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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47화 (247/326)
  • < 볼텍스 습격사건 2 >

    “정말 특이한 곳이야.”

    에단은 눈앞에 덩그러니 세워진 문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볼텍스 암시장에는 몇 번 와봤다. 하지만 올 때마다 드는 경외감과 신비함은 여전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사람이 저 벽을 통과해 다른 장소로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꼭 던전 같단 생각이 드니…….’

    이곳에 한 번이라도 와 본 플레이어는 100이면 100 에단과 같은 생각을 떠올린다.

    볼텍스 암시장은 던전에 만들어진 암시장일 거라고 말이다.

    실제로 볼텍스 암시장에 가면 던전과 흡사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만일 던전이라도 블랙홀은 아닐 것이다. 블랙홀 특유의 위화감이 없는 진짜 세상이니까.

    하늘도 있고 땅도 있다. 그리고 거대한 성도 있다. 하지만 위성으로도 발견하지 못한 장소였다.

    그러니 얼마나 신비로운가. 그런 장소를 만들어낸 볼텍스 암시장 놈들이 가끔 존경스러울 때가 있을 정도였다.

    에단은 생각을 정리하고 표정을 수습했다. 지금은 이렇게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가자.”

    에단은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벽으로 걸어갔다. 그의 몸이 스며들듯 벽으로 들어가 버렸다.

    볼텍스 암시장에 입장한 것이다. 만일 누군가 들어갈 때마다 어딘가로 신호가 전해진다면 이들이 암시장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광고하듯 떠벌리고 들어가는 셈이 된다.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장소를 못 찾았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심지어 볼텍스 암시장의 위치는 여기 들어가서 한바탕 크게 싸우고 돌아온 미카엘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미카엘에게 볼텍스 암시장의 정체에 대해 물었을 때,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그 결과 미카엘은 던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애매한 답을 남겼다.

    에단의 뒤로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모두 입장했다.

    그리고 미카엘의 플레이어 14명이 그 뒤를 따랐다.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볼텍스 암시장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들이 모두 들어가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복도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이동하는 발소리였다.

    잠시 후, 방으로 101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두터운 후드를 깊게 써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자들이었는데, 상당히 좋은 장비로 제대로 무장한 플레이어들이었다.

    “장비는 다들 확인했나?”

    그 질문에 다들 케틀러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굳이 소리내서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간단한 의사소통을 눈빛만으로도 주고받을 수 있었으니까.

    “좋아. 그럼 다들 들어간다. 우릴 기습하겠다고 온 놈들이니 뒤통수 한 번 제대로 후려쳐 보도록.”

    케틀러는 그 말을 끝으로 볼텍스 암시장에 뛰어들었다. 100명의 아르포르 기사단이 속속 따라 들어갔다.

    * * *

    에단은 암시장에 들어오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밤에 들어왔는데 여긴 낮이었다.

    그러고 보니 볼텍스 암시장은 미국에 있지 않을 거라던 얘기을 들었던 것 같다.

    뉴욕과는 시차가 제법 있는 곳인지 밤낮이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났다.

    어쨌든 밤낮이 있다는 것 자체가 던전이 아니라는 증거로 쓰이곤 했다.

    “다들 왔나?”

    에단은 그렇게 물으며 뒤로 돌아 직접 동료들을 확인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들어왔다.

    “이제 싹 정리할 시간이다.”

    에단은 그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지나가 저 성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저 성은 오늘 박살 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 성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오늘 다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이 볼텍스 암시장과 관계된 사람이건, 그냥 손님으로 온 사람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에단을 선두로 101명의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들판을 가로질렀다.

    그들은 단숨에 성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촤촤촤촥!

    갑자기 수풀 속에서 툭툭 튀어 오르며 길쭉한 창을 내지르는 마수들이 그들의 돌진을 막아선 것이다.

    에단은 깜짝 놀랐다. 마수들이 그 어떤 기척도 없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상황이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나타난 마수들은 에단 일행을 상대하기엔 너무 약했다.

    “볼텍스 암시장에 마수들이 살고 있다더니 정말이었어!”

    그동안 전해듣기만 하다가 진짜 마수들을 보니 이건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마수들이 자신을 공격한다는 건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마수들은 그냥 손님들에게는 절대 공격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슈가가각!

    에단의 검이 세 마리 마수의 목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쥐새끼 얼굴을 한 인간형 마수였는데,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워낙 수가 많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그렇게 쉽게 죽일 수는 없었다.

    “이딴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에단은 훨씬 더 난폭하게 움직이며 마수들을 학살했다.

    고작 이 정도 마수로 이곳을 지키려 한다니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알았어야 한다. 이들은 고작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마수들의 진짜 목적은 시간을 버는 것이었으니까.

    콰콰콰콰콰!

    갑자기 뒤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에 에단을 비롯한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기습이다!”

    “막아!”

    거친 외침이 울렸고, 뒤이어 무기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우웅!

    슈가가가각!

    플레이어들의 팔다리며 목이 거침없이 날아가 버렸다.

    나타난 자들, 아르포르 기사단은 적을 상대함에 있어 일말의 자비심이나 인정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적을 척살해 나갔다.

    숫자도 같은데 실력차도 월등하고, 장비까지 더 뛰어나니 에단 일행이 아르포르 기사단을 이길 가능성은 요만큼도 없었다.

    아르포르 기사단은 말 그대로 에단과 100명의 플레이어들을 휩쓸어 버렸다.

    그리고 에단 일행이 그렇게 싸우고 있을 때, 그들을 그냥 지나쳐 조용히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14명이나 있었다.

    * * *

    현석은 성의 첨탑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그곳은 이곳 볼텍스 암시장이 한눈에 모두 보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저 멀리서 에단 일행이 싸우는 모습도 똑똑히 보였다.

    에단 일행의 발을 마수들이 막아섰고, 그렇게 번 시간 동안 아르포르 기사단이 들이닥쳤다.

    에단 일행은 거의 일방적으로 당했다. 하지만 그들도 나름 정예였는지라 저항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아르포르 기사단이 그들을 모두 정리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는 뜻이다.

    사실 실력차가 저렇게 현격한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 데에는 에단 일행이 갖고 있는 스킬 몇 가지 때문이었다.

    그들은 함께할수록 방어력이 높아진다. 그리고 희박한 확률로 적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방어막이 생기기도 한다.

    그 방어막은 한계치 이상의 공격에는 부서지지만, 어쨌든 방어막까지 부수면서 타격을 입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에단 일행은 진형 보정스킬이라는 집단전에서는 사기 같은 스킬을 보유 중이었다.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미묘하게 개입해 진형을 맞춰주는 스킬이었다.

    그런 스킬들 덕분에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현석은 에단 일행 쪽에 신경을 껐다. 그쪽은 이제 10분도 버티지 못한다.

    ‘저놈들은 그때 그 놈들이로군.’

    에단 일행이 마수를 상대하고 있을 때 살짝 우회해 거침없이 성으로 달려오고 있는 14명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그들 앞으로 다른 마수들이 나타났지만 그들은 마수들을 그냥 쓸어버렸다.

    현석은 더 이상 그들 앞에 마수가 나타나지 않도록 조치했다.

    이곳의 마수들은 모두 현석의 충실한 노예들이었다. 그저 의념을 보내는 것만으로 마수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저 정도 레벨을 가진 사람들이 저렇게 많다는 게 좀 의외네.”

    아쉽게도 저들의 정보에는 미카엘에 의해 길러진 플레이어라는 설명이 빠져 있었다.

    그저 급격히 성장한 플레이어라는 설명만 있었다. 그래서 현석도 거기까지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저들을 모두 없애는 게 중요하다.

    저들은 렉스턴 에너지가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들 중 하나일 테니까.

    ‘너희도 이제 슬슬 쉽지 않아질 거다.’

    지금 한창 은밀히 움직이고 있는 양동욱의 일이 마무리 되고 나면, 렉스턴 에너지도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미래산업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를 쓰지 못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마정석 정제법을 얻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정제법을 얻기 위해 아마 앞으로는 훨씬 더 지저분한 일을 시도할 것이다.

    그래도 그게 낫다. 정제법을 지키면서 다른 일을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까.

    이번 일의 목적은 양동욱에게 한숨 돌릴 여유를 주는 것이었다. 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 렉스턴 에너지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 이번엔 그림자들의 능력을 한 번 볼까?”

    현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샤텐이 그림자 속에서 쑥 솟아나왔다.

    그는 현석에게 정중히 허리 숙여 예를 취한 뒤, 따로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그림자들을 뽑아냈다.

    정확히 14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샤텐은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림자들은 마치 명령을 받은 것처럼 즉시 움직였다.

    그들은 그림자답게 벽에 짝 붙어서 벽을 타고 이동했다. 마치 정말로 그림자가 벽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림자들은 성에서 내려간 다음에도 바닥을 타고 움직였다. 그들은 정말로 그림자 그 자체였다.

    그림자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14명의 플레이어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각각 한 명씩 플레이어를 맡은 다음 즉시 위로 튀어올랐다.

    촤아악!

    갑자기 나타난 시커먼 그림자에 14명의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그림자들의 기습이 그렇게 막혔다. 하지만 14명의 플레이어들도 발이 멈췄다.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엄청나게 긴장했다.

    방금 한 차례 손을 섞으며 분명히 느낀 것이다. 지금 나타난 시커먼 놈들은 정말로 강했다.

    “젠장. 실패야.”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다들 대꾸는 안 했지만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만일 앞을 가로막는 이놈들이 없었다면 완벽한 성공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성과를 갖고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놈들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뭔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지극히 낮았다.

    뒤쪽에 남은 에단 일행이 모두 당하고 나면 그들을 처리한 자들이 그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릴 리 없으니까.

    그래도 해볼 만큼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다들 손에 든 무기를 꽉 쥐었다.

    14명의 플레이어들은 각자 쓰는 무기가 다 달랐다. 그리고 다들 제각각이었다. 함께 하는 싸움 따위는 아예 몰랐다.

    그러니 그냥 흩어져서 싸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다들 슥 흩어져 각자 맡은 그림자에게 달려들었다.

    채채채채채채챙!

    격렬한 쇳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그림자들의 실력은 상당했지만 14명의 플레이어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싸움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현석은 첨탑 꼭대기에서 그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그림자들의 힘을 대충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림자들은 아르포르 기사단에 비하면 좀 모자랐다. 하지만 이들의 특기는 정면 대결이 아니었다.

    특기도 아닌 정면 대결로 이 정도 싸웠으면 충분히 칭찬할 만했다.

    “그럼 이제 특기를 시험해 보자고.”

    현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샤텐의 몸에서 그림자 14개가 더 빠져나갔다.

    그들 역시 벽과 바닥을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14명의 플레이어 뒤쪽에 자리를 잡고 그들의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그림자 하나가 위로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등을 칼로 푹 찔렀다.

    너무나 허무하게 플레이어 하나가 죽어버린 것이다.

    그 그림자만 튀어나온 건 그 플레이어가 빈틈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그림자들이 툭툭 튀어 나와 플레이어들의 등을 푹푹 찔렀다.

    거의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빠른 시간에 14명의 플레이어들이 다 쓰러져 버렸다.

    현석은 그 모든 걸 지켜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림자의 힘은 암습이었다.

    저 정도 수준의 플레이어도 기습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앞에서 덤벼드는 그림자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굉장한 은신과 암습 능력이었다.

    현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샤텐을 쳐다봤다.

    샤텐은 저 그림자들을 몽땅 합친 것보다도 더 강하다. 그럼 대체 어떤 존재를 암습할 수 있을까?

    ‘그 미지의 플레이어도 암습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현석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싸움이 다 끝났다. 아르포르 기사단이 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제 렉스턴 에너지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이를 갈며 노렸음이 분명한 습격이 실패로 끝났다. 과연 다시 습격을 준비할까?

    현석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랬으면 좋겠군.’

    이번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싸워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미지의 플레이어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쯤 됐으면 나타날 때도 된 것 같은데…… 혹시 무슨 다른 일이라도 있나?’

    이 정도로 당했으면 그 강력한 미지의 플레이어가 한 번쯤 나서는 게 순서였다.

    그런데도 안 나타나는 건 렉스턴 에너지에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미지의 플레이어에게 뭔가 일이 생겼거나 말이다.

    현석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 볼텍스 습격사건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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