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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46화 (246/326)
  • < 볼텍스 습격사건 1 >

    현석은 곧장 아르포르 기사단부터 찾아갔다. 일단 그들부터 제대로 된 장비로 무장시키고 싶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큰 싸움의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르포르 기사단은 여전히 수련 중이었다.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격렬한 수련을 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마력 코어의 힘을 자유롭게 끌어다 쓰는 훈련을 중점적으로 했다.

    몸을 움직이는 훈련은 그걸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전까지는 해선 안 된다.

    현석이 방으로 들어서자 케틀러가 맞아주었다.

    “왔나?”

    “수련에 진척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군.”

    현석이 케틀러를 보며 눈을 빛냈다. 다른 기사들은 몰라도 케틀러는 마력코어에 대한 적응 훈련이 완벽하게 끝난 듯했다.

    “그럭저럭. 이젠 슬슬 몸을 움직이는 격렬한 훈련이 필요한데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있었으면 해서 말이지.”

    케틀러는 그렇게 말하며 현석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한 판 붙어보자는 뜻이었다.

    케틀러는 새로 얻은 힘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걸 넘어서서 다음 단계로 진입하고 싶었다.

    지금의 몸 상태로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불가능한 일을 박살 내고 이뤄내고 싶었다.

    케틀러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언제나 한계와 싸웠고, 그 한계를 때려 부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러니 지금이라고 다를 게 뭐 있겠는가. 그냥 하면 된다. 그리고 해내면 된다.

    “자리를 좀 옮길까? 여기선 곤란하니까.”

    현석의 말에 케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였다. 몸 좀 풀겠다고 이 좋은 보금자리를 부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현석이 앞장서자 케틀러가 그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건물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향했다. 따라가던 케틀러의 눈빛이 묘해졌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근처에 제법 한적한 공원 같은 곳도 있는데.”

    현석이 피식 웃었다.

    “얼마나 요란하게 싸울지 모르는데 그런 데서 광고할 일 있어? 거의 다 왔으니까 그냥 따라와.”

    케틀러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따라갔다. 생각해보면 현석이 그동안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다보면 언제나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곤 했다.

    잠시 후, 현석은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런 곳에 싸울 만한 장소가 있을 리 없는데?’

    넓은 공터를 찾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좁은 곳을 찾아다니고 있으니 이상할 법도 했다.

    하지만 케틀러는 끝까지 참고 따라가기만 했다. 그리고 결국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다.

    “설마 여기서 싸우자는 건 아니겠지? 제대로 움직일 공간도 안 나올 것 같은데? 이런 방식의 훈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몸이 움직일 공간을 제한하고 움직이며 하는 훈련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훈련을 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지금은 최대한 격렬하게 싸워야 한다. 이런 좁은 곳에서 그런 격렬한 싸움이 가능할 리 없었다.

    현석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케틀러는 현석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것을 덥석 잡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야가 잠시 뒤엉켰다.

    케틀러는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주위를 슥 둘러봤다.

    분명히 밤에 나왔는데, 환한 대낮이 되었다.

    그리고 분명히 좁은 골목 끝에 있었는데,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에 서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넓은 공터에 말이다.

    “일단 주변 정리부터 좀 하지. 가볍게 몸도 풀 겸.”

    “주변정리?”

    케틀러는 대번에 이곳이 던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이 있던 지하감옥과 마찬가지로 투명던전이라는 곳이리라.

    현석이 앞장서서 공터를 벗어났다. 그러자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틀러가 그 뒤를 따라갔다.

    숲을 벗어나자마자 케틀러는 감회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는…… 디에른 요새로군.”

    저 멀리 단단한 성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성채 좌우로 쫙 펼쳐진 성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요새를 장악하고 있는 무수한 언데드들이 보였다.

    케틀러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언데드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짐작하는 대로.”

    현석의 말에 케틀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디에른 요새를 향해 달려갔다.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죽음의 마력이 원인이라는 것쯤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족 때문이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케틀러가 가까이 다가가자 요새로부터 무수한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고작 화살로 케틀러의 돌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케틀러는 높이 점프해 단숨에 성벽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언데드들을 말 그대로 학살했다.

    현석은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케틀러와 굳이 대련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이곳 투명던전으로 데려왔다.

    이제 슬슬 투명던전들을 공략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연결된 마계에 가서 마족들도 토벌해야 한다.

    왠지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사실 신의 파편을 찾아 깨우는 과정을 겪으며 점점 더 그 감정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점점 더 위기감이 생겨났다.

    신의 파편을 찾는 퀘스트를 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던전 세상의 신이 자신을 나쁘게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세상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조금 돕는 중이고 말이다.

    현석이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케틀러는 성벽 위의 언데드들을 모두 정리하고 요새를 뛰어넘은 뒤였다.

    요새 너머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언데드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병사도 있고 장교도 있고 기사도 있었다.

    당연히 병사보다는 장교나 기사들이 더 강하다. 심지어 마법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케틀러 하나를 당해내지 못했다.

    케틀러는 정말 엄청나게 강했다. 안 그래도 강한데 싸우면서 점점 더 새로운 힘에 익숙해져 더 강해졌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되겠군.”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요새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케틀러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언데드들을 가볍게 처리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언데드가 소멸하며 내뿜는 마력파동이 끊임없이 몸을 자극했다.

    아마 현석의 레벨이 낮았으면 레벨업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현석은 고작 이 정도 언데드들은 아무리 죽여도 레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새를 넘어간 현석은 사방으로 날뛰고 있는 케틀러를 내려다보다가 가볍게 검을 휙휙 휘둘렀다.

    케틀러와 거리가 제법 먼 곳에서 화살이나 마법을 날리고 있는 언데드들을 정리한 것이다.

    디에른 요새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언데드 정리도 비교적 빨리 끝났다.

    현석은 성벽 위에서 훌쩍 뛰어내려 가만히 서 있는 케틀러에게 다가갔다.

    “몸은 좀 풀렸나?”

    케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한 번 미쳐 날뛰니까 몸이 확 풀리긴 했다. 한데 그래도 뭔가 좀 미진했다. 아직 완벽하게 마력 코어를 장악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실망하지 마. 이제 여길 이렇게 만든 원흉을 치러 가야지.”

    원흉이라는 말에 케틀러의 눈빛이 사납게 번득였다.

    “이 근처에 마족이 있나?”

    현석이 씨익 웃으며 앞장섰다.

    “따라와.”

    현석은 아주 능숙하게 감춰진 화이트홀을 찾아냈다. 마계로 가는 입구였다.

    [마계49지역]

    비교적 높은 숫자가 붙은 지역이었다. 아마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마계에 갔던 게 언제였더라?’

    기억을 떠올려야 할 정도로 오래 되었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엄청나게 강해진 상태였다.

    그러니 이 정도 마계는 그저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이 케틀러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계 중 한 곳이지.”

    케틀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이트홀로 뛰어들었다. 앞뒤 설명은 듣지도 않고 무작정 마계로 가버린 것이다.

    그만큼 이곳에서 제대로 분노했다는 뜻이다.

    “뭐…… 조만간 익숙해져서 담담해지겠지만.”

    이런 일을 여러 번 경험하다보면 내성이 생겨 감정이 지금처럼 격하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다.

    그게 사람이니까.

    현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화이트홀로 들어갔다.

    * * *

    아르포르 기사단은 묘하게 달라진 케틀러의 분위기에 가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석과 둘이 어딜 다녀왔는지 모르지만 한동안 케틀러가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아무도 근처에 다가가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이제는 좀 나아졌다.

    기사들의 훈련을 봐주기 시작하면서 뭔가 마음의 정리를 한 모양이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다들 준비해라.”

    케틀러의 말에 아르포르 기사단은 서둘러 훈련을 마무리하고 장비를 갖춰 입었다.

    이 장비는 현석이 새로 장만해준 것이었다. 그들의 마음에 아주 쏙 들었다.

    사실 예전 황궁에 있을 때도 이 정도로 좋은 장비를 착용하진 못했다.

    이 장비들 중에는 최소한 기사단장급 이상만이 쓸 수 있는 것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이 장비들은 엠페러타워의 모든 경비와 전투를 담당하게 될 플레이어들에게 지급할 장비였다.

    그들은 엠페러타워의 핵심전력이자 렉스턴 에너지의 비밀병기들이었다.

    한데 이렇게 맥없이 장비를 털렸으니 얼마나 속이 쓰리겠는가.

    렉스턴 에너지에서도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마련한 장비세트였다.

    아마 준비된 플레이어들은 급이 낮은 다른 장비를 가지고 전혀 다른 임무에 투입될 것이다.

    장비를 갖춰 입은 아르포르 기사단의 모습은 제법 봐줄만했다.

    지이잉!

    테이블 위에 놓아둔 전화기에서 진동이 일어났다.

    케틀러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아르포르 기사단을 향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출동이다.”

    * * *

    시커먼 가죽갑옷을 입고 허리춤에 검을 찬 사내들이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 중이었다.

    수가 무려 100명이나 됐는데, 그 100명을 한 사람이 가장 앞에서 이끌고 있었다.

    100명의 돌격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에단이라는 플레이어였다.

    그는 수시로 뒤를 확인하고 주변을 살피면서 이동했다.

    이번 습격은 그 역시 기대하는 바가 컸고, 사실 복수심도 좀 있었다.

    에단은 이번 작전을 수행하기 전에 몇 가지 얘기를 전해 들었다.

    하나는 그들이 원래 쓰기로 한 장비를 몽땅 도둑맞았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원래 엠페러타워의 중추가 될 플레이어들이라는 것이었다.

    엠페러타워의 보호부터 관리까지 모두 에단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걸 아주 자세히 알려주었다.

    한데 엠페러타워를 폐쇄하기로 하면서 모든 것이 백지화 되었고, 그 이유가 바로 볼텍스 암시장 때문이라는 것을 거의 세뇌에 가깝게 교육받았다.

    당연히 깊은 증오심을 갖게 되었고, 그 증오심과 분노를 원동력 삼아 이번 임무에 나섰다.

    그건 에단뿐 아니라 나머지 100명의 플레이어들의 공통적인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그 100명의 플레이어 뒤를 따르는 14명의 플레이어가 있었다.

    엠페러타워에서 현석에게 제대로 물을 먹은 미카엘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250레벨 이상의 고레벨 플레이어였다.

    그들 역시 다들 이를 갈고 있었다.

    지난번 엠페러타워의 습격이 볼텍스 암시장에 의한 일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동료가 두 명이나 죽었다.

    하나는 가장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였고, 또 하나는 그들을 이끌던 마요트였다.

    그들의 눈은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실 마요트나 동료에 대한 애정 때문에 생긴 복수심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꺾인 자존심 때문에 생긴 복수심이 훨씬 컸다.

    그리고 더불어 미카엘에 대한 뼛속 깊은 두려움이 그들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만일 여기서 제대로 복수하지 못하면 나중에 미카엘을 만났을 때, 얼마나 호된 꼴을 당하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카엘을 떠올린 그들의 몸이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진입한다.”

    어느새 볼텍스 암시장에 도착한 그들이 더욱 빠르고 은밀하게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모든 플레이어들이 안으로 들어간 다음, 수백 명의 무장병력이 나타났다.

    그들은 볼택스 암시장을 물샐 틈 없이 포위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을 번득이며 사방을 감시했다.

    저 안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가 그들의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칼슨이 개인적으로 고용해서 부리는 전쟁용병들이었다.

    얼음장 같은 냉철함과 악마 같은 잔인함을 동시에 갖춘 놈들이었다.

    칼슨은 이들을 뒤따라 보내면서 이제 더 이상 볼텍스 암시장에 신경 쓸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 정도로 확실한 카드 중 하나였다.

    진득한 투기와 살기가 볼텍스 암시장 건물을 칭칭 휘감았다.

    < 볼텍스 습격사건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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