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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30화 (230/326)

< 사령관들 1 >

베를루니의 병력은 숫자도 많지만 능력도 뛰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 비결 자체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사실 베를루니의 시민이나 귀족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마탑의 실질적 운영자인 베르딘조차 정확한 병력의 수를 알지 못했다.

그건 모든 정보조직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 병력의 수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각 병력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사령관뿐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각 병단의 사령관들은 자신의 병단에 대해서만 빠삭하지 다른 병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에 머무는지에 대한 것 자체가 중요한 정보였다.

능력 있는 정보상이 아니라면 그걸 알아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물론 마탑의 정보력은 베를루니의 모든 정보상을 다 합한 것보다도 뛰어나다.

기본적으로 베를루니라는 도시의 대부분이 마탑의 감시망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정보상은 마탑의 관리 대상이고, 그들은 켄드릭과 마찬가지로 아티팩트로 도배된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켄드릭은 베르딘이 건네준 정보들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정확히 베를루니의 병력과 사령관에 관한 정보만 받았는데도 그 양이 엄청났다.

게다가 어찌나 세세한지 아마 사령관 본인이라도 이 정도 정보를 알고 있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쪽입니다.”

지금 켄드릭은 현석을 보병부대의 사령관에게 안내하는 중이었다.

사실 각 사령관의 위치나 업무 장소 정도는 켄드릭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어디에 병사의 막사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사실 가끔 출몰하는 강력한 마수들이 아니라면 베를루니에 병력이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대부분 베를루니에는 따로 훈련받거나 키우는 병력이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 정도로 병력을 꽁꽁 숨겨두었다. 그들이 어디에 숨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물론 지금 그 병사들을 보러가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병사보다는 병사를 지휘하는 사령관을 설득하는 게 훨씬 중요했으니까.

사실 병사의 마음부터 얻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의견을 마탑에서 나오기 전에 슬쩍 말했다.

베르딘도 거기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듯했다.

하지만 현석이 그럴 필요 없다고 어찌나 단호히 말하는지 더 얘기를 이어가지도 못했다.

보병부대 사령관인 쿠르트와는 남쪽 성문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집도 그 근처였고, 업무를 보는 집무실도 근처였다.

‘그러고 보니 다들 주로 성문 근처에 살고 있네.’

기병부대 사령관은 동쪽 성문 근처에서 지낸다. 그리고 궁병부대 사령관은 북쪽 성문 근처에 살고 있다.

그리고 기사단은 서쪽 성문 근처에 머문다.

마지막으로 마법병단은 마탑 근처 어딘가에 머물다가 각 성문 쪽에 일이 생기면 즉시 지원을 나가는 방식으로 전투를 돕는다.

켄드릭은 그들이 지휘하는 부대도 그 근처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게 아니라면 마수들이 쳐들어왔을 때 그렇게 신속하게 부대가 나서서 마수를 격멸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마수와 싸울 때를 보면, 각 부대들 간의 지원이나 협력도 아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어쩌면 그 때문에 사령관들이 굳이 성문 근처에 머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럴 거야. 그 사람들은…… 사명감이 대단해 보이니까.’

사령관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정보상들뿐 아니라 모든 귀족이나 상인, 혹은 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령관들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사령관에게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일단 베를루니를 지배하는 세 가문에서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들 중 하나가 사령관을 얻으면 단숨에 힘의 균형추가 무너져 버린다.

세 가문 중 누구도 그런 상황을 원치 않았다.

자연스럽게 세 가문이 힘을 모아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쪽으로 상황이 흘러갔다.

하지만 그렇게 막는다고 사령관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모두 차단할 수는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자신이 강하게 열망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인간이 제법 많지 않은가.

사령관들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시도를 겪게 된다. 회유와 포섭은 물론이고 심지어 협박까지 당하곤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그들이 지키는 것이 있었다.

일단 자신들이 지휘하는 병력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 비밀을 말하면 목숨이라도 잃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베를루니의 위기 상황이 오면 그 오직 자신만의 판단으로 병력을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도시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었다.

그렇게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내왔다.

그 동안 사령관도 여러 번 바뀌었다. 신기한 것은 사령관이 언제 어떻게 바뀌는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 때마다 도시의 정보상들이나, 귀족가의 사람들이 사령관을 찾아내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여러 번 겪다보니 그들도 사령관을 평범한 사람과 구분하는 법 정도는 알게 되었다.

사령관들은 각각 특유의 인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반지 형태의 인장이었는데, 각각 자신이 지휘하는 병종을 상징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령관을 찾을 때마다 그들의 병사들도 함께 찾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지금까지 그걸 알아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을 다 알고 있기에 사실 켄드릭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마 분명히 사령관 근처를 세 가문에서 단단히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사령관들이 세 가문에 포섭되었을 수도 있었다.

사실 사령관들은 도시의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아무도 따르지 않고 혼자서만 독불장군처럼 있지도 않았다.

역대 사령관 중에는 세 가문 중 하나와 인연을 맺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도 제법 있었으니까.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병사에 대한 비밀은 절대적으로 지켰다. 도시의 수호야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과연 사령관을 만날 수나 있을까?’

켄드릭은 자신과 나란히 걷는 현석을 힐끗 쳐다봤다. 아마 현석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사령관을 만나는 것도, 또 그 사령관을 설득하는 것도 말이다.

그렇게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보병부대의 사령관인 쿠르투와가 업무를 보는 건물에 도착했다.

허름한 3층 건물이었다. 쿠르트와는 이 건물 2층에서 업무를 보고, 3층에서 생활한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좀 늦은 것 같습니다.”

쿠르트와의 건물 근처에는 수십 명의 병사들이 단단히 무장한 채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한데 특이하게도 그들의 복장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그걸 본 켄드릭이 침음을 삼켰다.

“으음. 세 가문이 손을 잡은 모양입니다.”

그의 말에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야 충분히 예상했다.

세 가문이 어떻게 나오든 사실 현석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된다. 현석에게 가장 중요한 건 쿠르트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현석은 건물을 향해 몇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눈을 빛냈다.

‘이거 어쩌면…….’

현석은 왠지 이번 일이 아주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 확신이 들었다. 이건 실패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게 이렇게 풀리네.’

현석은 천천히 건물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그러자 흉갑을 챙겨입은 기사가 앞으로 나서서 현석과 켄드릭의 앞을 막아섰다.

“여기서부터는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기사의 말에 켄드릭이 앞으로 나섰다. 괜히 현석이 나서면 피를 볼 것 같아서 일부러 나선 것이다.

“하하. 베를루니에서 시민이 지나갈 수 없는 길이 있었나요?”

그 말에 기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베를루니의 모든 길은 시민에게 열려 있었다. 집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길을 지나가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세 가문이 손을 잡기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어떤 횡포를 부려도 그들을 제어할 힘의 균형추가 사라진 상태였다.

“말로 해서 안 들으면 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매단 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리고 사나운 기세를 슬쩍 흘렸다.

상당한 실력을 가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켄드릭도 정보상을 하며 산전수전 다 겪어왔다. 고작 이 정도로 기가 눌릴 리 없었다.

“마탑주님께서 쿠르트와님을 보러 오셨습니다.”

마탑주라는 말에 기사가 놀란 눈으로 켄드릭 뒤에 선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 더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기사의 뒤로 병사 몇 명이 도열해 길을 더 단단히 틀어막았다.

“문양을 보니 파미안 가문의 기사님이시군요. 파비안 가문에서 마탑에 선전포고를 했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기사의 외침에 현석이 특유의 담담한 표정과 어투로 말했다.

“내 대리인이다. 그가 선전포고라고 받아들였으면 난 그렇게 할 것이다. 전쟁도 나쁘지 않지. 뭐, 파비안 가문하고만 싸운다면 나머지 두 가문이 거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현석의 말에 기사가 움찔했다.

지금 세 가문은 동맹을 맺은 상태였다. 하지만 파비안 가문이 마탑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때도 동맹을 유지할까?

기사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손모가지를 걸라면 걸 수도 있었다.

나머지 두 가문은 파비안 가문과 마탑이 서로 피흘리는 모습을 구경만 하다가 나중에 끼어들어 각자 이득만 착실히 챙길 것이다.

‘그리고 난 파비안 가문의 역적이 되는 거고.’

기사의 눈동자에 떠오른 망설임을 읽은 켄드릭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무려 마탑주이십니다. 저 안에 쿠르트와님 말고 높으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탑주님께서는 그분까지 해서 가 같이 대화 몇 마디 나누고 싶으신 게 전부입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또 들여보내줘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마탑주가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저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거나, 혹은 마탑으로 부를 줄 알았다.

그들이 아는 마법사는 조심성이 많고 나약한 자들이었다. 또한 겁도 많았다.

그러니 마탑주도 당연히 그럴 거라 여긴 것이다. 그렇게 겁 많은 마법사가 설마 이렇게 직접 사령관들을 찾아다닐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래서 기사의 판단에 혼란이 왔다. 켄드릭은 결정적인 한 마디를 보탰다.

“그렇게 고민이 되시면 함께 들어가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설마 우리 같은 허약한 마법사가 두려우셔서 그렇게 망설이시는 건 아니시겠죠?”

기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지나가시지요. 대신, 저희측 기사 세 명이 동행하겠습니다.”

켄드릭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입니다. 하하하하. 나중에 여유 생기면 좋은 곳에서 술 한 잔 대접해 드리지요. 하하하하.”

기사는 그 말에 살짝 풀어진 표정으로 길을 열어주었다.

켄드릭과 현석은 열린 길을 통해 쿠르트와의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뒤에 세 명의 기사를 줄줄이 달고서.

* * *

쿠르트와는 집무실에서 파비안 가문의 기사단장과 가볍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쿠르트와와 파비안 가문은 좋은 관계를 유지한 지 제법 오래 되었다.

그래서 이곳 쿠르트와의 건물을 파비안 가문에서 도맡아 지키는 중이었고 말이다.

“과연 마탑주가 어떻게 나올까요?”

파비안 가문의 기사단장인 벤테케의 물음에 쿠르트와는 단호히 말했다.

“그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습니다. 전 생판 처음 보는 마탑주와 손을 잡을 생각도, 또 그의 아래로 들어갈 생각도 없습니다. 전 그저 우리 도시를 지키는 사람일 뿐입니다.”

쿠르트와의 단호한 말에 벤테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심지나 의지가 굳건해 보이니 굳이 이곳을 지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 일이란 것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쿠르트와는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누구기에 이리도 예의 없이 방문하는 건가.”

들어온 사람은 켄드릭이었다. 그리고 켄드릭 뒤로 현석이 따라서 들어왔다.

현석 뒤로 기사 세 명이 들어와 입구를 막듯이 나란히 섰다.

벤테케가 그걸 보고는 인상을 썼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들어온 놈들보다 이들을 순순히 데려온 자신의 부하들이 더 어이없고 괘씸했다.

물론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켄드릭의 말로 증명됐다.

“마탑주께서 오셨습니다.”

벤테케과 쿠르트와의 시선이 일제히 현석에게 꽂혔다.

현석은 그 중에서 쿠르트와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에 낀 그의 인장을 확인했다.

[바벨의 보병부대 막사]

현석의 입가에 드리워진 미소가 더욱 환해졌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쿠르트와의 마음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졌다.

< 사령관들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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