻은 성과가 전무했다.

아니, 얘기를 들어보니 안에서 마수 몇 무리를 처리했다고 하니 그게 소소한 성과라면 성과라 할 수 있을까?

칼슨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힘없이 축 늘어졌다.

“지치는군.”

“어쩔까요? 다시 습격조를 짜볼까요?”

칼슨이 고개를 저었다. 래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을 다물고 칼슨의 명령을 기다렸다.

여기서 다시 습격을 시도하는 건 머저리나 하는 짓이다.

일단 뭘 하려고 해도 적의 정확한 전력을 다시 파악하는 것이 순서였다.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전력을 감추고 있었어. 일단 그놈들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먼저다.”

“예. 그 부분은 이미 지시를 내려뒀습니다.”

칼슨이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런 일처리는 래리에게 맡겨두면 편하다.

“대체 어디서 그딴 놈들이 튀어 나온 거지? 그놈들 때문에 지금까지 세운 모든 계획이 다 틀어지고 있어.”

“아무래도 배후가 있지 않겠습니까?”

“배후? 배후라…….”

칼슨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려봤다.

미래산업도 그렇고 볼텍스 암시장도 그렇고 그저 돈만 많다고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볼텍스 암시장에 들어간 마력 기반 시스템은 아직 렉스턴 에너지조차 확보하지 못한 기술이었다.

아니, 확보고 뭐고 원리가 뭔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게다가 미래산업은 또 어떤가. 그놈들이 툭툭 내놓는 제품들은 플레이어 세상을 한바탕 뒤집어 놓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페레인 엑기스라는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까지 개발해냈다.

과연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조직이 몇이나 있을까?

“아무리 넓게 잡아도 고작 두세 군데에 불과해. 지금까지 은둔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조직이 나와서 저런 걸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니까. 안 그런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네가 생각하는 배후는 어디지?”

“전…… 몇몇 국가가 연합한 것 같습니다.”

“국가 연합?”

칼슨이 눈을 번득였다. 듣고 보니 확실히 그럴듯했다.

렉스턴 에너지는 국가를 초월한 기업체였다. 이곳에 투자한 자들은 전 세계의 에너지 시장을 꽉 쥐고 있는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과 잡은 손은 결국 나중에 다 끊어버릴 것이다. 칼슨의 목표는 이 세계의 진정한 왕이었으니까.

그들은 칼슨의 신하로 남거나 아니면 파멸을 택해야 하리라.

물론 그건 칼슨이 진짜 왕이 되었을 때의 얘기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수많은 방해를 넘어서야 한다.

그런 칼슨의 의도를 아무도 모르고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렉스턴 에너지의 투자자들도 그걸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만히 있는 건, 나중에 그 결과가 나오더라도 칼슨을 자신들이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세계의 왕을 배후에서 지배하는 암중의 황제가 될 생각이었다.

그러니 칼슨의 계획을 짐작한 국가들, 그 중에서도 강한 힘을 가진 국가들이 서로 손을 잡고 견제하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지금까지처럼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일이 그 한계를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 래리의 분석은 아주 정확했다.

“하지만 명확한 적을 파악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

래리가 씨익 웃었다.

“우리의 정보력은 세계 제일입니다.”

칼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권을 맡긴다는 뜻이었다. 앞으로 래리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서 미래산업과 볼텍스 암시장의 배후를 캐낼 것이다.

스턴 에너지가 가진 그 어떤 힘이라도 다 쓸 수 있다면 아마 래리는 분명히 해낼 것이다.

칼슨은 래리에게 전권이라는 위험한 칼을 건넸다.

“아, 그리고 예전에 내가 얘기했던 건 어떻게 됐지?”

“일단 너무 범위가 광범위해서 정보부터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체를 명확히 표현할 수가 없어서 쉽지 않습니다.”

“하긴, 그렇겠지.”

칼슨도 예전 미카엘이 했던 그 말만으로 대상을 압축해서 찾아낸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 일을 미카엘은 벌써 몇 년 동안이나 해오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다른 정보를 더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 분명히 그렇겠지.’

칼슨은 손을 내저었다.

“그만 가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해.”

“물론입니다. 아마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래리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며 칼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묘한 불안감이 살짝 들었다가 사라졌다.

‘뭐, 별 일이야 있겠어?’

칼슨은 래리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내 래리가 문을 탁 닫고 나갔다.

칼슨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업무에 빠져들었다.

* * *

미카엘은 눈보라를 헤치고 걸었다. 그는 설마 자신이 남극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힘들거나 짜증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대감에 설렜다.

미카엘은 나침반 하나 없었지만 정확히 남쪽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그의 목표는 남극점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남극점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크레바스 아래였다.

남극의 크레바스는 그 안을 탐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장소였다.

언제 몰아칠지 모를 눈폭풍에 눈과 살얼음에 가려진 크레바스들이 아차하는 순간 탐사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하지만 미카엘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심지어 그의 걸음은 거침없을 뿐 아니라 빠르기까지 했다.

만일 보통의 탐사대가 이런 식으로 이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크레바스에 빠져 죽을 확률이 엄청나게 높을 것이다.

미카엘은 거의 달리듯 이동하가가 눈을 빛냈다.

아직 남극점에 가려면 한 시간 정도는 더 이동해야 한다. 한데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보였다.

‘장소는 제대로 찾아왔군.’

미카엘을 기다리던 사내들 중 하나가 황급히 앞으로 다가와 팔을 자신의 배에 휘감으며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왕을 배알합니다.”

미카엘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다리느라 고생 많았다.”

“별말씀을. 이쪽으로 오시지요.”

사내의 정중한 안내를 받은 미카엘은 몇 발 걷지 않아 거대한 크레바스를 볼 수 있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곧 눈보라가 몰아칠 겁니다. 서두르시는 게 좋습니다.”

미카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좀 더 빨리 움직였다.

사내들은 망설임없이 크레바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미카엘도 따라 뛰었다.

슈우욱!

공기가 바람이 되어 귓가에 스쳐지나갔다. 미카엘의 눈에 거대하고 새하얀 소용돌이 하나가 보였다.

크레바스 바닥에 존재하는 거대 화이트홀이었다.

“거저로구나.”

근처 벽에 몸을 착 붙이며 미카엘이 말했다. 다른 사내들도 같은 방법으로 벽에 붙어서 화이트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을 확인했나?”

“예. 안은…… 지옥입니다.”

미카엘이 환하게 웃었다.

“내가 기다리던 게 바로 그거다.”

그 말과 동시에 미카엘이 벽에서 손을 놓았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화이트홀로 빨려 들어갔다.

벽에 붙어있던 사내들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부디 무운을.”

* * *

렉스턴 에너지의 습격을 무사히 막아낸 볼텍스 암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렉스턴 에너지는 엠페러타워를 포기했다. 그 보복으로 습격을 한 건데 정말 아무것도 못해보고 당한 것이다.

양동욱은 볼텍스 에너지가 습격을 막아낸 사실을 잘 포장해서 슬쩍슬쩍 공개했다.

그걸 마케팅에 써먹은 것이다.

렉스턴 에너지에서도 당분간 관망으로 태세를 전환해서 볼텍스 암시장의 성장에 걸림돌 자체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마어마한 돈이 볼텍스 암시장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경제적 가치 하나만으로도 볼텍스 암시장의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물론 폭발적 성장세는 끝없이 이어지진 않았다.

어느 정도 폭발한 다음 안정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애초에 양동욱이 원하던 거였다.

더 이상 볼텍스 암시장에 양동욱이 손댈 필요가 없어졌을 때, 지금껏 지켜보고 배우기만 했던 켄드릭이 볼텍스 암시장을 맡았다.

켄드릭은 볼텍스 암시장을 양동욱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이 암시장 자체를 거대한 정보 수집 창구로 이용했다. 정보 상인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한껏 살려서 정보 조직을 차근차근 만들어갔다.

볼텍스 암시장이 제대로 안정을 찾았을 때, 양동욱은 이제 그걸 지켜보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일에서 손을 떼버린 것이다. 아마 앞으로는 볼텍스 암시장에 대한 중요한 보고는 현석에게 집중될 것이다.

애초에 그게 맞다. 양동욱이 그린 큰 그림 중 일부가 그렇게 완성되었다.

그림의 귀퉁이를 완성한 양동욱은 현석을 찾아갔다.

현석은 양동욱을 보자마자 눈을 빛냈다.

“준비가 끝난 모양이군.”

“예. 완벽하게 준비가 끝났습니다. 문제는 그 반발력을 우리가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느냐죠.”

현석은 엄살을 떠는 양동욱을 보며 피식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충분히 대비가 되어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양동욱은 섣불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얼마나 조심성이 많은지 확실한 일도 두세 번 더 확인하고 진행했다.

“이번엔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아마 렉스턴 에너지도 뜨악할 거예요. 그리고 우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겠죠.”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고는 씨익 웃었다.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얼른 다음 일격을 먹일 겁니다. 이걸로 말이죠.”

양동욱이 테이블 위에 몇 가지 물건을 탁탁 내려놓았다.

현석이 준 마정석 찌꺼기를 이용해 만든 물건들이었다.

사실 양동욱이 할 일은 그저 조립해 맞추는 것밖에 없었다. 물론 입이 무거운 기술자를 섭외해야 했지만 그런 건 양동욱에게 있어선 정말 쉬운 일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두 가지 물건이 있었다.

하나는 팔찌였다.

“아마 다들 이걸 갖지 못해서 혈안이 될 겁니다.”

인체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으면 자동으로 발동해 착용자를 보고하고 치료하는 아티팩트였다.

중요한 건 이 아티팩트는 굳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도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오래전에 발견되었던 몇몇 유물처럼 말이다.

“1회용이지만 가격이 얼마가 되었건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겁니다.”

당연하다. 고작 팔찌 하나 착용하는 걸로 여벌의 목숨을 가질 수 있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불시에 일어나는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면 이런 것 하나쯤 장만 못하겠는가.

“군사용으로 쓸 수도 있겠군.”

“예. 하지만 타격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생각보다 높지 않아서 아마 총알을 한번쯤 막는 정도가 전부일 겁니다.”

하지만 고작 그 한 번의 총을 막는 것만으로 작전의 성공률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효용을 가진 물건이었다.

“적당한 가격을 설정 중입니다. 그리 싸게 만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책정하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만일 이걸 양산할 수 없다면 가격이 높아지는 게 당연하지만 이건 그냥 찍어내듯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비싼 휴대폰 정도 가격 정도로 책정하면 아마 쏟아지는 돈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물건은 작은 튜브였다.

“재생 연고입니다.”

현석이 눈을 빛냈다. 원래는 연고 형태가 아닌데 양동욱이 개량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연고로 만들어야 쓰기가 편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나의 연고로 여러 번 쓸 수 있게 만든 대신 치유력은 좀 줄어들었다. 그래도 이게 훨씬 나을 것이다.

연고를 상처에 펴 바르면 즉시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는 기적의 약이었다.

일종의 힐링포션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것 역시 일반인들도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물론 상처가 너무 크면 소용이 없었다. 효과가 아예 없진 않겠지만 차라리 병원에서 처리를 받고 마무리로 이걸 쓰는 게 훨씬 낫다.

이 재생연고를 더 고도로 응축하면 그게 바로 힐링포션이다. 하지만 힐링포션을 만들기 위해선 고작 마정석 찌꺼기만으로는 안 된다. 정제된 마정석이 필요했다.

“이것도 가격을 책정 중인데, 최대한 싸게 팔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제약회사들이 가만있지 않겠군.”

양동욱이 씨익 웃었다.

“지들이 가만 안 있으면 어쩔 겁니까? 어차피 자기들도 우리 물건을 못 써서 안달일 텐데요.”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이제부터 생산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아마 한 달 안으로 세상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겁니다.”

양동욱의 눈빛은 긴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현석이 특유의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 마라. 우리가 흔들릴 일은 없을 테니까.”

그제야 양동욱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확히 일주일 후, 미래산업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정제한 마정석을 공개했다.

폭격의 시작이었다.

< 미래산업의 도약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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