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탑의 정체 1 >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켄드릭은 현석 일행은 베를루니에서 가장 비싸고 화려한 호텔로 안내하며 중얼거렸다.
지금 그의 수중에는 금괴가 무려 열 개나 있었다. 현석이 쏟아낸 금괴 중 일부였다.
현재 모든 일행이 각각 금괴를 20개 정도씩 갖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별로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금괴 열 개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아니, 엄청나게 많은 액수였다.
켄드릭이 보기에 이 금괴 하나로 금화 20개는 만들 수 있었다.
즉, 지금 켄드릭은 금화 200개를 들고 있는 셈이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돈이 많은 거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체가 궁금했다. 일행들이 가진 금괴까지 더하면 총 150개의 금괴를 쏟아내고 간 것이다.
‘금화 3000개…….’
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 한데 그런 거액을 마치 잔돈 던지듯 쏟아내고 가 버렸다.
즉, 금화 3000개가 푼돈으로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돈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부자라면 어떻게든 정보 상인들의 귀나 손을 한 번쯤은 거쳐 갔어야 한다.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갑자기 부자가 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더구나 많은 돈을 벌려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아니면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거나.
어떤 식이든 흔적이 남는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모르네.’
켄드릭은 진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상대와 이런 큰 거래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마탑의 축소판처럼 생긴 호텔이었다. 당연히 외관은 물론이고 내부도 화려하고 신비로웠다.
더구나 내부의 모든 시설에 마법이 깃들어 있어서 편리하기 그지없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일단 즐기고 보자.’
갑자기 이 모든 고민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만일 기대한 대로 현석이 레인보우 엘릭서의 제조법을 구한다면, 그때 가서 고민해도 된다.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우리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면…….’
그럼 그때는 좀 더 결정을 내리기가 쉬워질 것이다.
켄드릭과 현석을 뺀 현석 일행이 호텔로 들어갔다.
여기서 최소한 이틀 이상은 머물 것이다. 나중을 생각해서.
* * *
현석은 일행이 베를루니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도 한참동안 언덕 위에서 기다렸다.
일행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야 했다.
현석은 베를루니를 보며 크락실리아와는 다른 묘한 위화감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그 위화감의 정체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마탑이 있었다.
베를루니의 중심에 우뚝 솟아있는 마탑 말이다.
‘일단…… 개구멍부터.’
현석은 마력을 움직여 모습을 감췄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은신을 사용했다. 마력도 안으로 꽁꽁 억눌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마탑의 감시체계는 정말 대단했다. 아무리 은신을 해도 마탑이 펼친 마력장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마탑의 개구멍은 켄드릭의 정보로부터 알아냈다. 하지만 마탑에만 개구멍이 있는 게 아니었다.
성벽에도 개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현석이 알아낸 것이었다.
현석은 마력과 기척을 최대한 감춘 채 빠르게 베를루니를 향해 달려갔다.
현석의 감각에 거대한 마력장이 포착되었다. 성벽을 중심으로 엄청난 반경의 범위를 마력장이 감싸고 있었다.
현석은 온신경을 다해 그 마력장을 파악했다.
그리고 커다랗게 호를 그리며 베를루니에 접근했다.
스윽.
현석이 마력장에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보통 마력장에 무언가가 닿거나 침입하면 마력장의 흐름이 달라진다. 마력장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성벽 안에 있는 복잡한 아티팩트가 반응해 다가오는 마수나 사람을 감지해낸다.
그것이 베를루니 성벽에 장치된 강력한 감시체계의 원리였다.
한데 현석이 마력장에 파고들었음에도 마력장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현석은 마력장을 파고들며 베를루니를 향해 쭉쭉 달려갔다. 물론 직선으로 달리는 건 아니었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방향을 자주 바꿨다. 거의 지그재그로 이동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느새 성벽에 도착했다. 현석은 성벽에 바짝 붙어 주위를 살폈다.
현석이 여기까지 마력장에 걸리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건, 이곳의 마력장이 하나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석은 베를루니를 몇 번 들락거리며 이곳에 펼쳐진 마력장은 네 군데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마력장과 마력장이 만나면 미약한 간섭 현상이 벌어진다.
현석은 마력장과 마력장이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간섭 현상을 이용해 마력장에 걸리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마력장과 마력장이 간섭하면 마력 자체가 아예 사라지는 지점들이 발생한다.
보통은 그 자리를 절대 찾지 못하겠지만, 현석은 충분히 그걸 찾아낼 능력이 있었다.
성벽에 도착한 현석은 위를 올려다봤다.
성벽 위에 감시병들이 쫙 깔려 있었지만, 현석이 작정하고 움직이면 저들이 현석을 발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다만 이 자리에서 아주 정확하게 수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마력장에 걸리지 않을 테니까.
현석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힘차게 위로 점프했다.
툭! 툭! 툭! 툭!
네 번 발을 벽에 디딘 것만으로 성벽 위에 올라섰다. 현석은 즉시 성벽을 넘어 베를루니 안으로 들어갔다.
완벽하게 기록 없이 성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현석이 성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마력패턴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제 현석은 베를루니가 보기에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사람이 되었다.
베를루니 안에도 곳곳에 감시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현석은 그 아티팩트들의 성향을 분석해 모습을 감출 때는 감추고, 그렇지 않을 때는 과감히 움직여 빠르게 마탑으로 향했다.
아마 나중에 현석의 움직임을 기록으로 확인하려면 웬만해선 흔적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마력을 감지하는 아티팩트들도 있었는데, 그것들은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피해가거나 교란시켰다.
아마 그것 때문에 추적이 더 늦어질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마탑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켄드릭이 준 정보를 이용해야 한다.
마탑의 폐수를 흘려보내는 지하수로에 개구멍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일단 지하수로부터 찾아야 한다.
당연히 지하수로로 들어가는 곳도 알고 있었다. 켄드릭의 정보에 자세히 나와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현석은 마탑을 지나쳐 뒤쪽으로 갔다. 마탑 주변은 대저택들이 즐비한 주택가였다.
그리고 그 대저택들 사이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공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저택과 저택 사이를 띄워 놓은 것이다.
지하수로로 가는 입구는 그 공터 한가운데에 있었다.
마탑의 폐수가 흐르는 수로는 하나가 아니었다. 모든 공터를 지나는 수로가 하나씩 있었다.
그렇게 마치 문어발처럼 사방으로 뻗은 수로를 따라 성밖까지 흘러나가게 되어 있었다.
마탑의 폐수는 베를루이 성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흘러가 버려지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 되어 있었다.
중간 중간 폐수를 정화하는 장치가 되어있는데도 그랬다.
마탑의 폐수에는 특이하고 위험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가끔 그 마력이 변이하면 굉장한 파괴력을 지닌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어쨌든 현석이 지나가야 할 길은 그런 위험한 폐수가 흐르는 수로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기에 들어가는 것조차 엄두를 못 낼 일이었다.
하지만 현석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현석은 그 폐수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모두 제어할 능력이 되니까.
‘여기로군.’
열 개가 넘는 공터 중에 개구멍이 존재하는 수로는 딱 하나였다.
그걸 잘 찾는 것도 중요했다.
현석은 공터 한가운데에 서서 일단 주위를 살폈다. 따로 문이 달려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여기서 수로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땅을 파야 한다.
그냥 땅만 파고 들어가면 끝이 아니었다. 다시 메워서 원래대로 되돌려 놔야 한다.
만일 폐수에서 흘러나온 마력의 잔재가 도시 안으로 퍼지면 정말 대형사고가 터질 테니까.
현석의 행동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순식간에 땅을 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판과 흙, 그리고 돌을 이용해 위를 막아 버렸다.
잠깐 땅을 판다 싶더니 어느새 현석은 사라지고 공터는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아래로 내려간 현석은 지하수로를 확인했다. 수로의 외벽은 아주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들어갈 방법이 아예 없는 게 아니었다. 문이 달려 있었으니까.
수로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 때, 들어가 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문이었다.
현석은 그 문을 열고 수로 안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문을 닫았다.
지독한 마력의 향이 확 풍겨왔다.
현석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사방으로 밀어 버렸다.
현석을 중심으로 마치 비눗방울이 생겨난 것처럼 마력이 차단되었다.
현석은 날카로운 눈으로 수로에 흐르는 폐수를 확인하며 걸어갔다.
‘대체 무슨 실험을 하기에 이런 지독한 폐수가 만들어지는 거지?’
보면 볼수록 수상했다.
현석은 지하수로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켄드릭이 말했던 그 자리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거긴가?’
그냥 눈으로는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폐수가 쏟아지는 통로 근처였으니까.
여러 수로로 나뉘어 흐르기 때문에 한 쪽 수로가 처리하는 폐수의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저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는 정도였다.
여기에는 마법 실험을 통해 나온 폐수도 있지만, 마탑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쓰는 물과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나오는 오물까지 있었다.
그렇게 쏟아지는 폐수 뒤쪽 벽이 바로 켄드릭이 말하던 개구멍이었다.
그러니 개구멍에 들어가려면 저 폐수를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석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단…… 구멍부터 뚫어야겠군.’
폐수 뒤쪽 벽에는 개구멍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벽 뒤가 빈 공간이라는 게 중요했다.
그곳은 처음 이 마탑을 만들 때부터 존재한 균열 같은 거였다. 그 균열이 점점 커져서 결과적으로 개구멍을 만든 것이다.
이걸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 개구멍의 존재를 벽으로 감추고 마탑에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귀중한 정보가 켄드릭의 손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그가 바로 켄드릭의 스승이자, 켄드릭을 정보상인으로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즉, 지금까지 한 번도 쓰지 않은 비밀통로라는 뜻이었다.
현석은 검에 마력을 담아 가볍게 휘둘렀다.
슈가가각!
벽이 조각조각 갈라져 후두둑 쏟아졌다. 정말로 빈공간이 나타났다.
현석은 마력을 강하게 뿜어냈다.
화아악!
쏟아지던 폐수가 순간적으로 위로 치솟았다.
그러자 현석이 그 순간 비밀통로 안으로 쑥 들어갔다.
폐수를 한 방울도 맞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현석은 그 비밀통로를 이용해 위로 올라갔다.
말이 비밀통로지 그저 위로 구멍이 쭉 뚫려 있을 뿐이었다. 어설픈 사다리조차 없었다.
물론 현석은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위로 쭉쭉 올라갔다. 거의 평지를 달리는 거나 다름없이 벽을 툭툭 디디며 위로 점프해 끝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진짜 조심해야 한다. 이 벽 뒤는 식료품 창고라고 했다. 혹시라도 사람이 있을 때 벽을 부수고 들어가면 일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난리가 날 수도 있었다.
현석은 마력을 풀어 벽 뒤의 기척을 살폈다.
마탑 안이기 때문에 마력을 이용하는 것도 극도로 조심해야만 했다.
‘아무도 없군.’
지금이 바로 찬스였다. 현석은 벽에 둥그런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식료품 창고로 들어갔다.
그 다음 뚫은 벽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물론 흔적이 아예 안 남을 수는 없지만 이런 곳을 누가 세심히 확인하겠는가.
현석이 일을 마치고 여길 빠져나갈 때까지는 아마 아무도 이곳이 비밀통로인지 모를 것이다.
식료품 창고를 빠져나간 현석은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이동했다.
마탑의 경비는 베를루니보다 더했다. 당연히 사람이 하는 경비가 아니었다.
마탑 자체가 거대한 마법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를루니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베를루니보다 오히려 더 촘촘하고 완벽하게 짜여진 마법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현석은 더 편했다.
마력장이 마탑 내부를 가득 채우는 방식이 아니었다. 마탑 내부에 마력장을 채우면 이곳에서 하는 마법 실험에 오차가 발생할 소지가 높기에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저 무수한 아티팩트를 이용한 감시와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현석은 특유의 마력컨트롤 능력을 이용해 그 모든 아티팩트의 감시를 무력화시키며 위로 쭉쭉 올라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중요한 연구나 보관소가 있다고 했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마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보안도 철저해지고, 또 보관하거나 연구하는 것의 중요도도 올라간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레인보우 엘릭서에 대한 건 몇 층에 있어야 할까? 적어도 아랫층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위로 올라가던 현석은 문득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사람이…… 하나도 없어!’
< 마탑의 정체 1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