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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22화 (222/326)
  • < 레인보우 엘릭서 4 >

    “너무 서두르시는 거 아닌가요?”

    류지혜의 물음에 대답한 건 현석이 아니라 라이언이었다.

    “우리 이 던전에 들어온 지 꽤 됐어. 슬슬 밖이 걱정되지 않아?”

    현석의 사람이 되기로 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조직에 녹아들지 못한 라이언도 현석이 밖에서 어떤 일을 시작했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페레인 엑기스는 분명히 세계를 한 번 들었다가 놨을 것이다.

    그리고 현석이 오픈한 볼텍스 암시장은 플레이어의 세계를 한 번 들었다 놨을 것이고.

    그런 상황인데 렉스턴 에너지가 가만히 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리고 렉스턴 에너지는 전력을 분산시킨 채 대충대충 상대해도 괜찮을 그런 어설픈 회사나 조직이 아니었다.

    “그러게요. 밖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요? 뭐…… 우리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지 않겠어요?”

    “세상이야 잘 돌아가겠지. 근데, 미래산업이나 볼텍스 암시장은 안 그럴 걸?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곳이 여럿 있을 텐데.”

    라이언과 류지혜의 대화를 듣는 일행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사실 이제 슬슬 밖이 걱정되긴 했다.

    특히 양세희는 밖의 일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는 오빠 때문에 더 걱정이 컸다.

    양동욱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어릴 때부터 봐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이라는 것이 머리 쓰는 능력이지 힘을 쓰는 능력은 아니었다.

    아마 외부 세력이 미래산업이나 볼텍스 암시장을 무너뜨리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양동욱을 어떻게 하는 것이리라.

    “당분간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나름 준비를 했으니까.”

    현석이 정리하듯 말했다.

    양세희의 표정이 조금 괜찮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정말…… 괜찮겠죠? 그 멍청이 무슨 일 있으면 도망 잘 쳐야 할 텐데…….”

    현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주 든든한 사람이 지켜주고 있으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

    “든든한 사람이요?”

    양세희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반색했다.

    “설마 그 할아버지가 지켜주기로 하신 건가요?”

    그녀가 말하는 할아버지가 누군지는 뻔했다. 임형석이었다.

    임형석은 정말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 그가 마음 먹고 양동욱을 지켜준다면 정말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분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능력 없는 일반인을 지키는 걸 잘 할 수 있을까?”

    “그, 글쎄요…… 하지만 피라밋 암시장의 주인도 지켰다고…….”

    “블러디퀸? 그 여자가 일반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양세희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지금 현석의 말을 듣다 보니 양동욱을 지키는 사람은 임형석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인가. 현석이 저렇게 안심해도 될 정도라고 하면 정말 뛰어난 사람이 분명할 텐데 말이다.

    양세희가 라이언을 힐끗 쳐다봤다.

    ‘솔직히 저 사람이 지켜준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라이언이 싸우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당연히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다.

    그의 명성도 익히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사람 혼자서 양동욱을 지킨다면 계속 불안할 것 같았다.

    양동욱은 일반인이다.

    설사 라이언이 지킨다고 해도 다수의 적이 몰려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이언이 적을 물리칠 수는 있다. 하지만 양동욱을 보호하면서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했다.

    만일 라이언과 추광열이 함께 지켜준다면 다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세희의 말과 시선을 보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뻔히 보였다.

    “그런 눈으로 볼 거 없다. 저 두 사람보다 더 강한 자들이 셋이나 지키고 있으니까.”

    “예? 그런 사람이 있어요?”

    현석의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특히 라이언과 추광열의 놀람은 더했다. 두 사람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대체 그 사람들이 누군데? 나보다 강한 놈이 셋이나 있다고? 정말 믿기 어려운데?”

    라이언과 추광열은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첫 번째, 두 번째로 강한 플레이어다.

    한데 그 두 사람보다 더 강한 플레이어가 셋이나 있다니 그걸 어떻게 그리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고만 알면 돼.”

    “아니, 그냥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엇보다 저쪽이 불안해 하잖아.”

    추광열까지 나서서 양세희에게 턱짓하며 말하자, 결국 현석은 이동을 멈췄다.

    현석은 라이언과 추광열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너희 레벨이 몇이지?”

    “우리? 글쎄…… 측정한 지가 제법 돼서…….”

    “249다.”

    “249?”

    현석의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249라니. 그런 레벨이 과연 가능하긴 한 것일까?

    “그렇게 놀랄 필요 없다. 다들 200은 넘었으니까. 그 정도는 느끼고 있었던 거 아닌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200레벨을 넘어서는 순간은 아주 특별했다. 그래서 모를 수가 없었다.

    “어쨌든 199와 200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건 알겠지?”

    이것 역시 다들 동의했다. 마치 높은 계단 하나를 훌쩍 올라가는 느낌이었으니까.

    “249와 250의 차이는 그보다 더 크다.”

    현석은 자신을 주목하는 일행을 슥 둘러본 다음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299와 300의 차이는 더 크겠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양동욱을 지키는 자들의 레벨이 307이다.”

    다들 입이 쩍 벌어졌다.

    “말도 안 돼! 300레벨이 넘은 사람이 있다고? 그건 불가능해!”

    249레벨을 찍은 것도 그림자 인간들에게 붙잡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직도 200초반에서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249에서 250으로 올라가는 건 정말 어려울 것이다. 지금 벽에 막혔기 때문에 그 벽이 얼마나 단단하고 높은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막막했다.

    한데 그걸 깨부순 것도 모자라 그보다 더 대단한 300레벨의 벽을 깼다고?

    대체 그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하지만 다들 현석이 허튼소리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즉, 정말로 307레벨의 괴물 플레이어가 셋이나 양동욱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양세히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이제 진짜 안심한 것이다.

    307레벨의 괴물들이 지키고 있는데, 뭐가 불안하겠는가. 최소한 도망이라도 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현석은 멍한 표정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일행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만일 그런 자들이 100명이나 있고, 그 중 하나는 332레벨이라고 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현석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속도를 좀 더 높였다. 베를루니까지 가는 길은 제법 머니까.

    * * *

    베를루니는 마탑의 도시답게 멀리서부터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모양이 화려한 게 아니라 빛깔이 화려했다.

    일단 거대한 성벽 전체가 마법진으로 덮여 있었다. 한데 그 마법진이 은은하게 빛났다.

    선마다 색이 달랐다. 각각의 마법진에 들어가는 마력의 속성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쁘다…….”

    멀리서 베를루니를 바라본 일행의 반응은 다 똑같았다. 심지어 남자들도 베를루니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할 정도였다.

    베를루니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마법진처럼 건설되어 있었다. 도시에 있는 모든 건물과 길 자체가 마법진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전체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밤이라서 그런지 그 모습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저긴 밤에 못 들어가겠죠?”

    류지혜가 현석에게 물었다.

    크락실리아는 특별한 경우였다. 도시 성벽을 모두 장악한 크란시스 가문의 은인이었기 때문에 밤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베를루니는 다를 것이다.

    어떤 도시든 밤에는 성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밤의 마수 중에는 정말 위험한 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도시에서 밤의 경비에는 각별히 신경을 쓴다.

    밤의 마수 중에는 인간 행세를 하는 놈들도 있다. 전투력 자체는 높지 않은데, 특이한 능력으로 인간들을 이간질 시키고 저주를 퍼트리곤 한다.

    그런 마수 하나 잘못 들이면 도시가 초토화될 수도 있었다.

    인간을 현혹해 성문을 활짝 열어 버리고, 그 순간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마수나 마족이 들이닥치면 그야말로 끝장이니까.

    “들어가려면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라이언이 중얼거렸다. 사실 지금 일행들 실력 정도면 몰래 성벽을 타고 넘어가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말에 현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을 거다.”

    라이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현석의 말에 그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 성벽에 새겨진 마법진이 문제야. 탐지, 포획, 추적, 방어, 공격까지 모두 새겨져 있으니까.”

    누군가 성벽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위치를 파악해 버리고, 그 뒤로 계속 추적한다.

    게다가 강력한 힘으로 포획을 시도할 것이고, 그러는 사이 저 도시 전체가 깨어나게 될 것이다.

    베를루니와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저 안의 마탑에 볼일이 있을 뿐이다.

    굳이 그렇게 일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그럼 어쩌려고? 여기서 밤 새?”

    그럴 리 있겠는가. 현석은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이럴 때 일행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에는 고기만한 게 없었다.

    현석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집처럼 꾸민 컨테이너 박스까지 꺼냈다.

    일행은 그걸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무슨 달팽이야? 집을 짊어지고 다녀?”

    라이언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컨테이너 박스 안에 들어간 다음에는 그 말이 쏙 들어갔지만.

    그야말로 끝내주는 구조였다. 심플하면서도 실용적으로 디자인 된 집이었다.

    어쨌든 일행은 배불리 고기를 먹고 오랜만에 집에 있는 편안한 침대에서 푹 잘 수 있었다.

    잠깐 생길지도 몰랐던 불만이 그렇게 말끔히 사라졌다.

    * * *

    “이쪽 길 맞나요?”

    류지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도 크랑이 준 지도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길이 살짝 빗나간 것 같았다.

    “맞다.”

    현석의 말에도 류지혜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동료들을 바라봤다.

    크랑의 지도는 모두 확인했다. 하지만 류지혜처럼 길을 잘 파악한 사람은 류혜연과 라이언뿐이었다.

    류혜연과 라이언도 류지혜와 같은 의견이었다.

    “내가 봐도 길이 좀 어긋난 거 같은데? 이쪽이 아니라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라이언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그리고 류혜연은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끝까지 현석을 믿었다.

    현석이 괜히 이쪽 길로 갈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들 그 모습을 보고 또 중증이라고 투덜거렸지만, 류혜연은 그런 사소한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쪽이 맞다.”

    현석이 어찌나 단호히 말했는지 다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데, 저쪽이 아닐 리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말한 사람이 바로 현석이었으니까.

    지금 현석과 일행이 찾아가는 곳은 베를루니 최고의 정보상인이라 불리는 켄드릭이었다.

    그러니 크랑이 말한 대로 마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정보상인이라는 말도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물론 마탑만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자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석은 거침없이 골목을 쭉쭉 지나나갔다.

    골목을 벗어나니 제법 넓은 공터가 나왔다. 공터를 빙 둘러 상점들이 쭉 늘어선 곳이었다.

    “뭐야? 왜 여기가 나와?”

    라이언은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놀란 건 류지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제대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현석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사실 류지혜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길이 어긋났다. 한데 왜 제대로 찾아온 거란 말인가.

    ‘지도가 잘못됐나?’

    그랬다면 말이 된다. 하지만 현석도 그 지도를 보고 찾아왔다. 지도가 잘못 되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마법이다.”

    “예? 마법이요?”

    이곳으로 오는 골목에 현혹, 혼란, 환상이 적절히 버무려진 마법이 깔려 있었다.

    “아……!”

    류지혜는 그제야 이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그녀는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지금 지나온 마법 걸린 골목길보다 솔직히 현석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다.

    “저쪽이군. 가자.”

    현석이 상점들 중에 한 곳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마탑의 기념품을 파는 허름한 상점이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켄드릭의 정보상점이었다.

    < 레인보우 엘릭서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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