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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26화 (226/326)
  • < 마탑의 정체 2 (9권 끝) >

    현석은 걸음까지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사람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아래층에서였다.

    식료품 창고가 있던 그 층과 그 윗층, 그리고 그 다음 층까지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 위부터는 사람의 흔적이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도 없는데 여기서 마법 실험을 하고 이 도시를 지배할 수 있을까?

    현석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최상층까지 올라가며 확인을 해봐야 할 듯했다.

    ‘좀 더 집중해서, 그리고 세심하게.’

    현석은 걸음을 늦췄다. 그리고 대신 주변의 마력 흐름을 파악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심력을 쏟았다.

    마탑에는 계단이 없었다. 나선형의 경사만 있을 뿐이었다.

    나선형으로 위로 올라가는 구조의 복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문이 있었다.

    현석은 그 문 안쪽에서 흐르는 마력을 세심히 파악하며 걸어갔다.

    마력의 흐름만 파악해도 안에서 대충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아티팩트 제작에 관한 실험과 연구를 하는 것 같은데?’

    현석은 마탑의 중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아티팩트와 관련한 실험인 듯했다.

    제작한 아티팩트의 성능을 시험해 보는 방도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곳에서 생명체의 느낌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마탑 꼭대기에서 시작해 아래로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 마력이 바로 마탑의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었다.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연구실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대한 마력을 정말로 효과적으로 흡수해서 써먹고 있었다.

    현석이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물론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다 복도와 천장뿐이었다. 진짜 위를 확인하고 싶으면 거기까지 걸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이걸 확인한 사람이 없었나?’

    마탑에 대한 얘기를 밖에서 들을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마탑은 무수한 마법사들이 공방이나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개발해 내는 곳이었다.

    또, 베를루니를 잘 운영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정책을 만들어내고 폐기하는 걸 반복하며 최선의 방책을 찾아내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베를루니를 마수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힘을 기르는 조직이기도 했다.

    마법사들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일단 한 번 모습을 드러내면 항상 엄청난 힘이나 능력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드문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곳이 바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마탑이었다.

    한데 막상 안에 들어와 확인하니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얘기와는 전혀 달랐다.

    ‘이게 지금까지 발각되지 않은 게 더 신기하네.’

    물론 이해할 수는 있었다. 보통 사람은 마탑에 들어와 현석처럼 위로 쭉쭉 올라갈 수는 없었다.

    마탑의 보안과 방어체계는 베를루니보다 훨씬 더 강력했으니까.

    현석쯤 되니까 이렇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현석은 더 위로 올라가봤다. 그러자 생명체의 흔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법사는 아니야. 사람도 아니고.’

    그것은 마수나 식물, 혹은 짐승의 기척이었다. 그것도 생명력이 다해 꺼지기 일보직전의 상태였다.

    무슨 연구를 하기에 이렇게 지독하게 하나 보니, 약 같은 걸 만드는 모양이었다.

    예를 들면 레인보우 엘릭서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그 정도로 위력적인 약을 만들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탑의 이런 연구는 제법 효과를 봤다.

    세상에 떠도는 유명한 약 중 절반 이상이 마탑에서 나온 것이니 말이다.

    마탑은 그걸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물론 그 돈은 대부분 연구비로 들어가지만 말이다.

    ‘여기 마법사가 있긴 한가?’

    없을 것 같았다. 끝까지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오직 거대한 마법진에 속한 작은 아티팩트들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보안이 철저해졌다. 보안이나 방어 관련 아티팩트들이 더욱 촘촘히 깔려 있었다.

    하지만 보안 자체가 달라지진 않았다. 같은 방식으로 돌파가 가능했다.

    현석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미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보안체계가 바뀌네.’

    혹시라도 들어올지 모를 침입자를 대비한 시스템인 모양이었다.

    방심을 유도한 다음 빈틈을 찌르는 방식이었다.

    현석도 방금 묘한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대로 걸려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교묘한 변화였다.

    잠시 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그걸 파고드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어차피 방식만 달라졌을 뿐, 난이도가 높아진 건 아니었으니까.

    사실 여기에 설치된 아티팩트나 마법진의 수준은 예전 황궁에서 경험한 것들이나, 신의 파편에서 경험한 것들에 비하면 어린아이 장난 축에도 못 들었다.

    물론 그 대단한 것들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건 아직 현석도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석은 바뀐 보안체계를 뚫으며 더 위로 올라갔다. 실험실과 연구실이 쭉 이어지다가 보안체계가 바뀐 다음부터는 방에서 느껴지는 흐름이 전혀 달라졌다.

    ‘여기서부터 보관이야!’

    아래에서 연구해 만든 물건을 충분히 실험하고 반복해서 성능 테스트를 한 다음, 완벽하게 만들어지면 이곳에 보관하는 모양이었다.

    즉, 여기서부터가 마탑의 보물창고라는 뜻이었다.

    마음 같아선 싹 쓸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섣불리 행동해선 안 된다.

    정확히 필요한 것만 알아갈 생각이었다.

    ‘일단…… 이쪽은 아티팩트들이고.’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면 어떤 성능을 가진 아티팩트인지 대충 파악이 가능했다.

    현석은 그런 것들을 대강 살피면서 쭉쭉 위로 올라갔다.

    ‘여기서부터 약인가?’

    어느 순간부터 아티팩트에서 느껴지는 톱니바퀴처럼 짜 맞춰진 마력의 흐름이 아닌 절제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을 주는 마력 흐름은 포션류에서 많이 보인다.

    ‘이런 식으로 마력을 따로 분류해보긴 또 처음이네.’

    뭐든 처음 해보는 것을 할 때 성장의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현석은 그런 즐거운 마음으로 마탑을 오르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촘촘하게 채워진 보안 아티팩트를 피해가는 걸 잊지 않았다.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마력 분류의 즐거움에 빠져든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을 현석은 마치 밥이라도 한 끼 먹는 것처럼 간단히 해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뒤섞여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분류 자체가 안 된 것처럼 포션이나 아티팩트, 혹은 마력이 함유된 재료들이 마구 섞여 있었다.

    현석의 걸음이 좀 느려졌다.

    이제부턴 진짜 분류 자체가 일이 된 것이다.

    ‘점점 난이도가 올라가는군.’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어렵지만 재미있는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집중해 마력의 흐름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현석의 걸음이 느려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마력의 흐름이 더 복잡하게 얽혔다. 마치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처럼 교묘한 속임수까지 섞여 있었다.

    현석은 지금 자신이 레인보우 엘릭서의 제조법을 구하러 여기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마력 흐름의 분류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 와중에서 보안을 철저히 피해가는 건 잊지 않았다. 그건 기본이었으니까.

    중간에 보안 체계가 세 번 바뀌었는데, 그 때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변화를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해 보안을 피해갔다.

    그리고 그렇게 가다보니 어느새 탑의 마지막에 도착했다.

    현석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대한 문 앞에 서 있었다.

    ‘어이가 없네.’

    너무 정신없이 오는 바람에 목적 자체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 없었다.

    하지만 마탑을 오르는 과정은 너무나 즐거웠다. 그리고 그 즐거움 속에서 성장의 발판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고 나니 마탑의 정체가 더욱 더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을 해결해줄 무언가가 저 문 너머에 있을 것 같았다.

    현석은 문에 좀 더 다가갔다. 물론 모든 감각을 활짝 열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실수로 일을 그르칠 수는 없으니까.

    문에서는 의외로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친절하게 문고리도 있었다. 문고리 모양을 보니 당겨서 여는 문인 듯했다.

    현석은 별 생각없이 문고리를 잡으려다가 멈칫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함정을 만들었는데, 마지막에 아무것도 없다고?’

    그건 지금까지 느낀 모든 위화감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부자연스러웠다.

    현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문에 집중했다.

    문에는 마력이 없는 게 아니었다. 감춰져 있을 뿐이었다.

    ‘그 도료!’

    마력을 감추는 도료가 떠올랐다. 그것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가 문에 흐르는 마력을 가리고 있었다.

    켄드릭의 상점에 쓰인 도료는 이 문에 쓰인 마력 차폐물질의 마이너판인 듯했다.

    몰랐다면 모를까, 일단 파악한 이상 해결 방법은 있었다. 현석은 심안으로 문을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집중에 집중을 더해 모든 역량을 심안에 쏟아 부으니 결국 이름을 볼 수 있었다.

    [황제의 비밀거점]

    현석은 난데없이 나타난 황제라는 말에 잠시 표정이 굳었다. 왠지 여기 나온 황제는 얼마 전 현석이 황궁에서 만났던 그 황제가 아닌 것 같았다.

    ‘황제의 비밀거점이라…… 일단 문부터 열어야겠는데?’

    현석은 코피가 주륵 흐를 정도로 심안에 집중해 결국 설명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제국의 3대 황제 바벨의 비밀거점. 바벨은 신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다. 바벨이 신이 되기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이 담긴 탑. 자격요건 충족.]

    현석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심안을 쓰면서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코에서만 피가 흐르는 게 아니라 눈과 입에서도 피가 줄줄 흘렀다.

    “후우우.”

    현석은 심호흡 몇 번을 통해 몸을 회복했다. 자연회복 스킬이 성장해 이제는 거의 괴물 같은 치유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현석은 문을 가만히 보며 눈을 빛냈다.

    ‘자격요건 충족이라고?’

    한 가지 가정을 해봤다. 어쩌면 이 마탑이라는 것은 황제 바벨이 자신의 뒤를 이를 자를 선별하기 위한 곳 아닐까?

    그 자격을 시험하기 위한 시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까지 탑을 오르면서 현석이 겪었던 모든 것이 어쩌면 바벨의 의도에 따른 설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현석은 그 자격요건 충족이라는 말은 믿어도, 이 문에 아무 수작이 없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

    분명히 뭔가 수작을 부려놨을 것이다.

    이 탑이 자격 요건을 판단하는 곳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이 문은 마지막 시험쯤 되겠지.

    현석이 문 앞에 서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신경을 문고리에 쏟았다.

    역시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답이었다.

    다른 데에 비해 문고리에 적용된 마력 차폐가 살짝 모자랐다. 그래서 그곳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거기서 시작하니 내부로 이어지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과 패턴을 차근차근 파악해 나갈 수 있었다.

    이내 현석은 문에 깃든 모든 마력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역시 그냥 열면 안 되는 거였어.’

    예상대로 이 문이 바로 마지막 시험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지금까지 한 고생이 모두 무너질 뻔했다.

    현석은 손에 마력을 담았다. 그리고 정확한 패턴을 만들어 문고리를 쥐었다.

    현석의 몸에 있던 마력이 문고리를 타고 문으로 흘러들어갔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정확한 패턴을 일정한 타이밍으로 흘려 넣어줘야만 한다.

    틱! 틱! 틱! 틱! 틱!

    뭔가가 맞물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마력패턴과 마력패턴이 만나 새로운 마력패턴으로 변해가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내 문이 진동하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그!

    이 문은 당겨서 여는 것도 밀어서 여는 것도 아니었다. 문을 위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이내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현석은 온몸에서 마력을 뿜어 근처에 재빨리 마력패턴 하나를 만들어냈다.

    갑자기 쏟아진 마력패턴을 막아내기 위함이었다.

    허를 찌르는 마지막 시험이었다.

    현석은 마력패턴만 남겨둔 채 열린 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 마탑의 정체 2 (9권 끝)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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