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요트 1 >
현석의 치료로 완벽하게 부활한 아르포르 기사단은 수련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수련할 필요는 없었다. 새로 얻은 힘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된다.
그러는 사이 현석은 아르포르 기사단이 쓸 장비를 마련해 보기로 했다.
예전 현석이 만들어 주었던 장비는 좀 어설펐던 게 사실이었다.
그때는 장비의 질보다는 아르포르 기사단의 영혼과 마력이 흩어지지 않게 잡아주기 위한 마력패턴을 새기는 데 더 큰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번 치료를 통해 더 이상 그런 장비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
마력코어에 직접 영혼과 마력을 세상에 안착시킬 마력패턴을 새겨넣은 것이다.
덕분에 아르포르 기사단이 쓸 수 있는 장비의 폭이 넓어졌다. 현석은 그들이 다시 예전 그 강력한 플레이어를 만나더라도 쉽게 당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려면 지금 얻은 힘을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뛰어난 장비를 착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었다.
그 장비를 가장 빨리 잘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양동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동욱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 없었다. 양동욱은 지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다.
너무 많은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미래산업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그걸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게다가 미래산업의 일은 보안이 생명이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양동욱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양동욱이 일을 못하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얼른 떠오르는 건 피라밋 암시장에 부탁을 하는 거였다. 거기에는 블러디퀸이나 임형석이 있으니 아마 최대한 좋은 물건을 구해줄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종로 암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있다. 황노인도 오랜만에 현석을 만나면 정말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가장 단순무식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엠페러타워에 가는 거였다.
볼텍스 암시장을 계속 습격한 렉스턴 에너지에 대한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보복은 엠페러타워에 방문하는 것일 테니까.
‘뭐…… 어차피 한 번 가려고 했으니 엠페러타워에 가볼까?’
예전에 엠페러타워에 갔을 때는 모든 물건을 거대한 아공간 창고에 보관해서 털어오기가 아주 수월했다.
만일 이번에도 그렇게 보관한다면 그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 아공간 창고는 현석이 가진 아공간에 보관이 가능한 아주 특별한 창고였으니까.
아공간 구성 방식이 전혀 달라서 서로가 공간에 간섭을 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는 그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황궁 마법사를 만나고 마탑의 주인이 되면서 마법에 대한 훨씬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접하고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때의 아공간 창고는 어떤 거대한 구조물로 이루어진 아티팩트의 일부만 떼어서 온 거였다.
만일 렉스턴 에너지에서 엠페러타워를 담당하는 자가 생각이라는 걸 한다면, 이번엔 좀 다른 방식의 창고를 만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예를 들면 그 방어구조물까지 몽땅 갖다가 설치했다거나.’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직접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얼마나 어려울지 알 수 없다.
문제는 딱 하나였다.
‘과연 그놈이 거기 있을까?’
지금 그 강력한 플레이어를 만나면 과연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꼭 만나서 한 번 싸워보고 싶긴 했다.
추정레벨이 300을 훨씬 넘어가는 강자와의 싸움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좋아. 가자.’
현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일일수록 망설임이 길면 그르친다. 결심이 섰을 때 바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현석은 즉시 엠페러타워로 향했다.
* * *
마요트는 엠페러타워의 중심부를 어슬렁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표정은 답답함과 불만이 뒤섞여 있었다. 거기에 약간의 그리움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었다.
“다들 잘 하고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마요트는 피식 웃었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단 말인가.
마요트가 비록 총 책임자이고, 다들 그의 말을 잘 따르고 있긴 했다.
하지만 마요트는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마요트의 부하이자 동료들은 마요트보다 훨씬 강했다.
그 이유는 딱 하나다. 미카엘과 더 오랫동안 함께 했기 때문이다.
미카엘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재능 있는 사람을 발탁해 자신이 직접 그를 데리고 다니며 키워주곤 했다.
그렇게 키워진 인재들을 렉스턴 에너지로 보내 회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칼슨의 심복으로 있는 플레이어 중 상당수가 그런 식으로 키워진 자들이었다.
하지만 마요트는 그들과는 좀 달랐다. 좀 더 특별했다.
그리고 지금 마요트와 함께 있는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로 특별했다.
그들은 다들 아프리카에서 왔다. 미카엘이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인재들을 플레이어로 키워낸 것이다.
아프리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미카엘이 눈독을 들일만한 인재들이 상당히 많았다.
마요트는 그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과 재능을 발휘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곳 렉스턴 에너지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건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었다.
싫다고 거절했어야 한다. 아니, 미카엘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애원했어야 한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왜 중요한 건 지나고 나야 알게 되는 걸까?”
어쨌든 지금은 이곳을 지켜야 한다. 자신의 상관인 칼슨의 명령에 의해서 말이다.
그것도 칼슨의 촉이 안 좋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사실 엠페러타워의 보안을 강화해야 하는 건 맞다. 최근에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엠페러타워를 개장한다. 그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기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았고, 들락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마요트는 이럴 시간에 1분 1초라도 더 많이 던전을 돌아야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료이자 부하들은 벽을 만나 그것을 부수고 위로 올라가고 있는데, 자신은 아직 그 벽조차 못 만나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플레이어에 따라 250레벨에 벽을 만나기도 하고 251레벨이나 252레벨에 벽을 만나기도 한다. 혹은 253레벨에 벽을 만난 사람도 있다.
어쨌든 적어도 250레벨은 넘어야 벽을 만날 수 있었다.
한데 마요트는 아직 레벨이 221밖에 되지 않는다. 250까지의 길도 멀고 험하게만 느껴졌다.
‘미카엘과 함께였으면 벌써 끝났을 텐데.’
그런 생각과 함께 한숨을 푹 내쉰 마요트는 순간 등줄기를 관통하는 소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마요트의 아주 특별한 감각이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려 할 때 느껴지는 예감 같은 거였다.
‘혹시 정말 침입자가 있나?’
마요트는 굳은 표정으로 품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방금 소름 돋았다. 다들 긴장해.”
소름이 돋았다는 말은 마요트가 뭔가를 느꼈을 때의 신호 같은 거였다. 아마 다들 바짝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엠페러타워를 털린다면 자신들을 이곳에 꽂아준 미카엘을 볼 낯이 없으니까.
* * *
현석은 아주 간단히 엠페러타워가 있는 지하로 내려올 수 있었다.
예전처럼 엠페러타워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마침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들어갈 때 함께 탔다.
엘리베이터 안은 무려 3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어떤 사각도 용서치 않겠다는 듯한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그래봐야 평범한 CCTV다. 현석이 마음만 먹으면 그 모습을 캐치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현석은 곧장 공터 끝에 있는 건물을 향해 이동했다. 모습과 기척을 감추는 건 잊지 않았다.
굳이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여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지금 현석이 많이 강해지고 미래산업이나 볼텍스 암시장이 제법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 멀었다.
렉스턴 에너지는 고작 이 정도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한 회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렉스턴 에너지 소속임이 분명한 그 미지의 플레이어도 아직 정면으로 승부해서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물론 한 번 싸워보고 싶었고, 또 어느 정도 자신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공터를 가로지르는 현석의 눈에 마요트가 보였다. 현석은 마요트의 몸 주위로 형성된 마력의 흐름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심안을 집중해 확인했다.
‘레벨이 221?’
물론 라이언이나 추광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팀 메인퀘스트에 비해서도 많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저 정도 레벨의 플레이어가 여길 지키고 있는 걸 보면 렉스턴 에너지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좀 더 조심해야겠는데?’
현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요트를 슥 지나쳐갔다. 순간 마요트로부터 기묘한 마력 파장이 느껴졌다.
현석은 즉시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그건 뭐지?’
현석은 건물 안으로 들어와 마요트를 다시 심안으로 확인했다. 특별한 스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육감-나쁜 일을 예감한다. 성향에 위배되는 마력파장을 감지해낼 수 있다. 특수한 감각을 통해 온몸에 정보가 전달된다.]
참으로 특이한 스킬이었다. 설명도 뭔가 좀 애매하고 말이다.
하지만 현석은 이런 애매한 스킬이 정작 제대로 써먹기만 하면 정말 쓸모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말로 서둘러야겠는데?’
그리고 더 조심하고 말이다. 현석은 건물 안쪽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예전에도 이곳의 창고를 한 번 털어봤기에 그 자리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전과 달리 건물 안에는 각종 전자장비가 가득했다. 일단 전자장비로 보안부터 챙긴 다음에 공사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마력을 이용한 장비였다면 훨씬 파훼하거나 피하기 쉬웠을 텐데 이곳에 그런 걸 쓸 리 없다.
군데군데 마력을 이용한 장비들이 보이긴 했지만 말 그대로 어린애 수준이었다.
그저 저런 아티팩트에 익숙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을 노리고 설치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현석은 그 아티팩트들을 교묘히 이용했다.
이곳에 설치된 마력 기반 장비들, 그러니까 아티팩트들은 대부분 마력을 감지해 그것을 신호로 바꾸어 어딘가로 전송하는 장치였다.
현석은 설치된 아티팩트들의 마력패턴을 즉석에서 분석해 그 특성과 약점을 순식간에 파악해냈다.
예전 같으면 불가능하거나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간단히 해낼 수 있었다.
현석은 자신의 마력을 살짝 가미해 마력패턴에 간섭했다. 그러자 아티팩트의 기능이 혼란을 일으키며 주변 전자장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전자장비를 아예 먹통으로 만들 수는 없었지만 기능의 상당부분이 약해져 버렸다.
현석은 그렇게 아티팩트를 간섭하면서 전자장비를 교묘히 피해 안쪽으로 쭉쭉 들어갔다.
사람이 워낙 많았기에 그들의 눈을 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건물의 끝에 도착한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원래부터 연결된 방어 아티팩트까지 모두 가져와 제대로 설치를 했다.
이건 분리해 가져가기 어렵다. 물론 예전이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걸 떼어내면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데?’
현대의 전자장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촉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다.
아마 이걸 분리하면 비상이 걸릴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당장 이거 하나 떼어내는 데 급급하지 말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준비를 하는 편이 나았다.
현석은 일단 창고형 아공간을 열었다. 그저 아공간을 여는 거였기에 여기에는 현대식 전자장비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이렇게 간단히 여는 건 불가능했겠지만 이젠 아니었다.
아공간 창고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리고 또 언제 이런 물건들을 구했는지 창고가 터질 정도로 꽉 채워져 있었다.
현석은 서둘러 목록을 조사했다. 아공간 안에 있는 물건을 살펴보는 것이 그걸 꺼내서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여긴 주로 무기류가 있는 곳이군.’
각 창고마다 아티팩트나 재료를 분류해서 보관하는 모양이었다.
제대로 털어가려면 이걸 다 쏟은 다음 컨테이너 박스를 꺼내서 담아가야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럼 일단 제일 가치가 높은 순으로 적당히 가져가야겠군.’
현석은 칸으로 나뉜 아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처음 100칸으로 시작한 아공간이 이제는 500칸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거기에 이걸 보관하기엔 칸이 너무 모자랐다.
하지만 현석에게는 일반적인 공간형 아공간도 있었다. 제법 거대한 공간을 가진 배낭형 아공간과 허리춤에 매달 수 있는 주머니형 아공간도 있었다.
현석은 일단 창고에서 눈에 띄는 무기를 되는 대로 꺼내 자신의 아공간에 담았다.
그 중에는 아르포르 기사단에 지급할 만한 무기도 제법 많았다.
다시 아공간 창고를 닫은 현석은 다음 창고로 이동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아공간 창고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것들을 추려서 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엠페러타워에 타격이 되겠지만 고작 그 정도 타격으로는 이들의 오픈 일정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현석은 눈을 빛내며 하나하나 확인한 창고 중에서 가장 눈여겨 본 창고를 향해 은밀하고 빠르게 이동했다.
< 마요트 1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