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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24화 (224/326)
  • < 레인보우 엘릭서 6 >

    “우리 오늘도 밖에서 자는 거예요? 저기 안 들어가나요? 저 도시 여관도 예쁠 거 같은데.”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밤이 될 거고, 저곳 베를루니의 성문도 굳게 닫힐 것이다.

    류지혜를 비롯한 네 여인은 살짝 아쉬운 눈으로 베를루니를 바라봤다.

    제법 높은 언덕이었기에 베를루니의 모습이 잘 보였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도시였다.

    물론 지금 일행을 기다리는 컨테이너 집도 상당히 훌륭하다. 현석이 정말 제대로 마음먹고 만들었기 때문에 각종 편의시설부터 장식까지 상당히 훌륭했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것도 저 아름다운 마법의 도시에서의 경험을 말이다.

    현석은 그녀들의 분위기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건 없지. 그럼 오늘은 저기에서 자는 걸로 하지.”

    “예? 정말요?”

    “그래도 되나요?”

    심지어 현석에 대한 일이라면 앞뒤 전혀 재지 않고 무조건 현석의 편이 되는 류혜연까지 손뼉을 짝 치며 좋아했다.

    현석이 굳이 여기서 지내려 했던 이유는 혹시 켄드릭이 오늘 당장 이리로 달려올지 몰라서였다.

    하지만 보아하니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모양이었다.

    ‘대충 확인만 해봐도 답이 딱 나올 텐데.’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어디 답이 나왔다고 그대로 행하는 게 쉽겠는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문 닫기 전에 얼른 가지.”

    현석이 먼저 움직였다. 어느새 컨테이너 박스도 사라진 뒤였다. 이제 현석은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물건도 아공간 안으로 넣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마력컨트롤 능력이 있어야만 간신히 할 수 있는 일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었다.

    이제 현석의 마력에 대한 능력은 측정이 불가능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마력에 대한 새로운 타이틀을 얻을 날도 머지 않은 듯했다. 현석의 느낌이 그랬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지금까지 거의 틀려본 적이 없었다.

    ‘과연 어떤 타이틀일지 기대되네.’

    타이틀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타이틀의 설명이나 자격에 더 관심이 있었다.

    분명히 뭔가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현석이 마력에 관련된 타이틀 생각을 하는 사이 일행은 어느새 성문에 도착했다.

    어제도 느낀 거지만 베를루니의 시스템은 상당히 편리했다. 성문을 지날 때도 시스템의 역할이 상당했다.

    기다릴 일이 거의 없었다. 성문을 통과하는 동안 특유의 마력패턴을 읽어 신원을 바로 파악해 버리니 말이다.

    현석은 성문을 지나면서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마력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파악해 봤다.

    아까도 확인했지만 워낙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당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지나갔기에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마력패턴을 찍어서 저장하는 방식인가? 신선하군.’

    그런 식으로 저장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그 기록과 비교해 신원을 파악하는 방식이었다.

    아마 이 도시에 한 번이라도 들어왔던 사람은 모두 각자의 마력패턴이 등록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사람을 이름이나 얼굴로 구분하지 않고 오직 마력패턴으로만 구분하는 것이다.

    ‘이건…… 이용할 가치가 있겠어.’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베를루니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변장을 하거나 이름을 바꾸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서 택한 방식일 것이다.

    보통은 이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가진 고유의 마력패턴은 바뀌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현석이었다.

    현석은 마력의 주인, 당연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마력패턴도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었다.

    물론 변형한 채 유지하려면 계속 신경을 써줘야 하지만 그 정도는 솔직히 일도 아니었다.

    그저 마력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계속 유지만 해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현석은 다시 들어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문에서 들어와 여관이 모인 거리로 이동하면서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이곳 베를루니에 온 이후, 현석은 심안과 마력감지를 최대한 이용해 주변 모든 것을 살피는 습관이 생겨 버렸다.

    혹시라도 성문에 장치된 것과 비슷한 방식의 아티팩트가 있으면 미리 파악해 놔야 했다.

    나중에 마력패턴을 바꿔 변장을 하고 움직일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저 여관 진짜 예쁘네요. 저기로 갈까요?”

    누구보다 앞장서서 여관을 고르는 사람은 양세희였다. 그녀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눈을 충족했다.

    이곳 베를루니의 밤거리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어떻게 저런 빛깔이 나오죠? 저것도 마법으로 만든 빛인가요? 정말이지…….”

    양세희는 기도하듯 두 손을 꼭 잡으며 감격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쏟아지는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현석 일행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제법 인상적인 밤이었다.

    * * *

    다음 날, 현석 일행이 있는 곳에 켄드릭이 찾아왔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지?”

    라이언이 놀란 눈으로 켄드릭을 바라봤다. 하지만 켄드릭 입장에서는 정말 별 거 아닌 일이었다.

    현석 일행은 생각보다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이 베를루니 안에서 여덟 명이나 되는 인원이 우르르 몰려다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구나 밖에 들락거리는 팀은 오직 현석 일행뿐이었다.

    그러니 정보망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라면 찾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켄드릭은 다른 일행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석부터 찾았다.

    마침 현석이 마지막으로 여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현석은 켄드릭을 발견하자마자 빙긋 웃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해준 말을 실행에 옮긴 게 분명했다.

    확인했으면 거대한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다.

    켄드릭은 말은 물론이고 눈짓 한 번 하지 않고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현석이 그 뒤를 느긋하게 따라갔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이 이게 무슨 영문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다가 현석의 뒤를 후다닥 따라갔다.

    켄드릭은 곧장 성문을 빠져나갔다. 기록에 남겠지만 상관없었다. 하루에 베를루니 성을 드나드는 사람의 수는 수백 명에 달하니까.

    콕 집어서 관심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보통은 거의 티도 안 나는 일이었다.

    베를루니에서 나온 켄드릭은 어딘가로 열심히 걸어갔다. 어제 현석이 데려간 그 자리는 아니었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켄드릭이 방향을 잘못 잡았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현석은 그냥 따라갔다.

    만일 저쪽에 켄드릭이 함정을 준비했어도 상관없었다. 지금의 현석은 그 함정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모두 파훼하고 박살 낼 수 있는 실력을 가졌으니까.

    켄드릭이 향한 곳에는 작은 돌산이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고 돌이나 바위밖에 보이지 않는 산이었다.

    켄드릭은 그 산에 올랐다. 그리 높지 않았기에 오르는 데에는 별로 시간도 걸리지 않았고 힘들지도 않았다.

    정상까지 갔어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켄드릭은 산 중턱에서 멈췄다.

    “다 왔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여기서 하기로 하죠. 솔직히…… 시간 별로 없을 거 같으니 서론은 빼죠.”

    켄드릭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마탑으로 몰래 들어가게 해드리는 겁니다.”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원하던 정도였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켄드릭은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마…… 금방 들킬 겁니다. 그리고 신상이 바로 털리고 동료들도 모두 위험해질 겁니다.”

    켄드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동안 마탑과 권력투쟁을 하려던 사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별 수가 다 등장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탑의 아성을 깨뜨리지 못했다.

    마탑이 가진 힘과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실 켄드릭은 그런 마탑의 능력에 뼛속 깊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망설이는 중이었다.

    이대로 아차 하는 순간 자신까지 줄줄이 엮여 들어갈 수가 있었다.

    마탑에 범죄자 신분으로 잡히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힘들고 고생하고 고통스러운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을 통해 마법 실험을 하는 곳으로 보내지니까. 그건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건드린다.

    “넌 걱정할 거 없다. 들키더라도 마탑의 모든 시선은 나한테만 집중될 테니까.”

    현석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맺혔다.

    그걸 보고 있으니 켄드릭은 자신도 모르게 현석이라면 뭔가 해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놈을 언제 봤다고.’

    켄드릭은 고개를 흔들어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제가 받게 될 대가는 뭡니까?”

    어쨌든 이것도 정보를 파는 일이다. 공짜로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더구나 이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목숨을 던지는 것보다 더한 위협이 뒤에 도사리고 있었다.

    한데 어떻게 공짜로 정보를 넘길 수 있겠는가. 설사 그 정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해도 말이다.

    “네가 제시해 봐라. 어느 정도 보상이면 흔쾌히 정보를 넘길 수 있을지.”

    현석의 말에 켄드릭이 고민에 잠겼다. 보아하니 어떤 보상을 얘기하든 다 들어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해선 안 된다. 지금은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최선의 선택이 필요한 때였다.

    “안전.”

    현석이 켄드릭을 쳐다봤다.

    “전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제 안전을 보장해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건 그거 하나입니다.”

    현석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요구가 너무 두루뭉술한데? 그럼 그 기준은 내 맘대로 정해도 되나?”

    켄드릭이 당황했다. 그가 원한 건 저런 게 아니었다. 향후 현석이 자신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계속 힘써주길 바랬다.

    현석은 그런 켄드릭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아무 일도 없게 해주면 되겠군. 뭐, 그거야 어차피 하려던 거니 어렵지 않지.”

    “아니, 저…… 그게 아니라…….”

    켄드릭이 당황해 허둥지둥하자 현석이 씨익 웃으며 아공간에서 흑철간수 하나를 꺼냈다.

    그걸 본 켄드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흑철간수? 대체 이걸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켄드릭이 경악어린 외침을 토해냈다.

    “이것이…… 이것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니!”

    켄드릭의 반응에 오히려 현석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철간수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지?”

    그제야 켄드릭이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전설에나 남아있는 제국의 유품이라는 건 아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설?”

    “흑철간수 하나가 제국의 유명한 범죄집단을 괴멸시켰다는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건 책이나 그림으로도 전해 내려왔다. 굉장히 유명한 일이었기에 기록도 많이 되고 과장되거나 이야기 소재로도 많이 쓰인 것이다.

    “어쨌든 그건 중요하지 않고, 이거면 대가로 충분하겠나?”

    “예?”

    켄드릭이 얼빠진 표정으로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이, 이, 이걸 주신단 말입니까? 제게요?”

    “이 정도면 안전을 지키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아닌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려던 켄드릭이 멈칫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통해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았다.

    “이건…… 제게 과분한 물건입니다. 전…… 좀 더 다른 현실적인 대안을 원합니다.”

    현석이 피식 웃었다.

    “까다롭군.”

    말은 까다롭다고 하지만 현석은 내심 이 켄드릭이라는 자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너…… 새로운 세상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해볼 생각은 없나?”

    “예? 새로운 세상이요?”

    켄드릭은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일단 정보부터. 나머지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내가 일하고 올 동안 생각해봐.”

    켄드릭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저 사람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난데없이 등장한 강자. 거기에 제국어도 모르는 사람들…….’

    거기에 방금 현석이 한 말까지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휘몰아쳐갔다.

    “정보는?”

    현석의 물음에 켄드릭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켄드릭은 근처에 있는 바위로 가더니 그걸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바위 아래에 뚫린 구멍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다.

    “중요한 정보만 따로 모아둔 겁니다.”

    현석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이걸 보면 켄드릭도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현석은 궤짝을 열고 그 안에 있는 정보를 쭉 훑었다. 별의 별 것들이 다 있었다.

    비단 이곳 베를루니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다른 도시의 정보들도 수두룩했다.

    그 중 크락실리아의 정보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현석은 궤짝의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담았다. 양이 제법 많았지만 다 외우는 데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다.

    “좋아. 제법 쓸 만한 정보로군.”

    켄드릭이 제공하려던 정보는 마탑의 개구멍이었다.

    아마 마탑에서도 그런 것이 있는지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그것은 마탑의 폐수를 버리는 지하수로에 연결된 구멍이었으니까.

    현석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난 따로 움직인다. 너희는 먼저 도시로 들어가서 적당한 여관에서 쉬고 있어.”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금괴들을 일행 앞에 후두둑 쏟았다.

    이곳에서 평생 풍족하게 먹고 살 수도 있을 정도로 많은 액수였다.

    그걸 본 켄드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멍하니 현석과 금괴, 그리고 현석의 일행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의 눈에 도는 생기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 레인보우 엘릭서 6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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