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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27화 (227/326)
  • < 마탑의 정체 3 >

    방안은 깜깜했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면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방에 들어왔지만 또 무슨 시험이 남았을지 모른다.

    ‘그 바벨이라는 황제, 정말 의심이 많은 성격이야.’

    그건 분명하다. 이 거대한 마탑을 모조리 보안과 관계된 아티팩트로 도배한 것도 모자라, 이 도시 자체를 마탑과 연결시켜 보안과 감시 체계를 너무나도 철저히 깔아뒀다.

    그리고 마탑을 오르는 동안 대체 몇 번이나 방심을 유도해 현석의 허를 찌르려 했는지 모른다.

    여기 오르는 시험자가 정말 제대로 된 자격을 갖췄는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한 것이다.

    그런 놈이니 이렇게 다 끝났다고 방에 들어온 순간 새로운 시험이 시작된다고 해서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말이지.”

    현석은 한 발 옆으로 피하며 마력을 움직였다.

    쩡!

    현석이 서 있던 자리에 마력의 창 하나가 내리 꽂혔다. 아마 이제부터는 저 무차별 마력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야 하는 모양이다.

    “막는 건…… 안 되겠고, 피해야 하네.”

    현석은 최대한 감각을 예리하게 가다듬었다. 사방에서 마력의 창이 쏟아졌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간 듯 이리저리 살짝 살짝 걸으며 그 모든 마력의 창을 다 피해낸 현석은 어느새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지잉!

    현석을 중심으로 바닥에 빛이 들어왔다.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이 작동한 것이다.

    잠시 긴장했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마력을 모조리 가라앉혔다.

    지금은 절대 마력을 움직여선 안 된다.

    “아마…… 방금 이게 진짜 마지막 시험인 것 같네.”

    지금 현석의 발아래에서 작동 중인 마법진은 그 위에 선 사람이 마력을 움직이면 폭주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마법진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은 또 처음이었는지라 현석이 눈을 빛내며 그것을 살펴봤다.

    굳이 마력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감각만 이용해도 충분했다.

    “호오. 재미있는 방식이네.”

    마법진 자체가 움직이며 바닥에 연결된 다른 마법진과 상호작용을 해서 몇 가지 마법을 번갈아 펼치는 방식이었다.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머리가 터지도록 계산하고 고민했을지 눈에 훤했다.

    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보고 이런 걸 만들라고 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 버릴 것이다.

    이런 건 현석의 생각에는 그저 시간낭비였다.

    어쨌든 마법진이 돌아가며 거기에 연결된 사방의 마법진이 함께 작동하기 시작했다.

    사방 벽에 새겨진 마법진들에 빛이 들어왔다. 이내 방안이 온통 마법진이 뿜어내는 빛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현석은 그 모든 빛이 모이는 자리에 서 있었다.

    여전히 마력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면 그대로 폭주할 게 뻔했으니까.

    현석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빛이 모두 마력패턴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응하지 않았다.

    이게 시험이라면 받아주면 그만이다. 척 보기에도 별로 해가 될 것 같은 마력패턴이 아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마력이 폭주해 여기가 싹 날아가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마력을 움직여 막았을 것이다.

    빛에 담긴 마력패턴이 현석의 몸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신기하게도 현석이 가진 마력과 전혀 반발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도 현석의 마력에 제대로 반응했다. 현석은 이 마력패턴이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방안의 어둠도 함께 사라졌다.

    방의 전경이 드러났다. 빛을 내뿜던 그 마법진은 더 이상 없었다. 이 방은 그저 서재일 뿐이었다.

    “대단한데?”

    바벨이라는 황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능력 하나는 정말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법진을 빛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왜 바닥의 마법진이 회전했는지 이제 이해했다. 그걸 통해 빛으로 마법진을 그린 것이다.

    아마 회전하는 바닥의 마법진에 뭔가 특별한 물질을 채워 넣었음이 분명했다.

    그것을 이용해 허공에 마법진을 그린 것이다. 빛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을 말이다.

    그리고 그 마법진의 용도도 이제 알 수 있었다.

    그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네주는 열쇠 같은 거였다. 현석에게 이 마탑의 권리를 넘긴 것이다.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 신의 자리에 도전하겠다는 조건만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기한도 없고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도 없었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런 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바보다.

    현석은 바벨의 조건을 받아들인 순간, 상태창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것 역시 그동안은 없던 기능인데 갑자기 생겼다. 아마 바벨의 후계자가 되면서 새로 각성한 능력인 모양이었다.

    상태창을 확인한 현석은 뭐가 변했는지부터 확인했다.

    일단 레벨은 그대로였다. 이번에 얻은 건 타이틀이었다.

    [바벨의 후계자-신의 자리에 도전하던 황제 바벨의 후계자가 얻는 칭호. 바벨이 남긴 세 가지 보물의 주인이 될 자격이 생긴다. 지력+10]

    [마탑의 주인-바벨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만든 마탑의 주인에게 주어지는 칭호. 마탑의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지력+10, 마력+1000]

    [베를루니의 성주-마탑의 주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베를루니의 주인이 된다. 베를루니에 설치된 모든 마법 관련 아티팩트를 다룰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힘+10, 체력+10, 지력+10]

    [베를루니 사령관-베를루니의 모든 군대를 소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베를루니 기사단, 베를루니 보병대, 베를루니 기병대, 베를루니 궁병대, 베를루니 마법병단의 주인이 된다. 민첩+10, 정신력+10]

    현석은 갑자기 늘어난 타이틀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려 4개의 타이틀이 새로 생겼다.

    각 타이틀이 주는 효과도 엄청났다. 하지만 그 타이틀이 가지는 의미는 더 대단했다.

    이제 현석은 마탑의 주인이자 베를루니의 주인이 되었다. 이걸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거야 차차 알아가면 된다.

    ‘이건…… 정말 큰 힘이 된다.’

    베를루니의 주인이라는 타이틀은 앞으로 현석이 하려는 일에 정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우우웅!

    나직한 진동과 함께 현석의 앞에 사각형 기둥 세 개가 올라왔다. 각각의 기둥 위에는 각각 반지와 두꺼운 책, 그리고 팔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게 바로 바벨이 남긴 세 개의 보물인 모양이었다.

    그게 뭔지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베를루니의 인장]

    [바벨의 증표]

    [바벨의 마법서]

    일단 베를루니의 인장이라 이름붙은 반지를 집어서 손가락에 끼웠다.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이것이 바로 베를루니의 주인이라는 증표가 된다.

    아마 앞으로 다른 도시의 귀족들을 상대할 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다음으로 현석이 집은 것은 바벨의 마법서였다.

    마법서를 집은 현석은 마법서에 새겨진 마력패턴이 자신의 몸에 깃든 마력패턴과 동조하는 것을 느꼈다.

    잠깐 빛이 맴돌았다가 사라진 마법서가 빛으로 변하더니 무수한 마력패턴이 되어 허공에 맴돌다가 현석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 마력패턴들은 모두 현석의 몸에 깃든 마탑의 마력패턴과 결합되었다.

    “신기하네.”

    당장 기억에 새겨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식을 떠올리면 검색을 통해 그걸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지식을 찾아낸다고 해서 그걸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그걸 이용해 공부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바벨이 생전에 얻은 모든 지식이 이 안에 다 들어있었으니까.

    현석은 마지막으로 바벨의 증표를 집었다.

    그것을 손목에 차자, 기묘한 마력패턴이 손목을 통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것 역시 현석이 받아들인 마력패턴 중 하나에 결합되었다. 그러자 팔찌에서 은은한 빛이 맴돌다가 사라졌다.

    활성화 된 것이다.

    현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만으로는 무슨 기능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심안을 통해 정보를 확인했다.

    [바벨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일곱 가지 아티팩트를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이 깃든 증표.]

    “일곱 가지 아티팩트?”

    바벨이 만들었다고 하니 아마 보통 아티팩트는 아닐 것이다.

    팔찌를 살펴보니 일곱 개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각각 색이 달랐는데, 보석마다 마력패턴이 연결된 걸로 봐서 그 보석에 아티팩트가 연결된 모양이었다.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이라…….’

    바벨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걸 보면 필시 보통 아티팩트는 아닐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발견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도 없는 증표였다.

    대체 이걸 왜 만든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어쨌든 일단 굵직한 건 다 끝났네. 이제 남은 건…….”

    남은 건 하나였다. 레인보우 엘릭서의 제조법을 알아내는 것 말이다.

    현석은 바벨의 마법서를 통해 레인보우 엘릭서에 대해 검색해봤다.

    정보가 쫘르륵 나열되었다. 그것은 마치 현석이 정보를 글로 읽은 것처럼 머릿속에 주르륵 떠올랐다.

    “제조법이 다섯 가지나 있어?”

    레인보우 엘릭서의 제조법은 무려 다섯 가지나 있었다.

    그 중 두 가지는 바벨이 만든 방법이었고, 나머지 세 가지는 바벨이 죽은 이후, 마탑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방법이었다.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긴 하네.”

    감히 신이 되겠다고 할만 했다. 이런 대단한 일을 해냈으니 말이다.

    스스로 연구하고 진화까지 하는 탑이라니.

    마탑의 연구기록은 꾸준히 바벨의 마법서에 쌓여갔다. 현석이 할 일은 가끔 마탑에 들어서 새로 만들어진 마법서를 흡수하기만 하면 된다.

    마치 컴퓨터를 할 때, 이동식 저장장치에 데이터를 옮겨 담는 것처럼 말이다.

    현석은 일단 그 중 가장 간단한 방법과 가장 효능이 뛰어난 방법을 골라냈다.

    ‘생명수로 정제하는 법은 여기도 없네.’

    아마 그런 발상 자체를 못했을 것이다. 생명수를 얻으려면 근원의 나무를 훼손해야 한다.

    물론 숲의 종족이 마음을 열고 도와주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숲의 종족은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폐쇄적인 종족이었다.

    어쨌든 현석은 그 방법들에 자신의 방법까지 더해 최선의 제조법을 찾아봤다.

    별로 어려울 건 없었다. 이미 무수한 실험을 통한 자료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으니까.

    굳이 현석이 따로 여러 번 실험을 통해 뭔가를 찾아내고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제조법을 확인한 현석은 그 다음 떠오른 정보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재고가 있어?’

    레인보우 엘릭서의 재고가 있었다. 그것도 무지개풀을 이용해 만든 최상급의 레인보우 엘릭서가 말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탑에 레인보우 엘릭서를 의뢰하기 위해선 무지개풀 두 개와 10만 골드를 갖다 바쳐야 한다.

    “이 사람 사기꾼 기질도 있네.”

    무지개풀 하나에 레인보우 엘릭서가 하나 나오는 게 아니었다. 운이 좋으면 두 개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 무지개풀 두 개를 받으면 마탑에서는 의뢰인에게 주는 한 개를 제외하고도 하나에서 세 개까지 재고가 남는다.

    그 남는 재고는 마탑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현석은 문득 굳이 자신이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재료를 마탑에 주고 결과물만 받으면 된다. 어차피 그 모든 것은 현석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현석의 것이었으니까.

    현석은 망설이지 않았다. 일단 공간을 확보하고 모든 마력의 정수와 무지개풀을 마탑의 창고로 보냈다.

    창고로 보내는 방법은 간단했다. 서재 중앙에 있는 마법진을 이용하면 된다.

    그 마법진은 마탑의 모든 장소로 갈 수 있는 통로나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현석이 밖으로 나갈 때도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

    현석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재료를 마탑의 창고에 넣은 다음, 최우선적으로 생명수를 이용한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도록 명령을 입력했다.

    “꼭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는 것 같네.”

    딱 느낌이 그랬다. 다만 그 작업을 머릿속으로 하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현석의 몸에 결합된 무수한 마력패턴들이 각각 하나의 키가 되어 그걸 조합해 마탑을 제어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명령을 완벽하게 입력한 현석은 마력의 정수가 빠져나간 빈자리에 마탑에서 제조한 레인보우 엘릭서를 모두 챙겼다.

    이제 진짜 일이 다 끝난 것이다.

    “그럼…… 이제 가볼까?”

    모든 볼일을 끝낸 현석이 서재 한가운데 있는 마법진에 올라섰다.

    우우웅!

    마법진이 진동하며 회전했다.

    철컥!

    뭔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에 마력이 흐르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위에 있던 현석이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 * *

    마탑의 1층부터 3층까지는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탑의 모든 잡일과 4층에 거주하는 몇몇 마법사들의 시중을 들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도 4층까지가 한계였다. 5층에는 갈 수 있는 길도 어디 있는지 모른다. 아니, 아예 올라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건 4층에 자리를 잡고 거주하는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1층부터 4층까지의 모든 사람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최고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베르딘이라는 마법사였다.

    베르딘은 마탑의 비밀 한 가지를 알고 있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의 연구실은 마탑의 4층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 그곳은 예언의 자리이기도 했다.

    마탑의 주인이 나타나는 장소가 바로 그의 연구실로 이어져 있었다.

    베르딘은 오늘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연구실에 앉아 처리해야 할 서류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뇌리에 섬광 같은 충격이 들이닥쳤다.

    “헉!”

    베르딘은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방에서 빛 가루가 모여들어 방 한가운데 쌓이고 있었다.

    “드디어…… 마탑의 진정한 주인이 강림하셨다.”

    예언은 이루어졌다.

    < 마탑의 정체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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