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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32화 (232/326)

< 사령관들 3 >

현석은 나머지 네 명의 사령관을 모두 만났다.

사령관들은 전부 같은 종류의 반지를 끼고 있었다. 바벨의 아티팩트였다.

능력치도 똑같았다. 그리고 다들 현석 아래로 들어오는 걸 원치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반응이 똑같군.”

현석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나란히 걷던 켄드릭이 말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자유가 사라지는 것 같을 테니까요.”

“불안에 떨고 있는 것 같던데.”

“불안해도 혹시 모를 미래의 희망에 모든 걸 거는 것이 인간입니다.”

현석이 피식 웃었다. 물론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정을 봐줄 필요도 없었다. 이미 기회는 충분히 줬으니까.

“차라리 내 밑에 들어오는 것이 더 자유로울 수도 있는데 말이야.”

켄드릭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특이한 거 아니겠습니까?”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달라질 건 없다.”

켄드릭은 더없이 단호한 현석의 말을 듣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럼 이제 어쩌실 계획이신지…….”

다섯 사령관을 만나고 다섯 번 힘을 과시했다. 이제 세 가문에 현석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가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세 가문도 그 힘에 걸맞은 준비를 할 것이다. 사령관들도 힘을 보탤지 모른다. 사령관들이 가진 병력을 움직이면 아무리 현석이 강하다고 해도 아마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켄드릭은 그런 걱정을 담아 현석을 바라봤다.

“사령관을 맡길 만한 적당한 인물이 있나?”

“예?”

켄드릭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 같아 다시 한 번 물었다. 현석이 말을 흐리게 한 건 아니었지만 왠지 그런 말을 할 것 같지가 않아 확인하고 싶었다.

“네 명만 뽑으면 되겠군. 마법병단은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에게 건네는 게 나을 테니까. 아, 베르딘이 좋겠군.”

켄드릭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는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현석이 왜 이렇게 여유 넘치나 했더니, 그 이유가 이것이었다.

“설마…… 마탑의 주인에게 사령관 임명권이 있는 것입니까?”

“뭐…… 그런 셈이지.”

켄드릭의 표정이 굳었다. 만일 이 사실이 사령관들 귀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당장 병력을 움직여 현석을 죽이려 할 것이다.

‘아니면 마탑을 부수거나.’

어느 쪽이든 피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치게 된다.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또 시민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피해를 안기겠는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

“그 사실 최대한 오랫동안 비밀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안 그러면? 그놈들이 선수라도 칠까봐?”

켄드릭은 이미 현석이 모든 걸 예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한 줄기 희망을 갖고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이라면 뭔가 그들이 섣불리 나서지 못할 만한 대책을세워 놓았을 것 같아서였다.

“이미 늦었다. 아까 그 일을 겪고도 낌새를 못 챘을 것 같아?”

켄드릭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세 가문이 먼저 움직이겠지. 사령관들이 거기 동조하고.”

“도시의 시민들은…….”

켄드릭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현석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봤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어떡합니까? 무고한 희생이 늘어날 겁니다.”

현석은 조금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이런 마음을 갖는다는 건 그리 나쁘지 않다. 아마 최선을 다해 좋은 사령관을 구할 테니까.

“아무도 희생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석이 씨익 웃었다.

“내가 사령관들을 괜히 만나고 다닌 것 같나?”

“예?”

“따로 연락해 불러도 되는데 왜 굳이 일일이 찾아다녔을 것 같아?”

“그야…….”

켄드릭은 갑자기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진짜 왜 그랬을까?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그리고 왜 굳이 마력을 낭비하면서까지 그놈들을 마력의 압력으로 짓눌렀을까?”

켄드릭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모든 조치는 끝났다. 넌 새 사령관만 찾으면 돼. 나에게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고 이 도시에 해를 끼치지 않을 만한 사람으로.”

켄드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 최대한 빨리 찾아내겠습니다!”

현석이 손을 휘휘 내젓자, 켄드릭이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냥 정보 속에서 글자로만 찾는 건 안 된다. 서류를 통한 1차적인 정보를 추려낸 다음, 직접 만나 확인해야 한다.

병력을 꽉 움켜쥐고 이 도시의 안전을 지킬 사람을 구하는 일이니까.

현석은 멀어져가는 켄드릭을 보고 있다가 피식 웃고는 다시 길을 걸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이곳 지리를 다 익히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호텔까지는 같이 갔어야 하는 건데.”

나직이 투덜거린 현석이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이제 다시 일행을 만날 때가 되었다.

“이제 제국어는 좀 하려나?”

현석의 입가에 흐뭇하면서도 짓궂은 미소가 잠시 맴돌다가 사라졌다.

* * *

세 가문의 움직임은 상당히 신속했다.

일단 그들은 다섯 사령관을 포섭했다. 다섯 사령관도 흔쾌히 이번 일에는 동참하기로 했다.

다른 것도 아닌 자신들의 안위가 달린 문제이니 평소와 달리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세 가문에서는 각각 기사단을 보냈고, 다섯 사령관은 맨몸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으니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벤테케의 말에 다섯 사령관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은 대단히 불안했다. 현석은 마치 자신이 그들의 사령관 직위를 박탈할 수 있을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만일 정말 그렇다면 더 서둘러야 한다. 죽으면 그가 사령관 자리를 박탈할 수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일단 이동합시다.”

벤테케가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모두를 이끌었다. 일단 그가 나서니 속으로 불만이 있어도 당장 그걸 표출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어설픈 기 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병사들은 어디에 대기 중입니까?”

“일단 목표를 중심으로 포위망을 구축하라고 지시를 내려뒀소. 여차하면 움직이겠지만, 목표를 처리하는 건 온전히 우리 힘으로 하는 게 좋을 거요.”

쿠르트와의 말에 벤테케는 나머지 다른 사령관들을 둘러봤다.

다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봐서 쿠르트와와 마찬가지로 병력을 목표 주변에 촘촘히 깔아둔 모양이었다.

‘그럼 됐어. 그들의 힘이야 나도 잘 알고 있으니.’

다섯 사령관이 무서운 건 그들의 힘이 아니라, 그들이 부리는 병력의 힘 때문이었다.

그들이 부리는 병력이 싸우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다들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싸웠으니까.

어쨌든 그런 병력들이 다 이쪽 편이니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럼 좀 더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벤테케는 그렇게 말하고는 더욱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머지 기사들과 다섯 사령관도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아주 빠르게 현석 일행이 머물고 있는 호텔을 향해 달려갔다.

벤테케는 가는 도중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는 병사들을 보고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전투를 아는 병사들이었다. 어디가 가장 중요한지, 또 어디에 있어야 싸움에 유리한지를 모두가 잘 아는 듯했다.

보병 다섯 명과 궁병 두 명이 조를 짜서 요소요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 장소에 마법사도 숨어 있었다.

기병대는 수십 기씩 무리를 지어 돌격이 용이한 장소에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기사들은 마치 순찰이라도 하듯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감시도 감시지만 뒤집으면 꼭 지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그랬다.

보병과 궁병이 자리 잡은 요소는 호텔에서 나오는 자들을 요격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호텔을 향해 공격해 들어가는 자들을 요격하거나 견제하기에도 좋은 자리였다.

나머지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돌격을 준비하는 기병대는 호텔까지 갔다가 퇴각할 때 기습적으로 뒤를 치면 정말 엄청난 피해를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순찰하는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차하는 순간 치고 빠지기를 한다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괴롭기 그지없을 것이다.

숨어있는 마법사들은 실력 또한 대단하니 위험한 곳이나 단숨에 적을 격멸할 수 있는 곳으로 적절히 마법을 쓴다면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 될 것이다.

벤테케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속도를 높였다.

그거야 저들이 상대편일 때 얘기고,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 모든 힘과 능력은 고스란히 저 호텔에 있는 적을 향해 겨눠질 테니 말이다.

호텔 앞에 도착한 벤테케는 일단 멈췄다.

미리 호텔에 사람을 보내 투숙객을 피신시킨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 현석이 눈치채고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말이다.

“호텔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옆에 선 기사의 말에 벤테케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라.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다.”

“그래도 신경 쓸 만한 사람이 혹시 있는지 확인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기사의 말에 벤테케가 또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이미 대충 확인했다.”

세 가문에서는 현재 이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세 가문이라도 신경을 써야할 만한 가문이나 상단의 사람들도 없었다.

“그럼 안심하고 진행하겠습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를 때는 주변을 돌볼 여유가 없다.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주변 모두를 위험에 끌어들이게 된다.

정작 싸울 때야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겠지만, 그 전에는 찜찜한 게 사실이었다. 억지로 그걸 잊고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다들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호텔에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현석 일행이었다.

“저기 그놈이 나옵니다!”

현석이 가장 앞에 있었고, 나머지 일행이 뒤에 나름의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다들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얼굴이었다.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라 벤테케를 비롯한 기사단장들은 섣불리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특히 벤테케는 현석의 강함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설마 저렇게 많은 동료가 있을 줄이야.

‘다들 마탑주와 비슷한 분위기가 풍겨.’

그 얘기는 비슷하게 강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먼저 섣불리 달려드는 쪽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공격 명령을 내리겠는가.

‘마탑주를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싸움 이후의 일도 중요해.’

다들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을 때, 가장 안달이 난 사람들은 당연히 다섯 사령관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그들끼리만 달려들 수는 없었다.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뭐 하는 거요.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소.”

쿠르트와의 재촉에 벤테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시간을 끌어봐야 달라질 건 없었다.

그는 나머지 두 기사단장과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셋이 동시에 돌격 명령을 내리기로 한 것이다.

벤테케를 비롯한 기사단장들이 막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현석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명령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켰다. 현석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더 유리하다. 동료들은 뒤에 그대로 남아있으니 더더욱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결국 현석은 끝까지 다가와 다섯 사령관 앞에 섰다. 그리고 주위를 슥 둘러봤다.

“병사들을 잘 다루네.”

현석의 말에 쿠르트와가 코웃음을 쳤다.

“흥. 당연하지. 수십 년 동안 이끌던 병사들이다. 이 정도도 못하면 멍청이지.”

현석이 빙긋 웃었다.

“너희가 직접 병사들을 다뤄서 저렇게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그 말에 쿠르트와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병사들은 언제나 최적의 판단을 하고 그대로 행하니까.

현석은 그런 쿠르트와와 사령관들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직도 너희가 사령관인 것 같아?”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분명히 내가……!”

쿠르트와는 말을 하다가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경악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현석을 노려봤다.

벼락이라도 쏟아질 것 같이 무시무시한 눈빛이었다.

현석이 그런 쿠르트와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 반지는 기념으로 가져. 어차피 이제 아무 쓸모도 없겠지만.”

쿠르트와는 급격히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며 또 한 번 경악했다.

그리고 그건 나머지 사령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완벽하게 반전되었다.

< 사령관들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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