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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40화 (240/326)

< 일단 복귀 2 >

아르포르 기사단은 숙소를 옮기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이 할 일이 너무나 뻔했기에 그냥 원래 있던 곳에서 편히 지내다가 일이 있을 때만 다녀오면 된다.

원래는 각자 흥미를 가진 걸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절반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누운 동료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치료과정이었다.

동료의 도움으로 마력을 추스르고 주변에 흐르는 마력을 모아 손상된 육체를 조금씩 복구했다.

하지만 워낙 크게 당해서 복구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케틀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쉽지 않겠군.”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아쉬움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쩌겠습니까. 그런 굉장한 놈을 만나 싸워봤으니 충분히 만족합니다.”

누워서 치료를 받던 기사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도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담담함 속에 속 시원함이 살짝 가미되어 있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몸이었다. 그걸 억지로 붙들고 있는 상황이니 죽음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달랐다.

“굉장한 놈이긴 했지. 다음에 싸워도 결과는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또 한 번 싸워보고 싶기는 하군.”

“장비를 좀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장비를 쓰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케틀러가 피식 웃었다.

“이젠 수가 모자라서 아마 힘들 거다.”

총 100명의 기사 중에 48명이 쓰러졌다. 100명으로도 안 되던 걸 52명이 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남은 52명도 다 멀쩡한 게 아니었다. 누운 48명에 비해 나을 뿐이지 사실 그들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 기사는 1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다시 싸우면 그대로 소멸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그 놈을 다시 만나서 싸워 본다는 건 이제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그들이 그러고 있을 때, 출입구로 쓰는 곳, 한쪽 벽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내 벽이 모두 올라갔을 때, 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석은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그러자 다시 벽이 내려갔다.

“오랜만이군.”

현석의 말에 케틀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왔나?”

케틀러의 말투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현석은 케틀러에게 다가가면서 치료중인 기사들을 슥 둘러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상태는 그저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마력 흐름이 불안정했고, 군데군데 마력의 균열이 보였다. 아마 그 균열을 막지 않으면 끊임없이 마력이 흘러나가 결국 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치료도 좀 하고 얘기도 좀 하고 싶어서 겸사겸사 왔어.”

현석의 말에 케틀러가 눈을 빛냈다.

“치료한다고? 치료가 가능한가? 알겠지만 우리는 포션 같은 걸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 정도야 알고 있지. 레인보우 엘릭서를 쓰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굳이 확실치도 않은 일에 그걸 쓸 수는 없고…….”

“레인보우 엘릭서? 설마 그걸 갖고 있나?”

레인보우 엘릭서라는 말에 케틀러가 깜짝 놀랐다.

그가 한창 활동할 당시에도 레인보우 엘릭서는 엄청난 보물이었다.

“그건 마탑에서 밖에 못 만드는 물건인데?”

현석은 거기에 대한 답은 해주지 않았다. 굳이 자신이 새 마탑주가 되었다고 말해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케틀러도 딱히 답을 듣고자 한 말은 아니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뭐…… 우리한테는 별 쓸모없을지도 모르지.”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귀한 보물을 자신들에게 쓰는 건 그냥 낭비였다.

차라리 그걸 써서 큰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사람에게 쓰는 편이 훨씬 나았다.

케틀러는 현석을 보며 말했다.

“네가 쓰는 건 어때? 보아하니 이제 슬슬 성장에 한계가 온 게 아닐까 싶은데.”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레인보우 엘릭서를 쓰는 건 이쪽 플레이어들이나 저쪽 던전의 사람들이나 똑같은 모양이었다.

“일단 치료부터 하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케틀러를 유심히 살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마력의 코어에 미세한 균열이 무수히 나 있었다. 이걸 제때 조치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는 수가 있다.

“많이 다쳤는데?”

현석의 말에 케틀러의 눈빛이 묘해졌다.

“그걸 알아볼 수 있나?”

자신이 다쳤다는 건, 자신 외에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부하 기사들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한데 한 번 척 보더니 그걸 알아차리다니.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정말 놀랍군.”

현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마력을 움직였다. 현석의 마력이 케틀러를 포근히 감쌌다.

“힘 풀어. 괜히 저항하지 말고.”

이럴 때 저항하면 아차하는 순간 오히려 상처가 더 깊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케틀러는 굳이 눕지는 않고 온몸의 긴장을 촥 풀어버렸다.

현석은 케틀러의 가슴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샤아아아아!

현석의 손바닥을 통해 막대한 마력이 케틀러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현석의 마력이 케틀러의 코어를 빈틈없이 감쌌다. 그리고 갈라진 균열을 조금씩 메우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작업을 하면 아무리 메웠다고 해도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 얘기는 완벽한 치료가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석의 작업은 그렇지 않았다. 케틀러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훨씬 근본적인 치료를 해 나갔다.

코어를 완전히 녹이다시피 해서 흐물흐물하게 만든 다음 그걸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 버렸다.

케틀러는 자신의 마력코어가 변해가는 모습을 생생히 느끼며 정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

치료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방식이라면 지금 누워있는 기사들도 모두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이해가 안 가는군.”

케틀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의 마력코어도 아닌 남의 마력코어를 이렇게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게 가능한가? 아니, 그걸 떠나 마력코어를 이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주무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어때? 좀 나아진 것 같지?”

그 물음에 케틀러가 어이없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좀 나아진 것 같으냐고? 오히려 다치기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다.”

마력코어도 훨씬 단단해졌다. 그리고 부상과 치료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가진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아마 모르긴 해도 다시 그놈과 싸운다면 예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수련하고 싶어진 건 정말 오랜만이로군.”

케틀러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정중히 현석에게 말했다.

“저 녀석들도 좀 부탁하지. 아직 그냥 가버리기엔 좀 아까운 놈들이라서.”

현석은 씨익 웃고는 치료중인 기사들에게 걸어갔다.

다들 방금 현석이 무슨 일을 했는지 봤기에 긴장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눈빛으로 다가오는 현석을 바라봤다.

누워 있던 기사들은 이미 전부 일어나 있었다.

“일단…… 상태가 제일 심각한 사람부터 시작하는 게 낫겠군.”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기사들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무려 100명의 코어를 다시 손봐야 하는 일이다. 그런 빡센 일을 계속 서서 할 수는 없었다.

현석이 기사들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그 기사가 득달같이 달려와 현석 앞에 똑바로 섰다.

현석은 그 기사의 가슴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기사 한 명을 나머지 손으로 까딱여 불렀다.

다가온 기사의 가슴에도 손바닥을 올렸다.

우우우웅!

케틀러를 치료할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마력이 현석의 양손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마력은 두 기사를 완벽하게 감싸버렸다.

그렇게 치료가 시작되었다.

* * *

“후우. 이거 쉽지 않군.”

현석은 소파에 축 늘어지다시피 했다.

그 앞에 도열한 아르포르 기사단은 그런 현석을 존경과 경탄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몸들은 좀 어때? 이제 움직일 만하지?”

“예. 아주 좋아졌습니다.”

대표로 기사 한 명이 대답했다.

그냥 좋아진 정도가 아니었다. 마력코어가 부서져 이제 더 살 수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그걸 고친 건 물론이고 훨씬 더 단단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르포르 기사단은 마력코어만 멀쩡하면 어떤 부상을 입건 자가치료가 가능했다.

그들이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저주로 인해 몸뚱이를 잃어버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앞으로는 쉽게 다치지 않을 것이다. 코어가 훨씬 단단해졌으니까.

게다가 케틀러가 느꼈던 경험을 나머지 기사들도 고스란히 겪었다.

다들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면서 훨씬 더 강해졌다.

그러니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준 현석을 보며 감탄과 존경을 동시에 표할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치료는 끝난 것 같으니 대화를 할 차례로군.”

케틀러가 대표로 현석 앞으로 다가와 소파 하나를 놓고 마주앉았다.

“우리랑 싸운 그놈이 궁금한 거겠지?”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케틀러가 심각한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통 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강한 놈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케틀러는 잠시 그때의 싸움을 회상한 다음 말을 이었다.

“그놈이 우리와 싸우다가 물러나긴 했지만, 만일 끝까지 싸움을 고집했다면 우린 다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다.”

현석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현석이 장춘에게 들었던 자는 3년 전에 200레벨을 훌쩍 넘을 정도로 대단한 플레이어였다.

어쩌면 그때 이미 300레벨을 넘었을 수도 있다. 장춘이 알아볼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럼 대체 지금 레벨이 몇이라는 거야?’

케틀러나 아르포르 기사단은 정말로 강하다. 고작 300레벨 정도의 플레이어가 홀로 대적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놈은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지?”

케틀러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크지는 않을 거야. 생각보다 엄청나게 몸을 사리면서 싸우더군.”

“몸을 사렸다고?”

“그놈이 싸우다 말고 돌아간 타이밍도 우리가 죽음을 불사한 채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기 시작할 때였으니까.”

현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쩌면 상대는 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전혀 타격이 없을 수도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모양이었다.

‘지금의 내가 과연 그자를 이길 수 있을까?’

문득 렉스턴 에너지는 왜 이런 자를 두고서 미래산업과 볼텍스 암시장을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공략하는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엠페러타워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군.’

현석은 이번에 엠페러타워를 공략하러 갈 때에는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하거나.

* * *

렉스턴 에너지의 실권자라 할 수 있는 이사, 칼슨은 단 한 명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람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상황에서 또 떠나겠다고?”

“카발라가 재미난 걸 발견한 모양이야. 일단 그걸 확인하고 그 근처를 샅샅이 뒤져봐야지.”

“또 그 열쇠인지 뭔지를 찾으러 가는 건가?”

미카엘이 빙긋 웃었다.

“그래도 이제 훨씬 수월해지지 않았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잖아. 이제 엄살은 그만 떨어도 되네.”

칼슨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한 말은 엄살이 맞다.

하지만 미카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 확연하니 그를 붙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내가 애들 새로 잔뜩 데려다 줬잖나. 아마 그 녀석들을 이용하면 나 혼자 설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걸세.”

그 말에 칼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질린 눈으로 미카엘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수를 어떻게 쓴 건지 미카엘은 레벨 250이 넘는 괴물 같은 플레이어를 무려 15명이나 데려왔다.

처음 자신을 찾아왔던 마요트는 212레벨에 와서 이젠 221레벨이 되었다.

엄청난 레벨업 속도였다. 한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250이 넘는 플레이어를 15명이나 데려오다니.

대체 어떻게 이리도 강해졌느냐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았다. 미카엘 덕분이라고 했다.

“대체 무슨 수를 써서 그렇게 빠르게 성장했는지 비법이나 좀 알려주면 안 되겠나?”

미카엘이 고개를 저었다.

“나밖에 할 수 없는 거야. 스킬과 관계된 거라서.”

칼슨이 쓴웃음을 지었다. 성장에 관계된 스킬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버리는 것 같았다.

참으로 묘한 위화감과 경외감이 들었다.

“다음에 찾아오는 건 좀 늦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니 잘 지내고 있게.”

미카엘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칼슨은 미카엘이 있던 자리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굳은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마요트. 그 녀석들 모두 데리고 엠페러타워로 가. 완벽하게 준비되기 전까지 거길 철저히 지켜. 왠지…… 촉이 안 좋으니까.”

전화를 끊은 칼슨은 잠시 미카엘을 떠올렸다.

솔직히 미카엘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도와줬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미카엘은 일정 선 이상을 넘지 않았다. 그를 볼 때마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을 도와주는 걸 보면 자신이 하는 일과 분명히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뭔지 알아냈으면 좋겠는데…….”

키워드는 열쇠다. 그리고 선택과 기억이다.

예전 미카엘이 지나가듯 했던 말을 칼슨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선택받은 자. 모든 기억을 받은 자. 조각난 세상의 열쇠가 될 자.”

그때 미카엘은 분명히 그런 말을 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내가 찾으면 되는 거잖아.”

칼슨의 눈빛이 어둡게 일렁였다.

< 일단 복귀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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