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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39화 (239/326)
  • < 일단 복귀 1 >

    화이트홀에서 나온 현석은 전화기부터 꺼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양동욱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지금 갑니다.

    양동욱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잔뜩 끼어 있었다.

    잠시 후, 방문이 벌컥 열리고 양동욱이 뛰쳐들어왔다.

    다들 멍하니 그런 양동욱을 바라봤다. 현석만 유일하게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이 많았나보지?”

    현석이 너무나 담담하게 물어서일까? 양동욱은 마음이 갑자기 차분히 가라앉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버틸 만합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아니라는 뜻이군.”

    “예. 아주 적절한 시기에 잘 도착하셨습니다.”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슬쩍 둘러봤다.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못 보던 사람이 있군요? 저 사람은 언제 데려가신 겁니까?”

    양동욱이 켄드릭을 보며 물었다.

    “데려간 게 아니라 데려온 거다.”

    “예? 데려왔다고요? 어디서 말입니까?”

    현석이 화이트홀을 힐끗 쳐다봤다. 그 의미를 금방 알아차린 양동욱의 눈이 경악으로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던전에서 데리고 나오신 겁니까? 사람을요? 아니, 그보다 던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요?”

    양동욱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조난자였다.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이런 경우가 처음도 아니었고 말이다.

    아르포르 기사단은 던전에서 현석이 데리고 나온 기사단이다.

    그들을 인간이라고 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전례가 있으니 켄드릭을 받아들이는 것도 생각보다 쉬웠다.

    “켄드릭입니다.”

    켄드릭이 나서서 능숙한 한국어로 말했다. 그리고 몇 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영어도 가능합니다. 다른 언어도 필요하다면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이쪽 세상의 언어는 익히기가 쉽게 되어 있더군요.”

    제국어에 비하면 대부분의 언어는 그냥 애들 장난 같은 수준이다. 제국어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양동욱입니다.”

    양동욱은 일단 인사부터 했다. 그리고 현석을 바라봤다. 이 사람을 왜 이리로 데려왔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 처리를 하든 할 테니까.

    “데려가서 써먹어라. 생각보다 능력이 뛰어나니까.”

    “써먹으라고요? 어디다 말입니까?”

    “저쪽 세상에서 정보를 주무르던 자다. 아마……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다.”

    현석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확실하다는 뜻이다. 양동욱은 두 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암시장 쪽을 관리할 사람이 몇 명 더 필요했는데 잘 됐군요. 그쪽으로 보내면 될 듯합니다.”

    현석은 켄드릭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켄드릭은 새로운 세상에 와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물론 당분간은 놀람의 연속이고 계속 헤맬 것이다.

    이쪽 사람들이 던전에 가면 마력의 힘에 놀라지만, 그쪽에서 이리로 오면 광범위하게 세상을 뒤덮고 있는 과학의 힘에 놀라야 할 테니까.

    켄드릭을 그렇게 처리한 현석은 양동욱을 쳐다봤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차례였다.

    양동욱이 잠시 머뭇거리자, 현석이 말했다.

    “어차피 함께 갈 사람들이다. 굳이 감출 필요 없다.”

    “알겠습니다.”

    양동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행을 다시 한 번 둘러본 다음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지금 현상유지에 급급한 상황입니다.”

    미래산업은 다각적인 로비활동을 통해 금방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는 흑철간수가 큰 역할을 했다.

    처음 세 기의 흑철간수를 주요 인물들에게 판매했는데, 그 뒤로 다섯 기의 흑철간수를 추가로 판매했다.

    다들 하나같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나 단체였기에 미래산업이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미래산업은 페레인 엑기스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면서 차츰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결국 렉스턴 에너지와 조금씩 마찰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건 사실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렇게 될 거라 예상하고 수많은 일을 계획하고 준비했다.

    아마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벌써 렉스턴 에너지의 공세에 끝장났을 것이다.

    “렉스턴 에너지는 정정당당한 승부 같은 건 안 합니다. 끊임없는 암투의 연속이라서 사실 버티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암투가 계속되면 아무래도 역사가 깊은 쪽이, 그리고 인원이 많은 쪽이, 그리고 그동안 쌓은 것들이 많은 쪽이 유리하다.

    어떤 걸 비교해도 미래산업은 렉스턴 에너지에 한참 못 미친다.

    이쯤에서 새로운 뭔가를 터트려 주거나, 한 번쯤 반격하지 않으면 정말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흑철간수를 더 판매하면 상황이 좀 나아질 가능성이 있나?”

    양동욱이 고개를 저었다.

    “흑철간수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이제 다 얻었습니다. 차라리 그걸 다른 데로 돌려서 방어에 쓰는 게 낫습니다. 볼텍스 암시장 쪽은 지금 거의 전쟁터나 다름없으니까요.”

    “그 정도인가?”

    “예.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터지고 있습니다.”

    “아르포르 기사단은?”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벌써 끝장났을 겁니다.”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며 경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정말로 대단했다.

    일단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아르포르 기사단이 나서면 무조건 해결된다고 보면 된다.

    웬만한 소규모 공격은 기사 한 명만 나서도 박살을 내 버리니 정말 쓸모가 많았다.

    “한데 최근 피해가 좀 컸습니다.”

    “피해가 컸다고?”

    “예. 절반 정도가 다쳐서 지금 치료 중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양동욱의 눈빛에 답답함과 안쓰러움이 뒤섞였다.

    아르포르 기사단에게는 딱히 뭔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포션도 그들에게는 전혀 듣지 않았으니까.

    그저 그들이 알아서 요양하고 스스로 치료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현석은 양동욱의 말을 들으며 눈을 빛냈다.

    “그들이 다쳤다고? 그것도 절반이나?”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르포르 기사단의 레벨은 정말 엄청나다.

    그런 그들이 절반 정도 다쳤다는 건 모두 동원된 작전에서 당했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 만한 플레이어가 있을까?

    현석의 뇌리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아직 만나보진 못했지만 그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한 명이었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놈이었습니다.”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며 이를 갈았다.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은빛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

    매끈한 은빛 가면에 금발을 휘날리며 대검을 쓰는 플레이어였는데, 어찌나 강한지 아르포르 기사단이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하는 건 처음 봤다.

    어쨌든 그 플레이어도 혼자라는 한계가 있었기에 결국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갔다.

    하지만 뭔가 큰 피해를 입거나 다쳐서 물러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물러난 거였다.

    아마 싸움이 더 이어졌으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뒤로 볼텍스 암시장을 습격하려는 시도가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그 전에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이대로 문을 닫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아직 그런 시도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확연히 줄어들었을 뿐, 아직도 습격이 많은 편이었으니까.

    암시장의 고객을 철저히 보호하려고 하다 보니 더 피해가 커지고 있었다.

    이럴 때 그놈이 다시 나타나면 아마 정말 암시장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었다.

    양동욱은 보고를 대충 마무리하고 현석을 바라봤다.

    마치 답을 기다리는 학생 같은 표정과 눈빛이었다.

    “그래서 암시장 상황은 어떻지? 영업이 어려울 정도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초반의 그 폭발적 성장세가 다 죽어버리긴 했습니다.”

    양동욱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엠페러타워를 다시 준비 중이랍니다. 조만간 문을 열 것 같은데, 이대로라면 흐름이 그쪽으로 아예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그건 내가 해결하지.”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엠페러타워를 엿먹이는 건 그 누구보다 잘 할 자신 있었다.

    일단 엠페러타워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투명던전도 하나 있었다.

    ‘가만, 황궁에 갈 일이…….’

    현석은 눈을 빛냈다. 현석에게는 바벨의 증표가 있다. 이건 사실 바벨의 인장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과연 이걸 보여주면 황제가 어떻게 반응할까?

    사실 황제를 만났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 황제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왠지 프로그래밍 된 로봇 같은 분위기가 더 짙었다. 인공지능이 너무 뛰어나 인간과 흡사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바벨의 증표를 보여주면 뭔가 변화가 생기거나 좋은 걸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대마법사를 한 번 더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의 현석은 그때의 현석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일단 마력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다. 그때와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마력 컨트롤 능력도 월등해졌다.

    게다가 심안까지 발전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굉장히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겸사겸사 해서 엠페러타워를 한 번 방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리고 엠페러타워를 방문하는 건 방문하는 거고 습격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야 한다.

    사실 좀 더 전력을 강화하고 볼텍스 암시장을 공격하려는 자들을 아주 철저하게 박멸해 버리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했다.

    “일단 흑철간수를 투입해서 방어를 강화하는 것부터 해야겠군.”

    그리고 아르포르 기사단을 만나 그들의 부상도 회복시켜줘야 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다. 그들은 마력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마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조절능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번에 암시장을 습격하는 놈들은 철저히 그 뒤를 캐서 끝까지 뿌리 뽑아버리는 걸로 계획을 세워봐.”

    “그 끝에 렉스턴 에너지가 있으면 어쩝니까?”

    사실 양동욱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여유도 없을 뿐더러 만일 그 뒤에 거대 세력이 있으면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두려움이 있으니 그저 막는 데 급급했다. 물론 쳐들어온 놈은 아주 철저히 박살 냈다.

    살아 돌아간 놈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름 뒤를 캐기도 했다.

    “나름 지금까지 캔 것들이 제법 됩니다. 그걸로 좀 더 철저히 파볼까요?”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보는 잘 보관해 둬. 일단 이번에는 새로운 놈부터 시작한다.”

    “예.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이제 미래산업의 문제만 남았다. 현석은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내 양동욱에게 휙 던졌다.

    그것은 작은 구슬 하나와 수십 장의 서류였다.

    “이게 뭡니까?”

    양동욱은 그렇게 물으며 일단 서류부터 확인했다. 서류를 읽을수록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 이게 진짜입니까?”

    양동욱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손에 든 구슬을 확인했다.

    이 구슬은 전혀 새로운 기법으로 정제한 마정석이었다.

    이 마정석을 이용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효율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작은 구슬 하나로 웬만한 대도시의 한 달분 전력을 풍족하게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더 대단한 건, 굳이 설비를 바꿀 필요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마정석을 이걸로 교체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그걸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다.”

    현석이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 상자 안에 시커먼 가루가 들어 있었다.

    당연히 이 가루에는 정제되지 않은 마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양동욱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 상자를 받았다. 그리고 서류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이 가루를 이용하면 아주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가공 방법에 따라 불의 성질을 띠게 할 수 도 있고, 얼음의 성질을 띠게 할 수도 있었다. 혹은 전격 속성을 담을 수도 있었다.

    아마 화약 종류를 만들어 폭탄이나 총으로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가루에 대한 이용법은 서류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양동욱의 머릿속에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부터 제대로만 한다면 이 두 가지를 이용해 미래산업의 가치를 훨씬 크게 부풀릴 수 있었다.

    “아마 렉스턴 에너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 구슬의 공급처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제법만 잘 지키면 돼.”

    그러면서 차츰차츰 외국의 에너지 산업을 장악해 나가면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렉스턴 에너지도 미래산업에게 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 무수한 싸움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일단…… 해보겠습니다.”

    양동욱은 이건 무조건 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단숨에 위로 치고 올라갈 기회였다.

    “이 정도면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

    “예. 최대한 서둘러 해결해 보겠습니다.”

    양동욱은 황급히 돌아갔다. 물론 가면서 켄드릭을 데려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양동욱이 사라지자 지금까지 얘기를 듣고만 있던 일행들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상황이 심각한 거 아냐? 우리가 뭐 할 일 없을까?”

    라이언이 나서서 묻자 현석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그냥 여기서 가만히 있어. 괜히 돌아다니다가 걸려서 쫓기지 말고.”

    “아…… 맞다. 나 쫓기는 몸이었지.”

    라이언의 표정이 급 우울해졌다. 그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류지혜를 보며 말했다.

    “단 것 좀 사다줘.”

    어쨌든 현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당분간 할 일이 없었다. 이제 푹 쉬기만 하면 된다.

    “난 잠시 다녀올 테니 혹시라도 나중에 미래산업이나 암시장 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움직이도록.”

    그 말에 라이언이 반색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다시 시무룩해졌다.

    “너희 둘은 빼고.”

    현석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라이언과 추광열을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이제 아르포르 기사단을 만나러 갈 시간이 되었다.

    ‘그놈이 과연 어땠는지 들어볼 수 있겠군.’

    < 일단 복귀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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