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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20화 (220/326)
  • < 레인보우 엘릭서 2 >

    “허어. 이거 참…… 어처구니가 없군.”

    크랑은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푹신한 소파에 그의 몸이 반쯤 파묻혔다.

    “그게 뭔지는 알고 있나? 이름만 대충 들어보고 말하는 거 아니지?”

    크랑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억지로 만든 비웃음인 것이다.

    그의 눈빛을 보면 지금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와서 묻나? 난 말이야, 진짜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야.”

    “그게 그렇게 위험한 건가?”

    현석은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였다. 하지만 크랑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도발할 생각은 하지 마. 다른 도발에는 넘어갔을지 몰라도 레인보우 엘릭서가 걸렸다면 얘기가 다르니까.”

    현석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이렇게 되니 오히려 더 느긋해졌다.

    처음 술집에서 금괴 반 개를 주고 얻은 정보는 벌써 대충 훑어봤다.

    그리고 여기서도 그 약을 레인보우 엘릭서라고 부른다는 걸 확인했다.

    이름이 같은 것이 좀 신기했지만, 어차피 렉스턴 에너지가 이곳의 정보를 얻어서 그걸 만들었다면 이름이 같은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생각해보니…… 그렇다면 렉스턴 에너지에 제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있다는 뜻인데?’

    현석의 뇌리에 그 정체모를 인물이 스쳐지나갔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미 3년 전에 200레벨을 넘겼을지도 모를 강자 말이다.

    현석은 상념을 털어내고 크랑을 쳐다봤다.

    “그래서 네가 팔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인데? 그것부터 결정하고 시작하지.”

    크랑이 자세를 바로 한 다음 테이블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상체를 숙여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눈빛이 형형히 빛났다.

    “그거야 당신이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인가, 또 얼마나 입이 무거운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지.”

    현석이 담담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걸 알아보는 게 능력 아닌가?”

    크랑이 고개를 저었다.

    “그걸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사실 우리도 나름 알아볼 만큼 알아봤거든. 크란시스 후작가에서 은인대접 받는 분인데 무시할 수 있나.”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저 조직 주변을 배회한다고 알아본 게 아니었다. 크란시스 가문 때문에 조사한 거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 왜 크란시스 후작가의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 여기에 왔을까?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걸까?”

    현석은 말하는 크랑의 모습을 보며 그가 이미 나름의 답을 내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답이 현석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쪽으로 내려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몸에 흐르는 마력의 기질이 살짝 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현석이 담담히 크랑을 보며 말했다.

    “그 결정,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크랑이 빙긋 웃었다.

    “눈치 정말 빠른데?”

    사실 크랑은 속으로 정말 놀랐다. 방금 현석이 한 말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지금까지의 대화나 분위기를 보면 자신의 계획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한데 이렇게 빨리 그걸 알아차린 걸 보면, 눈치가 정말 빠르거나, 아니면 머리가 뛰어난 모양이었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됐으니 서로 피곤하지 않게 정리하자고.”

    크랑은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그냥 순순히 잡혀주는 게 어때? 그럼 네 동료들도 다 안전할 텐데 말이야.”

    “내 동료들한테도 사람을 보냈나?”

    크랑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사람을 보내고 누굴 잡고 그럴 깜냥이 안 돼.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누구지?”

    현석의 물음에 크랑이 어깨를 으쓱 했다.

    “모르는 걸 굳이 내가 알려줄 이유가 있나? 이래봬도 나 정보상인이야. 공짜로 알려주는 건 없어.”

    현석이 테이블에 뭔가를 휙 던졌다.

    타다닥!

    금괴 세 개가 탁자 위에 놓였다.

    그걸 본 크랑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지금 네가 가진 모든 게 내 것이 될 텐데, 이걸로 거래가 될 것 같아?”

    이번엔 현석이 피식 웃었다.

    “내 소유의 아공간을 네가 열 수 있을 것 같아?”

    그제야 크랑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보안이 걸린 아공간을 가지고 있는 건가? 하긴, 아까 금괴 쏟아낼 때부터 돈 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크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정도야 알아도 어떻게 되는 게 아니니까.”

    크랑은 일단 금괴를 챙겼다. 그리고 현석을 보며 히죽 웃으며 말했다.

    “쥬크라는 이름 들어봤지?”

    “역시 쥬크였나? 아직 혼이 덜 났군.”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만 확신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대충 짐작했던 모양이지? 확신을 위해 금괴를 세 개나 던지다니, 통이 제법 큰데?”

    현석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내가 가질 텐데, 금괴를 세 개 주나 열 개 주나 무슨 상관이지?”

    “으하하하하! 이거 참 재미있는 친구로군.”

    크랑은 크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색하며 마력을 확 풀어냈다.

    “이거…… 내가 정말 우습게 보인 모양이야.”

    그런 크랑을 앉은 채 가만히 쳐다보던 현석이 물었다.

    “의뢰 받으면서 나에 대해서 아무 얘기도 못 들었나?”

    “들었지. 그리고 충분히 조사도 했고.”

    “그런데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현석이 그렇게 말하며 마력을 확 풀어냈다. 물론 상당히 자제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풀어 버리면 크랑이 그대로 정신을 잃고 똥오줌을 지릴 테니까.

    “허어억!”

    크랑은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앉고 싶어서 앉은 게 아니라 다리에 힘이 풀려서 앉을 수밖에 없었다.

    현석이 그런 크랑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의뢰인한테 속은 모양이지?”

    크랑의 표정이 굳었다. 속긴 했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조사가 모자란 탓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의뢰인은 목표의 힘을 축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크란시스 후작가의 쥬크가 그러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다른 의뢰인도 아니고 귀족가라면, 그것도 크락실리아 최고 권력 가문의 후계자 중 하나인 쥬크라면 더 정확한 정보를 줄 거라고 여겼다.

    그래야 임무를 제대로 완수할 테니까. 돈보다는 일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귀족가라면 말이다.

    “준비한 건 이게 끝인가? 너랑 저 여자 두 명? 그럼 실망인데?”

    현석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 두 여인을 슬쩍 보며 말했다.

    그녀들은 현석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랐다.

    특히 현석 옆에 앉아 있던 여인은 온몸이 그대로 굳어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언제 당했는지 현석의 마력이 그녀의 몸을 제압한 것이다.

    “자, 또 준비한 게 있으면 풀어봐.”

    크랑은 일단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 살짝 뜸을 들였다. 그러자 기다리던 신호가 왔다.

    “실력이 예상외라는 건 인정하지. 내 실수도 다 인정해. 하지만 그래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단히 무장한 기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현석은 그들을 슥 훑었다. 100레벨이 살짝 안 되는 자들이었다.

    보통 사람에 비하면 대단한 실력자겠지만, 현석 입장에서는 코웃음만 나올 일이었다.

    “혹시 내 동료들에게 보낸 자들도 저 정도 수준인가?”

    현석의 여유로운 말과 표정을 본 크랑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답게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다. 또한 눈치도 빨랐다.

    ‘전혀 겁먹고 있지 않아. 허세도 아니야.’

    왠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크랑은 일단 퇴로부터 확인했다.

    * * *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이상한 느낌 안 들어?”

    그 말에 추광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러자 나머지 일행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걸 느꼈다는 건, 정말 뭔가 일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팀 메인퀘스트에서 가장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박승희였다.

    “적의가 느껴져요.”

    “맞아. 적의지. 마수가 아닌 인간의 적의. 이런 건 또 오랜만인데?”

    라이언이 씨익 웃었다. 제법 사나운 미소였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소한 이건 잘 치워둬야죠.”

    류지혜가 손에 든 제국어 책을 흔들며 말했다.

    다들 일제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게 망가지면 나중에 무슨 낯으로 현석을 보겠는가.

    “아공간 가진 사람?”

    라이언의 질문에 류지혜가 손을 들었다. 그녀는 팀 메인퀘스트의 리더이자, 아이템 수거 담당이기도 했다.

    그녀의 허리띠가 바로 아공간 아티팩트였다.

    다들 제국어 책을 류지혜에게 넘겼다. 그녀는 그것을 모아 자신의 아공간 안에 보관했다.

    “여기서 싸우면 여관 주인에게 피해가 가잖아요?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럴까? 좁은 데서 싸우는 것보다는 밖이 훨씬 재밌겠네.”

    다들 기대감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행이 벌떡벌떡 일어나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여관에서 나가니, 다가오던 자들이 흠칫 놀라는 게 눈에 확연히 보였다.

    “여기도 좁은데?”

    “아까 오면서 보니까 저쪽에 넓은 공터가 있었어요.”

    기억력 좋은 류혜연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들 반색하며 그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여관으로 다가오던 자들이 우왕좌왕 하더니 우르르 일행을 쫓아갔다. 그들의 표정이나 행동에 다급함이 어려 있었다.

    잠시 후,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호오. 여기 참 싸우기 좋은 곳이로군.”

    “근데 수가 좀 많은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라이언이 공터로 우르르 들어오는 자들을 유심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만 많지 별로 강할 것 같진 않은데? 일단 싸워보고, 안 되면 도망치지 뭐.”

    물론 도망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공터로 따라온 사내들의 수는 40명이었다. 수가 많긴 하지만 저들의 레벨이 이쪽과 비슷하지 않다면 별로 위협적인 숫자는 아니었다.

    사내들의 복장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들 갑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물론 풀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건 아니었지만, 상당히 비싼 갑옷이 분명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죽고 싶지 않으면.”

    라이언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일행을 둘러봤다.

    “뭐라고 하는지 아는 사람?”

    그러자 류혜연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인다고 하는 거 같기도 하고…… 따라오라는 거 같기도 해요.”

    그러자 라이언이 그 둘을 이었다.

    “죽기 싫으면 따라와라, 뭐 이런 건가?”

    빙긋 웃은 라이언이 다시 자신들을 찾아온 40명 사내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들은 사실 기사였다. 당연히 이런 도발을 받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일단 팔다리부터 하나씩 자르고 시작한다. 가라!”

    그의 명령에 다들 검을 뽑고 우르르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걸 보는 라이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팀 메인퀘스트는 차분히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그리고 진형을 갖췄다.

    적의 움직임을 보니 별로 대단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전투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방심은 절대 용납치 않는다.

    그것이 팀 메인퀘스트의 리더인 류지혜의 방침이었다.

    이내 양측이 격돌했다.

    * * *

    현석은 여전히 소파에 앉은 채 일어서지 않았다. 그리고 적의 레벨과 스탯, 스킬 등을 심안을 통해 확인했다.

    아무리 확인해도 정말 별 거 없었다.

    방에 새로 들어온 기사의 수는 열 명이었다.

    100레벨도 안 되는 기사 열 명이 현석을 어떻게 하겠는가. 어쩌면 저들의 칼조차 제대로 안 박힐지도 모른다.

    박히더라도 자연회복 스킬 때문에 순식간에 회복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현석의 얼굴에서 긴장감을 찾아보기 어려운 건 너무나 당연했다.

    현석은 기사들의 실력을 완벽히 파악한 뒤로는 크랑에게 신경을 썼다.

    크랑이 도망가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가 다른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우릴 보고도 아직 앉아 있다니, 건방진 놈이로구나.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기사 중 하나가 호통을 쳤다.

    물론 현석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현석은 피식 웃으며 기사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앞으로 나선 기사가 소리쳤다.

    “죽고 싶은 게로구나! 오냐! 당장 죽여주마!”

    기사의 말에 현석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너희들…… 목숨은 걸고 왔겠지?”

    < 레인보우 엘릭서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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